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신선초와 무항생제 오리 생산을 통해 연간 3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하강호씨(61·전북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 요즘이야 성공한 농업인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그도 한때는 천직으로 알던 농업을 포기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하씨가 군 복무를 마치고 처음 농사를 시작한 것은 1977년. 하씨는 당시 쌀농사만 짓던 지역에서 처음으로 딸기를 소득작목으로 도입했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전북지역에서 최초로 비닐하우스를 지어 딸기를 생산하는 등 지역농업 발전을 선도했다.
딸기농사를 시작하자마자 큰돈을 벌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보증을 서 동료농가 20명이 총 6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시설딸기농사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해 봄 집중호우가 내린 탓에 농사를 완전히 망쳤고, 동료농가들의 부채는 모두 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 명의의 땅을 모두 팔아 부채 상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이후로도 하씨는 토마토와 멜론 등 다른 농가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농산물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씨는 “항상 부채에 허덕이다 보니 농사에 전념할 수 없었고 실패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며 “부채가 자그마치 10억원에 달했던 2004년에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그의 둘째 아들 희민씨(36)였다. 2004년 당시 27살이었던 희민씨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희민씨는 아버지와 함께 매달 일정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작목을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신선초를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씨는 자신이 생산하는 신선초를 알리기 위해 풀무원을 비롯한 녹즙 유통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고, 2005년 6월부터 풀무원에 계약재배를 통해 신선초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오리 사육을 병행, 오리 축분을 퇴비로 활용해 경영비를 낮추는 등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면서 농산물의 가치를 높였다.
이들은 철저히 ‘경영 마인드’로 무장하고, 신선초와 오리 생산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매달 빚을 갚아나갔다. 죽을 때까지 갚지 못할 것만 같았던 부채는 현재 3억원 이내로 줄었고 이 빚도 조만간 모두 상환할 예정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2004년 6600㎡(2000평)에 불과했던 하우스 규모는 현재 3만4000㎡(1만여평)로 늘었고, 오리 6만마리를 사육할 수 있는 부지도 마련했다.
하씨는 2년 전 도시에서 생활하던 셋째 아들도 농촌으로 불러들였다. 영농 규모가 늘어나 일이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농촌에서도 도시민 못지않게 잘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실패의 쓴맛을 보았던 딸기와 멜론을 유기농법으로 다시 생산해 남원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자리매김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며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남은 인생도 농업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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