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내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걸까요?
1-1 너무 사랑해서 불안한 엄마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
사랑하는 것이 너무 고통을 수반할 때 우리는 지나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시종일관 그에 대한 화제를 떠올릴 때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언제나 “그가......”로 시작될 때 너무 사랑하고 있다.
책을 읽다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에 밑줄을 그을 때 종종 우리는 지나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빈 로우드(Robin Norwood)의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 중의 한 부분이다.
이 문구에서 누가 떠오르는가? 초등학교 앞의 동네 카페에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대부분 아이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엄마의 당연한 관심일 뿐, 너무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너도나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엄마라는 이름이 자주 부담스럽게 여겨진다면 너무 사랑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든다면,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과하게 사용한 결과일 것이다.
심리적으로 과한 것과 부족한 것은 거의 동격으로 본다. 모자라면 결핍을 느껴 힘들어 하고, 과하면 침범으로 느껴져 피하려고 한다. 모든 것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사랑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하소연은 거의 동일하다.
“부담스럽다......”
어느 누구도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속내를 감추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의 경험이 떠오른다. 아이 성적에만 매달려 오로지 “공부! 공부!” 라고 외치며 재촉했다. 모임도 가지 않고 시험기간이면 아이를 감시했다. 말은 근사했었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많은 아픔을 준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의 불안 때문에 아이를 쥐 잡듯이 잡았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지나치게 사랑하여 고통을 낳았다는 것을.....
#사랑하는 만큼 불안한 엄마
엄마는 사랑하는 만큼 불안하다. 엄마가 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아이에 대해 불안을 갖게 된다. 삶에서 불안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일까? 불안도 우리 삶에서 선한 기능을 할 때가 많다. 상황이 있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불안은 준비하도록 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아이가 혼잡한 길에서 무조건 내달릴 때 부모는 불안하다. 불안하기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불안하다. 그래서 준비하고 노력한다. 이런 정상적인 불안은 나와 아이를 지키고 삶의 발전을 가져 온다.
문제가 되는 불안은 상황과 상관없이 과도하게 느끼는 불안을 말한다. ‘대학을 못가면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말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불안은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부모의 욕심에서 나온다. 부모는 자신이 불안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뭔가 확실한 것을 붙잡으려고 아이를 닦달한다. 매사 확인해야 안심한다. 엄마가 알고 있는 방법을 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자신의 방법대로 하기를 강요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엄마들은 ‘챙김’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여겨진다. 아이 준비물을 일일이 챙겨주고, 아이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숙제를 했는지 안했는지를 몰래 살펴보고 있다면 ‘나에게 불안이 크구나.’라고 인식해도 좋을 것이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고민할 때와 타인의 문제를 고민할 때의 뇌 활성화 부위가 다르다고 한다. 엄마가 자기 아이의 문제를 고민할 때는 어떤 뇌가 활성화 될까? 바로 자신의 문제를 고민할 때와 똑같은 부위의 뇌가 활성화 된다. 그만큼 엄마들에게 아이는 자신의 분신처럼 다가온다. 분신 같은 대상을 향한 사랑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고, 사랑이 깊어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 엄마가 불안한 진짜 이유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는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아이의 행복한 인생을 바란다면 엄마의 불안을 다스리는 것이 결정적인 요소이다. 한국은 특별히 엄마들의 불안이 큰 것 같다. 어떤 이유일까? 학부모 모임을 다녀 온 엄마의 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년에 한번 갈까 말까한 학부모 모임을 참석하여 어색하게 앉아 있는데, 아우라가 장난이 아닌 엄마가 등장하고 공기가 싸악 바뀌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저 엄마는 유달리 어깨에 힘이 들어 가 있는 것 같네요.”
“아~~ 모르시는구나. 저 집 아들이 전교1등이잖아요. 힘이 들어갈 만도 하지.”
학급별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시간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단다. 엄마들의 얼굴 표정, 태도에서 벌써 아이의 성적이나 생활 등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난 자식을 둔 엄마는 잘난 엄마가 되고, 못난 자식을 둔 엄마는 못난 엄마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자식의 성공여부는 엄마의 헌신과 사랑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아이의 성적이 낮고, 좋은 대학을 못가면 엄마의 책임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자식의 성공여부가 엄마 인생 성적표로 매겨지는 상황에서 불안은 정해진 수순 같다.
갈수록 엄마들의 불안도가 훨씬 높아지는 듯 보인다. 부모교육과 상담을 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먼저, 인터넷의 발달로 과다한 육아정보를 무분별하게 접하게 되었다. 수많은 정보들을 통해 바람직한 부모역할에 대한 가치 수준은 높아졌지만 실제 내 아이에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라는 뿌듯함보다는 ‘나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라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부모교육을 받고, 관련 책을 읽어 보지만 방법들이 거의 서양식이다. 단순히 기법만 배운다고 공식대로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머리로는 되는데 행동이 안 되는 데서 오는 좌절감도 크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만 제대로 못하는 것 같은 불안이 밀려 올 수밖에 없다.
또한, 핵가족에서는 자녀교육이 전적으로 엄마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는 엄마가 집안일에 바빠서 정서적으로 제대로 못 돌봐도 할머니가 계시고 고모, 삼촌도 있어서 대체 역할을 해 주었다. 아이가 공급받는 곳이 많았다. 요즘은 아파트 문을 닫고 들어서면 그곳에서 전두지휘 할 사람은 오로지 엄마뿐인 경우가 많다. 양육과 교육 그리고 정서적으로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압박감을 갖게 되니, 엄마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은 누구나 몇 배의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다. 자식 인생은 분명 엄마에게 달려 있지 않다. 명백한 사실임에도 우리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불안! 인정하고 다스리기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불안을 느끼면 무의식에서 억압한다. 억압은 마음을 ‘생매장’하는 것과 같다. 밖으로는 불안하지 않은 체하지만 해결되지 못한 불안은 깊은 곳에서 자신을 괴롭힌다. 극도로 무기력한 아이를 상담하던 중, 게임에만 매달리는 이유를 물었다.
“게임을 할 때만은 다른 생각이 안 들어요.”
후하고 한숨을 쉬던 아이가 잠시 후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공부 때문에 불안하고 싶지 않아요.”
‘생매장’ 당한 아이는 숨을 쉬기도 힘들기 때문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불안은 본인이 안 느끼려 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직면할 때보다 더 큰에너지가 소요된다. 오히려 스스로 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들은 상담을 하면 더 빨리 회복된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불안이기에 원인을 탐색하고 다스려 나가면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엄마의 불안도 마찬가지이다. 엄마가 불안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모로 살아가는 동안은 불안이 친구처럼 함께 가자고 할지 모른다. 상황으로 인한 불안인지, 과도한 불안인지를 잘 파악하면 된다. 우리는 불안했기 때문에 알뜰살뜰 챙겨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불안에 휩싸이면 주변을 괴롭히게 된다. 자신이 불안하니까 안 해도 될 말을 아이에게 내 뱉고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런 엄마를 둔 아이는 게임이나 무기력 등의 도피하는 형태로 엄마보다 더 큰 불안을 감추려 한다.
엄마가 불안을 인정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 강도를 조절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면 불안이 나쁘지만은 않다. 엄마가 이렇게 해결 해 나가면 아이도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본받게 된다. 정신과의사인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는 사랑의 첫 번째 조건은 성장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자신과 타인의 마음성장을 위하여 자기를 확장시키려는 의지가 사랑이라고 했다. 아이를 위해 간섭하고 고민하는 대신에 자신의 불안을 먼저 보고 엄마 마음을 먼저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불안을 완벽히 없애려고 에너지를 쓰기보다 실체를 인정하고 지혜롭게 다스려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의 성숙한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