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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
서문(序文) [유득공(柳得恭)]
우리나라의 역사책이 무릇 몇 종이던가. 이른바 고기(古記)라 하는 것들은 모두가 치류(緇流)들의 허황되고 황당한
말이라서 사대부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대해 사람들은 ‘소략하여 볼만한 것이 없다’고 허물하고 있다.
그러나 명산(名山)의 석실(石室)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었으니, 김부식인들 그런 처지에서야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오로지 정인지(鄭麟趾)가 지은 《고려사(高麗史)》가 있을 뿐인데, 고려 이전의 사실에 대해서는 무엇을
보고서 상고하겠는가.
이에 내가 일찍이 중국의 21사(史)에서 동국전(東國傳)만을 뽑아 모아 중복된 부분을 삭제하고서 주석을 내고 변증을
하고자 하였다. 그런 다음 《삼국사기》와 《고려사》 두 사서와 함께 참조하여 보면 징신(徵信)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항상 가슴속에 맴돌고 있었다.
나의 친구인 상사(上舍) 한대연(韓大淵)은 성품이 고요하고 서책을 간직하기를 좋아하였다.
문을 닫고 들어앉아 역사를 연구하였으며, 개연히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 나와는 서로 상의하지 않아도 의기
가 통하였다. 그런데 또 이를 미루어 넓혀서 정사(正史) 이외의 것까지도 섭렵하여, 우리 동방 수천 년의 사실에 대해
경전(經典)에서 패설(稗說)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찾아내고 베꼈으며, 또 손수 자르고 붙이면서
분류하기도 하고 합하기도 하였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땀은 비오듯 흘리면서 밥먹는 것조차 잊은 채 5, 6년이나 공력을 쏟은 끝에 비로소 종류별로 나누고
조목을 세워 한 부(部)의 서책을 만드니, 모두 몇 권이나 되었다.
그 가운데는 세기(世紀)도 있고, 열전(列傳)도 있으며, 천문(天文), 지리(地理), 예악(禮樂), 병형(兵刑), 여복(輿服),
예문(藝文)에 대해 각각의 지(志)가 있어서 저절로 역사서가 되었는데, 이를 이름하여 《해동역사(海東繹史)》라 하였다.
내가 생각은 있었으나 미처 이루지 못하였던 것을 하루아침에 얻으니 그 역시 시원스런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사적(史籍)은, 평양(平壤)에 있던 것은 이적(李勣)에게 모두 불탔으며,
전주(全州)에 있던 것은 견훤(甄萱)이 패하면서 모두 불에 탔다.”고 하는데, 이 역시 근거 없는 낭설이다.
우리나라에 어찌 사적(史籍)이 있었던가.
기자(箕子)의 시대는 당우(唐虞)부터 위만(衛滿) 이전에 해당하고 보면 역사를 쓰지 않는 시대에 속한다.
그리고 한(漢)나라 4백 년 동안에는 내복(內服)의 나라였으니, 낙랑 태수가 어떻게 사관(史官)을 둘 수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일사(佚事)와 이문(異聞)을 반드시 중국 쪽에서 구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동(嶺東)의 예(濊)와 한수(漢水) 남쪽의 한(韓), 개마산(蓋馬山) 동쪽의 옥저(沃沮)에 대해 참으로 진수(陳壽)가
아니면 어떻게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저 진수란 자가 붓을 잡고 바다 바깥의 우리나라의 일에 대하여 이와 같이 상세하게 쓸 수 있었던 것은 또 어째서인가.
공손씨(公孫氏)가 대대로 요동 태수가 되어 대방군(帶方郡)을 세워 한(韓), 예(濊)의 여러 부를 통괄하다가 사마의
(司馬懿)에게 멸망되었으니 산천(山川), 도리(道里), 물산(物産), 풍요(風謠)에 대하여 반드시 태사씨(太史氏)가 전해
들었을 것이다.
이 이후로는 삼국(三國)이라 하며, 또 가라(加羅)니 탐모라(耽牟羅)니 하는 족속이 있어서 모두 사신을 보내고 폐백을
바치면서 상국(上國)에 알현하였다.
그러므로 남조(南朝)와 북조(北朝)의 여러 역사책에서 이에 따라서 기록하였는바, 이 모두가 우리나라의 사적인 것이다.
다행히 대연(大淵)이 지은 책이 지금 또 이루어져 풍부히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다.
옛날에 섬자(剡子)가 노(魯)나라에 조회 가자 소자(昭子)가 “소호씨(少皥氏)가 새의 이름으로 관명(官名)을 삼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으니, 섬자가 말하기를, “나의 조상들의 일이니 내가 그 일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는데, 공자
(孔子)가 그 말을 듣고서 나아가 배웠다. 그리고 적담(籍談)이 주(周)나라에 가서 진(晉)나라가 주나라로부터 명기(名器)
를 나누어 받은 것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왕이 말하기를, “숙씨(叔氏 숙(叔)은 적담의 자(字)임)이면서도 그
사실을 잊었단 말인가?” 하였다.
이 때문에 본국(本國)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옛날의 군자들은 부끄러워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海東繹史序
東史 凡幾種哉 所謂古記 都是緇流荒誕之說 士大夫不言 可也 金富軾三國史 人咎其脫略不足觀 而名山石室 茫無所藏
雖金富軾 亦且奈何 然則唯有鄭麟趾高麗史而已 高麗以前何從而鏡考乎 余甞欲取二十一史東國傳刪其重複 以注以辨
與三國高麗二史相依而行 則庶或有資於徵信 卒卒未遂 亦未甞不去來于胸中 吾友韓大淵上舍 性恬靜喜蓄書 閉戶考古
慨然有意于東史 與余不謀而合 又推而廣之 汎濫乎正史之外 我東數千年事實 自經傳以至䕺稗在在散見者 幾盡搜剔抄寫
又手刀與糊 離而合 合而離 蓬首流汗 殆忘寢食 用五六年之力始分類立目 勒成一部 凡幾卷 有世紀焉 有列傳焉 天文地
理禮樂兵刑輿服藝文 各有其志 則居然而史矣 名之曰海東繹史 余所有意而未遂者 一朝焉獲之 不亦快哉 東人或言東方
史籍在平壤者 焚於李勣其在完山者 又焚於甄萱之敗 此亦無稽之談 東方豈有史籍 箕聖之世斯可以斷自唐虞衛滿以前
屬之不修春秋 漢四百年自是內服 樂浪太守焉得立史官哉 此所以佚事異聞 必求諸中國然後可得也 嶺東之濊 漢南之韓
蓋馬山東之沃沮 苟非陳壽 惡能知其有無哉 彼陳壽者 秉筆而書海表之事 能若是之詳者 又何也 公孫氏世襲遼東太守 立
帶方郡以統韓濊諸部 司馬懿滅之 則其山川道里物産風謠 必爲太史氏所得也 自是以後曰三國 又有加羅耽牟羅之屬 皆
能發使執幣 見于上國 南北諸史 從而記之 此莫非東方史籍也 幸而大淵之書 今又成矣 富哉無所不有 昔剡子朝魯 昭子
問少皥氏鳥名官何故也 剡子曰 吾祖也我知之 孔子聞而學之 籍談如周 不能對晉之分器 王曰叔氏而忘諸乎 是故不知本
國之史者 古之君子耻之 若之何不觀是書也 儒州柳得恭序
[주D-001]海東繹史序 :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에서 영인한 《해동역사》 최남선장본(崔南善藏本)에 있는 서문
(序文)을 첨부한 것이다.
인용 서목 중국서(中國書) 목록(目錄)
상서(尙書) : 우(虞), 하(夏), 상(商), 주(周)의 정도(政道)를 기록한 책으로, 공자(孔子)가 산삭(刪削)한 것이다.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이다.
상서백편서(尙書百篇序) : 《상서》의 각 편 첫머리에 있는 소서(小序)를 말한다.
공자가 지은 것이라는 설과 유흠(劉歆)이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상서대전(尙書大傳) : 한나라 복생(伏生)이 찬한 것으로, 총 4권이다.
상서전(尙書傳) : 한나라 공안국(孔安國)이 찬한 것이다.
상서정의(尙書正義) :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국자 좨주(國子祭酒) 공영달(孔穎達)이 황제의 명을 받고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 21명과 함께 642년에 완성한 것으로, 총 20권이다.
홍범경전집의(洪範經典集義) : 청나라 때 손승택(孫承澤)이 찬한 것이다.
우공추지(禹貢錐指) : 청나라 때 호위생(胡渭生)이 지은 것으로, 총 20권에 도(圖) 1권이다.
모시(毛詩) : 한나라 초기에 모형(毛亨)이 전한 《시경(詩經)》을 말한다.
한나라 때 전해진 시에는 제시(齊詩), 노시(魯詩), 한시(韓詩) 3가의 시가 있었으며, 그 외에 조인(趙人) 모공(毛公)
이라는 사람이 《모시》를 전하였는데, 후한(後漢) 때 이 《모시》에 정현(鄭玄)이 전주(箋註)를 붙이자 드디어
다른 3가의 시를 압도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모시전(毛詩箋) : 《모시》에 후한의 정현(鄭玄)이 전(箋)을 붙인 것이다.
시초목조수충어소(詩草木鳥獸蟲魚疏) : 삼국 시대 때 오(吳)나라의 육기(陸璣)가 찬한 것으로, 총 2권이다.
《모시》에 나오는 물명(物名)에 대해 고증한 것이다.
모시정의(毛詩正義) : 당나라 태종 때 국자 좨주 공영달이 황제의 명을 받고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 21명과
함께 642년에 완성한 것으로, 총 40권이다.
시지리고(詩地理考) : 송나라 왕응린(王應麟)이 찬한 것으로, 6권이다. 《정씨시보(鄭氏詩譜)》를 전록(全錄)하였으며,
또 《이아(爾雅)》, 《설문(說文)》, 지지(地志), 《수경(水經)》 및 선현들의 전주(傳註)에서 시(詩) 가운데 나오는
지명과 관련된 것을 모두 모아서 기술하였다.
시집전(詩集傳) : 송나라 주자(朱子)가 찬한 것으로, 총 8권이다.
모시의소(毛詩義疏) : 북주(北周)의 심중(沈重)이 지은 것이다.
주례(周禮) :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있으나 전국 시대 말기에서 전한(前漢) 시대 사이에 편집된 것으로 추측되는
중국 경서(經書)의 하나이다. 총 6편이다.
주례주(周禮註) : 정현(鄭玄)이 지은 《주례》의 주석으로, 42권이다.
주례정의(周禮正義) : 당나라의 가공언(賈公彦)이 소(疏)를 올려 주석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것이다.
예기(禮記)
예기집설(禮記集說) : 명나라 때 진호(陳澔)가 편찬한 것으로, 총 10권이다.
《운장예기집설(雲莊禮記集說)》이라고도 한다.
예기은의(禮記隱義) : 하예(何裔)가 찬한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 : 전한(前漢) 때 대덕(戴德)이 기록한 것으로, 85편으로 되어 있다. 주나라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의 의절(儀節)과 예도(禮度)에 대해 기술하였으며, 《대대기(大戴記)》, 《대대례(大戴禮)》라고도 한다.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 :
명나라 구준(丘濬)이 찬한 것으로, 160권이다. 《대학》의 의리(義理)에 대하여 부연 설명한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전국 시대 때 좌씨(左氏)라는 사람이 지은 《춘추》에 대한 해석서로, 총 30권이다.
춘추좌전주(春秋左傳註) : 진(晉)나라 때 두예(杜預)가 《춘추좌전》에 대해 주석한 것이다.
춘추좌씨정의(春秋左氏正義) : 당나라 태종 때 국자 좨주 공영달이 황제의 명을 받고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 21명과
함께 642년에 완성한 것으로, 총 36권이다.
춘추외전국어(春秋外傳國語) : 《국어(國語)》라고도 하고 《외전(外傳)》이라고도 한다.
《춘추(春秋)》에서 노(魯)나라를 내(內)로 하고 그 이외의 여러 나라를 외(外)로 하여, 외국의 일을 기술한 것을 가리킨다.
국어해(國語解) : 오(吳)나라의 위소(韋昭)가 주석한 것으로, 21권이다.
이아(爾雅) : 중국의 고대 어휘(語彙)를 보통말로 번역한 가장 오래된 사서(辭書)로, 저작자는 미상이다.
모두 19편으로 그 가운데서도 석고(釋詁), 석언(釋言) 2편은 특히 오래된 것이다.
이아주(爾雅註) : 진(晉)나라 곽박(郭璞)이 주석한 것으로, 11권이다.
이아주(爾雅註) : 송나라 정초(鄭樵)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논어(論語) : 춘추전국 시대의 유성(儒聖)인 공자(孔子)와 그의 문인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총 20권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 : 위(魏)나라 때 하안(何晏)이 썼다고 전하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도 완전한 논어에 대한 주석서
(註釋書)로, 총 10권이다.
맹자(孟子) : 전국 시대 때 맹자(孟子)가 지은 책으로, 그의 언행록(言行錄)이다. 총 14권이다.
맹자집주(孟子集註) : 송나라 주자(朱子)가 찬한 것으로, 7권이다.
오경구침(五經鉤沈) : 진(晉)나라 양방(楊方)이 찬한 것이다.
십일경문대(十一經問對) : 원나라의 하이손(何異孫)이 지은 것으로, 《논어》, 《효경》, 《맹자》, 《대학》, 《중용》, 《시》, 《서》, 《주례》, 《의례》, 《춘추》, 《예기》의 11경에 대해 문답한 것이다.
경의고(經義考) : 청초(淸初)의 문인이며 학자인 주이존(朱彝尊)이 지은 것으로, 총 300권에 목차 2권이다.
각 경서(經書)의 존망(存亡)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각 서(書)에 대하여 저자, 서명, 권수, 존망 여부를 기술하고,
원서(原書)의 서(序)와 발(跋)을 전록(全錄)하였으며, 관계 문헌을 전재(全載)하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부기(附記)
하기도 하였다.
귀장역(歸藏易) : 삼역(三易) 가운데 하나로, 황제(黃帝)가 지은 것이라 한다.
효경구명결(孝經鉤命決)
급총주서(汲冢周書) : 진(晉)나라 때 급군(汲郡)의 고총(古塚)에서 출토된 서책을 말하는데, 총 10권이다.
《일주서(逸周書)》라고도 한다.
급총주서주(汲冢周書註) : 진(晉)나라의 오경박사(五經博士) 공조(孔晁)가 주석한 것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 : 찬자는 미상이며, 2권으로 되어 있다. 진(晉)나라 무제(武帝) 때 급군(汲郡) 사람이 위(魏) 양왕
(襄王)의 무덤을 발굴하여 죽서(竹書) 수십 수레를 얻었다. 그 가운데 《기년(紀年)》 14편이 있었는데, 하(夏)나라
이래로 위(魏)의 안희왕(安釐王) 20년까지의 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구본(舊本)에는 하(夏)나라부터 기록되어 있었
는데, 지금 전하는 2권에는 황제(黃帝)부터 기록되어 있는바, 이는 후대 사람이 위찬(僞撰)한 것이다.
노사(路史) : 송나라 나필(羅泌)이 찬한 것으로, 47권이다. 전기(前紀) 9권은 삼황(三皇)과 음강(陰康), 무회씨(無懷氏)
에 대해 기록하였고, 후기 14권은 태호(太昊)에서 하(夏)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기술하였으며, 국명기(國名紀) 8권은
상고 시대에서 양한(兩漢) 말기까지 여러 나라의 성씨와 지리에 대해 기술하였으며, 발휘(發揮)와 여론(餘論) 16권은
변론하고 고증한 글이다.
전국책(戰國策) : 한나라 유향(劉向)이 선진(先秦) 시대 여러 나라에서 전국(戰國) 시대의 시사(時事)를 기록한 것을
모아 착란된 것은 바로잡고 중복된 것은 삭제하여 33편으로 편집한 것이다. 주(周)나라 원왕(元王)에서 진(秦)나라
시황(始皇) 25년까지 240여 년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며,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지으면서 이 책에서
많이 채록하였다.
사기(史記)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마천(司馬遷)이 황제(黃帝) 때부터 한 무제 태초(太初) 연간까지 2600년
동안의 중국 역사를 기록한 중국 고대의 통사(通史)이다. 서술 체제는 기전체(紀傳體)로, 본기(本紀) 12, 표(表) 10,
서(書) 8, 세가(世家) 30, 열전(列傳) 70, 모두 130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후 중국 정사(正史) 서술의 전형이 되었다.
제115권에는 ‘조선(朝鮮)’에 관한 사실이 최초로 입전(立傳)되어 있는바, 사료적인 가치가 크다.
사기색은(史記索隱) : 당나라 사마정(司馬貞)이 찬한 《사기》의 주석서로, 총 30권이다.
사기정의(史記正義) : 당나라 장수절(張守節)이 찬한 《사기》의 주석서로, 총 130권이다.
한서(漢書) : 후한(後漢) 시대 명제(明帝) 때 반고(班固)가 한 고조에서부터 왕망(王莽)이 멸망할 때까지 230년간의
사실을 기록한 전한(前漢)의 정사로, 본기 12, 연표 8, 지 10, 열전 70, 총 120권으로 이루어졌다.
제95권에 ‘조선전(朝鮮傳)’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군(四郡)의 명칭만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을 뿐 《사기》의 조선전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였다.
한서주(漢書註) : 당나라 안사고(顔師古)가 주석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 남조(南朝) 유송(劉宋)의 범엽(范曄)이 지은 후한 14세 195년간의 정사로, 본기 10, 지 30, 열전 80,
총 120권으로 되어 있는데, 지 30권은 진(晉)나라의 사마표(司馬彪)가 보충한 것이다.
제115권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부여(夫餘), 읍루(挹婁), 고구려(高句麗), 동옥저(東沃沮), 예(濊), 한(韓)이 실려 있는데,
후한 시대의 교섭 사실을 보완하였을 뿐 대체로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을 전재한 것으로 사료적
인 가치는 《삼국지》보다 떨어진다.
후한서주(後漢書註) : 당(唐)의 장회태자(章懷太子) 이현(李賢)이 주석한 것이다.
헌제기거주(獻帝起居注)
삼국지(三國志) : 진(晉)의 진수(陳壽)가 사찬(私撰)한 삼국 시대 66년간의 정사로, 위지(魏志) 30, 촉지(蜀志) 15,
오지(吳志) 20, 총 65권이다. 위서 제30권 동이전(東夷傳)에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예, 한(韓)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왕망(王莽) 초부터 삼국 시대 말기까지의 사실을 수록하고 있으며, 중국 정사 가운데 처음으로 동이 각 종족의
위치, 지세, 국력, 통치형태, 생활풍습 등을 상세히 다루었으므로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위략(魏畧) : 서진 무제(西晉武帝) 태강(太康) 연간에 위(魏)의 낭중(郞中)이었던 어환(魚豢)이 사찬(私撰)한 삼국 시대
위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史書)로, 기(紀), 지(志), 열전(列傳)의 체제로 되어 있다. 원문은 산실되어 전해지지 않
으나, 《삼국지》 배송지(裴松之)의 주(注), 《태평어람(太平御覽)》, 《한원(翰苑)》 등에 일문(逸文)이 있으며,
청(淸)나라의 장붕일(張鵬一)이 그것을 집성하여 《위략집본(魏畧輯本)》 25권을 편찬하였다. 진수(陳壽)가 지은
《삼국지》도 이 《위략》을 토대로 서술된 부분이 많으며, 우리나라 관계 기사의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구주춘추(九州春秋) : 진(晉)나라 사마표(司馬彪)가 찬한 것으로, 9권이다.
진서(晉書) : 당 태종(唐太宗) 정관(貞觀) 연간에 방현령(房玄齡) 등이 명을 받아 찬한 서진(西晉)의 4대 52년간, 동진
(東晉)의 11대 10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진대(晉代)의 정사로, 제기(帝紀) 10, 지(志) 20, 열전(列傳) 70, 재기(載記) 30,
총 130권이다. 제97권 사이열전(四夷列傳) 동이조(東夷條)에 부여, 마한, 진한, 숙신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강표전(江表傳) : 진(晉)나라 우부(虞溥)가 찬한 것으로, 지금은 전해지는 본(本)이 없으며,
《삼국지(三國志)》의 주(注) 가운데 많이 인용되어 있다.
진서(秦書) : 차영(車穎)이 찬한 것이다.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위(魏)나라 최홍(崔鴻)이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사적을 기술
하였다.
원경전(元經傳) : 수(隋)나라 왕통(王通)이 찬한 것에 당나라 설수(薛收)가 속찬(續撰)한 것으로, 10권이다.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모방하여 지었으며, 진(晉)나라 태희(太煕) 원년에서 당나라 무덕(武德) 원년까지의
사실(史實)을 기록하였다.
송서(宋書) : 남조(南朝) 제(齊)의 무제(武帝) 영명(永明) 5, 6년간에 심약(沈約)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송(宋) 8대 60년
간의 정사(正史)로, 제기(帝紀) 10, 지(志) 30, 열전(列傳) 60, 총 100권이다. 제97권 만이열전(蠻夷列傳)에 고구려국,
백제국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유송(劉宋) 1대의 교섭 사실을 수록하고 있다.
남제서(南齊書) : 남조 양(梁)나라의 소자현(蕭子顯)이 찬한 남제(南齊) 7대 24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본기 8,
지 11, 열전 40, 총 59권이다. 제58권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에 고려, 백제, 가라(加羅)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남제 시대의 교섭 사실을 기록하였다.
양서(梁書) : 당 태종 정관(貞觀) 연간에 요사렴(姚思廉)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양나라 6대 56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본기 6, 열전 50, 총 56권이다. 제54권 동이열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신라전은 중국 사서에 처음으로 보이는 것으로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양잡의주(梁雜儀注) :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찬한 것이다.
후위서(後魏書) : 북제 문선제(北齊文宣帝) 천보(天保) 연간에 위수(魏收)가 명을 받들어서 찬한 북위(北魏)의 건국
(建國)에서부터 동위(東魏) 효정제(孝靜帝)까지 165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제기 14, 열전 96, 지 20, 총 130권
이다. 제100권에 고구려, 백제, 물길(勿吉)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구려는 건국에서부터 양원왕(陽原王) 10년까지,
백제는 개로왕(蓋鹵王) 18년부터 문주왕(文周王) 1년까지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전의 경우는 당대의 사료를
많이 이용한 것으로 보여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북제서(北齊書) : 당나라 때 이백약(李百藥)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것으로, 본기 8, 열전 42권 등 총 50권이다.
후주서(後周書) : 당 고조(高祖) 무덕(武德) 연간에서 당 태종 정관(貞觀) 2년 사이에 영호덕분(令狐德棻)이 명을 받들
어서 찬한 북주(北周) 5대 25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본기 8, 열전 42, 총 50권이다. 제49권에 고구려와 백제가
이역전(異域傳)의 명칭으로 실려 있는데, 고구려는 건국에서부터 평원왕(平原王) 19년까지, 백제는 초기부터 위덕왕
(威德王) 25년까지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북주 당시의 자료에 의거해 서술한 것으로, 전사(前史)에 없는 기록이
다수 보인다.
진서(陳書) : 당나라 때 요사렴(姚思廉)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것으로, 본기 6, 열전 30권 등 총 36권이다.
남사(南史) : 당 태종 정관 연간에 이연수(李延壽)가 사찬(私撰)한 남조(南朝)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 170년간
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본기 10, 열전 70, 총 80권이다. 제79권 이맥열전(夷貊列傳) 하(下)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남조의 정사를 산삭(刪削)하여 편찬한 것으로 새로운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북사(北史) : 당 태종 정관 연간에서 고종(高宗) 현경(顯慶) 연간에 이연수(李延壽)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사찬
(私撰)한 북조(北朝) 233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통사(通史)로, 본기 12, 열전 88, 총 100권이다. 제94권에 고려, 백제,
신라, 물길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북조 정사(正史)의 동이전(東夷傳) 내용을 요약하여 기술한 것이다.
삼십육국춘추(三十六國春秋) : 양(梁)나라 소방등(蕭方等)이 찬한 것이다.
수서(隋書) : 당 태종 정관 연간에 위징(魏徵)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수(隋)나라 3대 38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제기 5, 열전 50, 지 30, 총 85권인데, 지 부분은 장손무기(長孫無忌)가 편찬하였다. 제81권에 고구려, 백제, 신라, 말갈
이 수록되어 있다.
구당서(舊唐書) : 후진(後晉) 고조(高祖) 천복(天福) 연간에서 출제(出帝) 개운(開運) 2년 사이에 유후(劉昫)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당나라 20대 290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본기 20, 지 30, 열전 150, 총 200권이다.
제199권 상 동이전에 고려, 백제, 신라가 수록되어 있는데, 고구려, 백제는 멸망 때까지, 신라는 문성왕(文聖王) 3년
까지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신당서(新唐書) : 송 인종(仁宗) 경력(慶曆) 4년에서 가우(嘉祐) 5년 사이에 구양수(歐陽脩)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당대(唐代) 290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본기 10, 지 50, 표 15, 열전 150, 총 225권이다. 제220권 동이열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수록되어 있는데, 고구려, 백제는 멸망 때까지, 신라는 문성왕(文聖王) 때까지의 사실이 기록
되어 있다. 《신당서》의 체제는 《구당서》보다 높게 평가되나, 후대에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는
《구당서》에 미치지 못한다.
순종실록(順宗實錄) : 당나라 한유(韓愈)가 찬한 것으로, 5권이다. 당나라 순종의 실록으로, 영정(永貞) 원년 정월
즉위일에서 동년 8월 붕어할 때까지의 기사를 수록하였다.
국사보(國史補) : 당나라 이조(李肇)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당나라 개원(開元)에서 장경(長慶) 연간까지의 잡사
(雜事)를 기록한 것이다.
개천유사(開天遺事) : 오대 때 왕인유(王仁裕)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라고도 한다.
당나라 개원, 천보 연간의 유사 159조를 기술하였다.
대중유사(大中遺事) : 영호징(令狐澄)이 찬한 것이다.
당회요(唐會要) : 송나라 왕부(王溥)가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당나라 정치의 강요(綱要)를 기술하였다.
당사논단(唐史論斷) : 송나라 손보(孫甫)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당서(唐書)》를 편년체로 개찬하고, 논단을 가한 것이다.
오대사(五代史) : 《오대사》에는 송 태조(太祖) 개보(開寶) 연간에 설거정(薛居正)이 편찬한 《구오대사》와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가 편찬한 《신오대사》가 있다. 여기에서 인용한 것은 구양수가 찬한 《신오대사》로, 본기 12,
열전 45, 고(考) 3, 세가(世家) 10, 십국세가연보(十國世家年譜) 1, 사이부록(四夷附錄) 3, 총 74권이다. 제74권 사이
부록에는 고려, 발해, 말갈, 신라가 수록되어 있다.
오대회요(五代會要) : 송나라 왕부(王溥)가 찬한 것으로, 총 30권이다. 태조(太祖) 건륭(建隆) 2년에 완성하였으며,
오대(五代)의 정요(政要)를 기술한 것이다.
남당서(南唐書) : 송나라의 육유(陸游)가 찬한 것으로, 18권에 음석(音釋) 1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음석 1권은 원나라 척광(戚光)이 찬한 것이다.
오월왕전(吳越王傳)
송사(宋史) : 원 순제(元順帝) 지정(至正) 3년에서 5년 사이에 탈탈(脫脫) 등이 명을 받들어 찬한 송대(宋代) 320년간의
정사로, 본기 47, 지 62, 표 32, 열전 255, 총 496권으로 되어 있다. 제487권 외국열전(外國列傳) 3에 고구려전이, 제491
권 외국열전 7에는 발해전과 정안국전(定安國傳)이 수록되어 있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고려의 건국으로부터 예종
(睿宗) 연간까지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종래와는 달리 외국전으로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송양조천문지(宋兩朝天文志) 송삼조식화지(宋三朝食貨志) 송삼조예문지(宋三朝藝文志)
희풍일력(煕豐日曆) : 송나라 왕명청(王明淸)이 찬한 것이다.
영화기문(寧和記聞) : 송나라 강만리(江萬里)가 찬한 것이다.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 송나라 주자(朱子)가 찬한 것으로, 전집 10권, 후집 14권이다. 전집에는 송나라 태조
(太祖), 태종(太宗), 진종(眞宗), 인종(仁宗), 영종(英宗) 때의 명신인 조보(趙普), 조빈(曹彬) 이하 57인의 언행을 수록
하였고, 후집에는 신종(神宗), 철종(哲宗), 휘종(徽宗) 때의 명신인 한기(韓琦), 부필(富弼) 이하 42인의 언행을 수록
하였다.
요사(遼史) : 원 순제(元順帝) 지정 3년에서 4년 사이에 탈탈 등이 명을 받들어 찬한 요대(遼代) 219년간의 역사를 기록
한 정사로, 본기 30, 지 37, 표 8, 열전 45, 국어해(國語解), 총 116권이다. 제115권 이국외기(二國外紀)에 고려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려 건국부터 예종 15년까지의 요(遼)와의 교섭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요지(遼志) : 송나라 섭융례(葉隆禮)가 찬한 것이다.
요사고증(遼史考證)
금사(金史) : 원 순제 지정 3년에서 4년 사이에 탈탈 등이 명을 받들어서 편찬한, 금대(金代) 연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본기 19, 지 39, 표 4, 열전 73, 총 135권이다. 제135권 외국열전에 고려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려 인종
때부터 고종 6년까지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귀잠지(歸潛志) : 원(元)나라 때 유기(劉祁)가 찬한 것으로, 총 14권이다. 금나라 말기 여러 사람들의 전기(傳記)와
유사(遺事)를 잡다하게 기록하였다. 뒤에 원나라에서 《금사(金史)》를 편찬할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하였다.
원사(元史) : 명 태조 홍무(洪武) 2년에서 3년 사이에 송렴(宋濂)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원대(元代) 11대 109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본기 47, 지 58, 표 8, 열전 97권 등 총 210권이다. 제208권 외이열전(外夷列傳)에 고려전과
탐라전(耽羅傳)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려는 고종 때부터 충숙왕 때까지의 사실을 수록하고 있다.
경신외사(庚申外史) : 권형(權衡) 등이 찬한 것이다.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재위한 28년간의 치란에 대한 대강을
기록하였다.
명사(明史) : 청(淸) 성조(聖祖) 강희(康煕) 17년부터 고종(高宗) 건륭(建隆) 초 사이에 장정옥(張廷玉) 등이 명을 받
들어 찬한, 명대 295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본기 24, 지 75, 표 13, 열전 220, 목록 4권 등 총 336권이다.
제320권에 조선전이 외국열전의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조선 건국 초부터 인조 15년까지의 사실을 명나라와의
교섭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헌종실록(憲宗實錄)
황명기사본말(皇明紀事本末) : 청나라 곡응태(谷應泰)가 찬한 것으로, 80권이다. 명나라의 전장(典章)과 사적(事蹟)에
대해 기술하였다. 《명조기사본말(明朝紀事本末)》이라고도 한다.
오학편(吾學編) : 명나라 정효(鄭曉)가 찬한 것으로, 14편 69권이다. 홍무(洪武) 연간에서 융경(隆慶) 연간까지의 일을
기술하였다.
사승고오(史乘攷誤) : 청나라 왕세정(王世貞)이 찬한 것으로, 11권이다.
황명세법록(皇明世法錄) : 명나라 진인석(陳仁錫)이 찬한 것으로, 92권이다. 명나라 태조에서 신종(神宗) 만력(萬曆)
연간까지의 모훈(謨訓), 예악(禮樂), 역상(曆象), 해방(海防), 수리(水利), 원보(元輔), 명신(名臣) 등에 대하여 기술
하였다. 《황명세법요록(皇明世法要錄)》이라고도 한다.
명전고기문(明典故紀聞) : 명나라 여계등(余繼登)이 찬한 것으로, 18권이다.
《명조전고기문(明朝典故紀聞)》이라고도 한다.
국조헌징록(國朝獻徵錄) : 명나라 초굉(焦竤)이 찬한 것으로, 120권이다. 명나라 초기에서 만력(萬曆) 연간까지의 전기
(傳記)를 집대성한 것이다. 《헌징록(獻徵錄)》이라고도 한다.
대명집례(大明集禮) : 명나라 서일기(徐一夔)가 명을 받들어서 찬한 것으로, 53권이다. 홍무(洪武) 3년에 완성하였으며,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5례를 강(綱)으로 하고 그 아래에 26조목으로 나누어 기술
하였다.
대명회전(大明會典) : 명나라 신시행(申時行)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것으로, 180권이다. 명나라 제도에 대해 전반적
으로 기술한 것이다.
명사의고(明史擬稿) : 청나라 우동(尤侗)이 찬한 것이다.
통감전편(通鑑前編) : 송나라 김이상(金履祥)이 찬한 것으로, 18권이다. 경전(經典)을 근거로 하여 《통감외기(通鑑
外紀)》의 잘못을 바로잡았으며, 당요(唐堯)에서 춘추(春秋) 이전까지를 기술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찬한 것으로, 총 294권에 목록 30권, 고이(考異) 30권이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에서 오대(五代) 후주(後周) 세종(世宗) 현덕(顯德) 6년까지 113 임금, 1361년간의 역사
사실을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한 것이다.
통감음주(通鑑音註) : 원나라 호삼성(胡三省)이 찬한 것이다.
통감고이(通鑑考異) : 송나라 왕극관(汪克寬)이 찬한 것이다.
통감지리통석(通鑑地理通釋) : 송나라 왕응린(王應麟)이 찬한 것으로, 14권이다. 역대(歷代)의 주역(州域)과 도읍
(都邑) 등에 관해 기술하였다.
속송자치통감(續宋資治通鑑) : 송나라 유시거(劉時擧)가 찬한 것으로, 15권이다. 고종(高宗) 건염(建炎) 원년부터
영종(寧宗) 가정(嘉定) 17년까지의 사실을 기술하였다.
명산장(名山藏) : 명나라 하교원(何喬遠)이 찬한 것으로, 37권이다. 명대 13조(朝)의 유사(遺事)를 기술하였다.
통전(通典) : 당나라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두우(杜佑)가 30년간에 걸쳐 찬한 것으로, 총 200권이다. 상고 시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역대 정치의 대요(大要), 제도의 변천 등을 식화(食貨), 선거(選擧), 직관(職官), 예(禮), 악(樂),
병(兵), 형(刑), 주군(州郡), 변방(邊防)의 9문(門)으로 나누어 연대순으로 서술하였다.
속통전(續通典) : 청나라 건륭(乾隆) 32년에 송백(宋白) 등이 명을 받아서 찬한 것으로, 144권이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이 천보(天寶) 연간까지만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뒤를 이어 명나라 숭정(崇禎) 말년까지를
서술하였는데, 체례(體例)와 편목(篇目)은 한결같이 통전의 예를 따랐다.
책부원귀(冊府元龜) : 북송(北宋) 초기의 정치가인 왕흠약(王欽若), 양억(楊億) 등이 진종(眞宗)의 명에 따라 1005년
부터 편수(編修)하여 1013년에 완성한 것으로, 총 1000권이다. 내용은, 역대 군신의 사적(事跡)을 제왕(帝王), 윤위
(閏位), 참위(僭位), 열국(列國), 저궁(儲宮), 종실(宗室), 외척(外戚), 재보(宰輔), 장수(將帥), 대성(臺省), 방계(邦計),
헌관(憲官), 간쟁(諫諍), 사신(詞臣), 국사(國史), 장례(掌禮), 학교(學校), 형법(刑法), 경감(卿監), 환위(環衛), 전선
(銓選), 공거(貢擧), 봉사(奉使), 내신(內臣), 목수(牧守), 영장(令長), 관신(官臣), 막부(幕府), 배신(陪臣), 총록(總錄),
외신(外臣)의 31부로 나누고, 다시 이것을 1104문(門)으로 분류하여 편찬하였다.
문헌통고(文獻通考) :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역사가인 마단림(馬端臨)이 1319년에 찬한 것으로, 총 348권이다.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이 고대(古代)에서 오대(五代)까지의 치란과 흥망에 대해서는 상세하지만,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해서는 소략함을 유감으로 여기어 당나라 두우의 《통전》을 모방하여, 고대로부터 남송 가정(嘉定) 말년
까지의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다.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 마단림이 지은 《문헌통고》를 모방하여 명나라 왕기(王圻)가 찬한 것으로, 총 254권이다.
통지략(通志畧) : 송나라 정초(鄭樵)가 찬한 것으로, 《통지(通志)》 200권 가운데 51권이 들어 있다.
홍간록(弘簡錄) : 명나라 소경방(邵經邦)이 찬한 것으로, 254권이다. 가정(嘉靖) 36년에 완성하였으며,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의 뒤를 이어 당나라에서 금나라까지 664년간의 사실을 기술하였다.
홍간속록(弘簡續錄) : 청나라 소원평(邵遠平)이 찬한 것으로, 42권이다. 《속홍간록(續弘簡錄)》이라고도 한다.
독례통고(讀禮通考) : 청나라 서건학(徐乾學)이 찬한 것으로, 120권이다. 역대의 상례(喪禮)에 대하여 상기(喪期),
상복(喪服), 상의절(喪儀節), 상구(喪具), 장고(葬考), 변체(變體), 상제(喪制), 묘제(廟制) 8류(類)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태평광기(太平廣記) : 송대의 학자 이방(李昉) 등이 칙명에 의하여 편집한 고금(古今) 소설(小說)의 총집(總集)이다.
475종의 도서에서 모은 소설이나 신화를 92항목으로 나누어 출전을 밝혀 서술하였으며, 총 500권이다.
옥해(玉海) : 송나라 때 왕응린(王應麟)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유서(類書)로, 총 200권에 《사해지남(辭海指南)》 4권이
붙어 있다. 천문(天文), 율력(律曆), 지리(地理) 등 21문(門), 240여 류(類)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육조사적(六朝事跡) : 남송(南宋)의 주돈이(周敦頤)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소흥(昭興) 30년에 완성하였으며, 육조의 사적을 총서(總敍), 형세(形勢), 성궐(城闕) 등 14부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요산당외기(堯山堂外紀) : 명나라 때 장중서(蔣仲舒)가 찬한 수필록으로, 총 100권이다.
세설주(世說註) : 육조(六朝)의 송나라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世說)》에 양(梁)나라의 학자 유준(劉峻)이
주(註)를 붙인 것으로, 3권이다.
도서편(圖書編) : 명나라 장황(章潢)이 편(編)한 것으로, 127권이다. 여러 가지 서책의 그림을 모아 설명을 붙인 것으로,
경의(經義) 15권, 상위역산(象緯曆算) 13권, 지리(地理) 38권, 인도(人道) 57권, 역상(易象) 1권, 유편(類編) 1권, 학시
(學詩) 1권, 다식(多識) 1권으로 되어 있다.
형천패편(荊川稗編) : 명나라 당순지(唐順之)가 찬한 것으로, 120권이다. 역대 명현(名賢)들의 논문(論文)을 모은 것이다.
삼재도회(三才圖會) : 명나라 왕기(王圻)가 찬한 것으로, 총 106권이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물(人物), 시령(時令),
궁실(宮室), 기용(器用), 신체(身體), 의복(衣服), 인사(人事), 의제(儀制), 진보(珍寶), 문사(文史), 조수(鳥獸), 초목(草木)
등에 대해 도해(圖解)한 것이다.
삼재도회속집(三才圖會續集) : 명나라 때 왕사의(王思義)가 찬한 것이다.
무비지(武備志) : 명나라 모원의(茅元儀)가 찬한 것으로, 240권이다. 무비(武備)에 관계되는 역대의 사실을 편집한 것
으로, 병결해(兵訣解), 직략고(職畧考), 진련제(陣練制), 군자승(軍資乘), 점도재(占度載)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기술
하였다.
대청개국방략(大淸開國方畧) : 청나라 건륭(乾隆) 38년에 명을 받들어 찬한 것으로, 32권이다.
청 태조의 건국부터 세조가 중국에 들어가 평정하기까지의 사실을 편년체로 기술하였다.
《황청개국방략(皇淸開國方畧)》, 《개국방략(開國方畧)》이라고도 한다.
대청회전(大淸會典) :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명하여 찬한 것으로, 총 100권이다. 《청회전》이라고도 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 : 구본(舊本)에 혹 한나라 유흠(劉歆)이나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찬한 것이라 되어 있기도 한데,
실은 양(梁)나라 오균(吳均)이 찬한 것이며, 총 6권이다. 한나라 무제(武帝) 전후 시대의 잡사(雜事)에 대해 기술하였다.
양사공기(梁四公記) : 당나라 장열(張說)이 찬한 것이다.
규염객전(虬髥客傳) : 당나라 장열이 지은 전기소설(傳奇小說)이다.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 송나라 악사(樂史)가 찬한 것으로, 상ㆍ하 2편이다. 당나라 양 귀비(楊貴妃)에 대하여 기술
하였다.
고종행장부절차략(高宗幸張府節次畧) : 송나라 주밀(周密)이 찬한 것이다.
영도선현전(寧都先賢傳) : 청나라 위례(魏禮)가 찬한 것이다.
여협전(女俠傳) : 정지린(鄭之麟)이 찬한 것이다.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 : 명나라 제갈원성(諸葛元聲)이 찬한 것으로, 5권이다. 저자가 목도한 다섯 가지 큰일을 한 권
에 한 가지씩 기술하였다.
승조동관습유기(勝朝彤管拾遺記) : 모기령(毛奇齡)이 찬한 것이다.
동정기(東征記) : 서희진(徐希震)이 찬한 것이다.
만성통보(萬姓統譜) : 명나라 능적지(凌迪知)가 찬한 것으로, 146권이며, 《씨족박고(氏族博攷)》 14권이 붙어 있다.
고금의 성씨(姓氏)를 각 운(韻)별로 나누어 편차한 다음 각 성씨의 본성(本姓)과 역대 명인들의 사적을 수록하였다.
성원(姓苑) : 남조(南朝) 송(宋)나라 때 하승천(何承天)이 찬한 것이다.
성경(星經) : 전국(戰國) 시대 위(魏)나라 석신(石申)이 지은 것으로, 1권이다.
천문류초(天文類抄)
대명청류분야지서(大明淸類分野之書) : 명나라 유기(劉基) 등이 찬한 것으로, 24권이다. 12분야의 성차(星次)를 천하의
부현(府縣)에 나누어 배치하여 기술하였으며, 군현의 아래에 고금의 건치 연혁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고금율력고(古今律曆考) : 명나라 형운로(邢雲路)가 찬한 것으로, 총 72권이다. 이 책은 역(曆)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서술하였으나, 율(律)에 대해서는 소략하여 6권에 불과하며, 육경(六經) 이하로부터 명나라 《대통력(大統曆)》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고증하여 바로잡은 것이다.
산해경(山海經) : 중국 고대의 지리서(地理書)로 성립 연대는 미상이며, 우(禹) 임금 때 백익(伯益)의 저술이라 하나
분명치 않으며, 대개 전국 시대 때의 저술일 것으로 추측된다. 당초에는 13권이었으나, 한나라 때 유흠(劉歆)이 대황
남경(大荒南經)에서 해내경(海內經)까지 5권을 추가하여 총 18권이다. 지리(地理), 산맥(山脈), 하천(河川), 물산(物産)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산해경찬(山海經讃) : 진(晉)나라 때 곽박(郭璞)이 《산해경》의 원문에 찬(讃)을 붙인 것으로, 2권이다.
산해경주(山海經註) : 진나라 때 곽박이 《산해경》에 대해 주석한 것으로, 18권이다.
산해경석의(山海經釋義) : 명나라 때 왕숭경(王崇慶)이 지은 것으로, 18권이다.
산해경전소(山海經箋疏) : 청나라 때 학의행(郝懿行)이 《산해경》의 원문을 교정하고 고증을 가한 것으로, 총 18권
이다.
수경(水經) : 한나라 때 상흠(桑欽)의 저술이라는 설과 진(晉)나라 때 곽박(郭璞)의 저술이라는 설이 있으나 모두
신빙성이 없으며, 대개 삼국 시대의 저술로 생각된다. 황하(黃河)를 비롯하여 중국 각지의 하천의 수계(水系)를 표시
하고 있다.
수경주(水經註) : 북위(北魏)의 관리이자 지리학자인 역도원(酈道元)의 저술로 총 40권이다. 《수경》에 대한 주석서
라는 체제를 취하고 있기는 하나, 완전한 지리서(地理書)로서 독자적인 내용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수도제강(水道提綱) : 청나라 제소남(齊召南)이 찬한 것으로, 28권이다.
진태강지리지(晉太康地理志)
괄지지(括地志) : 당나라 복왕(濮王) 태(泰)가 소덕언(蘇德言), 고윤(顧胤) 등에게 명하여 찬한 것으로, 본디 총 550권
이나 대부분 산실되고 청나라 때 손성연(孫星衍)이 다시 수집, 편찬한 8권만 남아 있다.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 : 당나라 가탐(賈耽)이 찬한 것이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 송나라 악사(樂史)가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에 찬한 지리서(地理書)로, 200권인데,
현재는 193권만 전한다. 중국과 사이(四夷)의 인물(人物)과 예문(藝文)에 대해 기록하였다.
석지여론(釋地餘論) : 청나라 염약거(閻若璩)가 찬한 것이다.
황여고(皇輿考) : 명나라 장천복(張天復)이 찬한 것으로, 12권이다.
광여기(廣輿記) : 명나라 육응양(陸應陽)이 찬한 것으로, 24권이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각성(各省)을 주부(州府)로 나눈 다음 건치연혁을 기술하고
다음 으로 형승(形勝), 산천(山川), 토산(土産), 관량(關梁), 사묘(祠廟), 고적(古蹟), 명환(名宦), 인물(人物)에 대해
기록하였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 명나라 이현(李賢) 등이 명을 받아서 찬한 것으로, 90권이다. 경사(京師), 남경(南京), 중도
(中都), 흥도(興都)의 사대 문(門)으로 나누어 각 해당 지역의 지리(地理), 건치연혁(建置沿革), 풍물(風物), 인물(人物)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 장정석(蔣廷錫) 등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서 편찬한 중국 청대 전 지역의 지지(地志)로,
총 366권이다. 중국을 각 성별(省別)로 나누어서 서술하였는데, 처음에 통부(統部)가 있고, 도(圖), 표(表), 분야(分野),
건치연혁(建置沿革), 형세(形勢), 문무직관(文武職官), 호구(戶口), 전부(田賦), 세과(稅課), 명환(名宦)의 순서로 한
성의 대요(大要)를 개괄하였으며, 그다음으로 부(府), 청(廳), 직예주(直隷州)에 관해서 각각 도, 표, 분야, 건치연혁,
형세, 풍속(風俗), 성지(城池), 학교(學校), 호구, 전부, 산천, 고적(古蹟), 관애(關隘), 진량(津梁), 제언(堤堰), 능묘
(陵墓), 사묘(祠廟), 사관(寺觀), 명환(名宦), 인물(人物), 유우(流寓), 열녀(烈女), 선석(仙釋), 토산(土産)의 22문(門)
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이 책은 원(元)과 명(明)의 일통지(一統志)를 답습한 것인데, 그보다 훨씬 더 기사가 정확하고
고증이 자세하며, 내용이 풍부하여 청대의 지리뿐만 아니라 중국 고래(古來)의 역사 지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문헌이다.
성경통지(盛京通志) : 청나라 여요노(呂耀魯) 등이 건륭(乾隆) 44년에 명을 받아 찬한 것으로, 120권이다.
예전의 《성경통지》를 보충한 것이다.
황청직공도(皇淸職貢圖) :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16년에 대학사(大學士) 부항(傅恒) 등이 명을 받들어 찬한 것으로,
총 9권이다. 조선(朝鮮) 등 조공을 바치는 여러 외국과 그 나머지 각성(各省)에 소속된 이민족(異民族)들의 풍속과
용모를 적은 것이다.
천하산하양계고(天下山河兩戒考)
해방의(海防議) : 명나라 화옥(華鈺)이 찬한 것이다.
일하구문(日下舊聞) : 청나라 주이존(朱彝尊)이 찬한 것으로, 42권이다.
북경(北京)의 고사(古事)와 구문(舊聞)을 각종 서책 가운데서 찾아 모아 찬집하였으며, 원서(原書)의 이름을 수록하였다.
신원지략(宸垣識畧) : 청나라 오장원(吳長元)이 찬한 것으로, 16권이다. 경사(京師)의 일에 대해 서술하였는데, 천문
(天文), 형세(形勢), 수리(水利), 건치(建置), 대내황성(大內皇城), 내성(內城), 외성(外城), 원유(苑囿), 교경(郊坰),
지여(識餘) 등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연사(燕史) : 명나라 곽조경(郭造卿)이 찬한 것으로, 120권이다.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畧) : 명나라 유동(劉侗)이 찬한 것으로, 8권이다. 당시 북경(北京)의 경물(景物)에 대해 기록하였다.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 : 명나라 도종의(陶宗儀)가 찬한 것이다.
한림지(翰林志) : 당나라 이조(李肇)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한림(翰林)의 전고(典故)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태학지(太學志) : 곽반(郭鎜)이 찬한 것이다.
중당사기(中堂事記) : 원나라 왕운(王惲)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등과기(登科記) : 송나라 악사(樂史)가 지은 것으로, 30권이다.
천록지여(天祿識餘) : 청나라 고사기(高士奇)가 찬한 것이다.
금오퇴식필기(金鰲退食筆記) : 청나라 고사기(高士奇)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명나라의 고적(故蹟)을 탐방하고
그 개요를 기술한 것이다.
객연잡기(客燕雜記) : 명나라 육계굉(陸啓宏)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장안객화(長安客話) : 명나라 장일규(蔣一葵)가 찬한 것으로, 8권이다.
유업(游業) : 명나라 구회서(區懷瑞)가 찬한 것이다.
전료지(全遼志)
요동지(遼東志)
교광지(交廣志)
송강지(松江志)
구화산록(九華山錄) : 송나라 주필대(周必大)가 찬한 것이다.
통주지(通州志)
휘주지(徽州志) : 왕상녕(汪尙寧)이 찬한 것이다.
흡현지(歙縣志)
서호지(西湖志) : 명나라 전여성(田汝成)이 만력(萬曆) 12년에 완성한 것으로, 총 24권이다. 서호의 명승지와 남산,
북산의 명승지 등에 대해 7문(門)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라고도 한다.
서호지여(西湖志餘) : 명나라 전여성(田汝成)이 찬한 것으로, 총 26권이다. 남송 시대의 일문(軼聞)을 모아 13문(門)
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남경태상시지(南京太常寺志) : 명나라 심약림(沈若霖)이 찬한 것으로, 40권이다.
수동번풍속기(隋東蕃風俗記)
민대기(閩大記)
북원록(北轅錄) : 송나라 주휘(周煇)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고금설해(古今說海)》 가운데 들어 있다.
송
막기문(松漠紀聞) : 송나라 홍호(洪皓)가 찬한 것으로, 정집 1권, 속집 1권이다. 홍호가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 15년간
머물면서 금나라의 사적(事迹)을 기록한 것이다.
새북사실(塞北事實) : 문유간(文惟簡)이 찬한 것이다.
행정록(行程錄) : 허항종(許亢宗)이 찬한 것이다.
영남잡기(嶺南雜記) : 오진방(吳震方)이 찬한 것이다.
동서양고(東西洋考) : 명나라 장섭(張燮)이 찬한 것으로, 12권이다. 당시에 중국과 교역(交易)하는 여러 외국에 대해
기록한 것인데, 먼저 서양고(西洋考)에서는 15 개국을 기술하고 4 개국을 붙였고, 다음으로 동양고(東洋考)에서는 7
개국을 기술하고 12 개국을 붙였으며, 또 별도로 세향(稅餉), 주사(舟師), 예문(藝文) 등을 기술하였다.
신라국기(新羅國記) : 영호징(令狐澄)이 찬한 것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 : 송나라 서긍(徐兢)이 고려 인종(仁宗) 원년에 사신으로 나왔다가 보고 들은 바를 그림과 글로
적은 것으로, 40권이다. 현재 그림은 없어지고 글만 전하는데,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계림지(鷄林志) : 송나라 왕운(王雲)이 찬한 것으로, 30권이다. 숭녕(崇寧) 원년에 왕운이 서장관(書狀官)으로 고려에
나왔다가 돌아간 뒤에 지은 것으로, 고려의 사실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봉사계림지(奉使鷄林志)》라고도 한다.
계림유사(鷄林遺事) : 고려 중기에 송나라의 사신으로 온 서장관(書狀官) 손목(孫穆)이 지은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려에 와서 중국인의 안목으로 본 우리나라의 인정과 풍물을 기록한 것으로, 1103~1104년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
된다. 총 3권으로 토풍(土風), 조제(朝制), 방언(方言)의 3부와 부록의 표문집(表文集)으로 되어 있던 것인데, 현재 전
하는 것은 방언부와 토풍, 조제의 일부분뿐이다. 첫머리에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적고 고려의 제도와 풍습 등을 간단
히 소개한 다음 방언이라는 표제 밑에 당시의 고려어를 356항목에 걸쳐 중국자음(中國子音)으로 사음(寫音)하고 있
는데, 여기에 수록된 어휘는 고려어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세기(朝鮮世紀)
조선지(朝鮮志) : 저자는 미상이며, 2권이다. 명나라 때 조선인이 지은 것인 듯하다. 먼저 강역(疆域)과 연혁(沿革)을
기술하고, 다음으로 경도(京都), 풍속(風俗), 고도(古都), 고적(古迹), 산천(山川), 누대(樓臺) 여섯 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고적(古迹) 조항은 괴이한 것이 많아서 소설(小說)과 같으며, 그 나머지 잡다한 것들은 중국 사서(史書)에
상세하지 못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조선기사(朝鮮紀事) : 명나라 예겸(倪謙)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봉사록(奉使錄) : 명나라 장영(張寧)이 조선에 사신으로 갔다가 보고 들은 사실을 기술한 것으로, 1권이다.
일본기(日本記)
서록해제(書錄解題) : 송나라 진진손(陳振孫)이 찬한 것으로, 22권이다. 원본은 잃어버렸으며, 지금 전해지는 것은
《영락대전(永樂大典)》에서 뽑아낸 것이다. 역대 전적(典籍)들의 권질(卷帙)과 저자의 성명을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며,
득실(得失)에 대해 논하였다.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라고도 한다.
절강서목(浙江書目) : 청나라 종음(鍾音)이 찬한 것이다.
세선당장서목록(世善堂藏書目錄) : 명나라 진제(陳第)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세선당은 진제의 서실(書室) 이름이다.
수초당서목(遂初堂書目) : 송나라 우무(尤袤)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우무의 장서실(藏書室)인 수초당(遂初堂)의
장서 목록으로, 경ㆍ사ㆍ자ㆍ집 4부, 44류(類)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 청나라 건륭(乾隆) 37년에 기균(紀昀) 등이 명을 받들어서 찬한 것으로, 총 200권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총목(總目)을 경ㆍ사ㆍ자ㆍ집 4부로 나눈 다음, 이를 다시 저록(著錄)과 존목(存目)으로
분류하여 각 서의 해설을 붙였다.
방언(方言) : 한나라 양웅(揚雄)이 찬한 것으로, 13권이다. 양웅이 당시에 각 지역에서 조회(朝會)하러 오는 사자(使者)
들의 방언을 모아 수록한 것으로 《양자방언》이라고도 한다. 총 11만 900여 자의 방언이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고려
시대의 말이 들어 있어서 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석명(釋名) : 한나라 유희(劉煕)가 찬한 것으로, 8권이다. 훈고자서(訓誥字書)의 하나로, 《일아(逸雅)》라고도 한다.
석천(釋天), 석지(釋地) 등 27류(類)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고금주(古今注) : 진(晉)나라 최표(崔豹)가 찬한 것으로, 총 3권이다. 여복(輿服), 도읍(都邑), 음악(音樂), 조수(鳥獸),
어충(魚蟲), 초목(草木), 잡주(雜注), 문답(問答), 석의(釋義) 8편으로 나누어서 명물(名物)에 대해 고증한 것이다.
급취편주(急就篇註) :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 사유(史游)가 찬한 자서(字書)인 《급취편(急就篇)》에 당(唐)나라
안지추(顔之推)가 주석한 것이다.
급취편성씨주(急就篇姓氏註) : 《급취편》에 왕응린(王應麟)이 보주(補註)한 것이다.
통아(通雅) : 명나라 방이지(方以智)가 찬한 것으로, 52권이다. 《이아(爾雅)》의 체례(體例)에 의거하여 명물(名物),
상수(象數), 훈고(訓誥), 음성(音聲) 등 44부문으로 나누어 고증하였다.
설문(說文) : 한나라의 허신(許愼)이 찬한 것으로, 30권이다. 한자(漢字)의 기본적인 고전(古典)으로, 《설문해자(說文
解字)》라고도 한다. 화제(和帝) 영원(永元) 12년에 완성하였으며, 당시 한자의 자형(字形), 의의(意義), 음성(音聲)에
대해 해설하였다.
집운(集韻) : 송나라 인종 경우(景祐) 4년에 정도(丁度)가 명을 받들어서 찬한 운서(韻書)로, 총 10권이다.
평성(平聲) 4권, 상성(上聲) 2권, 거성(去聲) 2권, 입성(入聲) 2권으로 되어 있으며, 5만 3525자를 수록하였다.
정자통(正字通) : 명나라 장자열(張自烈)이 찬한 것으로, 12권이다. 매응조(梅膺祚)의 《자휘(字彙)》를 모방하여 12권을
12간지로 표시하였다. 《자휘》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훈고(訓詁)를 더하였는데, 인용한 것이 번잡하다.
자휘(字彙) : 명나라 말기에 매응조(梅膺祚)가 편찬한 사서(辭書)로, 총 12권인데, 첫머리와 끝 부분에 두 권의 부록이
있다. 처음으로 필획(筆畫) 색인(索引)을 붙인 통속의 자서(字書)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며, 수록 자수는 3만 3172자
이다.
강희자전(康煕字典) : 청나라 때 장옥서(張玉書) 등이 강희제(康煕帝)의 칙명으로 편찬한 자전이다.
총 12집, 40만 545자를 수록하고 있다.
해편통종(海篇統宗) : 장천여(張天如)가 찬한 것이다.
선화서보(宣和書譜) : 송나라 모진(毛晉)이 찬한 것이라 하나 자세하지 않으며, 20권이다. 송나라 휘종(徽宗) 때 내부
(內府)에 소장되어 있던 고래(古來)의 묵적(墨迹)을 모아 제왕(帝王)의 서(書), 전예(篆隷), 정서(正書), 행서(行書),
초서(草書)를 수록하고, 다음으로 분서(分書)를 수록하였다.
서설(書說) : 당나라 위속(韋續)이 찬한 것이다.
서화사(書畫史) : 명나라 진계유(陳繼儒)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畫譜) : 청나라 강희제(康煕帝)가 칙명을 내려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서화(書畫)에 관한 평론과 전기를 모아 수록하였다.
환우방비록(寰宇訪碑錄) : 청나라 손성연(孫星衍)이 찬한 것으로, 12권이다. 자신이 목도한 역대 비갈(碑碣)을 시대
별로 나누어 기술하고 서체(書體)와 소재지를 주석하였다.
정관공사화사(貞觀公私畫史) : 당나라 배효원(裴孝源)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수실(隋室)에 소장되어 있던 그림 가운
데서 당나라 정관(貞觀) 연간까지 남아 있던 그림에 대해 먼저 그림의 이름을 기술하고 그다음에 작자의 이름을 기술
하였다.
당조명화록(唐朝名畫錄) : 당나라 주경원(朱景元)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화가(畫家)를 신(神), 묘(妙), 능(能), 일(逸)
4품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화계(畫繼) : 송나라 등춘(鄧椿)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와
송나라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畫見聞志)》의 뒤를 이어서 지었으므로 《화계》라 이름하였다. 희령(煕寧)
7년에서 건도(乾道) 3년까지의 화가 219인에 대해 인명과 그림별로 나누어서 기술하였으며, 자신이 본 명적(名蹟)과
그림에 관련된 잡설(雜說)을 수록하였다.
와유록(臥游錄) : 송나라 여조겸(呂祖謙)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사전(史傳)에 실려 있는 고금인(古今人)과 경승처
(境勝處)에 대해 기술하였다.
화감(畫鑑) : 원나라 탕후(湯垕)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삼국 시대부터 원나라 때까지의 그림에 대해 기술하고 아울러
외국의 그림과 잡론(雜論)도 기술하였으며, 또 필적을 가지고 진위를 판별하기도 하였다. 미불(米芾)의 《화사(畫史)》
와 내용이 비슷하다.
도화견문지(圖畫見聞志) : 북송 때 곽약허(郭若虛)가 찬한 것이다.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
이어 당말(唐末)에서 북송 중기에 이르는 회사(繪事)를 기록한 책으로, 총 6권이다. 제1권은 화론(畫論), 2권에서 4권은
기예(紀藝), 5권은 고사습유(故事拾遺), 6권은 근사(近事)를 서술하고 있다.
익주명화록(益州名畫錄) : 송나라 황휴복(黃休復)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성도명화기(成都名畫記)》라고도 한다.
당나라 건원(乾元) 연간에서 송나라 건덕(乾德) 연간까지 촉중(蜀中)의 화가 58인에 대해 일(逸), 신(神), 묘(妙),
능(能) 4품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화사회요(畫史會要) : 명나라 김뢰(金賚)가 찬한 것으로, 5권이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 : 당나라 선종(宣宗) 대중(大中) 초년에 장언원(張彦遠)이 저술한 중국의 화론(畫論)과 화사
(畫史)에 관한 책으로, 총 10권이다.
운연과안록(雲烟過眼錄) : 송나라 주밀(周密)이 찬한 것으로, 총 4권이다. 자신이 본 서화(書畫)와 고기(古器)에 대해
품평한 것이다.
단청기(丹靑記)
연사(硯史) : 송나라 미불(米芾)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26종의 벼루에 대해 기술하였다.
묵사(墨史) : 원나라 육우(陸友)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먹을 잘 만드는 자 150여 명의 사적을 모아 기술하였으며,
고려(高麗), 거란(契丹), 서역(西域)의 먹에 대해서도 언급하였고, 끝 부분에 먹에 대한 잡설(雜說)을 붙였다.
오씨인보(吳氏印譜)
본초경(本草經) : 신농씨(神農氏)가 지은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대개 후한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본초(本草)》라고도 한다.
명의별록(名醫別錄) : 찬자는 미상이며, 도홍경(陶弘景)이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7권으로, 대략 위진(魏晉) 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명의별록주(名醫別錄註) : 《명의별록》에 대한 주석이다.
사성본초(四聲本草) : 오대(五代) 때 소병(蕭炳)이 찬한 것으로, 5권이다. 《본초(本草)》의 약명을 사성(四聲)으로
구분하여 기술해 검색하기에 편하게 하였다.
해약본초(海藥本草) : 전촉(前蜀)의 이순(李珣)이 찬한 것으로, 6권이다. 이 책이 완성된 시기는 미상이나 대략 전촉 때
완성되었으며,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영해(嶺海)에서 생산되는 여러 종류의 약재에 대하여 잡다하게 기술하였다.
본초습유(本草拾遺) : 당나라 개원(開元) 연간에 진장기(陳藏器)가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원본은 일찍 없어졌는데,
《가우본초(嘉祐本草)》에 의거하여 보면 서례(序例) 1권, 습유(拾遺) 6권, 해분(解紛) 3권인 것을 알 수가 있다.
692종의 약물에 대해 기술하였다.
남해약보(南海藥譜) : 후영극(侯寧極)이 찬한 것이다.
당본초(唐本草) : 당나라 이세적(李世勣) 등이 고종 현경(顯慶) 4년에 명을 받아 찬한 것으로, 20권이다.
개보본초(開寶本草) : 송나라 태조 개보(開寶) 연간에 마지(馬志) 등이 찬한 것으로, 21권이다.
제가본초(諸家本草) : 일화자(日華子)가 찬한 것이다.
본초도경(本草圖經) : 송나라 소송(蘇頌)이 찬한 것이다.
본초연의(本草衍義) : 송나라 구종석(寇宗奭)이 찬한 것으로, 20권이다. 정화(政和) 연간에 완성하였다.
1권에서 3권까지는 서례(序例)와 진찰하는 데 알아야 할 주의 사항 등을 기술하였고, 4권에서 20권까지는
《증류본초(證類本草)》를 대본으로 삼아 각가(各家)의 설과 자신의 경험을 참고하여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대관본초(大觀本草) : 송나라 조효충(曹孝忠) 등이 정화(政和) 6년에 찬한 것으로, 32권이다.
약성본초(藥性本草) : 당나라 견권(甄權)이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약재의 성질과 맛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일용본초(日用本草) : 원나라 오서(吳瑞)가 찬한 것으로, 8권이다.
본초몽전(本草蒙筌) : 명나라 진가유(陳嘉猷)가 찬집(纂輯)한 것으로, 12권이다. 권수(卷首)에 역대 명의도설(名醫
圖說)과 약물총론(藥物總論)을 수록하였고, 1권에서 12권까지는 742종의 약물을 나누어서 기술하였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명대(明代)의 본초(本草) 학자인 이시진(李時珍)이 30년간에 걸쳐 저술하여 1596년에 완성한
책으로, 총 52권이다. 약용(藥用)으로 쓰이는 대부분의 것을 자연 분류를 주로 하여 분류하였으며, 총 1871종의 약재
를 망라하고 있다.
남주이물기(南州異物記) : 서표(徐表)가 찬한 것이다.
유씨국보(劉氏菊譜) : 송나라 유몽(劉蒙)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명국(名菊) 35종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범씨국보(范氏菊譜) : 송나라 범성대(范成大)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범촌(范村)에 있는 국화 36종에 대해 기술하였다.
죽보(竹譜) : 청나라 진정(陳鼎)이 찬한 것이다.
화경(花鏡) : 진호자(陳昊子)가 찬한 것이다.
육가화사(六街花事)
해어(海語) : 명나라 황충(黃衷)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뱃사람들에게 그 나라의 산천과 풍속을 물어 기술한 것이다.
이어도찬(異魚圖贊) : 명나라 양신(楊愼)이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어도(魚圖) 3권에는 87종에 86조의 찬(贊)을 수록하
였고, 해착소(海錯疏) 1권에는 35종에 찬 30조를 수록하였다.
복기(卜記) : 왕굉(王宏)이 찬한 것이다.
보장론(寶藏論) : 승(僧) 통본(通本)이 찬한 것이다.
천지(泉志) : 송나라 홍준(洪遵)이 찬한 것으로, 15권이다. 역대의 전폐(錢幣)를 9품으로 나누어 그림으로 열거하여
수록하였다.
전보(錢譜) : 송나라 동유(董逌)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여홍여지(女紅餘志) : 용보(龍輔)가 찬한 것이다.
농정전서(農政全書) : 청나라 서광계(徐光啓)가 찬한 것으로, 60권이다. 농본(農本) 3권, 전제(田制) 2권, 농사(農事)
6권, 수리(水利) 9권, 농기(農器) 4권, 수예(樹藝) 6권, 잠상(蠶桑) 4권, 잠상광류(蠶桑廣類) 2권, 종식(種植) 4권,
목양(牧養) 1권, 황정(荒政) 18권, 수(首) 1권이다.
식품(食品) : 고렴(高濂)이 찬한 것이다.
주소사(酒小史) : 주백인(朱伯仁)이 찬한 것이다.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 : 장영(張英)이 찬한 것이다.
굉기주(觥記注) : 정해(鄭獬)가 찬한 것이다.
박물지(博物志) : 진(晉)나라 장화(張華)가 찬한 것으로, 10권인데, 실은 원본이 없어져 후인이 다시 찬집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이경(異境)과 기물(奇物)을 집록(集錄)하였다.
속박물지(續博物志) : 송나라 이석(李石)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박물지》를 보충한 것이다.
습유기(拾遺記) : 진(秦)나라의 방사(方士) 왕가(王嘉)가 찬한 것으로, 총 10권이다. 본래 19권 220편이었으나 부진
(符秦) 말기에 산일된 것을 양(梁)나라 소기(蕭綺)가 모아 10권으로 편집하였다. 9권까지는 복희(伏羲), 신농씨
(神農氏)에서 진(晉)나라 때까지의 유사(遺事)를 기록하였으며, 마지막 1권은 곤륜산(崑崙山), 구선산(九仙山)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내용이 황탄하여 사서(史書)와 맞지 않는 점이 많다.
술이기(述異記) : 양(梁)나라 임방(任昉)이 찬한 것으로, 2권이다. 여러 가지 소설(小說)을 모아 만든 것으로, 내용이
거칠고 잡되다.
견이기(甄異記) : 진(晉)나라 대조(戴祚)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견이전(甄異傳)》이라고도 한다.
이문(異聞)을 집록한 것이다.
유양잡조(酉陽雜俎) : 당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이 찬한 것으로, 본집 20권에 속집 10권이다. 충지(忠志), 예이(禮異),
천지(天咫) 등 30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는데, 괴이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운선잡기(雲仙雜記) : 당나라 풍지(馮贄)가 찬한 것으로, 총 10권이며, 고금의 일사(逸事)를 두루 수록하고 있다.
운곡잡기(雲谷雜記) : 송나라 장호(張淏)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여러 사람의 저술에 대해 고증하였다.
척이기(摭異記) : 이준(李濬)이 찬한 것이다.
운계우의(雲溪友議) : 당나라 범터(范攄)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중당(中唐) 시대 이후의 잡사(雜事)에 대해 기술
하였는데, 대부분이 시화(詩話)이다.
두양잡편(杜陽雜編) : 당나라의 소악(蘇鶚)이 찬한 전기집(傳奇集)으로 3권이다. 당나라 대종(代宗) 광덕(廣德) 원년
에서 의종(懿宗) 함통(咸通) 14년까지의 진기한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영표녹이(嶺表錄異) : 당나라 유순(劉恂)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당나라 남해(南海)의 기후와 풍속, 지리, 교통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수당가화(隋唐嘉話) : 당나라 유송(劉竦)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일사(逸事)를 기록하였다.
호궐록(壺闕錄) : 태행산인(太行山人)이 찬한 것이다.
철위산총담(鐵圍山叢談) : 송나라 채조(蔡絛)가 찬한 것으로, 6권이다. 건덕(建德) 연간에서 건염(建炎) 연간까지
200여 년간의 일사(逸事)를 기술하였다.
화만록(畫墁錄) : 송나라 장순민(張舜民)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송나라의 잡사(雜事)를 기술하였다.
손공담포(孫公談圃) : 송나라 손승(孫升)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부훤잡록(負暄雜錄)
성사미담(盛事美談)
삼류헌잡지(三柳軒雜識) : 정계(程棨)가 찬한 것이다.
묵객휘서(墨客揮犀) : 송나라 팽승(彭乘)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송나라의 유문(遺聞), 일사(逸事) 및 시화(詩話),
문평(文評)에 대해 기술하였다.
휘진록(揮塵錄) : 송나라 왕명청(王明淸)이 찬한 것으로, 전록(前錄) 4권, 후록(後錄) 11권, 삼록(三錄) 3권,
여화(餘話) 2권으로 되어 있다. 조정의 고사(故事)를 기술하였다.
귀이록(貴耳錄) : 송나라 장단의(張端義)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1권과 2권에는 조정의 일사(逸事)와 시화(詩話),
고증(考證)을 기술하였고, 3권에는 쇄문(瑣聞)을 기술한 것이 많으며, 신괴(神怪)에 대한 것도 기술하였다.
견문록(見聞錄) : 서악(徐岳)이 찬한 것이다.
면수연담(澠水燕談) : 송나라 왕벽지(王闢之)가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소흥(紹興) 이전의 잡사(雜事)를 15류(類) 360여 조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과보문견록(果報聞見錄) : 양식부(楊式傅)가 찬한 것이다.
담원(談苑) : 송나라 공평중(孔平仲)이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여러 가지 서책에서 뽑아 찬집하였으며, 잡사(雜事)에
대해 기술하였다.
현혁편(賢奕編) : 유원경(劉元卿)이 찬한 것이다.
가세구문(家世舊聞) : 육유(陸游)가 찬한 것이다.
석림연어(石林燕語) :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장고(掌故)에 관한 기술이 많고,
특히 관제(官制)와 과목(科目)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여 사전(史傳)에 빠진 부분을 많이 보충하였다.
피서녹화(避暑錄話) :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이 찬한 것으로, 2권이다.
유환기문(游宦記聞) : 송나라 장세남(張世南)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관직에 있는 동안에 보고 들은 잡사를 109조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문견전록(聞見前錄) : 송나라 소백온(邵伯溫)이 찬한 것으로, 20권이다.
앞의 16권은 태조(太祖) 이래의 고사(故事)를 기록하였고, 18권부터는 소옹(邵雍)의 언행을 기술하였다.
문견후록(聞見後錄) : 송나라 소박(邵博)이 찬한 것으로, 30권이다. 《문견전록》의 뒤를 이어서 지은 것이며,
경의(經義), 사론(史論), 시화(詩話) 등을 첨입하였다.
사륙담진(四六談塵) : 송나라 사급(謝伋)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사륙문을 쓰는 법을 기술하였다.
계신잡지(癸辛雜識) : 송말(宋末) 원초(元初)에 주밀(周密)이 찬한 것으로, 전집ㆍ후집 각 1권, 속집ㆍ별집 각 2권이다.
남송 말기에서 원나라 초기의 사회상을 아는 데 많은 참고가 된다.
청이록(淸異錄) : 송나라 도곡(陶穀)이 찬한 것으로, 2권이다. 당나라와 오대(五代)의 신기한 말을 모아 37문(門)으로
나누어서 수록하였다.
옹유한평(甕牖閑評) : 송나라 원문(袁文)이 찬한 것으로, 8권이다. 경사(經史),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사(人事) 등
으로 나누어 고증하였다.
연번로속집(演繁露續集) : 송나라 정대창(程大昌)이 찬한 것으로, 6권이다. 동중서(董仲舒)의 《춘추번로(春秋繁露)》
에 대해 의심이 나서 지은 《연번로(演繁露)》의 속집으로, 제도(制度), 문류(文類), 시장(詩章), 담조(談助) 4부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동천청록(洞天淸錄) : 송나라 조희곡(趙希鵠)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고기(古器), 고화(古畫)에 대해 변증한 것으로,
감식가(鑑識家)의 좋은 지침서가 된다.
청허잡저(淸虛雜著) : 송나라 왕공(王鞏)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청허거사수수잡록(淸虛居士隨手雜錄)》이라고도
한다.
연익이모록(燕翼貽謀錄) : 송나라 왕영(王栐)이 찬한 것으로, 5권이다. 건륭(建隆) 연간에서 가우(嘉祐) 연간까지의
흥혁(興革)과 득실(得失)을 126조로 나누어 상세히 기술하였다.
인기잡지(隣幾雜志) : 송나라 강휴복(江休復)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당시의 일사(逸事)에 대해 기술하였으며,
잡설도 수록하였다. 《강인기잡지(江隣幾雜志)》, 《가우잡지(嘉祐雜志)》라고도 한다.
의각료잡기(猗覺寮雜記) : 송나라 주익(朱翌)이 찬한 것으로,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에는 시화(詩話), 하권
에는 잡론이 서술되어 있다.
동파지림(東坡志林) : 송나라 소식(蘇軾)이 찬한 것으로, 5권이다. 잡설(雜說)에 관한 글을 수록하였다.
우간(寓簡) : 송나라 심작철(沈作喆)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제동야어(齊東野語) : 송나라 주밀(周密)이 찬한 것으로, 20권이다. 남송의 구사(舊事)에 대해 기록한 것이 많아 사전
(史傳)에 빠진 것을 보충할 수 있다.
이명기(異名記)
옥호청화(玉壺淸話) : 송나라 승(僧) 문형(文瑩)이 찬한 것으로, 총 10권이다. 잡사를 기록하였으며,
《옥호야사(玉壺野史)》라고도 한다.
묵장만록(墨莊漫錄) : 송나라 장방기(張邦基)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잡사(雜事)에 대해 고증한 것인데, 괴이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몽계필담(夢溪筆談) : 송나라 심괄(沈括)이 찬한 것으로, 26권이다. 고사(故事), 변증(辨證), 악률(樂律), 상수(象數),
인사(人事), 관정(官政), 권지(權智), 예문(藝文), 서화(書畫), 기예(技藝), 기용(器用), 신기(神奇), 이사(異事),
유오(謬誤), 기학(譏謔), 잡지(雜志), 약의(藥議) 등 17부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보필담(補筆談) : 송나라 심괄이 찬한 것으로, 2권이다. 《몽계필담》을 이어 찬한 것이다.
이원(異苑) : 육조 때 송나라 유경숙(劉敬叔)이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신기하고 괴이한 일에 대해 기술하였다.
갑을잉언(甲乙剩言) : 명나라 호응린(胡應麟)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철경록(輟耕錄) : 명나라 도종의(陶宗儀)가 찬한 것으로, 30권이다. 원나라의 법제와 지정(至正) 연간의 병란(兵亂)에
대해 기술하였다.
청파잡지(淸波雜志) : 송나라 주휘(周煇)가 찬한 것으로, 12권이며, 별지(別志) 3권이다. 송나라 사람들에 관한 잡사
(雜事)를 기록하였다.
산방수필(山房隨筆) : 원나라 장자정(蔣子正)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송나라 말기에서 원나라 초기까지의 사실을
기술하였다.
삼재조이(三才藻異) : 도수충(屠粹忠)이 찬한 것이다.
노사(路史) : 명나라 서위(徐渭)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구조야담(九朝野談)
오잡조(五雜組) : 명나라 사조제(謝肇淛)가 찬한 것으로, 16권이다. 천(天), 지(地), 인(人), 물(物), 사(事) 다섯 부문
으로 나누어 잡사를 기술하였다.
원시비서(原始祕書)
이사략(夷事畧)
태평청화(太平淸話) : 명나라 진계유(陳繼儒)가 찬한 것이다.
이고록(妮古錄) : 명나라 진계유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서화(書畫), 비첩(碑帖), 고완(古玩)에 대한 잡기(雜記)이며,
평론과 상감(賞鑑) 및 유문(遺聞), 일사(逸事)도 기술하였다.
언폭담여(偃曝談餘) : 명나라 진계유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복수전서(福壽全書)
소하록(銷夏錄) : 명나라 진계유(陳繼儒)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단연록(丹鉛錄) : 명나라 양신(楊愼)이 찬한 것으로, 여록(餘錄), 속록(續錄), 적록(摘錄), 총록(總錄) 4종에 총 69권이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시서(時序), 화목(花木) 등 26부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전거을기(田居乙記) : 명나라 방대진(方大鎭)이 찬한 것이다.
농전여화(農田餘話) : 장곡진일(長谷眞逸)이 찬한 것이다.
예원치언(藝苑巵言) :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이 찬한 것으로, 총 6권이다. 고금의 시를 논한 것으로, 서창곡(徐昌穀)의
《담예론(談藝論)》, 양신(楊愼)의 《시화(詩話)》, 엄우(嚴羽)의 《창랑시화(滄浪詩話)》를 보충한 것이다.
완위여편(宛委餘編) : 명나라 왕세정이 찬한 것으로, 19권이다.
담수(談藪) : 송나라 방원영(龐元英)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이담(耳譚) : 명나라 왕동궤(王同軌)가 찬한 것으로, 15권이다. 《상심수어(賞心粹語)》라고도 한다.
춘풍당수필(春風堂隨筆) : 명나라 육심(陸深)이 찬한 것으로, 《엄산외집(儼山外集)》 속에 들어 있다.
금대기문(金臺記聞) : 명나라 육심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엄산외집》 속에 들어 있다.
봉창일록(蓬窓日錄) : 명나라 진전지(陳全之)가 찬한 것으로, 8권이다.
봉창속록(蓬窓續錄) : 풍시가(馮時可)가 찬한 것이다.
고반여사(考槃餘事) : 명나라 도륭(屠隆)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격고론(格古論) : 명나라 조소(曹昭)가 찬한 것으로, 13권이다. 동기(銅器), 고화(古畫), 묵적(墨迹), 비첩(碑帖),
고연(古硯), 요기(窯器), 진기(珍奇), 금철(金鐵), 칠기(漆器), 기수(綺繡), 이목(異木), 이석(異石) 등 13문(門)으로
나누고 각 문마다 조목별로 나누어 고금 명기(名器)의 우열과 진가(眞假)를 서술하였다.
작몽록(昨夢錄) : 송나라 강예지(康譽之)가 찬한 것으로, 1권이다. 북송(北宋)의 일사(逸事)를 기술하였다.
전신록(傳信錄)
현람(玄覽) : 명나라 주모위(朱謀㙔)가 찬한 것으로, 8권이다.
현중기(玄中記)
수중금(袖中錦)
용당소품(湧幢小品) : 명나라 주국정(朱國禎)이 찬한 것으로, 32권이다.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였으며, 간간이 고증
하기도 하였다.
자가록(資暇錄) : 당나라 이광예(李匡乂)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옛글에 대해 고증하였다.
만보전서(萬寶全書) : 주문환(朱文煥)이 찬한 것이다.
장거유서(莊渠遺書) : 명나라 위교(魏校)가 찬한 것으로, 12권이다.
등단필구(登壇必究) : 명나라 왕명학(王鳴鶴)이 찬한 것으로, 40권이다. 천문(天文), 옥력(玉曆), 태을(太乙), 기문(奇門),
육임(六壬), 지리(地理)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서청고감(西淸古鑑) : 청나라 건륭(乾隆) 14년에 양시정(梁詩正) 등이 명을 받아 찬한 것으로, 40권이며, 부록으로 전록
(錢錄) 16권이 있다. 내부(內府)에 소장되어 있는 옛날의 정(鼎), 이(彝), 병(瓶), 감(鑑) 등에 대하여 모양새와 크기 등을
설명하였다.
강희기가격물론(康煕幾暇格物論)
인수옥서영(因樹屋書影) : 청나라 주량공(周亮工)이 찬한 것으로, 총 10권이다.
쌍괴잡초(雙槐雜抄) : 명나라 황유(黃楡)가 찬한 것이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 북송(北宋)의 수도(首都)인 변경(汴京)의 번화한 모습을 기록한 책으로, 1147년에 저술되
었으며, 총 10권이다. 송나라 맹원로(孟元老)의 저술이라 하는데, 작자의 본명과 전기(傳記)는 미상이다.
유계외전(留溪外傳) : 청나라 진정(陳鼎)이 찬한 것이다.
춘저기문(春渚紀聞) : 송나라 하원(何薳)이 찬한 것으로, 잡기(雜記) 5권, 동파사실(東坡事實), 시사사략(詩詞事畧),
잡서금사(雜書琴事), 기연(記硯), 기단약(記丹藥) 각 1권, 총 10권이다.
현식록(賢識錄) : 명나라 육익(陸釴)이 찬한 것이다.
규거지(睽車志) : 송나라 곽단(郭彖)이 찬한 것으로, 6권이다. 기이한 일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춘명몽여록(春明夢餘錄) : 청나라 손승택(孫承澤)이 찬한 것으로, 70권이다. 춘명(春明)은 금문(禁門)의 이름으로
경사(京師)를 뜻한다. 명나라의 전고(典故)를 기술하였는데, 전반부에서는 경사의 지지(地誌), 후반부에서는 직제
(職制)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지북우담(池北偶談) : 청나라 왕사정(王士禎)이 찬한 것으로, 36권이다. 빈객들의 담화를 기록한 것으로, 담고(談故),
논헌(論獻), 담예(談藝), 담이(談異) 4편으로 기술하였다.
향조필기(香祖筆記) : 청나라 왕사정이 찬한 것으로, 총 12권이다. 강희 42, 43년에 기록하였는데, 고금의 득실에 대해
변론하고, 명물(名物)의 원류를 밝혔으며, 시사(時事)에 대해 직서(直書)하였고, 괴이한 사실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균확우필(筠廓偶筆) : 채락(采犖)이 찬한 것이다.
호연잡기(湖壖雜記) : 청나라 육차운(陸次雲)이 찬한 것이다.
잠운루잡기(簪雲樓雜記) : 청나라 진상고(陳尙古)가 찬한 것이다.
온광루잡지(韞光樓雜志) : 호조봉(胡兆鳳)이 찬한 것이다.
간재잡설(艮齋雜說) : 청나라 우동(尤侗)이 찬한 것이다.
궁규소명록(宮閨小名錄) : 청나라 우동이 찬한 것이다.
운석재필기(韻石齋筆記) : 청나라 강소서(姜紹書)가 찬한 것으로, 2권이다. 주밀(周密)이 지은 《운연과안록(雲煙過
眼錄)》을 모방하여 자신이 본 서화(書畫)와 기완(器玩)에 대해 모양과 전수(傳受)한 시말(始末)을 기술하였다.
일지록(日知錄) :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경학자(經學者)인 고염무(顧炎武)가 자신이 일찍부터 독서하는 사이에
수시로 기록해 둔 짧은 논문(論文)을 모은 것으로, 총 32권이다. 1권에서 7권까지는 경서의 고증(考證), 8권에서 12권
까지는 정사(政事), 13권은 풍속(風俗), 14권에서 15권까지는 예제(禮制), 16권에서 17권까지는 과거(科擧), 18권에서
21권까지는 예문(藝文), 22권에서 24권까지는 명의(名義), 25권은 고사(古事)의 진위(眞僞), 26권은 사법(史法), 27권
은 주서(註書), 28권은 잡사(雜事), 29권은 병사(兵事)와 외국(外國) 관계, 30권은 천문(天文)과 술수(術數), 31권은
지리(地理), 32권은 잡고증(雜考證)으로 분류하여 편찬하였는데,
각 사항마다 그 증거를 고전(古典)에서 폭넓게 구하여 이동(異同)을 밝혔다.
추원잡패(秋園雜佩) : 청나라 진정혜(陳貞慧)가 찬한 것이다.
잠구차기(潛邱箚記) : 청나라 염약거(閻若璩)가 찬한 것으로, 6권이다. 경적(經籍)에 대해 고증한 수필(隨筆)과 차기
(箚記)로 이루어져 있다.
잠확유서(潛確類書) : 명나라 진인석(陳仁錫)이 찬집(纂輯)한 것으로, 120권이다. 천(天), 세시(歲時), 구우(區宇),
인륜(人倫), 방외(方外), 예습(藝習), 품수(稟受), 조우(遭遇)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연감유함(淵鑑類函) : 청나라 강희제(康煕帝)의 명으로 장영(張英) 등이 명나라 유안기(兪安期)가 찬한 《당유함(唐類
函)》에 의거하여 고금의 고사(故事)의 내력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유서(類書)이다. 총 450권인데, 전체를 44문(門)으
로 분류하고 그 밑에 천(天), 세시(歲時), 지(地), 제왕(帝王) 등 많은 항목을 설정하여 편찬하였다.
홍서(鴻書) : 유중규(劉仲逵)가 찬한 것이다.
유서찬요(類書纂要) : 주노(周魯)가 찬한 것이다.
미공비급(眉公祕笈) : 명나라 진계유(陳繼儒)가 찬한 것이다.
우초신지(虞初新志) : 장조(張潮)가 찬한 것이다.
속설부(續說郛) : 요안(姚安)이 찬한 것이다.
묵자(墨子) : 전국 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인 묵자학파(墨子學派)의 논문을 모은 것으로, 총 53편이다.
관자(管子) : 춘추 시대 제(齊)나라 관중(管仲)의 저작이라고 전해지나 전승(傳承)과 맞지 않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일정한 시기에 지은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총 24권이다.
포박자(抱朴子) :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찬한 것으로, 8권이다. 내편(內篇)과 외편(外篇)이 있는데, 내편은 신선술
(神仙術), 토납술(吐納術) 등을 기술하였고, 외편은 시정(時政)의 득실과 인물의 장부(藏否)에 대해 기술하였다.
한비자(韓非子) : 전국 시대 말기의 법가(法家)인 한비(韓非)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 55편을 모은 것으로, 총 20권이다.
회남자(淮南子) : 한 고조의 서자(庶子) 유장(劉長)의 아들인 유안(劉安)이 자신에게 식객(食客)으로 모인 여러 학파
학자들의 잡다한 주장을 총망라하여 편찬한 것으로, 원도(原道), 지형(地形), 병략(兵畧) 등 21편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 진(秦)나라의 정승인 여불위(呂不韋)가 많은 빈객(賓客)을 끌어 모아 찬한 것으로, 26권이며,
《여람(呂覽)》이라고도 한다. 8람(覽), 6론(論), 12기(紀)로 나뉘어 있으며, 20여 만 언(言)으로, 선진(先秦) 시대의
모든 지식을 총 결산하였다.
백호통(白虎通) : 한나라 반고(班固)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후한의 장제(章帝) 건초(建初) 4년에 여러 유생들이 북궁
(北宮)의 백호관(白虎觀)에 모여 오경(五經)의 동이(同異)에 대해서 강론하였는데, 이를 반고가 찬집(撰集)한 것이다.
《백호통의(白虎通義)》라고도 한다.
설원(說苑) : 한나라 유향(劉向)이 찬한 것으로, 20권이다. 전현(前賢)과 선철(先哲)들의 일화(逸話)를 기술하였는데,
군도(君道), 신술(臣術), 건본(建本), 입절(立節) 등 20편이다.
잠부론(潛夫論) : 후한(後漢)의 왕부(王符)가 찬한 것으로, 10권이다. 모두 35편이며, 당시의 폐정(弊政)에 대해 통렬
하게 논박하였다.
풍속통(風俗通) : 한나라 응소(應邵)가 찬한 것으로, 10권에 부록 1권이다. 《풍속통의》라고도 한다. 황패(皇覇),
정실(正失), 건례(愆禮), 과예(過譽), 십반(十反), 성음(聲音), 궁통(窮通), 사전(祀典), 괴신(怪神), 산택(山澤)으로
조목을 나누어 서술하였다.
화엄경(華嚴經)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줄인 말로,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것은 60권,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것은 80권, 당나라 반야가 번역한 것은 40권이다.
회현기(會玄記) : 석보서(釋普瑞)가 찬한 것이다.
현담(懸談) : 당나라 석징관(釋澄觀)이 지은 것으로, 9권이다. 《화엄현담(華嚴玄談)》, 《화엄경소초현담(華嚴經疏
鈔玄談)》, 《청량현담(淸凉玄談)》, 《대방광불화엄경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라고도 한다.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隋疏演義鈔)》 가운데서 화엄의 개설(槪說)에 관한 부분을 추려 내어 모은 책이다.
불조통기(佛祖統記) : 남송(南宋) 말기 천태종(天台宗)의 승 지반(志磐)이 찬술한 중국불교사(中國佛敎史)로, 본기 8,
세가 2, 열전 10, 잡전(雜傳) 2, 표(表) 2, 지(志) 30권, 총 54권이다.
석문정통(釋門正統) : 송나라 석종감(釋宗鑑)이 찬한 것으로, 8권이다. 천태종의 종통(宗統)을 기전체(紀傳體)에 의거
하여 본기(本紀), 세가(世家), 지(志), 열전(列傳) 등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신승전(神僧傳) : 명나라 주체(朱棣)가 찬한 것으로, 9권이다. 역대 불교 사전(史傳)에서 특별한 기행(奇行)이 있는
자를 뽑아 모았으며, 동한(東漢) 명제(明帝) 때부터 원나라 때 이르기까지 208명에 대해 기술하였다.
전등록(傳燈錄) : 석도원(釋道原)이 1004년에 지은 것으로, 비바시불(毘婆尸佛)에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거쳐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이르는 인도의 전등(傳燈) 법계(法系)부터, 보리달마 이후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사(法嗣)에
이르는 중국의 전등 법계를 밝히면서, 1701명에 달하는 선종(禪宗)의 계보를 상세히 서술하였는데, 총 30권이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라고도 한다.
속선전(續仙傳) : 남당(南唐)의 심빈(沈份)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상권에는 비승(飛昇) 16인을 수록하였고, 중권에는
은화(隱化) 12인을 수록하였으며, 하권에는 은화 8인를 수록하였다.
고시기(古詩紀) : 명나라 풍유눌(馮惟訥)이 찬한 것으로, 156권이다. 전집(前集) 10권에는 옛날의 일시(逸詩)를, 정집
(正集) 130권에는 한ㆍ위(漢魏) 이후 진ㆍ수(陳隋) 이전의 시를, 외집(外集) 4권에는 신선이나 귀신의 시를, 별집(別集)
12권에는 전인들의 시화(詩話)를 수록하였다.
문선(文選) : 양(梁)나라 소통(蕭統)이 찬한 것으로, 30권이다. 주(周)나라에서 양나라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간의
작가 수백 명의 시부(詩賦)와 문장(文章) 약 800편을 모은 것으로, 현존하는 시문집(詩文集)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유주목잠(幽州牧箴) : 한나라 양웅(揚雄)이 찬한 것이다.
도정절집(陶靖節集) : 육조(六朝)의 시인인 도잠(陶潛)의 시문집으로 총 10권이다.
이태백집(李太白集) :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문집으로, 30권에 부록 2권이다.
이태백시주(李太白詩注) : 원나라 양제현(楊齊賢)이 집주(集注)한 것으로, 25권이다.
두시전주(杜詩箋注) : 청나라 전겸익(錢謙益)이 찬한 것이다.
창려집(昌黎集) : 당나라 중기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시문집으로, 총 40권이다.
하동집(河東集) : 당나라 때의 문인인 유종원(柳宗元)의 문집으로, 총 4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계생집(玉溪生集) :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문집으로, 3권이다.
옥계집주(玉溪集注) : 청나라 주학령(朱鶴齡)이 찬한 것이다.
전당시(全唐詩) : 청나라 때 조인(曹寅) 등이 강희제(康煕帝)의 명을 받아 팽정구(彭定求) 등이 찬한 당시(唐詩)의
총집(總集)으로, 모두 900권에 목록이 12권이다. 당나라 일대 2200명의 시 4만 8000여 수가 망라되었다.
전당시주(全唐詩注)
당문수(唐文粹) : 송나라 요현(姚鉉)이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부(賦), 송(頌), 찬(贊), 표(表) 등 문체에 따라 16부문
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문원영화(文苑英華) : 송나라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에 이방(李昉) 등이 명을 받아 찬한 것으로, 1000권
이다. 소통(蕭統)의 《문선(文選)》의 뒤를 이어 지은 것으로, 체례(體例) 역시 《문선》과 비슷하다. 양(梁)나라 말기
에서 당나라까지의 글을 모아 수록하였다.
임천집(臨川集) :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이 찬한 시문집으로, 100권이다.
동파집(東坡集) : 송나라 소식(蘇軾)의 문집으로, 총 40권이다.
산곡집(山谷集) :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시문집으로, 내집 30권, 외집 14권, 별집 20권, 사(詞) 1권, 간척(簡尺) 2권,
연보(年譜) 3권, 총 70권이다. 송나라의 임연(任淵), 사용(史容), 사계온(史季溫)이 주석하였다.
성재집(省齋集) : 송나라 주필대(周必大)가 찬한 것이다.
홍경집(鴻慶集) : 송나라 손적(孫覿)의 시문집으로, 총 42권이다.
남풍집(南豐集) : 송나라 증공(曾鞏)이 찬한 것으로, 53권이다. 《남풍선생원풍유고(南豐先生元豐類藁)》라고도 한다.
여동래집(呂東萊集) :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 송대(宋代)의 학자인 주자(朱子)가 생전에 문인(門人)들과 문답한 바를 같은 송대의 학자인
여정덕(黎程德)이 편집한 것으로, 총 140권이다.
현산시화(玄散詩話)
송시초(宋詩抄) : 청나라 오지진(吳之振)이 찬한 것으로, 4집(集) 93권이다. 송나라의 시를 초록하고, 각 시인의 소전
(小傳)을 기술하였다.
송시기사(宋詩紀事) : 청나라 여악(厲鶚)이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송나라 시인 3812명의 시를 뽑아 기술하고 작자의
소전(小傳)을 수록하고, 명가(名家)의 시와 대비하여 품평하였다.
당송시본(唐宋詩本) : 청나라 대제원(戴第元)이 찬한 것이다.
중주집(中州集) : 금나라 원호문(元好問)이 편(編)한 것으로, 10권이며, 《중주악부(中州樂府)》 1권이 붙어 있다.
금나라의 시를 나누어서 10집으로 만들고, 작자의 이름 아래에 소전을 기술하였으며, 가끔 그와 관련된 일사(逸事)를
기술하기도 하였다.
유산집(遺山集) : 금나라 원호문이 찬한 것으로, 40권이다. 시 14권, 문 26권으로 되어 있다.
담연거사집(湛然居士集) : 원나라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찬한 것으로, 14권이다.
송설재집(松雪齋集) : 원(元)나라 조맹부(趙孟頫)가 찬한 것으로, 본집 10권, 외집 1권, 속집 1권이다.
안아당집(安雅堂集) : 원나라 진려(陳旅)가 찬한 것으로, 13권이다.
도원학고록(道園學古錄) : 원나라 우집(虞集)이 찬한 것으로, 50권이다. 재조고(在朝稿), 응제고(應制稿), 귀전고
(歸田稿), 방외고(方外稿) 4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원시선(元詩選) : 원나라 고사립(顧嗣立)이 편한 것으로, 권수(卷首) 1권, 초집(初集) 68권, 이집 26권, 삼집 16권,
총 111권이다. 권수에는 문제(文帝), 순제(順帝)의 시를 수록하고, 초집에서 삼집까지는 각각 100명의 시인을 수록
하였다. 체례는 청나라 오지진(吳之振)이 찬한 《송시초》를 모방하였다.
원문류(元文類) : 원나라 소천작(蘇天爵)이 찬한 것으로, 70권에 목록이 3권이다. 원통(元統) 2년에 완성하였으며,
원나라 초기에서 연우(延祐) 연간까지 작가의 글을 부(賦), 소(騷), 악장(樂章) 등 43부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중봉행록(中峯行錄) : 원나라의 승(僧) 명본(明本)이 찬한 것이다.
중봉광록(中峯廣錄) : 원나라의 승 명본이 찬한 것으로, 30권이다. 《중봉화상광록(中峯和尙廣錄)》이라고도 한다.
송학사전집(宋學士全集) : 명나라 송렴(宋濂)이 찬한 것으로, 36권이다.
화천집(華川集) : 명나라 왕위(王褘)의 문집으로, 전집과 후집을 합해 25권이다.
성재신록(誠齋新錄) : 명나라 주헌왕(周憲王)이 지은 것으로, 3권이다.
엄주속고(弇州續稿) :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이 찬한 것으로, 207권이다. 부(賦), 시(詩), 문(文) 3부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엄산별집(弇山別集) : 명나라 왕세정이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명나라의 전고(典故)에 대해 기술하였으며, 성사술
(盛事述) 5권, 이전술(異典述) 10권, 기사술(奇事述) 4권, 사승고오(史乘攷誤) 11권, 표(表) 34권, 고(考) 3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한산집(小寒山集) : 명나라 진함휘(陳函煇)가 찬한 것이다.
무몽원집(無夢園集) : 명나라 진인석(陳仁錫)이 찬한 것이다.
허문목집(許文穆集) : 명나라 허국(許國)이 찬한 것이다.
서애집(西厓集) : 명나라 이동양(李東陽)이 찬한 것이다.
진천집(震川集) : 명나라 귀유광(歸有光)이 찬한 문집으로, 30권에 별집이 10권이다.
조선부(朝鮮賦) : 명나라 동월(董越)이 찬한 것으로, 1권이다. 동월이 성종 19년에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나왔다가
돌아간 다음 명종 때 간행하였다. 조선의 풍토(風土)에 대해 부(賦)로 읊었으며, 본인이 주석하였다.
중주집(中州集) : 고극정(高克正)이 찬한 것이다.
북해집(北海集) : 명나라 풍기(馮琦)가 찬한 것이다.
승암집(升菴集) : 명나라 양신(楊愼)이 찬하고 장사패(張士佩)가 편한 것으로, 81권이다. 부(賦)와 잡문(雜文) 11권,
시 29권, 외집 41권인데, 외집은 잡기(雜記)이다.
창하집(蒼霞集) : 명나라 섭향고(葉向高)가 찬한 것이다.
초학집(初學集) : 청나라 전겸익(錢謙益)이 찬한 것으로, 110권이다. 시 20권, 문 80권, 태조실록변증(太祖實錄辨證)
5권, 독두소전(讀杜小箋) 3권, 이전(二箋) 2권으로 되어 있다. 명나라 말기에 찬한 것이다.
유학집(有學集) : 청나라 전겸익이 찬한 시문집으로, 50권이다. 청나라에 들어와서 찬한 것으로, 청나라에 저촉되는
내용이 많아서 금서(禁書) 되었다.
목재시집주(牧齋詩集注) : 청나라 전증왕(錢曾王)이 목재(牧齋) 전겸익(錢謙益)의 시에 대해 주석한 것이다.
육연재이필(六硏齋二筆) : 명나라 이일화(李日華)가 찬한 것으로, 4권이다. 서화(書畫)에 대해 논하였다.
용대집(容臺集) : 명나라 동기창(董其昌)이 찬한 것이다.
대필산방집(大泌山房集) : 명나라 이유정(李維楨)이 찬한 것이다.
황화집(皇華集) : 명나라의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조선측의 접대관(接待官)과 화답한 시집(詩集)이다. 영조 9년에
간행하였으며, 총 50권 25책이다.
명시선(明詩選) : 명나라 이반룡(李攀龍) 등이 찬한 것으로, 13권이다. 원래의 이름은 《황명시선(皇明詩選)》이다.
열조시집(列朝詩集) : 청나라 전겸익이 찬한 것으로, 81권이다. 명나라 열조(列朝)의 시를 수록하였다.
명시종(明詩綜) : 청나라 주이존(朱彝尊)이 찬한 것으로, 100권이다.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에서 숭정(崇禎) 연간
까지의 시를 모으고 그와 관련되는 시화(詩話)를 붙인 것이다.
명시별재(明詩別裁) : 청나라 심덕잠(沈德潛)과 주준(周準)이 함께 찬한 것으로, 12권이다. 314명의 시 1000여 수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시선(朝鮮詩選) : 남방위(藍芳威)가 찬한 것이다.
명문기상(明文奇賞) : 명나라 진인석(陳仁錫)이 찬한 것이다.
삼속고문기상(三續古文奇賞) : 명나라 진인석이 찬한 것으로, 53권이다. 각 문체별로 수록하였다.
황명문선(皇明文選) : 명나라 왕종원(汪宗元)이 찬한 것이다.
경세굉사(經世宏辭) : 명나라 왕석작(王錫爵)이 찬한 것이다.
강희어제집(康煕御製集)
담원집(澹園集) : 청나라 서건학(徐乾學)이 찬한 것이다.
복숙산방집(復宿山房集) : 명나라 왕가병(王家屛)이 찬한 것이다.
회암집(悔菴集) : 청나라 우동(尤侗)이 찬한 것이다.
서당여집(西堂餘集) : 청나라 우동이 찬한 것이다.
서당잡조(西堂雜組) : 청나라 우동의 시문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1집 8권, 2집 8권, 3집 8권, 시집(詩集) 32권으로
되어 있다.
간재권고(艮齋倦藁) : 청나라 우동이 찬한 것이다.
정림집(亭林集) :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경학자인 고염무(顧炎武)가 지은 것으로, 그의 경학(經學), 사학(史學),
정치(政治), 도덕(道德), 음운학(音韻學), 금석 문자(金石文字) 등에 대한 박학한 지식이 들어 있다.
내용은 변론(辯論) 1권, 서(序) 1권, 서(書) 2권, 기(記)와 묘지명(墓誌銘) 1권, 보유(補遺) 1권 등 총 6권이다.
서피유고(西陂類稿) : 청나라 송락(宋犖)이 찬한 문집으로, 39권이다.
원서집(苑西集) : 청나라 고사기(高士奇)가 찬한 것이다.
서하집(西河集) : 청나라 모기령(毛奇齡)이 저술한 문집으로, 총 478권이다. 경집(經集)과 문집(文集)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끝 부분에 시부(詩賦)가 수록되어 있다.
청문집(靑門集) : 청나라 소장형(邵長蘅)이 찬한 것이다.
어양집(漁洋集) : 청나라 시인인 어양(漁洋) 왕사정(王士禎)이 저술한 것이다.
잠미집(蠶尾集) : 청나라 왕사정이 찬한 것으로, 1권이며, 《어양산인전집(漁洋山人全集)》 속에 들어 있다.
어양시화(漁洋詩話) : 청나라 왕사정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어양산인전집》 속에 들어 있으며, 왕사정이 은거한
뒤에 지은 것으로, 근래의 시화집 가운데 으뜸이다.
용촌어록(榕村語錄) : 청나라 이광지(李光地)가 지은 것으로, 《용촌전서(榕村全書)》 속에 들어 있으며, 30권이다.
폭서정집(曝書亭集) : 청나라 주이존(朱彝尊)이 찬한 것으로, 80권이다. 순치(順治) 2년에서 강희(康煕) 48년까지
65년간의 시문(詩文)을 연도별로 편차(編次)하였다.
정지거시화(靜志居詩話) : 청나라 주이존이 시설(詩說)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24권이다.
위백자집(魏伯子集) : 청나라 위제서(魏際瑞)의 문집으로, 10권이다. 임시익(林時益)이 편한 《영도삼위문집(寧都
三魏文集)》 속에 들어 있다.
위숙자집(魏叔子集) : 청나라 위희(魏禧)가 찬한 것으로, 22권이며, 끝에 일록(日錄) 2권이 붙어 있다.
《영도삼위문집》 속에 들어 있다.
위흥사집(魏興士集) : 청나라 위세걸(魏世傑)의 문집으로, 6권이다. 《영도삼위문집》 속에 들어 있다.
위소사집(魏昭士集) : 청나라 위세효(魏世傚)의 문집으로, 10권이다. 《영도삼위문집》 속에 들어 있다.
위경사집(魏敬士集) : 청나라 위세엄(魏世儼)의 문집으로, 10권이다. 《영도삼위문집》 속에 들어 있다.
감구집(感舊集) : 청나라 왕사정(王士禎)이 찬한 것으로, 16권이다. 저자의 사우(師友) 333인의 시 2572수를 수록하
였다.
용성시화(榕城詩話) : 청나라 항세준(杭世駿)이 찬한 것으로, 3권이다. 옹정(雍正) 10년에 복건(福建)의 고관(考官)이
되었을 때 지었다. 대부분 청인들의 시에 대해 논하였고, 간간이 명인들에 대해 논하였다. 또 산천(山川)의 기담(奇談)
과 기구(耆舊)들의 유사(遺事)에 대해 기술하였다.
귀우집(歸愚集) : 청나라 심덕잠(沈德潛)이 찬한 것으로, 46권이다.
장촌초당고(蔣村草堂稿) : 장형(蔣炯)이 찬한 것이다.
추가집(秋笳集) : 청나라 오조건(吳兆騫)이 찬한 것이다.
이민홍광사비문(李旻洪光寺碑文)
능어동의보감서(凌魚東醫寶鑑序)
[주C-001]중국서(中國書) 목록(目錄) : 이 해동역사(海東繹史) 인용 서목(引用書目)은 원문의 인용 서목에 역
자가 해설을 덧붙인 것이므로 영인 원문에서는 이 부분을 생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