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다니던 고등학교가 기독교 계통의 미션스쿨로 정신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하기가 의외로 용이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신앙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종교가 무엇인지 간을 보게 된 것이었는데 정신대학 그곳에서 학사 학위만이라도 취득을 해야 어디 가서 밥벌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졸업이 다가오자 그는 진로를 두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졸업장만을 가지고는 호구지책을 삼을 만한 일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럴 즈음 해외선교기관에서 일할 주임급 직원 한 명을 구한다는 정보를 선배가 알려주었다. 이름이 주임이지 실은 잡무(雜務)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필리핀 루손섬 벵게트에 있는 바기오시지역의 빈민촌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인데 그곳에서 경험을 우선 좀 쌓아보라고 일러주었던 것이다. 선배의 제의에 수락을 하고 샬롬해외선교회에 몸을 담고 보니 의외로 체질에 맞는 것이었다. 샬롬선교회의 회장은 교회를 맡아 사역을 하고 있는 목사로 해외선교에 뜻을 두고 선교센타를 세웠노라고했다. 그는 그곳에 있으면서 선교사업이 무엇이며 또 복지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한 목사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에 관해서도 대강을 알게 되었다. 새벽 같이 출근을 하여 밤늦게까지 베스타를 끌고 다니며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젊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신임을 얻음은 두 말할 나위 없었고 이듬해에는 총무로 승진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필리핀인과 컨택(CONTACT)을 하는 일이었다. 바기오지역 선교를 통해 알게 된 필리핀 사람들 그들 중에 간혹 한국에 잡(JOB)을 얻기위해 취업비자를 가지고 입국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조 천은 한국말이 익숙하지 못한 그들을 대변하여 국내에 정착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십분 활용을 하였던 것이다. 제대로 정착을 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조 천의 마음은 매우 흐뭇하였다. 아울러 자신은 신앙이 거의 없는 상태지만 정착한 그들 중에 간혹 신앙인으로 자리매김을한 이들을 보게 될 때는 보람마져 느끼기도했다. 커리어가 조금씩 쌓여가자 조 천은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찌 나름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우연히 박중훈과 이경영이 출연한 할렐루야 영화를 보게 되었다. 박중훈과 이경영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룬채 어떻게 목사가 되고 어떻게 삶을 역어 나가는지 스크린에 몰입되어 가던 중 조 천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그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길을 가기위해서는 목사란 명함. 적어도 선교사란 명함은 지녀야만 했다. 전문 교역자 내지 사역자로 일할 것이었더라면 신학대학 및 대학원의 학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검증이 뒤 따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도사나 강도사의 이력 또한 첨부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조 천이 하고자 하는 복지업무는 굳이 그런 스팩은 필요로 하지를 않았다. 시찰(視察)이나 노회(老會), 교단(敎團)이나 총회(總會)에 가입할 필요 또한 없었다〈굳이 교회로 말한다면 독립교회정도가 될 것이다〉어디까지나 관공서의 지원을 받아 복지센타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이었으므로 단지 목사 내지는 선교사의 명함만 있으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세탁작업이 필요했다. 단기 코스 내지는 졸업장을 살 수 있는 외국의 칼리지 정도면 족했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졸업을 하고 명함에 선교사 내지는 목사라는 직임만 새겨 넣으면 모든 과정은 정리가 되는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유니버설대학을 이수(履修). 목사의 이름을 가진 조 천. 목사 보다는 오히려 선교사란 이름에 더 애착을 가진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이주민 정착을 지원하는 선교센타와 함께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선교원이었다. 문을 연지 오늘이 2년째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뭔가 주인공이 학력과 직함을 얻는 과정이 후일을 암시하는 밑밥인 것 같아 불안불안 합니다.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