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두 갈래 길에서의 두 가지 질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학창시절 외웠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의 일부 내용이다. 평생을 살면서 무수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하나의 선택 뒤에는 다른 하나에 대한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하면 미련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곤 한다. 우리 역시 그런 두려움이 담긴 질문을 받았다. 두 갈래의 길에서 받은 두 가지의 질문이었다.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질문...
많은 부부들로부터 받은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40대 부부가 한마음이 되었습니까?”
그들도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질문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40대 부부는 한마음을 가지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닌, 질문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문제를 솔직하게 함께 해결해 나가자’라는 그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함께 의논하는 동안 세계 일주라는 다소 황당해 보이는 여행계획까지도 서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존의 문제를 내려놓고 그 문제가 제기된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 문제 앞에서 솔직해지자며 남편과 의논한 1년이라는 시간, 결혼하여 함께 살아 온 20년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애 시절의 사랑하는 감정과는 다른 성숙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이제야 부부가 하나라는 의미를 알 것 같소.”
남편이 말하는 그 말의 의미를 나도 알아차렸다. 그 순간 나 또한 그 의미를 생각하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마워요.”
360도 다른 기질을 가진 것을 불평만 했었는데, 바꾸어 생각하니 내가 부족한 점은 남편이 보충해 주고 있었다. 대답을 듣는 남편의 얼굴에서 미소를 보았다. 이런 것이 진정한 행복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부가 사랑을 회복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동안 고민하던 모든 문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가족회의를 하는데 둘째가 뭔가 중요한 걸 발견했다는 듯이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요즘 엄마, 아빠가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기다렸다는 듯 막내가 구체적으로 캐물었다.
“두 분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세요?”
대답도 하기 전에 대안학교에서 오랜만에 집에 온 첫째가 행복한 듯 말했다.
“엄마, 아빠의 웃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좋아요.”
우리가 달라진 모습을 가장 먼저 눈치 차린 것은 아이들이었다. 부부가 한 마음이 되자 시너지가 생겼다. 예전의 의견다툼은 사라지고 아이들도 눈치를 보기보다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가정의 많은 문제는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진 부부관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 때문에 다투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문제가 있던가? 문제만 바라 볼 때는 막막했지만, 그 문제의 근원을 알아차리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는 순간, 제대로 길을 들어섰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두 번째로 자주 들었던 질문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어떻게 10대 아이들이 부모님의 의견에 동의하던가요?”
아이들에게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홈 스쿨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 가정 역시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았다.
“아빠, 엄마, 집안일에 우리가 꼭 가야 하나요?”
“토요일이면 저도 친구와 약속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 학년이 되면서부터 부모에게 한 말이었다. 자신들의 스케줄을 말하며 부모가 미리 말하지 않은 일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 이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그냥 넘겨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던 가족회의도 사라졌다. 부모는 부모대로 바빴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로간의 대화는 사라지고 각자의 사고방식대로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년이니까 대화가 되지 않고 문화와 사고방식도 다르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개선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조급증은 잔소리로 드러났다.
“컴퓨터 그만 할 수 없니?”
“지금이 몇 시인데 게임을 하고 있는 거냐?”
“TV 좀 그만 볼 수 없니?”
“12시인데 이제야 집에 들어오다니?”
이런 종류의 잔소리가 당시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몇 마디 안 되는 말이었다. 대화 내용이 이렇다보니 서로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어버렸다. 그때의 절망감과 분노는 사춘기 아이를 키워 본 부모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문제를 고민하던 중, 더 늦기 전에 처음에 가졌던 교육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 스쿨을 염두에 두고서 본격적으로 가족회의를 시작했다. 가족회의를 할 때마다 아이들 입맛에 맞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했는데 이것은 뜻밖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전의 가족회의에서는 결국 싸움으로 끝날 때가 많았었는데,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니 훨씬 부드럽게 이어졌다. 평소에는 인스턴트식품을 거의 안 먹였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피자, 치킨 등을 준비했다.
부모의 일방적인 의견을 주지시키려 하기보다 생각할 시간을 주며 기다려 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의 의견이 우리 기준에 미흡해도 즉각 반박하거나 수정하려고 하지 않고 충분히 들어주었다. 대화를 방해하던 문제들을 고쳐나가면서, 반복해서 주기적으로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렇게 인내를 갖고 노력하기를 6개월, 드디어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부모님과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이 부모 못지않게 충분히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른은 자신이 아이 시절 경험했던 그 시기를 쉽게 잊어버린다. 많은 문제가 이 망각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다행히 우리의 노력은 아이들을 있는 모습대로 바라보게 해 주었고 서로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의 명퇴,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시작한 홈 스쿨 그리고 전 가족의 세계일주 계획이 어쩌면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배가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처럼 우리부부는 교직이라는 항구가 진정한 삶의 목적이 아님을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의 기준을 뿌리치고 아이들의 동의를 구해 먼 대양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태어난 진정한 이유를 찾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