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인생은 빼앗김?
‘만년설산 히말라야가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 네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남편은 순례자의 길을 가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가 컸다. 히말라야를 위해 네팔로 가면서 육로로 국경을 넘었는데,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살아서 그런지, 겨우 몇 발자국 옮기자 나라가 바뀐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새벽 4시, 인도-네팔 국경 락솔에 도착했지만, 새벽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도 도무지 국경도시라는 느낌이 없었다. 두 대의 사이클 릭샤를 타고 여행사에 도착하여 한참을 기다리니, 6시에 사장이 왔다. 그런데 엉뚱한 말을 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없어 졌다. 돈을 조금 더 주면 가장 좋은 여행자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이곳을 오기 전 네팔 가는 버스표까지 이미 예약했고, 이곳에서 표만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표가 없다니? 아무래도 사장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더듬거리는 영어로는 속 시원한 이유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편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데, 졸린 듯 눈을 감고 있던 막내가 그 사장을 향해 혼자서 욕설을 했다. 한국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이 녀석이 남편의 들끓는 마음에 기름을 부어 버렸다.
“야, 넌 다른 사람들이 문제해결하려고 애를 태울 때는 자고 있더니, 지금 상황이 급한데 그런 욕만 해 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애타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수그러들면 되려만, 다혈질인 막내는 더 큰소리를 내었다.
“저 사람들 알아듣지도 못하잖아요? 솔직히 저 사람들 나쁘잖아요. 아빠는 괜히 나한테 화풀이를 하고 그러세요?”
저 사람들 나쁜 것 누구는 모르는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막내에게 눈총을 주지만, 남편은 화를 못 이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늘 네팔 포카라로 들어가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7시 버스를 꼭 타야 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안되겠다 싶어 딸과 함께 사장에게 말했다.
“이 표를 예약했던 여행사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으니, 직접 전화를 해 보겠다. 그러니 전화를 달라.”
남편이 밖으로 나간 뒤로 긴장하는 빛이 보이던 사장이, 우리말을 듣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7시표라며 5장의 버스표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모두 멍하게 쳐다보았지만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둘째는 아빠를 부르러 나가고, 모두 배낭을 메고 나와 사이클 릭샤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는데, 신이 난 목소리로 딸이 말했다.
“엄마, 아까 그 사장 표정 보셨지요? 꼼짝 못하고 버스표 주던 모습이 정말 우스웠어요.”
딸의 이 말에 모두 쾌재를 부르며, 보무도 당당하게 인도 출국수속과 네팔 입국 수속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네팔 비자를 받고 보니 우리가 두 번째였다. 이곳 락솔은 외국인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니 그 사장도 한몫 보려 했던 것 같았다. 능구렁이 같은 사장을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강인한 배낭 여행객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바쁜 걸음을 옮겨 버스 정류장에 도착,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보니 정확히 7시! 이렇게 절묘하게 시간까지 우리를 도와주다니... 어쨌든 처음 우려와는 달리 전혀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네팔의 포카라 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모두 ‘해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보니 좀 이상했다. 분명 포카라로 가는 관광객을 위한 버스라고 했는데, 전부 현지인뿐이었다. 잘못 탄 것이 분명했다. 급히 안내양에게 버스표를 보이니 어찌된 일인지 이 버스가 맞단다. 그러면서 하는 한마디,
"이 버스는 네팔 시골을 모두 돌아가는 버스라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겁니다.”
아이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우리의 완승인 줄 알았는데, 비싼 표를 팔지 못한 사장에게 오히려 당한 것 같았다. 여행사에 지불한 버스비는 일인당 만 원인데, 이 버스비는 일인당 삼천 원이라는 얘기를 안내양에게 듣는 순간, ‘아~~!’하는 탄식 소리만 나왔다. 빼앗겨 버린 돈과 역전패를 당했다는 것에서 오는 분함이라고나 할까? 비열한 사장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굽이굽이 버스가 산길을 돌 때마다 푹푹 한숨을 내 쉬었다.
“괘씸한 아저씨 같으니라고... ”
“정말 나쁘다 나빠, 어떻게 그렇게 사기를 치냐?”
서로 돌아가며 울분을 토로할수록 마음은 점점 더 상해갔다. 버스 안의 순박한 네팔 사람들조차도 모두 사기꾼처럼 보여, 얼굴이 마주쳐도 웃지도 않고 멍하니 바깥만 쳐다보았다.
야밤에 포카라에 겨우 도착하여 이틀 뒤, 본격적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봉의 트레킹이 시작했다. 가이드는 23살의 ‘강가’라는 네팔 청년으로 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여 벌써 경력 7년째라고 했다. 6시간을 계속 걸어가도 푸른 산만 펼쳐지고, 기대했던 설산 봉우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1700고지인 ‘티키 둥가’에서 잠시 쉬면서 강가가 물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제 겨우 오후 세시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멈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남편이 말했다.
“차라리 더 많이 올라가서 내일 빨리 설산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모두 힘이 있는 듯 보여 좀 더 올라가기로 했다. 두 시간을 더 올라가 1980M고지 ‘울레리’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바라보니 거대한 설산의 봉우리가 저 멀리 보였다. 출발한지 9시간이 지나서야 첫 설산을 보게 되다니... 더 올라오기를 역시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비로운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며 잠을 청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밤이었다.
이튿날 아침, 출발을 서둘러 조금 올라가다 보니 남편이 너무 힘겨워 했다. 그렇다고 집 한 채 없는 이 산자락에서 멈출 수도 없는 일,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드디어 목적지인 2980M 고라푸니의 숙소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괜찮은데 남편은 숨 쉬기도 힘들다며 더욱 고통을 호소했다. 이유를 몰라 애를 태우는데 가이드가 물었다.
“첫날 너무 많이 올라와서 고산 증에 걸린 것 같아요. 되도록 빨리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어떡하죠?”
설산도 좋지만, 사람이 다 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첫날 강가가 쉬자고 했을 때 쉬었어야 했는데, 괜히 무리해서 올라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남편이 조금 회복 된, 이틀 뒤에야 전 가족이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다. 3150m 푼 힐 전망대에서 저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 위로 아침 햇살이 비취고 있었다. 온 설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도 남편은 다시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래도 빨리 내려가는 것만이 상책인 것 같았다. 다른 여행객들은 여전히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에 젖어 있는데 우리 가족만 급히 내려 왔다.
하산 길!
삼일을 올라왔는데 앞으로 이틀을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급하게 오를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남편 때문에 천천히 내려오면서 보니, 이제야 속살 깊은 히말라야가 눈에 들어 왔다. 저 멀리 보이는 가파르고 깊은 골짝에는 성냥갑처럼 조그마한 집들이 보였고,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소박한 네팔 인들의 삶도 느껴졌다. 모두 점점 청명한 히말라야 하늘의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히말라야와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남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산을 빨리 볼 요량으로 오르는 것에만 급급했던 산행 길을 되돌아보니, 여전히 마음엔 욕심덩어리만 가득한 것 같아.”
고산 증으로 고생했던 남편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천천히, 천천히 발을 내 딛어야 자신을 보여 주는 곳이 히말라야였다. 지나간 일상에 대한 집착도, 다가 올 미래에 대한 성급한 염려도 모두 버리게 되는 곳.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하늘 그리고 바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비로소 히말라야의 문이 열렸다.
“돈도 빼앗기고, 욕심도 빼앗기고, 히말라야는 온통 이것저것 빼앗아만 가네.”
그래 그렇구나! 이왕 빼앗기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욕심을 빼앗기고 집착을 빼앗기며 사는 것이 훨씬 큰 행복일 것이다.
한번 오면 꼭 다시 오기를 소망한다는 히말라야! 그곳을 다시 간다면 그때는 정말 천천히, 더 천천히 오르고 싶다. 땅의 순례자가 되고, 바람의 순례자가 되고, 영혼의 순례자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