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가 대구에서 왔다. 불광동에 있는 딸네 집에 볼 일이 있어 온다고 했다. 이틀 먼저 서울 오는 것은 서울 동기들이 목요일 청계산 등산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을 보고 싶고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싶어서이다. 젊어서 대구에서 생업을 구했고 그곳에서 결혼해서 여태껏 대구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어쩐지 대구는 부산만큼 정이 들지 않고 더군다나 동기생들이 없어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외로움이다. 삶에서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것은 행복 중에 가장 행복이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古事)도 있지 않은가.
재호는 토요일 아침에 딸네 집에 가면 되지만 어차피 서울 나들이 오면서 동기생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이틀 먼저 Ktx를 탔다. 문자가 왔다. 용아, 지금 대구에서 출발했다. 열시에 남부터미널에서 상근이 차로 청계산에 가기로 했다. 나올 수 있지?
재호와 나는 2학년 때 짝이었다. 지금도 만나면 둘은 어느새 18살로 돌아간다. 오래 전, 내가 대구로 가서 재호가 서문시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재호를 찾아갔다. 그때 재호가 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다(그때는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재호의 결혼을 몰랐다). 그래서 재호야, 그러면 결혼선물을 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지? 내가 우산이 없다. 그래…, 그러면 우산을 선물해야겠구먼, 당장 우산을 하나 샀다. 언젠가는 우리 어머니가 친구들과 대구 팔공산 여행을 갔었는데, 가방을 들고 힘들게 산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이가 다가오더니만 가방 이리 주이소. 저가 들어 들이겠습니다. 했다. 우리 어머니가 고마워서 젊은이를 보니, 저가, 용이 짝입니다. 하더란다. 우리 어머니는 재호를 몰랐는데 재호는 우리 어머니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네 짝이 가방을 들어주어서 수월하게 팔공산을 올라갔다고 여행 갔다 오더니만 즐거워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상근이, 재호와 같이 춘하추동에 도착하니 곧 광열이가 왔다. 셋이 계곡으로 산을 올랐다 개울물이 흐르는 곳이 자리 잡고 상근이가 준비한 막걸리와 간과자와 찹쌀떡, 광열이가 가져온 오이로 목을 축이고 재호는 개울에 몸을 담갔다. 신원호가 홀가분하게 산을 올라왔다.
오늘 모인 동기는 이웅해, 신현한, 김무준, 김무언, 이우기, 이두영, 이상근, 정재호, 신원호, 박용. 열한 명이었다. 김무준 동기가 그림 개인전에 성원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곁들여 친구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재호는 혼자 대구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 외로웠든지.
용아, 니는 매주 마다 청계산에 오나? 물었다. 매주 마다는 못 간다고 했더니.
나 같으면 매주가 아니라 매일이라도 가겠다. 니, 빠지지 말고 참석해라. 여기처럼 좋은 곳이 어딨노.
그렇다. 우리가 만날 수 있을 힘이 있을 때 자주 만나자. 언젠가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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