요즘 코로나가 재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때에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였을 때 그 동안 오실 메시아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학수고대하였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험을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메이사일 것이라는 가정보다는 아닐것이라는 가정이 더 짙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진정한 이웃이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있더냐?"고 역으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그 율법사는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사에게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라고 네가 아는대로 행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그 율법사는 우매하고 그러면 어떻게 사는게 올바른 삶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에 예시를 들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옷까지 빼앗기고 거의 죽도록 맞아 실신상태에 있었다. 그때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지나갔고 여행중이었던 사마리아인이 지나다가 그 강도 만난 행인을 치료하고 주막에 눕혀 그 비용까지 지불하였다 누가 그 행인의 이웃이냐?
이게 예수님께서 그 율법사에게 너는 어떻게 행할것이냐?고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 셋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사마리아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 세사람을 등장시켰을까요? 제사장과 레위인은 제사(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향한 것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가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강도 만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행인을 만난 것입니다. 성전에서 영혼까지 정결해져 왔다고 믿는 그들 앞에 불결한 피를 흘리고 있는 이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행인은 자신들을 오염시켜 다음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할 지 모르는 자일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불결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멀찍이서 돌아갔습니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어땠습니까?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혼혈인들인 사마리아인들을 개취급해서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여행이나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제사보다는 한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마리아인을 진정한 이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와 목사들에게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너희들이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예배를 드리느라 네 이웃에게 코로나를 퍼트리는게 선한 이웃이냐?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예배를 잠시 중단하고 이웃을 돌이켜 보는게 선한 이웃이냐?"
이제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목숨걸고 예배를 드려 이웃들에게 코로나를 전하는 자는 결코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이 아니며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사이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