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초반에 필리핀에서 사업을 했었는데 임산부가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맘이 편치 않았다.
임산부를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무능한가라고 누가 따질 수 있단 말인가?
복잡한 사정이야 뒤로 하고 현실은 이미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나는 이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전에만 해도 나는 남의 인생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복지,연대,고통분담,봉사는 또 하나의 천성적 이기적인 인간의 굴레에 살짝 면죄부를 씌어주는 가식적인 행동으로만 보였다.
나는 사이코패스 같았다. 남이 앞에서 힘들게 죽어가도 눈하나 깜작 않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내 모습이었다.
필리핀은 국가의 기능을 상실했다. 명칭만 있을뿐 정상적인 국가기능은 오래전에 말라버렸다.
고려말에 소수의 권문세족들이 산을 넘고 넘어 모든 땅을 차지했고 농부는 단 한뼘의 땅도 가질 수 없었다.
필리핀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소수의 정치가문들이 모든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의 부국이었던 필리핀은 6.25전쟁때 5번째로 많은 참전용사를 보냈다.
500페소 뒷면에는 최연소 종군기자였던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전 상원의원과 필리핀군인에게 초콜릿을 구걸하는 한국아이와 꽃을 파는 한국여자가 그려져 있다. 이 지폐를 볼때마다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이러한 강대국이었던 필리핀이 정치가 썩어감으로써 모든 것이 썩어갔다. 2011년 대한민국 국가예산이 300조를 넘어갈때 필리핀은 37조의 예산으로 1억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해야 했다.
도로가 파손이 되어도 복구를 할 수가 없고 민영화된 전기는 수시로 단전이 된다. 전기요금은 일본다음으로 비싸서 일반시민들은 에어컨을 틀 엄두도 내지못한다. 전기요금이 비싸서 제조업이 들어올 수가 없고 모든 공산품은 수입에 의존해서 고물가를 유지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월급도 형편없으므로 업무처리도 미숙하고 자주 연기된다. 급하게라도 하려면 뇌물을 줘야되고 이런 일들이 토착화되어 있다.
병원비도 비싸고 특히 약값이 엄청비싸서 병에 걸리면 돈이 없어 죽는다고 봐야 한다.
산미구엘이나 SM몰같은 소비재산업이 1위2위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있을 때에는 민영전기회사가1위, 산미구엘이2위, SM몰이 3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필리핀은 정치의 부정부패가 심각하고 복지가 전무한 상황인데 그대들은 분노하지 않고 정치이야기는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도 알고 있다네. 부정 부패가 심각하지.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우리 한달 월급이 20~30만원이야 집값은 한국과 차이가 없거나 조금싸지. 100년을 한푼 안쓰고 모아도 집한채 살 수가 없는게 현실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정치를 할 수 있는 틈이 전혀 없어. 다들 하루벌어서 하루먹기 바쁜데 멀리 앞을 내다 보는게 쉽지않지. 정치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거니까 우린 하지 않아. 술을 한잔 더받게 브루스 리."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무엇을 어찌하긴 힘들다. 술을 한잔하고 젊음을 즐기고 나중일은 다시 나중으로 미뤄버리는게 속편할수도 있다.
필리핀은 회생불능의 늪에 빠져서 다시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정치의 문제로 연결됨을 누구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의 세계를 바꾸는 것은 정치다. 오직 정치만이 현실의 세계를 좋은 쪽으로 끌어갈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끌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정치이야기를 해야 한다. 술자리에서도 좋고 SNS에서도 좋다. 이런 작은 활동들이 정치권력자를 감시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라고 하면 국회, 입법부, 행정부, 선거, 국회의원을 생각하는데 또한 남에게 연대를 하는 관심도 넓은 의미의 정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후자의 정치이다. 남의 아픔을 연대하고 이것이 옳지 않다면 해결할 방안을 생각해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도 그것으로 훌륭하다.
각국의 코로나19대응을 보면서 또한 선거가 얼마남지 않아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보는게 어떨까하고 글을 써본다.
한사람의 힘은 위대하고 한사람 한사람이 연대하면 그 힘은 가히 폭발적이다.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위대한 성인들과 견주어 생각하고 움직이면 태산을 움직일 것이다.
첫댓글 역시 종배형님 필력이 어마어마 하십니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바라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4.03 19:0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4.03 19:0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4.04 01:0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