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장이 되고 싶어요.
“자신이 이다음에 꼭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는 사람?”
질문을 하자마자 60명이 넘는 중학교 1학년 남자애들이 동시에 우르르 손을 들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장한 자세로 “저요!, 저요!”를 외쳤다. 발표를 시키다가 가장 앞자리의 한 아이를 시켰다. 그 아이를 지명하자, 아이들이 동시에 “우~~우”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전체 아이들을 나무란 뒤, 조용히 물었다.
“그래, 너의 꿈은 무엇이니?”
아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꿈은 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온 교실에 폭소가 터졌다. 우리 반의 꼴찌이면서 전교 꼴찌인 그 아이가 “사장이 되고 싶어요!”라고 했으니 교실이 발칵 뒤집힌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이유를 물었다.
“그렇구나. 정말 좋은 꿈을 가졌네. 그러면 사장이 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니?”
질문을 받은 아이는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지하 창고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시는데, 저는 이다음에 사장님이 되어서 우리 엄마, 아빠 일하시는 곳을 좋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1980년대 중반, 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한반의 학생 수는 60명을 넘었고 아이들의 발육 상태도 지금보다는 느렸다. 우리 반의 꼴찌이면서 전교 꼴찌인 이 아이는 키도 작고 항상 코를 찔찔 흘리고 다녀, ‘찔찔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과 후에 특수반을 결성하여 가르쳤는데, 이 아이 역시 특수반의 한 멤버였다. 신기하게 특수반에 모이면 녀석은 대장이 된 듯 활개를 치고 의젓해지면서 반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를 잊어갈 무렵, 하루는 한 청년이 양복을 입고 교무실로 나를 찾아 왔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의젓하게 변한 청년을 멍하니 쳐다보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첫 발령으로 오셨을 때 제자 찔찔이예요.”
“............”
입만 벌리고 말을 못하는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 밀었다.
‘00 제약회사 영업사원!’
사장을 외치던 그 아이가 제약회사 판매사원으로 양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담소를 나누는데 아무리 보아도 예전의 코흘리개 소년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의젓해 질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이름이 찍힌 명함을 나에게 주다니......’ 제자의 등장으로 코끝이 찡해졌다.
세월은 한참 흘러 학교의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한반에 아이들이 30여명 수준으로 줄었고, 교실에는 컴퓨터, 대형 TV가 들어오는 등 교육 환경은 선진국 형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더 이상 꿈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이 가장 원하는 꿈을 얘기 해 볼래?”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에이 선생님 우리가 꿈을 꾼다고 되나요?”
“우리 꿈이 어디 있어요. 우리 엄마 꿈이지요.”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발표를 시키면 열의도 없고 발표도 안하던 아이들이, 열심히 해 오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수행평가였다.
‘10년, 20년, 30년, 40년......이렇게 10년 단위로 자신의 꿈을 생각해 보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보세요.’
참으로 신기했다. 점수에 반영시킨다고 하면 귀신같이 멋진 작품들이 나왔다. 그 꿈은 한 결 같이 멋지고, 이상적이고, 남을 돕는 봉사정신도 뛰어난 우수한 내용들이었다.
아이들이 제출한 자료들을 들고 점수를 매기는데 가슴이 먹먹해 지면서 속이 상했다. 마치 아이들이 ‘선생님 제 것 점수 조금만 더 주세요. 1점만 더 주세요.’라고 외치는 듯 했다. 또 하나, 시험을 치르고 나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점수 1점에 눈에 불꽃 레이저가 나오기 시작한다. 한번은 시험을 치르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틀린 문제의 답이 이해가 안 된다며, 한 아이가 역사 선생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조목조목 이유를 들며 설명을 해 주셨다.
“이 문제는 5지 선다형이고, 문제에 ‘가장’이라는 단서가 있으니까 한 가지만 가능한 것이란다. 이해가 되었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아이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님, 둘 다 맞는 걸로 해 주세요. 이 문제 틀리면 전교 석차가 내려가요.”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아이에게 1점은 절대 포기할 수없는 것 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까지 1점을 얻고자 하는 아이의 절규가 과연 그 아이만의 절규일까?
예전에는 꼴찌도 꿈이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꿈을 꾸라고 하면 부담스러워했 다. 왜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하는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행복해 하고 잘 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도 아이들의 눈빛은 요동치 않았다. 그리고 점점 같은 색의 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제 꿈은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저는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대다수 아이들이 말하는 꿈의 가장 큰 이유는 ‘안정과 높은 보수’였다. 어린 나이치고는 참으로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린 알 수 있다. 그 꿈이 결코 아이들이 고민하고 원했거나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할 꿈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식만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 자식만은 고생을 안했으면 하는 부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겐 내일의 꿈보다 오늘의 1점이 더 목숨처럼 소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수없이 쏟아지는 청년 실업이 단순히 대학졸업자가 많고,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자신의 꿈은 한 번도 꾸어 볼 기회조차 없었기에, 부모가 원하고, 사회가 인정 해 줄 것 같은 허상을 꿈이라고 믿게 만든 우리 어른들의 욕심 때문 일지도 모른다.
이런 부분을 정확히 꼬집은 기사를 보았다. ‘트위터 대통령’이란 별명을 가진 이외수 작가와의 대담이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은 딱 한가지라고 했다. ‘취미도, 특기도, 소질도, 의욕도 없습니다. 저 뭐해야하죠?’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란다. ‘극도로 불안정하고, 의기소침해 있고, 갈피를 못 잡고 있으며 애들이 다 삭은 노인이 되어 버렸다.’라고 탄식을 했다.
꼴찌도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꼴찌도 꿈을 꾸어야 정상이다. 사장이 될 수는 없었지만, 부모님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해 주고 싶은 꿈이 그 아이에게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가능성이 많은 아이들이 점수 1점 때문에, 대학 이름 하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패배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이외수 작가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20대에 성공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20대에 성공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면 무엇이 필요할까? 힘들어도 도전하고, 도전하다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연마의 넓은 운동장이 아닐까? 그 연마의 넓은 운동장에서 지치지 않고 끝까지 뛸수 있는 힘은 바로 ‘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