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속마음
#사랑의 동반자, 이상화와 평가절하
사랑하면 상대방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화는 자기나 대상이 완벽하다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연애를 할 때 대부분 상대방을 이상화한다. 상대방을 백마 탄 왕자나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로 여기는 것이다. 자연히 결혼에 대한 이상도 갖게 된다. 결혼에 대한 이상화의 욕구를 보면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이 사람과 함께 살면 이득 볼 일이 많을 거야.’
달리 해석하면 자기가 힘들어 하는 문제를 상대방이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을 품는 것이다. 이런 환상은 결혼 후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니 이상화 후에 따라오는 것이 바로 평가절하이다. ‘너도 별수 없구나.’라는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낙천적이지만 꼼꼼하지 않다. 연애할 때 물건을 흘리고 다니면 남편이 주워주곤 했다. 당연히 환상을 가졌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정말 좋겠다. 챙기는 거 신경 안 써도 되고....”
얼마나 허망한 환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기대했던 ‘챙김’ 대신에 ‘잔소리’와 ‘비난’을 선물로 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변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자신의 본 모습이었다. 남편은 호호 깔깔 웃던 나의 모습을 이상화 했었나 보다. 결혼 후, 헐크처럼 달려드는 나에게 “어떻게 당신이.....”라는 말로 이상화의 막을 내렸다.
이와 유사한 상황을 겪으면서 부부는 사랑과 이해 대신 서로에 대해 평가절하를 한다. 평가절하가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평가절하가 있어야 서로 타협할 수 있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평가절하 해 버리면 서로에 대해 공격을 서슴지 않게 된다. 과도한 이상화와 평가절하는 그래서 위험하다.
#부모는 아이의 이상화 대상
아이는 자라면서 대부분 양육자를 이상화한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모든 것을 해 주는 절대적 존재로 다가 온다.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되면서 부모를 이상화한다. 자기 심리학자인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이상화 대상을 갖는 것은 자랄 때 꼭 필요하다고 했다. 남자 아이가 아빠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으면서 아빠 흉내를 내거나, 딸이 엄마 화장대 앞에서 엄마 흉내를 내는 것도 이상화의 표현이다. 이럴 때 아이들은 “우리 엄마 최고! 우리 아빠 최고!”라는 절대적 의존과 자신도 그런 최고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이상화 대상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꿈을 갖기도 한다.
그러다가 부모도 완벽하지 않음을 알고는 실망한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부모에 대한 좌절을 경험하지만 극단적으로 무가치하게 버리지는 않는다. 이런 적절한 좌절은 오히려 한계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 즉, 이상화와 최적의 좌절은 아이가 내적인 힘을 키우며 자아발달을 이루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이상화와 좌절은 분리를 위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상화 대상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 중에 목표도 없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근원적으로는 이상화 대상을 갖지 못한 이유도 있다. 어릴 적 부모가 지나치게 잦은 부부싸움을 한다면 아이가 이상화 대상을 갖기 힘들 수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과 5학년 담임선생님을 이상화했던 것 같다. 교사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행복한 교직생활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즉, 이상화 대상은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하는 이상과 포부를 갖게 하는 역할도 한다.
#내 꿈의 대리자, 아이
무엇이든지 순리대로 과정을 밟아 가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하면 문제가 된다. 과도한 이상화는 극도의 평가절하로 고통스러워하고 실망하게 된다. 배우자가 이상화 대상이었다가 평가절하 되면 아이를 이상화 대상으로 잡는 경우가 있다. 남편에 대한 평가절하가 심한 만큼 자녀를 이상화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에게 모든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자신의 바람대로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럴 때 속마음은 ‘내가 원하는 나의 꿈을 네가 이루어 주어야 해!!’라고 함이 정직할 것이다. 이런 심리적 기저에는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남편보다 훨씬 만만한 아이에게는 함부로 야단치고 질책하면서 사랑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아이는 알아차린다. 엄마가 자기에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적 존재인 엄마가 실망했으니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남편 대신 아이를 이상화 대상으로 삼으면서 나의 욕구를 채우도록 강요했다. 그러니 아이의 성적이 욕심만큼 채워지지 않으면 난리법석을 떨며 아이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많은 기대와 욕심을 아이에게 보냈다. 아마 성적을 잘 받아왔으면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아이를 더 괴롭혔을지 모른다. 아이의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내 꿈의 대리자로 삼은 나 자신의 문제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유독 한국은 남편에게 실망한 아내들이 많은 걸까? 엄마들의 자녀에 대한 이상화는 하늘을 뚫고 우주로 날아갈 힘도 있어 보인다. 주변을 보면 자신의 아이에게 만족하는 부모를 찾기가 힘들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한탄하는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엄마의 지나친 이상화와 평가절하 때문이다.
#그래도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것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가 더 높은 가능성을 발휘하길 바란다. 자녀에게 심은 이상화를 거두어들이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또래보다 말문 트는 것이 조금만 빨라도 천재일지 모른다는 착각이 앞선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이상화가 꺾여야 하는 시점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성적이 낮을 수도 있고 몸이 약할 수도 있다. 완벽히 나의 이상화를 만족시켜 줄 대상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이 역시 유치원만 가 보아도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아이는 자신이 결코 엄마의 이상화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이런 아이에게 부모까지 극도의 실망을 나타내면 아이의 존재감은 곤두박질친다. 다그치면 더 잘할 줄 알고 부모들은 잔소리를 한다. 사랑하는 만큼 기대를 내려놓기가 힘들다. 부모의 사랑이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이상화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바로 부모역할의 진가를 발휘할 시점이다. 예쁜 행동을 하는 아이는 부모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예뻐할 수 있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누구나 칭찬한다. 내 아이를 나의 이상화에 맞지 않다고 부모마저 매정하게 평가절하 해 버리면 어느 누가 소중하게 여겨줄까? 부모에게 자식은 조건 없이 내 아이라서 소중한 존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머리로 아는 그 원리를 실천하는 방법은 더 깊게, 더 넓게 품어주려는 마음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이가 아니다. 아이 인생의 목표도 엄마가 아니다. 힘들지만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런 후에 아이를 향해서는 더 깊게 호흡하며 토닥토닥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