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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7일 주일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만물의 시작이시고 마침이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살아 있는 성전에 온 인류를 모으십니다. 변하는 이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넘어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리라 굳게 믿으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갑시다. 말라키 예언자는,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와서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을 불살라 버리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며,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으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다 허물어질 때가 온다고 하시며,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다(복음).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9-20ㄴ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 3,7-12 형제 여러분,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1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12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9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두매아 출신으로 유다의 임금이 되었던 헤로데는 유다인들의 호감을 얻으려고 기원전 20년경 성전을 증축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을 능가할 계획으로 성전이 산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큰 성전 지대를 건설하고 그 위에 성전을 세웠는데, 그 성전 지대의 크기가 어마어마하였습니다. 기원전 4년 헤로데가 죽은 뒤에도 공사는 계속되어 예수님 시대를 지나 기원후 64년까지 이어집니다.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보았던 성전도 여전히 증축 중인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기원후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은 티토가 이끄는 로마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맙니다.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는 제1독서 말라키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참이었습니다.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건을 전후로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대립이 커지기 시작하였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의 박해도 좀 더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이미 알고 계셨기에, 복음서 마지막에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하고 권고하셨습니다. 박해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생명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시련이니, 그것을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로 삼으라는 가르침입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늘 종말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 때와 시간을 아무도 모르기에 언제나 깨어서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끔씩 종말을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종말을 잘못 이해하여 불안에 떨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메시아라고 호도하며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합니다.종말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교리가 넘쳐 나는 오늘, 독서와 복음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종말을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말고, 예수님의 제자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종말은 우리에게 파멸이 아닌, 구원의 시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주님의 제자들은 인간적인 말솜씨나 인간적인 지혜에만 의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활동으로, 종말론적 강화(講話)에 최선을 다합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의 가르침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척이나 비장합니다. 마치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강력한 경고와 따뜻한 격려가 교차되고 반복됩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에는 묵시 문학 사상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난세(亂世) 문학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현세에서는 강대국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겠지만, 종말, 곧 새로운 세상이 오면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을 대신해서 세상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는 문학 사상입니다. 이러한 종말 묵시 문학 사상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도 그대로 유입되었습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 역시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묵시 문학 사상을 ‘종말 심판 설교’라는 소재로 인용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건축 중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20년경 건축이 시작되었고, 기원 후 63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당대 이 성전은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었던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였습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쌓아올린 외벽은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성소문을 덮고 있던 황금 포도 덩쿨은 장관이었습니다. 성전이 얼마나 수려했던지 당시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영광 가득한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름답게 장식된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을 주는 도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했던지 순례객들이 큰 목소리로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께서는 즉시 비운의 예언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복음 21장 6절) 예수님은 아름다운 석조 건물이나 성전을 장식한 휘황찬란한 보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보다는 살아있는 성전, 가슴치고 회개하는 백성, 거룩한 백성에게 더 많은 관심을 지니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종말이 언제? 어떤 표징과 함께 올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루카 복음 21장 7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시간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곧 오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빨리 오는 것도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대신 그날이 다가오면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인데, 그들에게 속지도 말고, 그들을 따라가지도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루카 복음 사가는 당시 성행하여 사회를 긴장시키고 혼란시켰던 거짓 예언자들의 ‘재림 임박 사상’을 경계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제자들은 동족 유다인들과 이교도 당국자들 모두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설교할 때 사제들과 성전수위대장이 나타나 두 사람을 체포해 투옥시켰습니다. 필리피의 치안관들은 바오로와 실라의 옷을 찢고 매질한 후 투옥시켰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그리파 2세 왕의 법정에, 고린토 총독 갈리오의 법정에 섰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스테파노는 산헤드린 앞에 섰습니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맞고 투옥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욕당하고 박해받는 것을 더없는 기쁨과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제자들이 적대자들 앞에 섰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던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학식으로 따진다면 당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의회 의원들, 노회한 달변가들을 언변으로 눌러버렸습니다. 샛파란 청년 스테파노에 맞서 논쟁을 벌이던 가방끈 긴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언변에 있어 당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복음 21장 14~15절) 주님의 제자들은 인간적인 말솜씨나 인간적인 지혜에만 의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위에서 주시는 능력,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에 힘입어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미움 받을 용기는 미워하지 않을 용기에서 나온다.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시의 남서쪽에 리틀턴이라는 지역에 있는 콜롬비아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25명과 용의자 2명이 총기 난사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 가운데 살아남은 여학생이 증언한 놀라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불량 서클 단원이었던 ‘트렌치 코트’ 마피아 단원 둘이 총기를 가지고 들어와서 학생들을 난사하고 있었을 때, 그곳에는 17살 된 캐시 버넬이라는 소녀도 있었습니다.
총을 들고 있던 학생 하나가 그녀에게 총구를 목에 겨누고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 하느님 믿어?”
만약 하느님을 안 믿는다고 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그녀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는 하느님을 믿어.”
(Yes, I believe in God).
그러자 그는 총구를 캐시의 가슴에 겨누고는 마구 총을 쏘았습니다.
캐시의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미국 크리스천 십대들 사이에서 “Yes, I believe in God”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고, 플로리다 주의 한 도시에서는 2천 5백 명의 십대들이 모여 감동적인 신앙고백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집회의 이름 역시 “Yes, I believe in God”이었습니다. 이 집회는 마약 속에 찌들어 죽어가던 미국 그리스도인 십대들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운동으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자신 안에 계신 하느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때 목숨이 아깝다고, 미움 받는 것이 두렵다고 믿음을 부인하면 몸은 살아도 영혼은 죽습니다. 하느님께서 믿음과 함께 사라지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미움을 감수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을 하시는데 이는 비단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말씀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당신을 믿었다가 예루살렘처럼 폐허가 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 이십니다. 예루살렘의 그 자랑스럽던 성전은 서기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까지도 재건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속적인 행복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해지고 박해받고 미움 받는 죽음이었습니다. 현세적 행복을 추구하던 그들은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영광을 추구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 폐망의 원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그런 종말을 맞지 말라고 이렇게 충고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미움 받을 용기가 없다면 박해를 이겨낼 수 없고 박해를 이겨낼 수 없다면 자신 안의 하느님의 존재를 증언하지 못합니다. 성전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증언하지 못하는 성전은 참 성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하는 신앙인도 마찬 가지입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 하느님을 모실 수 있고 그래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도 생깁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서 관계가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오히려 관계가 집착이 아니라 더 친밀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술을 적정선에서 그만 마시겠다고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술을 더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술을 끊을 용기가 없을 때 그것은 관계가 아니라 집착이 되고 중독이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진짜 망가지게 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끊고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더 건전하고 친밀한 인간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움 받을 용기를 지닐 수 있을까요? 미움은 나의 고통의 탓을 상대에게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나의 탓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죄를 당신의 탓으로 여기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까지 당신 탓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이미 다른 사람을 미워할 마음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떠한 해를 끼쳐도 상관이 없으셨습니다.
사랑할 용기가 있어야 미움 받을 용기도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미워하려는 사람을 미워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절대 미움 받을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워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 미움 받을 용기를 포기하게 되면 정말 미운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미워하지 않을 용기를 얻으려면 모든 것이 나의 탓이라 할 줄 알아야합니다.
어떤 신부님이 피정 때 신자들에게 들려준 자신의 체험입니다.
“지난 11월이었습니다. 제가 (스위스에서 피정지도 할 때) 미사를 마치고 기도하고 있는데, 어떤 영감이 왔습니다. 당시 우간다에 있었던 어느 신부님께 전화를 드리라는 아주 엉뚱한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 너무 엉뚱해서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영감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지요. 제가 전화를 한 그 순간에 신부님은 아주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숲 속에서 차가 서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크게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2006년에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당시 4명의 강도가 권총을 빼어 저를 위협했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안토니오 신부님, 시동은 걸리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아요.’ 저는 보닛을 열게 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안에 있는 줄이 하나 끊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연결해 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차에 대해 아는 사람에게는 간단한 일이지만 차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는 엄청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스위스에서 우간다에 있는 차를 1분 만에 고쳐주었습니다. 저는 차 수리공 입니다. 자격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신부님의 행복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도구일 뿐입니다.”
[출처: ‘아주 특별한 순간’, 안토니오 사지 신부, 바오로 딸]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구로 쓰시려고 하는데 내가 기도를 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도구로 쓰실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하느님의 온전한 도구가 되었다면 어쩌면 굶어 죽는 사람도 없고 환경이 이처럼 파괴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유럽에 있는 어떤 아이는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전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마더 데레사와 같은 수녀님을 통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십니다.
그러니 세상에 죄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하느님의 온전한 도구가 되지 못한 탓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미움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비만을 의탁해야 하는 죄인들입니다. “제 탓입니다. 용서하세요.”만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미움 받을 용기가 생깁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생기려면 먼저 미워하지 않으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워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려야합니다. 남 탓을 하면서 미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용기를 가집시다. 그러면 미움 받을 용기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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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녀 엘리사벳(Elizabeth)
신분 : 왕비
활동지역 :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 1207-1231년
같은이름 :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국왕 앤드레 2세(Endre II)와 왕비 제르트루다(Gertruda)의 딸로 태어난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14세 되던 해에 튀링겐(Thuringen)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의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하였다. 비록 이 결혼이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졌지만 화목하고 평화스러웠다고 하며 6년 동안을 서로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있었고 자녀는 세 명을 두었다.
그러나 1227년에 루트비히 4세가 풀리아(Puglia)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9월 11일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온갖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집안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뒤에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세속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는 헤센(Hessen)의 마르부르크(Marburg) 성에 살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마르부르크의 콘라트(Conrad)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그녀의 영적 생활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쌌던 것이다. 그녀는 운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여왕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준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마르부르크에서 운명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14세기 이후 엘리사벳의 성화는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빵 제조업자와 빵 집의 수호성인이다.
성 후안 데 카스틸로(Juan de Castillo)
신분 : 수사, 순교자
활동지역 : 파라과이(Paraguay)
활동연도 : +1628년
같은이름 : 까스띠요, 까스띨로, 까스띨료,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카스티요, 카스틸료, 한스
성 로쿠스 곤잘레스 데 산타 크루스(Rochus Gonzalez de Santa Cruz)는 에스파냐의 귀족 출신으로서 1576년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Asuncion)에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착하고 열심한 소년으로 성장한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세에 마침내 사제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교구 사제직에 부적합하다고 느낀 그는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다가 160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당시는 바로 유명한 파라과이 ‘정복’이 시작될 때였다. 에스파냐는 제국주의를 앞세워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혹한 식민지 정책으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통치하였다. 예수회 회원들은 그들의 제국주의에 강력히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들의 개종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원주민들로부터는 적대감을 이겨내야 했고, 정복자인 에스파냐 당국으로부터는 공개적인 반대와 억압을 받아야만 했다.
1626년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동료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신부와 성 후안 데 카스틸로 수사와 함께 원주민을 위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 신부는 현재의 브라질 남단지역인 카아로(Caaro)로 갔다. 이곳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지역 주술사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628년 11월 15일 주술사가 고용한 일당이 도끼를 들고 성당에 잠입해 그들을 살해하고 성당에 불을 질러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카아로에 있지 않았던 성 후안 데 카스틸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파라과이의 순교자로 그리고 남아메리카 최초의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5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그들을 시성하였다. 한편 성 로쿠스 곤잘레스의 생애는 영화 ‘미션’(Mission)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성녀 힐다 (Hilda)
활동년도 : 614-680년
신분 :수녀원장
지역 :휘트비(Whitby)
같은 이름: 힐드
콘스탄티노플의 블라헤르린지역에는 귀중한 유물인 성모의 머리수건이 보존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성화(Icon)와 후에 파괴된, 기도하는 성모를 묘사한, 은혜를 베푸는 종교화는 성모성화의 전형 (典型)으로서 그 시원적 (始原的)인 주제였으며, 수즈달 시민들에 의해 점령당한 노프고로드시를 구출(1170년)한 이후로는 러시아에서 표준 성화로서 특히 경배되었다.
이 점령 광경 자체가 호평받는 성화의 주제로 다루어졌는데, "성벽의 성모"라고도 불리우며, 이것은 바로 그곳에 이 성화를 세웠던 사실에 연유한다. 표상의 성모는 노프고로드시의 수호신으로 되었다.
성모는 기도드리는 자세로 팔을 올리고 있는데,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가슴에는 광륜(光輪)속에 그리스도 임마누엘이 한 손에 성서 두루마리를 들고 다른 손은 축복을 내리며 올리고 있다.
관람자 측에서 볼 때에 그림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성 게오르기오스와 로마의 마카리오스(Makarius), 오른쪽에는 페르시아의 성 야고보와 기독교의 바보를 자처한 오누프리오스가 묘사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성모상은 성서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전래되었다.
"하느님 자신의 표상으로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되며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다."
성모의 머리수건과 의복의 단은 금실로 짜였으며 아름답고 색깔이 장식적인 이 성화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잉글랜드 노스움브리아의 국왕 에드윈의 조카 딸인 그녀는 성 바울리노로부터 에드윈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33세까지 귀족생활을 하다가, 동생인 헤레스위타가 있는 프랑스의 셀레 수녀원으로 갔다.
그러나 성 에단의 요청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웨어 강변의 한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녀는 하틀푸울에 수녀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특히 지혜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휘트비 시노드에서 셀트 전례를 주창하였으나, 국왕 오스위의 명에 따라 로마 전례를 받아들일만큼 순종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