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길 위에서 길을 묻다.
2-1 지금처럼 살면 행복할까?
“저희 3명은 모두 100% 반대입니다.”
세 명의 아이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강경한 어조로 항의를 했다.
“엄마, 아빠가 그동안 너희들에게 제대로 부모역할을 못 한 것 같구나. 너희들을 학교성적만으로 볶아대었으니 힘들었을 거야.”
이런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눈을 피하며 십대 특유의 볼멘소리로 퉁명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누구보다 첫째는 뭔가 새로운 덫에 걸려들기라도 하는 듯이 경계의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다른 집에 비하면 엄마, 아빠는 그래도 저희를 많이 힘들게 안하셨어요. 그러니 저희 그냥 학교 다니게 해 주세요.”
마지막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보려는 첫째의 항변에 잔소리를 보태려는 순간, 솔직한 성격인 막내의 한마디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솔직히 지금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게 힘든데, 24시간을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하다니요? 정말 싫습니다.”
우리 부부가 명퇴를 결심하고 아이들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아이들의 첫 반응이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갈등 속에서 4년의 세월이 흘렀고, 가정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엉뚱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부부는 교육 문제로 사사건건 다투었고, 아이들은 어릴 적의 밝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부모를 멀리한 지 오래 되었다. 3년을 다투다가 멀리 대안학교로 보낸 딸은 한 달에 한번 집에 와도 거의 남의 식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두 아들 역시 한번 걸리기만 걸려 보라는 식의 눈빛으로 부모를 바라볼 뿐 내 아이라는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이지만 서로 웃음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런 가정의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지금처럼 살면 1년 뒤에는 우리 가족이 행복할까? 5년 뒤에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0년 뒤에는 정말 행복할까?’
속으로 질문을 해 보았지만 답은 모두 ‘노(No!)였다. 그 순간 내 아이를 세상의 성공기준에만 맞추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어리석은 부모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의 사랑이라고 했지만 그 사랑 때문에 오히려 가정도 가족도 무너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고민을 해 보니, 제대로 된 가족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우리 아이들을 최고로 교육시키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이들보다 당신과 내가 다시 예전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
많은 분들이 “왜 하필이면 세계여행이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신다. 이유는 딱 한 가지!이미 사춘기의 나이에 접어든 세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부모는 마음이 바뀌었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에게 다가오기를 거부했다. 이미 부모에게 수없이 당했던 아이들은 도저히 우리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좋은 뜻으로 “아들아∼∼”라고 부르는데, 아들은 미리 방어막을 치고 “왜요?”라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아이들 마음을 살피며 보니, 반항이 아니라 부모랑 얘기하기를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역시 인내를 한다고 하지만 조금만 못마땅한 행동이 보이면 여전히 잔소리가 먼저 나와 버렸다. 서로 소통이 안 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뭔가 돌파구를 찾는 심정으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여행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24시간, 365일을 부대끼다 보면 다시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요?”
이런 바람을 가슴에 품고 6개월의 설득 기간을 거쳐서 드디어 동의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 반대만 하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엄마, 아빠의 회복되는 모습에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았다. 부부가 같은 목소리를 내자, 아이들이 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줄었다. 가족회의를 하면서 우리 부부도 무조건 우리 의견을 강요하기보다 기다려주고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주는 자세로 임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아이들이 한명, 두 명 동의를 해 주었다.
“세상에, 제 친구에게 우리 가족이 세계 일주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뻥친다며 놀리기만 했어요.”
둘째가 친구들이 안 믿어 주는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어서 막내가 결단 하듯이 말했다.
“사실 저도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는데, 엄청난 돈이 필요한 세계 일주를 할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어요.”
가장 반대하던 첫째는 역시 큰 아이인 만큼 고민도 남달랐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께서 많이 변하신 것 같고, 저희를 위해 새롭게 고민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그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어요.”
우리만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녀석들도 자기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었다.
드디어 여행을 출발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545일 동안이나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하면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습니까?”, “모아 놓은 돈이 많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솔직히 부부 교사이긴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450만 원짜리 단칸 전세방에서 둘만의 힘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세 아이를 키우며 집 한 칸 마련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행자금을 모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극단의 조치로 두 사람의 퇴직금을 받아서 여행경비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에야 ‘그때 참 힘들었다.’라는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몇 년을 가족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 살아왔기에, 이런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부모가 부모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서 힘들게 했던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줌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각자가 고민하도록 하도록 해 주고 싶었다. 우리 부부 역시 새로운 교육에 대한 마음을 품고 넓은 세상을 보고 난 후에,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고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우리의 결정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미쳤니?”였었다.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어쩌면 ‘미쳤다’라는 표현이 가장 옳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출발했다. 등 뒤에는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갔다. 캠핑장을 다니며...... 지도를 찾아 가며, 쉽지 않은 길을 나섰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지독히도 말 안 통하는 가족이 조금이라도 통하는 가족으로 변신하기 위한 ‘소통(疏通)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바람처럼 여행을 하면서 정말 대화가 잘 통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정말 ‘대화’를 많이 했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대놓고 화내는’ 그런 대화를.......
가이드가 모든 것을 안내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패키지여행과 달리, 배낭여행은 똑같은 시간에 피곤하고, 똑같은 시간에 배고픔을 느끼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대놓고 화 낼 일이 그만큼 많았다.
한국에서는 서로 감정이 상해도 다음날 각자 바쁘게 학교로 가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이건 배낭여행이니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 하고 서로 의논을 해야 했다. 누가 가족 세계 일주라서 멋지다고 했던가? 해 보면 알 것이다. 가족이라 더 힘들고 더 원망스러운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배수진의 매력이 이런 것이던가? 물러설 곳이 없으니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 회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며 맞붙어 보기로 했다.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묻기 위해...... 우리는 어떤 가족이며, 우리 각자의 인생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