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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신앙교회
사도의신앙교회의 표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다서 3절)
사도의신앙교회의 뿌리와 역사
-오순절 성령운동의 역사-
오순절 성령운동은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예언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범죄한 유다를 향해 메뚜기 재앙과 가뭄재앙이 임할 것을 경고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메뚜기 재앙은 앗수르 군대의 침입을 비유한 것이었다. 만일 백성들이 회개할 경우 하나님은 세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첫째 메뚜기재앙으로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회복시킴으로써 육적, 영적 생활이 윤택해지도록 하신다고 하셨고, 둘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이방 민족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신다고 하셨으며, 셋째로는 북편 군대를 떠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에 대해 요엘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3-29)라고 하였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이른 비의 역사와 늦은 비의 역사로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른 비는 가을비로 10월, 11월에 걸쳐 내리는데, 땅을 부드럽게 하여 경작하기 좋고 싹을 돋우기에 좋게 한다. 늦은 비는 봄비로 3, 4월에 내리는데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므로 알곡을 알차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하게 내리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농부들에게는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이 내리지 아니하면 아무런 영적 열매를 거둘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또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약속대로, 두 번의 성령 강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운동이었다.
1. 이른 비 성령의 역사
이른 비에 대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구약시대의 절기인 오순절날에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던 120명의 문도들 위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성취가 되었다. 이른 비에 대한 예언의 성취 장면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 인과 메대 인과 엘람 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 인과 아라비아 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1-18)
이와 같이 예루살렘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가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루에 삼천 명이 구원을 받고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하며 많은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오순절날 일어난 이 큰 성령강림은 초대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었고, 또 성령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가져왔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가 임한 목적은 비단 초대교회의 설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또 그때에 내린 것으로만 끝나 버린 것도 아니었다. 성경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도 성결하게 된 신자들 위에 성령이 임하신 몇 경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행10:44-46, 19:6). 그 이후의 여러 세기 동안에도 여러 경우에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들에게 성령의 선물은 임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9).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것으로서,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약속이다.
사도들의 영혼 속에 불타던 그 성령의 불은 그들로 사방 각처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한 추진력이었다. 이런 그들의 영향력은 참으로 심대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세인의 비평 중엔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에도 이르렀도다”(행17:6)라는 평도 있었다. 초대교회가 선 지 한 백 년 동안에 성령의 각종 은사들이 두드러지게 내렸으며, 이적과 기사가 사람들 가운데서 나타났다. 사도시대에 복음이 그같이 전파될 때에 많은 핍박도 함께 따랐다. 이로 인해 팔레스틴 본토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세계의 사방 각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로써 복음은 보다 급속히 펴졌고 새로운 교회들이 세계 각처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오순절 성령 운동이었다.
2. 영적 쇠퇴와 암흑시대
초대교회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오직 그분만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일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분이심을 사도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교회는 거듭나야만 될 필요성을 소홀히 여겼다. 형식주의와 의식주의 및 인간의 선행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대신해 버렸다. 거룩해지고 하나가 되는 길을 찾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를 이루기 위한 연합을 추구하였으며 이로써 몰려오는 핍박을 보다 성공적으로 와해시켜 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모두는 영적 저하를 가져왔고, 다시 이로 인해 결국엔 교회 내에 부패를 초래하게 되었다.
사도시대 이후에 교회들은 저마다 독립하여 ‘장로회’라고 하는 통치부를 두었으며 장로회의 한 장로에게 우선권을 주어 그를 감독으로 삼았다. 후엔 한 도시에 한 감독이 많은 수의 교회를 감독하였으며, 이 감독의 관할권은 점차 확대되어 인근 지역들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몇 사가(史家)들에 의하면, 주후 500년경에는 서방교회의 감독들에게 주어졌던 교황이라는 칭호가 로마교회의 감독에게만 배타적으로 붙여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 의미도 [전 세계의 아버지]를 뜻하게 되었다. 이는 교황이 전 교계에 대한 우선권과 권한을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전혀 없다. 도리어 그는 그의 후계자들이 하나님의 양무리에 대하여 주장하는 자가 되어 더러운 이를 취하게 될까 보아 두려워했으며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려고만 하였다.(벧전5:2-3). 그런데 그러한 사도 베드로의 염려는 후세에 이르러 사실이 되고 말았다. 교황들의 야망이란 것이 사치하고 지위에 눈독을 들이고 또 면죄부를 팔아서 엄청난 금전을 얻는 등으로 타락해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로마교회의 통치범위는 종교계의 제반 문제뿐 아니라 당세의 정치문제들에 까지 깊이 침투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원 진리를 굳게 고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계에서도 극심한 핍박을 당했다. 이러한 핍박은 로마 황제 네로 때부터 중세기의 암흑시대 전 기간 동안 여러 세기나 계속되었다. 특히 로마 교황이 통치하던 시대와 종교 재판소의 시대 아래서는 그 고난이 극심했다. 이 기간에 유혈이 극심했다. 수천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순교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던 때문이었다.
많은 귀한 영혼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다시한번 온 땅에 비취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사모하였던 바, 드디어 그들의 소원은 응답이 되었다. 온 세상이 암흑과 혼돈 속에서 질식당하고 있던 15세기에 이탈리아의 수도사 지로라모 사보나로라가 그의 영혼의 복지에 관심을 갖고서 모든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의 영적 체험은 어느 정도 한 세대후의 루터의 그것과도 비슷하였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탐험을 위한 항해시도가 고려되던 1490년에 사보나로라는 공공연하게 죄에 대하여 극렬하게 책망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죄 사유함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사람이 잘못한 일들은 가능한 한 다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는 배상에 대해서도 전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한 여러 해 동안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진리를 사랑하는 유명 인사들이 성경을 상고하여 가물거리는 진리의 불꽃을 살리기에 애를 썼으며, 이로 인해 결국은 크나 큰 부흥의 불길이 붙게 되었다.
3. 종교개혁과 영적 각성
역사가들은 1517년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이 시작된 날로 잡는다. 이 날은 그 위대한 영적각성의 지도자인 마르틴 루터가 독일 삭소니의 위텐버그 성당 문에다 로마교회의 몇몇 교훈들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그의 조문을 써 붙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생명의 진리들의 빛을 드러낸 날이었던 것이다.
이 젊은 수도사는 오랫동안 자기 영혼의 만족을 찾아 헤메다가 어느 날 성경을 공부하는 중에 그 해답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말씀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 갈 3:11)였다. 그는 큰 핍박에 직면하였으나, 그 진리의 표준을 담대하게 붙들었다. 이로 인해 종교 개혁의 발판이 마련되어 그로 인한 이후의 개신교의 운동이 지금까지 전 세계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개신교회들과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를 고수하는 우리 사도의신앙교회도 이 종교개혁의 상속자이다.
마르틴 루터와 16세기의 그의 동시대인들이 가르치고 전파한 말씀들로 인하여 당시의 온 땅에 엄청난 종교적 열기와 정열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감추어져 있던 성경의 진리들이 루터 때에 설명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그로 인한 흥분은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사실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되었다.
이처럼 영적각성이 동트게 되자, 그때까지 여러 세기동안 사람들을 휘감았던 암흑이 많이 걷히었다. 선행과 고행 및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평안과 영생을 얻고자 애썼던 자들의 마음은 참으로 오랫동안 소경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국 성경은 열린 책이 되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죄를 없이하시고 제거하실 수가 있으시다는 것과 하나님 말씀만이 무흠하며 이 말씀으로써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이 말씀으로써 (사람의 말이 아닌)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야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신교의 교리들은 급속히 사방으로 펴져서 힘을 얻게 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의 철학도들은 성경을 그들의 지식과 진리의 원천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개신교를 소개하였다. 스위스, 불란서, 영국, 스칸디나비아와 다른 주변 나라들에서도 개신교는 발판을 마련했다. 자기네의 교회 지도자를 모시는 개신교회들이 수백이나 세워졌다. 이로 인하여 구교와 신교간의 틈은 더더욱 벌어졌다. 이 때문에 각국의 황제들은 이러한 개신교의 운동을 와해시켜 버리고 자신들의 지배권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를 극적으로 취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참된 기독교도들은 모진 핍박을 받았다. 그 기간 동안에 핍박과 음모와 처형과 종교전쟁들이 끊이지 않았다. 수만의 순교자들이 그들의 믿음에 순교의 피로써 인을 쳤다. 어찌나 핍박이 심했던지, 어떤 자들은 위험을 피하여 산을 넘어 도망가려다가 잡혀서 들짐승이 처형당하는 것같이 죽기도 하였다.
특히 신교도들을 말살하려는 핍박의 와중에서 위그노신도들과 왈덴파 신도들은 처참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극악한 구타와 잔인한 전쟁과 피흘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그 빛은 계속 꺼지지 아니했다. 무수한 이들이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싸우되 피를 흘리며 죽기까지 싸우게 됨을 인하여, 성령의 임재하심이 너무도 충만하게 나타났고 이로 인해 살아남은 자들이 여전히 진리의 말씀을 계속 선포하였던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기독교 시대 전반에 걸쳐서 영적으로 각성한 때와 쇠퇴한 때가 있음이 두드러진다. 18세기 초기 때는 종교개혁 이후로 가장 쇠퇴했던 암흑기였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많은 이들이 본래의 굳센 믿음에서 후퇴하였던 것이다. 믿음보다는 모험심이 일시적이고도 이기적인 욕망과 더불어 더 판을 쳤던 것이다. 한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배같이 여겼던 영국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는 영적인 가치들에 대하여선 무관심하게 되어 버렸다. 한때 부흥했던 교회들도 이제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풍조에 젖어들어, 죄와 냉담의 영향을 받아 잠자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암흑기는 참으로 기독교에 있어서 낙심천만한 시기였다. 이는 특히 급진주의적인 경향을 좇아가는 신학교들이 들어선 지역에서 더욱 현저하였다. 농부에서부터 귀족사회에 이르기까지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어떤 대학들은 그들이 한때 고수하였던 성경표준들과 믿음을 버리고 불신앙과 부도덕함이 만연하여 의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도왔다.
온 세상이 또 한 번의 영적각성을 크게 필요로 하고 있는 그때에, 하나님은 영국인 요한 웨슬레를 준비하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게 하셨다.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영국 런던의 올더스케이트가에서 있은 한 집회에서 회심하였는데, 그때 그는 그의 마음이 이상하게도 뜨거워져 옴을 느꼈다. 그 후 그는 사자후 같은 열렬한 설교의 사역을 시작했다. 웨슬레는 간증에서 말하기를, “내 죄는 제거되었고, 이제 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함을 받았노라” 고 하였다. 후에 웨슬레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뵈올 수 없으리라는 말씀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두 번째의 축복인 성결의 체험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 체험과 관련하여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내게 어떻게 하면 성결함을 입을 수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고 하였다. 그 방법은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써 받는다는 것이다. 웨슬레와 그의 동역자들은 자주 기도회를 가지곤 하였는데 그 모임이 때로는 다음날 새벽에까지 계속되었다. 성령의 강하신 임재가 있었다.
웨슬레와 그의 동생 챨스와 또 죠지 휫필드와 다른 동역자들이 광대한 전도의 불길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수많은 옥외집회를 개최하였으며, 그때마다 허다한 무리가 참석하였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서, 그 이후로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도 많은 옥외집회와 노방집회 등이 열리게 되었다. 웨슬레는 순회전도자로서 대부분 말을 타고서 25만(40만km) 마일나 여행하였으며 하루에 4-5번씩 설교하는 때도 있었으며, 그의 사역 53년 동안 4만 번이나 설교하였다고 한다.
요한 웨슬레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쳤던 온전한 성결의 교훈을 다시 세상에 비췸으로 인하여, 그 영향은 단순히 사람들의 양심으로 하여금 그들의 자범죄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는 것 이상으로 심대하게 나타났다. 곧 성결의 말씀이 비췸으로 인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새 생명과 소망을 얻게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원죄로부터의 자유함을 구하여 참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웨슬레가 전하였던 그 성결의 말씀은 지금까지도 전해져서 전 세계 각처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다.
웨슬레가 저술한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이란 책은 온전한 성화교리에 대한 좋은 설명서이다. 한 때 성결의 교리를 굳게 고수하였던 교회들이 이제 와서는 그 교리를 폐기처분해 버리고 있는 사실을 볼 때 슬프기 짝이 없다. 그러나 본 사도의신앙 교단에서는 그 창시 때부터 오늘날까지 성결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심인 것임을 굳게 선포하였으며, 이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거듭남을 입은 모든 신자는 이 성결의 체험을 받도록 강력히 권하여야만 한다.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거룩함을 주신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러선 기독교 신앙이 퇴조하고, 그동안 숨어있던 세력들이 발호하기 시작하여 19세기까지 계속 확대되어 갔다. 당대의 특징들은 전쟁과 교역자 없는 교회들과 종교적인 무관심이었으며, 이런 것들로 인해서 흑암의 세력들이 더욱 날뛰었다. 이로 인해 무절제와 신성모독과 도박 등의 죄악이 19세기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 후 유럽의 무신론과 음란한 문학서적들이 바다 건너 미국으로 물밀듯 밀려들어 왔다.
다아윈의 진화론을 포함해서 온갖 신학사조들의 경향과 합리주의와 유물론과 및 공산주의의 원시형태인 갖가지 사조들이 받아들여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의심하는 풍조는 더욱 만연해 갔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서도 진실한 이들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있는지를 아는 신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던 그때에도 그 마음에 믿음의 불꽃이 꺼지지 않은 사람들은 열렬히 기도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세기 초엽에 시작되었던 일련의 부흥회들이 연이어 일어나므로, 흥왕하여 가던 악의 세력들이 한 꺼풀 꺾이게 되기에 이르렀다.
1858년에 미국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던 대 부흥집회가 온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기도로 비롯된 이러한 영성의 물결은 그 후에도 계속 기도에 의해 이어졌다. 거의 모든 도시마다 매일 매일 기도집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건 기도했다. 교회와 극장과 사무실과 공공 유원지등이 기도회 장소가 되었다. 나라 전 지역의 도시들의 상업중심지대에서는 대낮 기도회가 열리곤 했는데, 이런 모임이 수 십 년을 계속됐다.
1859년 여름에 이르러선 이러한 기도의 불길이 바다를 건너 북아일랜드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기이한 방법으로 역사하셨다. 가정에서의 많은 시간이 기도하는 데 쓰였으며, 밤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그대로 새벽까지 켜 있는 광경이 비일비재하였다. 오랫동안 소홀히 하였던 성경책을 일반이 다시 보기 시작하였으며, 가정예배가 다시 부활하였다. 식사시간의 일부분을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고 기도하는 데에 드리게끔 되었으며, 이러한 헌신의 풍조가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성령의 역사하신 결과 모든 교회당은 매일 저녁마다 사람들로 미어졌다. 예배는 모든 형식적인 것들이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만이 가득했다.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기도하므로 회심했다. 큰 어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엉엉 울며 무릎을 꿇고서 간절히 하나님께 빌곤 했다. 술주정뱅이와 신성모독자들이 경건한 자들이 되었다. 밤늦게까지 힘을 다 써버린 교역자들은 지친 나머지 할 수 없이 사람들로 교회를 떠나 다시 오도록 사정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법률을 다루는 사람들(법관 등)은 부도덕과 죄악이 감소하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의 능력과 그 실재가 어떠함을 실감하는 말을 하곤 했다.
19세기의 세계적인 부흥사 중에 챨스 피니가 있었다. 그는 1828-1872년간에 부흥사로서의 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의 영향은 광범위하여, 미국과 영국대륙에서 허다한 무리들이 그의 설교를 들었다. 피니의 사역으로 회심한 신자의 수는 대충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구령사역의 결과를 몰고 온 것은 그의 생애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있었다. 피니가 전한 것은 회개와 배상과 성결과 성령의 능력을 입어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피니는 자신의 체험에 관하여 말하기를 “내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호흡이 나의 몸과 영혼 전체를 뚫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또 다른 유명한 부흥사로는 드와이트 무디가 있었다. 그는 의의 설교자였다. 하나님은 그를 크게 쓰시어 1860-1889년간에 영국과 미국에서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하셨다. 무디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자로서, 성령께 온전히 붙들린 삶을 간절히 찾았으며, 결국 그 구하는 대로 성령의 충만하심 가운데서 그의 일생을 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늘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적으로 간증하여 드러내고는 하였다. “내가 그에게 주는 물은 그의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이 되리라”(요4:14)
19세기 사람들의 종교적인 열정을 보여주는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대규모의 옥외집회를 들 수가 있다. 옥외에다 천막을 쳐놓고 드리는 이러한 종교집회 중 최초의 기억할 만한 것으로는 1800-1801년에 있었던 미국 켄터키 주에서의 집회들이었다. 사람들은 수시로 거대한 무리를 이루면서 꾸벅꾸벅 몰려들었으며, 하늘을 지붕 삼아 천막 안에 앉아 불같이 토해내는 지도자들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때로는 설교자들이 나무 그루터기 연단이나 마차 꼭대기에 올라서서 하루 종일 릴레이식으로 설교를 하였으며, 이것이 밤중까지 이어지기도 했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질 때에도 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19세기의 부흥기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확실한 회심을 한 자의 무리는 거의 1백 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부흥집회들을 통하여 일어난 사람들의 열정도 식어져 가기 시작하였고, 다시한번 영적 흑암이 닥쳐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교회들은 다시 형식주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이름만의 형식을 취하게 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이 없는 공허한 자리로 전락했다.
4. 20세기의 영적 각성
비록 20세기의 여명이 영적 흑암 가운데서 동터오기는 했어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것들에 굶주린 사람들은 있었다.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끈질긴 기도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그 도전은 보잘 것 없는 웨일즈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지방의 청년들과 부녀자들과 청장년들의 무리가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 가운데서 역하시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1904년에 웨일즈 지방에서 시작된 부흥은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의 열매였다. 이러한 영적 부흥의 각성과 관련하여 뗄래야 떼 놓을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은 젊은 석탄 광부인 이반 로버츠이다. 그는 13달 동안 그 지방 사람들의 영혼을 향한 무거운 짐을 마음에 안고서 자기 방에서 많은 기도를 했다. 너무도 기도에 몰입하고 보니 나중에는 그 방의 여관 안주인이 크게 놀래서 여관방을 비워 달라고까지 하게 됐다. 하나님은 그를 전도자로서 잠시 동안 유효적절하게 쓰셨다. 비록 짧은 기간의 사역이었으나 그의 열정적인 사역으로 사람들의 심령은 고무 받아 하나님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부흥의 불길은 웨일즈 전역으로 확산되어 그 지방 사람들에게 중단 없는 영적 고무를 일으켰다. 교회들은 넘쳐나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몰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를 감당하느라 한 번에 네 명의 설교자가 그 많은 회중에게 나누어 설교해야만 하였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매우 강력하게 나타나게 됨으로 술집들은 텅텅 비게 되기 시작했다. 술집 종업원들은 할 일이 없어지게 되었으며, 폭력 등의 사건 사고도 거의 없어져서 이 때문에 경찰관들은 게을러지게 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집회에 참석하여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도시와 시골에서 이러한 성령의 책망하시는 역사의 물결이 사람들 가운데서 펴져갔다. 사람들은 성령의 책망하심에 무릎을 꿇고서 자신들의 죄사하심을 받고자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기도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었고, 오로지 자신들의 괴로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나님과 씨름하는 그런 기도였었다. 이곳저곳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굴복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은 이들은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곤 하였다.
웨일즈 지방 전역에 수천 명이 회심하였고, 부흥은 바다 건너 이곳저곳으로 여러 나라로 펴져 나갔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부어주시마 약속하셨던 성령의 세례가 내리는 은혜의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웨일즈 지방에서와 같은 영적각성을 위한 기도의 몸부림이 있었다. 미국이 그러했다. 미국의 신자들은 기도하였고, 행동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셨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일에 부어주시리라는 성령세례에 관한 귀한 약속들을 성경에서 찾아냈다. 그들은 요엘 2:21-19절과 사도행전 2:16-18, 39절과 마태복음 3:11절과 요한복음 7:38, 39절에 언급된 성령세례에 관한 약속들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이전의 여러 시대들에서도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셔서, 개개인들이 여기저기서 성령세례를 받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늦은 비의 일부에 불과했다. 또한 1906년도에 강한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리기 이전 시기에도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성령의 소낙비가 내려, 거룩하심을 입은 자들이 성령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전 세계적인 늦은 비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영혼들로 하여금 농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게 하고, 마지막 추수기를 온전히 준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정한 때로서, 그 때가 되어야만 늦은 비는 내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4:7)
5. 늦은 비 성령의 역사
늦은 비에 관한 예언은 영적인 비와 자연적인 비에 대한 언급을 모두 포함했다. 그 성취는 주님의 곧 오심을 보여주는 징조들의 하나이다. 한때 장미꽃이 피었던 성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배척하였기 때문에 여러 세기동안이나 황무지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불순종과 불신앙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를 경고하여 주시었다(신11:10-17). “내가 하늘 문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리라” 가 바로 팔레스틴에 일어났다. 이 재앙은 여러 세기동안이나 계속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일에 관한 요엘의 예언 그대로, 이러한 자연적인 비는 다시 한 번 내리기 시작했다(욜 2:21-17).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팔레스틴 땅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그 후의 32년간에는 평균 강우량이 60%나 증가하였던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 땅에는 비가 계속 내렸으며, 이제는 많은 열매들을 산출하였다. 이와 함께 영적 늦은 비도 성지에 내리기 시작하여, 그 마음이 깨끗한 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았다. 곧 예루살렘 시에 사는 일단의 거룩함을 입은 무리들은 미국에 1906년도에 성령세례가 나린 직후에 그 성령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금세기의 초두에 나타나기 시작한 영적 굶주림은 특히 로스엔젤레스 시민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시 전역에서 특별기도회가 열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령 부어주심을 바라고 사모하며 기도의 불을 붙였다. 그러던 중 그 전에 웨일즈 지방에서의 부흥집회에 참석했던 한 목사님이 로스엔젤레스로 와서, 자기가 본 놀라운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 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은 더더욱 열렬하게 기도했다. 사업가들의 무리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무리와 성결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여러 다른 교파에서 몰려들어 기도하였다. 이들 사이에 교파는 아무런 불협화음도 주지 못했다. 그리스도인 평신도와 교역자들과 일군들이 모두 다 똑같이 성령의 능력을 그들의 삶에 받아야만 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무리들 가운데는 오레곤주 포트랜드에 본부를 둔 사도의신앙교회를 창시한 플레렌스 크로포드 여사도 있었다. 여사는 이렇게 당시를 회고하였다. “나는 감리교 신자였으며, 성령이 우리 위에 나리리라는 확신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 친구는 침례교 신자이며, 선교사인 알리언스와 다른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은 분명코 우리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축복과 능력을 주고자 하시는 사람들과 그 때와 그 장소는 하나님 자신이 선택하셨습니다.”
이른 비가 내렸던 오순절의 무대로 예루살렘이 택함 받았듯이 말일의 늦은 비가 내린 곳은 바로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였다. 오순절에 내린 이른 비에 관하여 예언했던 요엘 선지자는 또한 말일에 주님의 재림에 앞서 내리게 될 늦은 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르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이스라엘 월력으로 첫 달은 늦은 비가 내리는 때였다. 유대교의 교력으로는 그 첫 달이 아빕월인데, 이는 오늘날의 4월을 포함하였다. 1906년 4월 9일에 로스엔젤레스에서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성령의 부어주심이 시작되었다. 여러 교파에서 모여든 일단의 적은 무리들이 로스엔젤레스의 본니브래가 214번지에 있는 한 작은 집에서 열흘 동안의 기도회를 갖고서, 성령 부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도회를 주도한 사람은 흑인노예의 아들인 윌리엄 시무어 목사였는데 휴스턴에서 오순절 운동을 신학적으로 정립한 찰스 팰험이 운영하는 성서학원에 다니며 성령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거듭남을 받은 후 성결의 체험까지 받은 겸비한 사람들로서, 초대교회 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 부어주시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120문도들과 같이 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 위에 늦은 비의 성령을 부어 주셨는데, 이때 모인 무리 중 많은 이들이 성령을 받았다. 그들이 성령을 받을 때 외적으로 나타난 증거는 오순절날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 외적으로 나타났던 그 증거와 똑같았다. 곧 그들은 성령께서 주장하심을 따라 다른 나라 방언으로 말했던 것이다(행 2:4).
로스엔젤리스의 한 작은 집에 성령이 내렸다는 이 소문은 삽시간에 시 전역과 주변지역으로 퍼졌다. 소문을 들은 많은 굶주린 심령들이 너도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바라고 몰려왔다. 이에 기도처였던 그곳은 비좁아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기도회를 연 사람들은 부득불 더 넓은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그래서 얻은 새 집회처소가 로스엔젤레스 시 중심지 상가 지역에 위치한 오래된 골조 건물이었는데, 이 건물은 한때 감리교회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 흰색 건물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엄청난 부흥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새 집회처소에서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로는 여러 교파에서 온 교역자들과 선교사들과 전도자들과 자칭 의롭다고 여기는 죄인들과 그 반대로 죄악에 깊이 빠진 몹쓸 죄인들이 있었다. 또한 노골적인 비판자들과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로 ‘봉사의 능력’을 찾는 영적으로 굶주린 그리스도인들이 찾아 들었다. 그 가운데 앞서 언급한 플로렌스 크로포드 부인도 끼어 있었다. 그녀는 성령의 부어주심을 바라며 기도해온 많은 경건자들 중의 하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수백, 수천 마일이나 되는 먼 곳에서부터 여행하여 오기도 하였다.
성령에 충만한 하나님의 종들이 능력에 붙들려 마음을 살피게 하는 설교를 할 때마다 그것은 마치 하늘로서 강한 탐조증이 내려와 온갖 죄악을 향하여 비추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온갖 계층의 남녀들이 회심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를 받았다. 술주정뱅이가 술에서 놓여 더 이상 술병 없이도 삶의 만족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도적이 정직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그 훔친 것들을 되돌려 주었다. 죄악에 결박된 다른 많은 이들이 놓임을 받았고, 그들의 삶에서 악습이 끊어져 나갔다.
고상한 신앙고백자들과 거만한 도덕가들도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하층민들이 범하는 저열한 죄악을 거의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고상한 자들이었으나, 그들 역시 기도함으로 저열한 죄인들이 받은 것과 동일한 구원을 받았다. 또 성결의 체험을 받는 자들도 많았다. 또 성결케 된 자들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회심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돌아가 주를 위해 열성적으로 일하는 자들이 되어, 주변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퍼뜨리는 일을 도왔다. 매 집회시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뚜렷이 나타났다. 설교가 끝난 후에 있은 기도시간 때는 참으로 은혜로웠다. 앉은 자리가 기도대로 변하였으며, 많은 이들이 앉은 자리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러 와서는 온 종일 머물렀다. 그것은 밤이고, 낮이고 간에 시간을 잊어버린 채로 계속되는 부흥회였다. 어떤 사람들은 집회에 참석하여 너무나도 열렬히 하나님만을 찾는 나머지 밥 먹는 것도 잊었다. 부흥회가 계속됨에 따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참석자들의 국적은 저마다 달랐으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는 자기네 본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은 몹시도 놀랐다. 이는 마치 그레데와 아라비아와 메데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자기네 본토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서 크게 놀랐던 것과도 방불하였다.
당시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유다서 3절)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려고 마련하신 기도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 없이 온전하게 전파되었다. 칭의, 성결, 성령의 세례, 주의 재림 및 신유의 말씀이 전파되었다. 병자와 질고를 당하는 자들에게는 야고보서 5:14절의 말씀을 좇아 사역자들이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였으며,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고쳐주심으로써 그의 능력을 드러내셨다.
로스엔젤레스 시 전역에서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이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곳에 성령이 임하셨다. 그러나 이는 그곳뿐 아니라 미국 전역과 또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곧 인도와 유럽과 중국과 이집트와 시리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한국과 다른 여러 나라들에도 동일한 말씀전파와 함께 성령이 임하셨던 것이다.
아주사 거리의 부흥집회에서 처음에 말씀을 전한 교역자들은 ‘깨끗하고 거룩한 생활’을 특히 강조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을 따라 살아가도록 권고했다. 또 거듭남을 받은 자들에게는 성결함을 받는 일에 힘쓰게 하였고, 성결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성령의 세례를 받도록 강력히 권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높은 생활표준을 고수하며 모든 교리를 붙드는 자들 가운데서 영혼 구령사업에 쓰임을 받는 남녀 십자군들이 나오게 되었다. 성령 충만한 많은 이들이 원근각지로 나아가서 복음의 소식을 퍼뜨렸다. 어떤 이들은 미국 내에서, 어떤 이들은 선교사로서 해외 여러 나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가감 없고 능력이 있는 복음은 그 원래 발상지였던 성지의 예루살렘에까지 도로 전파되었다.
로스엔젤레스에서의 집회 후, 돌아간 여러 교파의 종교 지도자들은 각처에서 늦은 비의 복음을 강하게 전하였다. 혹자는 자기네의 독특한 교단이름 아래 여러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 때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처음 얼마동안 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들은 온전한 교리의 말씀들을 고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않아 몇 사람은 그들의 신조와 표준을 변경했다. 하지만 늦은 비 성령의 역사 속에 태동하여 크로포드 여목사가 1907년도에 세운 사도의신앙교회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하게 처음에 들은 말씀 그대로 변하지 않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순절의 성령운동은 기독교가 영적으로 쇠퇴할 때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적 각성운동을 통해 일어났었다.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영적 각성이 필요한 때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셔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이른 비 성령의 역사와 1906년 로스엔젤레스 본니브래가와 아주사거리에 있었던 늦은 비 성령의 역사와 같은 성령운동을 다시 일으키게 하실 것일까? 오순절 성령운동의 역사를 살펴보았듯이 회개하여 거듭나서 성결케 된 경건한 무리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운동이 있을 때 또 다시 오순절 성령운동은 불타오르게 되리라 확신한다.
(사도의신앙교회사에서 발췌)
사도의신앙교회의 연혁
본 교단의 창시자는 플로렌스 엘 크라포드인데, 그녀는 무도장에서 춤을 추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여 구원을 받았는데 더 깊은 은혜의 체험을 갈구하던 중 로스엔젤리스 아주사 거리 부흥회에 참석하여 성결과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1906년 성탄절에 오레곤주 포트랜드로 가서 구원받고 성결케 된 신자에게 주시는 오순절의 성령에 관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포트랜드 2번 중심가에 있는 대장간을 개조하여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한 사도의신앙교회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미 중서부 지역 태평양 연안에 많은 지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본 교단의 첫 천막집회는 1907년도 시작되었는데 매년 영적 갱신과 전도를 위한 특별집회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본 교단의 임무는 전도인데, 이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순전한 그대로 나타내기에 힘쓰며, 땅 위의 모든 족속의 언
어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과 온전함을 전하려고 애쓴다. 이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권속이 되었다. 문서전도 외에도 여러 가지 혁신적인 전도 방법들을 사용해 오고 있다. 그 중에는 노방전도, 교도소 집회, 병원과 양로원 방문전도, 선원선교, 비행기를 이용한 전도지 공중살포, 선박을 이용한 오지선교 등을 해 왔다. 이러한 사역의 결과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진리라는 한 증거가 되고 있다.
한국 사도의신앙교회 연혁
사도의신앙교회가 한국에서 개척되기 시작한 것은 약 41년 전의 일이지만 한국에서의 사도의신앙교회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은 63여 년 전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 사도의신앙교회의 개척자인 바렛트 선교사의 부친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으로 한국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멀리 포트랜드교회로부터 여성도들이 말을 타고 바렛트선교사의 부모가 사는 지역에 와서 집집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간증을 하였는데 그 당시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영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 바렛트선교사의 부친이 그 간증을 듣고 포트랜드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첫날 그는 구원을 받아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나중에는 목사가 되었다.
그 후 그 자녀 중 아들 바렛트가 타락한 생활을 청산하고 교회로 돌아와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를 통한 한국교회 개척을 위해 두 가지 준비를 하셨다. 첫째는 바렛트 선교사가 애지중지하는 아주 아름다운 딸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다. 해변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익사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연단하시듯 그 시련을 통해 바렛트 부부를 연단하셨다. 둘째는 환상을 통해 선교지를 미리 계시해 주시며 준비하셨다. 그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비몽사몽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초가집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구체적인 말씀은 없으셨다. 그는 어떤 신앙의 동료를 통해 항구에 도착하는 외국선원선교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선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와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관광도 시켜주고 교회로 데리고 가 예배에 참석케 하는 일이었다. 특히 한국선원들에 대해 많은 애정을 쏟았다. 66년도에는 대한조선공사의 초대로 7개월간 관광차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서해호를 타고 34일 만에 인천항에 도착함으로 그 첫발을 디디었다. 한국에 도착하여 시골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이 보여 주셨던 초가집을 보게 되었다. 아마 이 때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한국에 정착하여 선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7개월간의 한국방문 마치고 귀국한 그는 밤낮 한국에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눈물로 지냈다고 한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의 원인이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임을 알게 된 세계 총감독 목사인 카버 형제가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하여 한국에 선교사로 가겠느냐는 제의를 하게 되었고 67년도 세계본부교회는 정식으로 그를 한국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9월 선교사부부의 거처였던 청학동 123번지에서 첫 집회를 가짐으로 한국 사도의신앙교회 사역이 시작되었다.
사도의신앙교회의 조직과 정치
사도의신앙교회의 사명
사도의신앙교회의 사명은 언제나 복음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그 목적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이 순결하며 능력이 충만함을 알리는 것이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기도- 기도는 모든 사역의 기본이며, 주님 안에서의 영적 성숙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대화(기도)에 힘써야 한다.
설교- 우리는 오순절 교리에 기초한 구원, 성결, 성령의 세례를 강조해야 하며,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제자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출판- 우리는 문서와 말과 우리의 삶을 통해 “당신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거듭나야 한다).”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사도의신앙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복음에 관한 문서들을 많은 언어로 번역, 출판하여 무료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서사역과 기타 여러 가지 전도활동을 통하여 미국과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다.
본 교파의 특징
사도의신앙교회의 주 관심사는 언제나 건전한 교리를 설교하는데 있어 왔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태동된 경건한 단체인 본 교회는 아주사(Azusa)의 부흥 때로부터 가르쳐진 교리들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 거듭난 체험을 하고 죄를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며 세상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교인이다. 새로 교인된 자에게 교인증을 발급해 주거나 공식적인 교인명부를 보관하지 않는다. 참고 상 물침례를 받은 사람들에 관한 기록만을 보관해 둔다.
본 교회의 사역은 십일조와 헌금으로 후원받는다. 이는 성도에게 간청하여 얻은 것도, 예배 중에 모으는 것도 아니다. 사도의신앙교회는 “헌금바구니를 돌리지 않는 교회”로 알려져 왔다. 교회에 들어서면 입구에 십일조와 자유롭게 헌금할 수 있는 헌금함이 있다. 이러한 방법은 창세기 28:22, 말라기 3:8-10과 고린도후서 9:7에 준한 것이다.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행동과 의복이다. 성도들은 주의 길을 경건히 가기 위하여 그들의 행동과 오락에 대해 교육받는다. 의복의 기준은 남자와 여자 둘 다 일시적인 유행을 따르는 의복은 피하며 경건한 복장과 정결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다.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몸단장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린도전서 11:14-15와 디모데전서 2:9).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세상과 분리되어 살 수 없고 세상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요한복음 17:16). 그러나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교리에 입각한 경건한 삶을 살도록 권면 한다 .
사도의신앙교회는 간단하며 질서 정연한 예배방법을 따른다. 대부분의 예배는 복음전도를 위한 것이다. 어떤 기도서나 성직자 의복을 사용되지 않는다. 오르간, 어떤 다른 악기, 사람의 목소리에 의한 음악 전주곡으로 예배는 시작된다. 대중찬송, 기도 그리고 성도들의 짧은 간증이 그 다음 순서를 이룬다. 특송은 설교 전에 행해지며, 주일 대예배시에는 주로 성경봉독이 간증시간을 대신한다. 때로는 성경공부가 주중의 예배 때 행해지기도 한다.
기도 시간은 모든 사도의신앙교회의 예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예배 전에 교역자들은 준비기도모임을 가지며, 예배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한다. 성도는 질병의 치료와 문제의 해결, 영적인 조언 그리고 죄인들의 구원함과 같은 기도 제목을 요청할 수 있다. 예배의 맨 마지막 순서는 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기도대로 초대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각 성도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예배는 마무리되고 교역자들은 몸과 마음이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 병자를 위해서 교역자들은 야고보서 5:14-15를 근거로 하여 그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준다.
교역자의 자격
사도의신앙교회의 교역자는 영적인 자격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디도서와 디모데 전, 후서의 목회서신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러한 자격 요건은 수준 높은 것이다. 사도의신앙교회의 교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구원, 성결,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의 생활은 흠이 없어야 한다. 그들은 건전한 교리로써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앙을 부인하는 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담임목회자는 세계총감독의 지시아래 각 지역 교회의 리더로 임명된다. 교역자를 세울 때는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담임목사의 추천으로 몇 명의 장로(원로 목회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므로 안수한다(디모데전서 4:14). 결혼식 주례와 같은 법적인 목적을 제외하고는 안수 받은 교역자와 안수 받지 않은 교역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교역자들은 매년 있는 하기집회(Camp Meeting)에 참석하여 교단본부가 제공하는 주기적인 교육 훈련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성경공부
주제별, 내용별 성경공부 교재는 사도의신앙교회 교단본부가 만든다. 다양한 주일학교 커리큘럼과 모든 연령에게 제공되는 자료들이 정기적인 성경공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간되어 왔다.
해마다 포틀랜드와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는 하기집회에서 성경공부시간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교리를 철저히 복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가 되는 원리와 주제들을 공부함으로 큰 영적 유익을 얻는다. 성도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생생한 진리와 건전한 교리는 매주 예배를 통하여 상세히 설명된다. 사도의신앙교회는 흠정역(King James version)성경을 모든 성경공부와 예배에 사용한다.
이사회
사도의신앙교회의 이사회는 정식으로 임명된 5명의 이사와 1명의 서기로 구성되는데, 이사 중 1명은 이사장으로서 총감독이 맡는다. 본 교회는 “오레곤주 포틀랜드 소재 사도의신앙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 of Portland, Oregon")라는 명칭으로 오레곤주 법에 따라 법인 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지방 교회들은 본 단체 본부교회의 지도와 지시를 받는다.
가 입
모든 사도의신앙교회는 포틀랜드에 있는 본부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다른 종교단체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 사도의신앙교회의 특징은 1906년 성령강림 시기에 사도의신앙교회가 체계화한 성경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의신앙”이라는 이름의 다른 종교단체들이 있다. 하지만 그 단체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본 교회의 교리와 다르다. 이들 단체와 구분하기 위해 사도의신앙교회의 각 지 교회들은 “삼위일체" 또는 “삼위일체신앙”이라는 글자를 교회명칭에 덧붙임으로 본 교회가 성삼위일체를 믿으며 가르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사도의신앙교회에 가입하기 위하여서는 공식적으로 출간되어 있는 본 교단의 성경적 교리에 부합해야 한다
. 그들의 삶 또한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 (디도서
2:12절
)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해야 한다
.
사도의신앙교회의 성경교리
우리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 믿으며, 그 안
에 있는 모든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성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온전히 하나 되심이다.
(마 3:16-17 ; 요일 5:7)
회개: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며 버리는 행위. 사 55:7 ; 마 4:17
구원: 죄를 사함 받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칭의). 롬 5:1,2 ; 고후 5:17
성결 : 칭의 후에 받는 거룩케 되는 두 번째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 요 17:15-21 ; 히 13:12
성령세례: 성화된 생명위에 위로부터 권능이 임함. 그 증거로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방언을 말한다. 눅 24:49 ; 행 1:
5-8, 2:1-4.
신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고침을 받는 것. 약 5:14-16 ; 벧전 2:24.
예수님의 재림: 승천하실 때 본 그대로 다시 오심. 행 1:9-11. 재림의 목적은 첫째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를 데리러
오심. 마 24:40-44 ; 살전 4:15-17 ; 두 번째는 불신자를 심판하
러 오심. 살전 1:7-10 ; 요 14-17.
대환란: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리러 오실 때와 심판의 때 사이에 일어남. 사 26:20-21 ; 계 9장-16장.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문자 그대로 1000년 동안 이 땅에서 예수님이 평화롭게 통치하심. 사 11장-35장.
백보좌심판: 모든 죽은 악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받게 될 마지막 심판. 계 20:11-15.
새 하늘과 새 땅: 백보좌심판 후 지금의 하늘과 땅이 파괴되고 대체될 하늘과 땅. 벧후 3:12-13 ; 계 21:1-3.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 문자 그대로 최후의 운명의 장소. 마 25:41-46 ; 눅 16:22-28.
결혼: 결혼이란 하나님 앞에서 맺어지는 거룩한 제도임. 그러므로 첫 번째 배우자가 살아있는 한 재혼할 수 없음. 마 10:6-
12 . 롬 7:1-3
배상: 구원을 받고 난 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자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을 바르게 하는 것.
겔 33:15 ; 마 5:23,24.
물침례: 예수님이 명하신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속에 한번 잠기는 예식. 마 3:16 ; 28:19.
성만찬: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재림하실 때까지 기념하도록
예수님이 제정해 주신 제도. 마 26:26-29 ; 고전 11:23,26.
세족례: 예수님이 주신 모본과 계명에 따라 행해지는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예식. 요 13:14-15.
* 본 교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아래 주소를 검색하세요. http://www.apostolicfaith.org/aboutus/doctrinal.asp
예수교사도의신앙교회
발제자 : 감독 박영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