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1650년(AD 367년) 전, 야심한 밤에 이집트의 한 수도원에서 몇 명의 수도사들이 수레에 잔뜩 짐을 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길을 떠나며 주변을 살피던 그들은 긴장 가득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몇 시간 후, 그들은 어느 산 기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를 정해 그곳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레에 실었던 항아리를 꺼내 함께 가져온 짐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보따리를 풀자 그 안에는 수많은 책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주변을 살피며 서둘러 그 책들을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슬픈 듯 비장한 듯 묘한 표정으로 눈짓을 주고 받고는 그 항아리를 땅속 깊이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온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약 1,60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이집트 어느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한 농부가 자신의 밭에 뿌릴 퇴비를 얻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기 위해 사용하던 곡괭이에 “턱”하고 뭔가가 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가 난 땅속엔 커다란 항아리가 보였습니다. 농부는 가족들을 불러 그 항아리를 캐내었습니다. 혹시 항아리 안에 보물이라도 들었을까 하는 심정에서요. 하지만 항아리 안에는 온통 책들뿐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농부틑 시장에 가지고 갔고 거기서 생필품 몇몇과 그 항아리의 책들을 맞바꾸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문가들의 손에 들어간 그 책들 중에 바로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공부할 도마복음이라는 귀중한 보물이 함께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주후 327년 최초로 열린 기독교 회의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누르고 교리 논쟁에서 이긴 사람은 교부 아타나시우스였습니다. 그는 논쟁에서 이기고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종교적인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에는 크게 두 종류의 분파가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타나시우스를 대표로 하는 문자주의 기독교분파요, 다른 하나는 영성적 기독교분파입니다. 문자주의 기독교의 대표자인 아타나시우는 교리 논쟁에서 이기고 권력을 거머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자신들의 교리적 입장을 지지해줄 교리서들을 확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다양한 기독교분파들 간에 매우 자유로운 교리 논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자주의 기독교분파가 권력을 잡자마자 그 자유로운 분위기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문자주의 분파가 신약 27권을 정경이라고 확정을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교리적 입장을 정통이라고 부르며, 자신들과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는 이단이라고 딱지를 붙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 이외의 모든 분파들에 대해서는 이단이요, 그들의 교리서들에 대해서는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해서 로마 제국 내의 문자주의 기독교분파 이외의 모든 분파들의 책들은 이단들의 책, 불온한 책으로 낙인찍혀 모두 불에 태워졌습니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의 이런 추상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책들이 그것도 예수의 진리에 관한 너무나 보물같은 가르침들이 그대로 불태워 영구히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기독교 최초의 수도원인 파코미우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타나시우스의 분서갱유 명령이 있기 전까지 아주 자유롭게 다양한 기독교 서적들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다양한 인문서들을 연구했던 신실한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책들만 엄선하여 수레에 싣고 항아리에 담아 이집트 나그함마디라는 동네 부근 산에 묻어두었습니다. 그리고 1,600여년이 지난 어느날 한 이집트 농부에 의해 그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역사에 관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모든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라는 것은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자신들의 정권이나 종교적 교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남긴 기록이란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역사, 한 민족의 역사 등은 사실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긴 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정치적 주장이나 정권뿐 아니라,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의 교리나 정통성은 그 교리의 옳고 그름, 진리여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의 승패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성계가 조선의 초대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왕이 되기 전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고려의 신하였습니다. 고려의 신하가 어찌 조선의 왕이 되었나요? 그가 나라를 도둑질한 것입니다. 도둑질이 성공해서 왕이지, 그가 만일 실패헀다먼 그는 무엇입니까? 그는 고려의 역적이었을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수많은 반란과 쿠테타가 시도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 반란자, 역적, 난의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왜요? 반란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중 혹 이긴자가 있었다면 그들도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역사는 누가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쟁에서 패권다툼에서 이겼냐 졌냐의 문제입니다. 궁예, 견훤 등은 후삼국의 유명한 난적들. 반란을 일으킨 자들, 이들이 난적이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다툼에서 졌기에 그렇습니다. 고려 시대 유명한 만적의 난, 조선시대의 홍경래의 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도 같습니다. 종교의 정경이란 것도, 종교의 교리란 것도 그것의 옳고 진리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겼냐 졌냐의 문제입니다. 이긴자의 주장이 기준이요, 진리요, 중심이 됩니다. 성경도, 성경을 정경으로 채택한 과정도 이와같습니다. 성경으로 채택된 책들은 정통파, 즉 교리 논쟁에서 이긴 자들이 선택한 책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정통교리, 그 자체가 진리가 되고, 진 자들은 그 순간 이단, 이단의 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지금 정통기독교로 알려진 현재의 기독교가 틀렸고, 역사적으로 이단으로 여겨진 이들이 맞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맞다 틀리다, 진리다 비진리다, 정통이다 이단이다, 라고 딱 잘라서 자신들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다 이단이니 싸그리 없애야 한다는 무서운 논리에 빠진 것이 소위 정통 기독교의 오류라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통도 비정통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정통도 이단도 다 완전한건 없습니다. 모두가 완전하지 않은데 완전하지 않은 여러 분파 중 한놈이 힘을 가지면서 자기만 완전하다 주장하는 것, 그게 위험한거죠. 센 힘을 갖고 나머지를 다 묵살하고 눌러버리고 없애버린게 문제죠. 오히려 제거된 묵살된 분파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예수의 정신을 발견할, 그야말로 밭에 감추인 보물이 숨겨 있거든요. 이 보화를 본인들의 입장과 다르다고 내다 버린 문자주의자들이 어리석은 거죠. 진리라는게 누른다고 눌려지지 않습니다. 어디다 묻어버린다고 묻혀 있지만 않습니다. 빛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듯이. 그건 빛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8장 17절입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문자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경쟁자들의 책을 숨긴건 다름아니라 두려워서죠. 그 내용이 알려질까봐. 그래서 다 태워버리라고 했습니다. 정통을 주장하는 자들은 대개 문자주의자들입니다. 개념, 말, 관념에 집착하는 자들. 이들은 힘을 가지면 다 태워버리고 묻어버립니다. 니케아 공회에서 교리논쟁에 이기자 제일 먼저 영성주의 분파의 교리서들을 불태웠습니다. 그들이 이긴건 그들이 정말 옳기 때문도, 그들의 주장이 진리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이 정치적 패권다툼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주도권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길 수 있었던 건 그들의 특성이 로마제국의 권위주의, 체제주의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 도마복음 비롯 다른 수많은 책들도 그때 다 제거되었습니다. 하지만 나그함마디 문서, 특히 그 중, 도마복음은 1600여년 후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왜 이 책이 1600년 동안이나 땅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에 드러났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동안 감춰진 이 책에 뭔가 오늘날 기독교가 잃어버린 예수의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요? 오늘날 무수한 개신교가 그 한계를 드러내는 시점에, 예수의 자기 비움과 하나님 나라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참된 하나님의 나라의 가르침을 다시 되살려내기 위함이 아닐까요? 기독교 신앙이 단지 하나님 믿어 복받고 내 일신이 잘되는 것 이, 우리 각자의 내면 안에 예수의 정신이 빛을 발하며 참된 깨달음과 영혼의 깨침의 중요성을 되살리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가 잃어버린 뭔가 큰 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도마복음 강론의 여정 통해 여러분의 영이 예수의 비밀한 가르침에 의해 눈을 뜨는 은총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단순히 하나님 잘 믿어서 내 일신이 보장되고 천국이라고 알고 있는 내세의 어떤 특별한 공간에 들어가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소원을 하나님을 이용해 이뤄보겠다는, 돈 많이 버는 것일 뿐인 기독신앙에 빠지기보다는, 얄팍하고 초보적이고 미숙한 문자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참된 깨달음과 영혼의 깨침이 있는 믿음으로 더 깊이 성숙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