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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문 사학자 김수경의 고구려 백제 신라 언어연구
평양 출판사간 한국문화사 영인 북한 어문사학자 김수경의 [고구려, 백제, 신라 언어연구]를 그대로 영인 하듯 쓰고
글쓴이의 의견을 달았다.
1. 고구려 평양성 고구려 성벽 머릿돌 이두문 내용
평양성에는 고구려가 성을 쌓을 때 한자를 새겨 넣은 돌이 전후 4 개나 나왔다. 1호 돌은 1766년에 발견되었으나 그
지점은 명확치 않으며 돌 자체도 잃어버렸다 한다.
제 2호 돌은 1829년 평양성 외성 밖 오탄 아래에서 발견 되었다고 하며 현재 서울 리화 여자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되
었다 하고 제 3 호 돌은1913년 평양성 내성 동쪽 벽(오늘의 옥류교 부근)에서 발견되어 현재 평양 력사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으며 제 4 호는 1964년 평양성 내성 남쪽 벽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인민대학습당 구내에 원래의 축조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중 제 1 호 돌과 제 2 호돌은 569 년에 각각 새겨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제 4 호 돌도 비슷한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서 제 1, 2호 돌은 현품을 볼 수 없음으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이명초당(二銘艸堂) 교간본(1881년)에 새긴
것을 따르기로 한다.
1)호돌
己丑年五月二十八日始役西向十一里小兄相夫若侔利造作
기축년 5월 28일 처음 역사를 시작하였으며 서쪽을 향하여 11 구간은 소형 상부 약모리가 쌓는다.
김수경 주석 - 2 호 돌의 向東은 한자식 어순으로 되어 있으나 이 1호 돌의 西向은 리두식 어순으로 되어 있다.
相夫若侔利는 사람이름. 造作은 2 호 돌의 節에 해당한 말을 여기서는 동사로 표현 하고 있다.
글쓴이 구길수 주석 - 중국식 문장이라면 ...向西十一里 始役 小兄相夫若侔利...라 했어야 하나 이는 한자를 우리식으로
표현한 이두식 문장인 것은 위 김수경 말과 같고 小兄은 大兄과 상대 되는 말로 늙고 연륜 있는 기술자, 감독이 아니라
젊은 기술자라는 말이며 상부약모리(相夫若侔利) 란 이름은 우리 이름이 그런 식으로 지어 질 리가 없으니 다음과 같이
해독한다.
즉 신라 장수 거칠부(居七夫)는 성이 거 씨이고 이름이 칠부가 아니라 언젠가 미국영화 늑대와 춤에서 같이 ‘주먹
집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의 특징을 잡아 요즘 별명을 지어 주듯 주위에서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따라서 거칠부는 우리말로 거칠애비, 즉 요즘말로 터프가이가 되니 상부약모리란 이름도 당시 고구려인들이 그런
식으로 불렀을 리 없고 우리말을 한자로 제대로 적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이두를 쓴 것이니 그 사람 참 이름을 우리
말로 찾아보는데 이두란 원 우리말과 전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한문 식으로 표현 한 것이니 우리
말과 한문에 반듯이 연관이 있어야 한다.
相(상) - 서로, 짝, 보다, 자세히, 도울, 모습 상, 중 짝, 쌍둥이.
夫(부) -사내, 지아비, 장정, 시중드는 사람, 일하는 사내, 어조사 부 중 사내.
若(약) -같다, 너, 만일, 어조사 등.
侔(모) -가지런하다. 힘쓰다, 취하다, 꾀하다 중 꾀하다, 꾀 약은 놈.
利 - 이롭다, 편하다, 날카롭다, 화하다, 이기다, 통할 리 중 날카롭다.
相夫若侔利(상부약모리) - 쌍둥이 젊은이가 꾀 있고 날카롭다. 꾀보 쌍둥이
己丑年五月二十八日始役西向十一里小兄相夫若侔利造作 - 기축년 5월 28일 서쪽 11리 공사를 젊은 꾀보 쌍둥이가
쌓았다.
2)호돌
己丑年五月二十一日自此以下向東十二里物省小兄俳口百頭口 節矣
(口는 알 수 없이 마모된 글자)
(김수경 번역과 주 - 기축년 5 월 21일 여기서부터 동쪽을 향하여 12리 구간은 물성소형 배口 백두가 건축자다.
글쓴이 구길수 번역과 주
物省 - 물성, 물가를 살피는 사람.
俳 - 광대, 장난, 스러지다, 쇠퇴하다 중 광대.
百頭 - 백 사람의 우두머리, 백부장.
節 - 마디, 초목의 마디, 음절의 마디.
음악의 곡조, 문장의 한 단락, 사물의 한 단락, 뼈마디, 절개, 규칙, 제도 중 한 단락.
小兄俳口百頭 - 젊은 광대口백부장.
己丑年五月二十一日自此以下向東十二里物省小兄俳口百頭口 節矣 - 기축년
5월 21일 여기로부터 아래 동쪽 12리는 물가를 살피는, 젊은 광대 口백부장口이 책임지고 쌓은 것이다.
이상을 보면 고려 초에 성 쌓는 일은 상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광대라도 불러 쌌으며 따라서 광대는 돌아다니며
물가도 살피는 일 까지 했고 나라에 공사가 벌어지면 달게 이에도 참여하였던 걸로 보이며 그렇다면 광대는 이조
(李朝는 이씨조선으로 일제가 만든 단어가 아니라 일제 전부터 썼던 이름) 때처럼 그렇게 천한 직업도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3) 호 돌
丙戌十二月中漢城下後部小兄文達節自此西北行步之
김수경 번역과 주 - 병술 12월에 한성 하부의 소형 문달이라는 건축가가 여기로부터 서북 방향을 맡는다.
여기서 十二月中의 中은 12월 중의 中이 아니라 良中, 赤中하는, 즉 ...에, 등 이두 위토격으로 보아야 한다.
漢城은 큰 성이니 평양을 가리킨다. 下後部는 한성부의 행정구역의 하나.
구길수 번역과 주
二月中의 中은 중순으로 봐야 하며,
漢城은 역시 김수경 말 대로 큰 성 이니 평양성 일 것이고,
下後部는 아래, 뒷동네,
文達은 우리말 물에 비친달 즉 물 달로 보는데 이 물 달 로 보면 月印千江之曲이 말하듯 고구려 초기에 벌써 불교가
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丙戌十二月中漢城下後部小兄文達節自此西北行步之 - 병술 12월 중순 한성(평양성?)아래 뒷동네 젊은이 물달
이란 자가 여기서부터 서북쪽을 책임지었다.
4) 호돌
卦婁盖切小兄加群自此東廻上口里四尺治
김수경 번역과 주 - 괘루(卦婁)부에 사는 소형 가군(加群)이 여기로부터 동으로 돌아 口리를 쌓았다.
구길수 번역과 주.
우선 괘루(卦婁) 라는 동네가 고구려 초 당시 있었을까?
卦(괘) - 걸다, 매달리다, 입다, 걸치다, 통과하다, 점괘 등
婁(루) - 별이름, 성글다, 드문드문하다. 거두다. 등.
盖(개)는 蓋의 속자 - 덮다, 덮어씌우다, 덮다, 이영 덮개, 용기 아가리 덮개, 뚜껑.
卦婁盖(괘루개) - 점(별점?) 치는 초가집
切(절) - 끊다, 갈다, 무지르다, 바로잡다, 고치다. 등.
加(가).- 더하다, 있다, 처하다, 입다, 몸에 붙이다. 미치다(及也)등.
群(군) - 羣의 속자, 무리, 떼, 떼 지어 모이다, 동아리, 동료 등.
加群 - 加는 미치다(及也)의 뜻을 미치다(狂)로 뜻을 빌리고 群은 떼 지어 다니는 무리 이니 이 역시 광대나 남사당
패거리들로 보며 당시는 이들 역시 국방 의무에는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은 것으로 본다.
自此東廻(자차동회) - 自此東廻는 우리 어순이고 중국 한문 식이라면 自此廻東(자차회동)이라 해야 한다.
卦婁盖切小兄加群自此東廻上口里四尺治 - 점치는 초가 젊은이 광대가 여기를 기점(切)으로 동쪽으로 돌아 위로
口리를 쌓았다.
2. 한문 문장이 아닌 우리식 이두 문장으로 써진 광개토대왕 비문 재해독.
357년에 써진 고구려 미천왕 무덤의 벽서, 408년에 써진 덕흥리 고구려 무덤의 묵서, 414 년에 써진 고구려 광개토
왕릉비, 이외 비슷한 시기의 고구려 모두루 무덤의 묘지석, 5 세기 또는 6 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충주) 고구려비,
551년에 써진 창녕비, 568 년의 황초령비와 마운령비, 그리고 그 중간 년대로 추정되는 북한산비를 비롯한 신라
진흥왕의 4 개 순수비등은 이러한 한문 유물들의 실례이다.
그러나 여기 에서는 그 기록들을 다 찾아 해설 할 수도 없으니 그 잘 알려지고 해석이 분분한 광개토대왕 비문 중 일부만
소개 한다.
광개토대왕 비문역시 많은 지명이나 인물이 모두 이두로 써진 것이 많은데 문장마저도 한문 식 문장이 아니라 우리식
문장 이다.
이 광개토대왕 비문은 지금 여러 사람이 해독하고 있으나 그 해독이 꼭 최치원의 천부경 81자 해독처럼 한자 뜻으로만
해석 하자니 각자 다르며 말이 연결 되지도 않기 때문에 이 광개토대왕 비문 해독도 다시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광개토대왕 비문을 여기에서 글쓴이가 다시 해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이니 김수경이 제시한
북한의 [홍기문 리두연구 평양,
1957년 28페지; 류렬 세나라 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 24페지 참조]의 글을 인용한다.
因遺黃龍來下迎王王於忽本東崗黃龍負昇天
김수경이 말하는 홍기문 해석과 주 - 곧 누른 룡을 보내어 내려와 임금을 맞게 하니 임금을 홀본동강에서 누른 룡이
업고 하늘로 올라갔다.
여기서 王於忽本東崗의 王을 보통 한문의 례대로 하나의 주어로 보아서는 아래말의 黃龍負昇天과 전혀 련결이 안된다.
정상적인 한문에서는 <임금을 업고라면>負王으로 되어야 하며 그 아래 <昇天>과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負王而昇天>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비문을 쓴 사람은 당시의 한문 대가이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실지 집필에서는 한문 식이 아니라 고구려말 어순을
따랐다는 것은 리두식 표기법이 하나의 실천적 요구로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 글은 글쓴이도 동감하나 글쓴이는 이 말에 덧붙여 당시 고구려 지명도 해독하고 싶다.
즉 당시 고구려에 忽本東崗(홀본동강) 이란 곳이 있었겠는가?
忽 - 문득홀 깜작놀랄 홀.
本 - 근본 본 뿌리본.
東 - 동녘동 샛파람이 동풍이므로 東의 우리말은 새 이다.
崗 - 岡과 同자로 등성이강 자 인데 그렇다면 忽本東崗은 문득 근본인 동쪽의 등성이가 되니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忽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나 그 뒤 필사가 들이 부리나케총(怱)자를 忽자로 오기 한 것으로 보아 광개토대왕
비문은 怱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忽本東崗은 [벌 뿌리 새 언덕] 이었을 것이다.
이상으로 보아 고구려 초에는 한자를 들여오긴 했으나 중국식 문장이 아닌 우리식 이두 문장이었다.
3. 고구려, 백제 신라 관명에 나타나는 이두문
1)고구려 2대 임금
삼국사기 - 琉璃明王(류리명왕), 類利(유리), 孺留(유류).
삼국유사 - 瑠璃王(류리왕), 累利(누리), 孺留(유류).
글쓴이 구길수 주 - 여기 나오는 琉璃(류리), 類利(유리),孺留(유류),孺留(유류)는 모두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처럼
累利(누리)이고 이는 우리말 땅, 즉 온 누리라는 누리이다.
2)신라 3 대임금
삼국사기 - 儒理尼師今(유리니사금).
삼국유사 - 朴努禮尼師今(박노례니사금), 儒禮王(유례왕).
글쓴이 구길수 주 - 여기 나오는 儒理(유리), 努禮(노례),儒禮(유례) 모두 우리말 땅 이라는 누리이며 尼師今(니,이사금)
이란 삼국사를 쓴 일연의 말처럼 잇금(잇빨금)이 많아서 잇금이 아니라 천부인 ㅇ ㅁ ㅿ 상 ㅇ는 하늘, 해 이며 ㅅ 은
솟음, 금은 큼 이니 니사금은 잇금> 임금 이고 뜻은 해솟음이 크다는 말이다, (닛, 잇이해 해라는 증거- 日本- 닛본
(닛뿌리)
3)신라 14대 임금
삼국사기 - 儒禮尼師今(유례니사금).
삼국유사 - 儒禮尼師今(유례니사금), 世理智王(세리지왕).
글쓴이 구길수 주 - 여기서도 儒禮(유례)는 누리를 말하고 尼師今(니사금)은 임금을 말하나 世理智(세리지)는 누리를
말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 누리의 이치를 슬기로 다스린다는 한문 같기고 한 후대 이두이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