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맹이 드디어 취장을 "탈출"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여유도 많이 찾은 것 같고 편지의 글씨도 훨씬 더 편안하고 안정돼 보입니다. 사람이 많이 사는 만큼 또 여러가지 생각들과 갈등들이 자라나겠죠. 후원회 앞으로 보내온 날맹의 편지를 전합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3년 전 여름,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 놀러 갔을 때가 떠올라요. 런던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는 미리 알아둔 유스호스텔로 향했죠. 한창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던 때라 공연팀과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던 거리의 모습이 생각나요. 호스텔에선 방이 없어서 16명 정원의 큰 방을 배정받았어요. 활기찬 축제 분위기, 에딘버러의 예쁜 풍경들도 인상적이었지만 16명이 함께 쓰던 숙소의 쾌쾌한 냄새 역시 지금도 기억이 나요.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저는 며칠 전에 “정보화 교육생”으로 선발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6개월 간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새로 옮긴 방은 어느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전국 수용시설 중 가장 큰 방이라고 하는데 교육생 15명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취장을 탈출했다는 기쁨이 더해져서인지 방에 처음 들어설 땐 마치 엠티 때 단체 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방이 넓으니 답답함이 덜 해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방 청소나 설거지도 다 같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고요. 새벽 4시에 깨지 않아도 되고 주말을 온전히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취장에서의 경험이 저에게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겸허함을 가르쳤구나 생각하며 자위를 해봅니다.
방 뒤편으로 나 있는 유리창에는 철창, 철조망 그리고 촘촘한 구멍이 나 있는 판대기들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도 교도소 담장 바로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 교도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에는 이 지역도 사람이 별로 없는 변두리였으리란 짐작이 됩니다. 그러다 계속된 개발로 이제는 아파트 단지와 교도소가 담벼락을 공유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집값을 올리고 싶은 이들의 바람대로 이제 곧 이교도소도 서울의 더 외곽으로 이전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겹겹이 막혀 있지만 그래도 그 틈새로는 사회의 불빛, 소리, 냄새가 흘러들어옵니다. 아침엔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밤에는 간판의 불빛이 들어옵니다. 중국집의 춘장 볶는 냄새나 과일 트럭 장수의 소리가 흘러올 때면 저 밑에 묻혀있던 사회에서의 감각들이 꿈틀해 오네요.
금요일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이번엔 마을버스 정차하는 소리가 지척에서 끼이익하니 들려옵니다. 제 신경은 이제 지금 버스를 타고 내리는 이들의 모습을 추측해보는 데로 쏠립니다. 한 주 노동의 끝에 술기운으로 귀가하는 이, 이제 출근을 하는 이 혹은 지금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이. 이제 저도 기억 속 친구, 가족들을 만나러 환상 속 여행을 시작합니다. 각자의 형 종료일은 다르지만 나란히 누워 다가올 새로운 아침을 위해 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입니다.
정작 한 교도소 안에 있을 땐 보기 힘들던 현민이 엊그제 가석방으로 출소를 했습니다. 나가자마자 현민이 이젠 밖에서 접견서신을 넣어주었습니다. 참 기막힌 인연입니다. 며칠 전 현민이 나가기 전의 그 만남이 출소 전 마지막 만남인 줄 알았다면 포옹이라도 한번 하고 헤어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평일 운동시간마다 영배씨를 만날 수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는 동시에 설레임마저 드네요.
<한겨레>를 창간 때부터 구독했고 지금도 바깥의 부인 분과 함께 정기구독을 하면서 공통의 화제를 만든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저에게 자꾸 군대를 안 갔으니 징역을 한 40개월 쯤 살아야 한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얘기를 하십니다. 참 재미있는 분입니다.
무기징역을 받아 20년을 살았고 감형을 받아 내년엔 나갈 수 있다는 분도 만났습니다. 스무 살에 들어와 15년의 형기 중 이제 한 5년‘만’ 더 살면 된다는 분도 있고요. 이 분들 앞에서 제 징역은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각자 살아온 삶의 궤적은 다르지만 서로의 징역살이를 위로하고 보듬어주며 앞으로의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얼른 햇살이 쨍하고 나와 이 눅눅함이 사라지면 바깥에다 이불을 활짝 널어야겠어요. 그럼 또 소식 전할게요.
2011. 7. 3. (일)
서울 남부교도소에서 날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