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인 차원으로 가는 열쇠는 현재에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
생명이 위태로운 긴급 상황을 당하면, 상대적인 시간 개념을 떠나는 의식의 대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가진 인격이 극적으로 후퇴하고, 아주 평온하면서 동시에 매우 기민하고 강렬한 현존 의식이 대신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식 상태에서는 그때 그때 필요한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등산이나 자동차 경주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런 활동이 그들을 '지금'속에서 밀어넣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는 시간으로부터, 인생사의 갖가지 문제로부터, 생각으로부터, 개성의 짐으로부터 벗어나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살아 있게 됩니다.
현재의 순간에는 1초만 비켜나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런 상태에 있기 위해 특별한 활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이거 북벽 (스위스 남부와 서알프스를 잇는 베르너 알펜 연봉의 하나)을 기어올라야만 현존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바로 그 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고대의 영적 스승들은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이야말로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기라." "쟁기를 잡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들에 피는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생각해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느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는 하물며 너희는 어떠하겠느냐."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지닌 깊이와 근본 원리가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실천하면 심원한 내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선(禪)의 핵심은 칼날 위를 걷듯 예리하게 깨어 있는 것으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완벽하게 깨어 있음으로써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고통이나 번민도, 진정한 당신이 아닌 것은 그 무엇도 당신 안에 살아남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속에서, 시간이 없는 차원에서 당신이 지닌 모든 문제는 용해되어 버립니다. 고통이나 번민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고통은 '지금' 속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한 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며 천천히 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이런 물음에 제자들이 마음의 차원에서 무언가 대답을 한다면 스승의 가르침과 크게 어긋나게 됩니다. 스승의 행동은 시간 없음의 차원으로 이끌기 위한, '지금 여기'에 깊이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전통인 수피즘도 '지금 여기'에 현존할 것을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피 교도는 현재의 아들' 이라는 격언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스피즘의 위대한 시인이자 스승인 루미는 선언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로 하여금 신을 보지 못하도록 장막을 친다. 과거와 미래일랑 모두 불살라 버려라."
13세기의 영적 스승인 에크하르트는 그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갈무리했습니다.
"시간은 빛이 우리에게 당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신에게 이르는 데 있어서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의 힘
방금 전 현재만이 영원하며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 나무 였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습니다. 뚜렷이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색채가 더 밝고 선명해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무의 본질이랄까, 내면의 영혼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무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단조롭고 생기 없는 나무의 모습 자체만 보았을 뿐, 정말로 나무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무를 보고 있지만, 아까의 그런 기분을 온전히 되살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경험은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경험 또한 덧없이 스쳐 지나갈 뿐인가요?
당신은 잠시 동안 시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지금' 속으로 들어가서, 마음의 스크린을 거치지 않은 채 나무를 인식한 것입니다. 생생한 깨어 있는 상태에서 나무를 바다들인 것입니다. 시간이 없는 차원으로 들어가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깨우침이 일어납니다. 그런 깨우침 속에서는 살아 숨쉬는 만물의 영혼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생명의 신비속으로 들어가, 삼라만상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마음의 헤아림으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그 나무를 알 수 없습니다. 나무에 관한 사실이나 정보를 알 수 있을 뿐이죠. 내 마음은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당신을 알 뿐입니다. 깨어 있는 존재만이 직접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속의 앎을 위한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나날의 삶을 영위하는 실용적인 영역이 그것입니다. 마음이 만약 삶의 전 영역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자연과의 관계까지를 다 지배한다면, 마음은 괴물이나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죽이고, 마침내 자신의 숙주까지 죽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시간없음'의 상태가 어떻게 당신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잠시나마 경험한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심오한 것이라도 한 번의 경험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의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 속에 머물러 사는 것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오랜 습관을 깨뜨려야 합니다. 과거와 미래 속으로 잠겨 들어갈 때마다 그 마음을 거두러들이는 연습을 하십시오. 가능하면 자주 시간의 차원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지금'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지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마음의 습성을 관찰하는 것 부터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늘 현재와 비교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이거나 나쁜 미래인 것입니다. 더 좋은 미래를 상상할 때는 희망이나 즐거운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고, 더 나쁜 미래를 상상할 때는 근심과 걱정에 잠기게 됩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신기루 같은 것일 뿐입니다. 자기 관찰을 함으로써 우리는 저절로 삶 속에 현존하게 됩니다.
마음을 관찰하고 있을 때는 더 이상 그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마음에 속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다른 요인이 들어와서 자기를 지켜보게 됩니다.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십시오.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당신 자신의 반응을 지켜보십시오. 마음의 감시자가 되십시오. 당신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나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의 반응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얼마나 자주 과거나 미래에 사로 잡히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관찰하는 것을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마십시오. 생각을 지켜보고, 감정을 느끼고, 반응을 관찰하십시오. 그건 것들을 개인적인 문제로 삼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관찰하고 있는 대상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강력한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뒤안에서 고요하게 머물며 지켜보는 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이미지가 구겨질 위기에 처할 때나 일이 꼬여서 잘못 돌아갈 때, 지난 일에 대한 회환에 사로잡힐 때와 같이 격한 감정을 유발하는 상황에 빠질 때일수록 강렬한 현존이 필요합니다.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당신은 쉽게 무지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반응이나 감정이 당신을 점령하면 당신은 그것들 자체가 되어 버리고, 그것들을 행동으로 표출하게 될것입니다. 스스로 정당화하고, 일을 그르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그것은 당신 자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반응일 뿐입니다. 마음의 습관적인 생존 방식일 뿐입니다.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 마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을 관찰하는 자가 되면 마음은 힘이 약화됩니다. 마음과 동화되면 더 많은 시간을 만들어 내지만, 마음을 관찰하면, '시간 없음'의 차원이 열리게 됩니다. 마음에서부터 물러난 에너지는 현존으로 변화됩니다.
현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되면, 시간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지금' 속으로 들어가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집중할 때 과거와 미래의 사간을 사용하는 능력이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사용하는 능력 또한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향상된다. 마음을 사용할 때, 더 날카롭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크하르트 톨레 |
첫댓글 참으로 훌륭한 지침입니다.감사합니다.
시간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지금속으로 들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