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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한 예 수 교
오순절 성결회
연혁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는 1979년 3월 30일 “미국오순절성결회”와 용문산기도원에서 전국에 걸쳐 개척하여 설립한 “일동일교회들”과의 결연으로 한국에 생긴 교단이다. 용문산기도원은 처음부터 “초교파적”으로 일해왔으나 1970년대 말 정부가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기도원들을 철거하는 정책을 펼쳤다. 용문산기도원은 교단 소속없이 초교파적이었기 때문에 전국에 세워진 수십개의 “분원기도원”의 철거를 면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교단의 소속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울러 전국 일동일교회들도 교단 소속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마침 미국 오클라호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오순절성결회가 한국에 진출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와 맞아서 미국오순절성결회가 한국 용문산기도원에서 설립한 일동일교회들과 결연을 맺고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 교단이 설립된 것이다.
1. 미국 오순절성결회
1) 사도적 전승
오순절성결교회는 오순절 날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교회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으므로 생겨난 초대 사도교회를 그대로 전승한 것이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큰 권능을 받아 근본적으로 세상을 개혁하는 역사를 일으켰다. 바로 그 첫날에는 3천명의 무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매일 믿는자의 숫자가 늘어났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분명하게 하시기 위하여 사도들의 손을 통해 놀라운 기적들도 일어나게 하셨다.
초대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 당시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당시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였다.
그러나 1세기 말경 일련의 잔혹하고도 지루한 교회 박해가 시작되었다. 약 200년 동안 초대교회는 대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도 지옥의 권세가 하나님을 믿는 헌신적인 어린양떼들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그 영광스러운 역사는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었다.
오순절 후 약 300년이 지난 주후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틴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황제가 기독교에 대하여 호의를 베푸니까 교회는 오히려 규례와 형식에 빠져들어 갔고 심지어는 미신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종교의 형태는 가졌지만 반대와 박해의 암흑시대에서 교회를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저버리고 있었다. 약 1천년 동안 불과 몇몇 극히 소수의 신령한 표준형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영적인 면에서 죽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되자 몇 갈래의 세계적인 부흥운동, 초대교회 오순절을 계승한 역사가 있어나게 되었으니 오순절성결회 교단도 그 한 부분이다.
성령께서는 사도교회 시대로부터 금세기 초대 오순절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부분적으로 오순절날에 역사하시던 것처럼 부흥운동들을 일으키셨다. 이러한 산발적인 부흥운동은 20세기에 쏟아진 "늦은 비" (호6:3)의 전초적인 것이었다.
2) 3대 부흥의 전승
오순절 성결교회는 3대 신앙부흥운동을 전승한다.
첫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 교리의 부흥이었다. 부패한 로마교회 교권을 반항하고 일어난 것이 종교개혁 운동이다. 이 운동은 로마 카돌릭의 젊은 신부인 마틴 루터에 의해서 일어났다.
그가 독일 윗텐베르크 성당 문에 역사적인 95개조의 개혁안을 붙였던 1517년 10월에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유럽 대륙을 휩쓴 프로테스탄트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교회 신부를 통해 받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주를 믿어 받는다는 만인제사장의 위대한 교리를 재 강조하였다.
둘째, 18세기의 영국과 미국을 휩쓴 존 웨슬레 부흥운동이었다. 존 웨슬레가 주도한 이 능력있는 성령운동은 분명한 개인적인 체험으로써의 성결에 대한 성경의 교리를 재 강조하였다. 수 세대 동안 성결에 대한 교리는 불붙는 열정과 살아 움직이는 생동력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엽 기성교회에서 성결에 대해 소홀해 지자 미국에서 성결 추구 전국연합회가 조직되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어떤 새로운 교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고 성결의 교리를 재 강조하는데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결교회가 이 운동에서부터 발전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미국의 대다수 성결 단체들은 더욱 많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다 큰 성령의 은사를 심히 갈망하였다. 그 소원은 얼마 안가서 이루어졌다.
세째, 오순절 성결교회는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이 부흥운동은 1906년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와 지금은 유명한 아주사 시에서 시작되었다. 물붓듯이 내리는 성령의 늦은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급격하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한국에서도 1906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부터 성령의 불길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 신사참배로 인하여 성령역사는 찾아볼 수 없었고 해방 후 용문산기도원에서 성령역사는 다시 일어났다.
3) 기구적인 전승
지금의 오순절 성결교회는 1898년 미국에서 창립된 두 개의 성결단체가 자라난 것이다. 1898년 북카롤라이나주 골드스보로에서 오순절성결교회가 창립되었고 같은 해 남카롤라이나주 엔더슨에서 불세례파 성결협회가 생겨났다. 이 두 단체는 신약성경의 가르침대로 성령세례의 교리를 채택하였다. 1909년과 1910년에 몇 차례의 협의 후 두 단체는 1911년 1월 30일 통합하면서 "오순절성결교회"로 부르기로 하였다.
오순절성결교회는 신약성경의 교회처럼 초창기부터 선교에 목적을 두고 출발하였다. 통합 이후 첫 10년 동안에 남아프리카 중국 그리고 인도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이들 선교사들은 오순절성결교리를 전파하였다.
현재 오순절성결교회는 전 세계 4대 대륙 28개국에 교인들을 가진 국제적인 교회가 되었으며 1979년 3월 30일에는 한국에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가 생겼다. 오순절성결교회는 세계오순절연합회 창립 (1947년) 때부터 실행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순절성결회는 복음전파를 위해 부흥전도 문서전도 및 교육사업을 강조 실천하며 삼겹줄 전도운동을 하는 교단이다. 남녀 교역자 양성을 위해서는 전 세계에 20여개의 오순절성결교 대학과 성경학교들이 있다.
오순절성결회는 현재 저술과 출판부문에도 새롭고 활발한 사업을 펴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오순절성결교회가 제일 크게 바라는 것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기구가 되는 것이다.
2. 용문산기도원 일동일교회
용문산기도원은 1940년 나운몽감독이 설립하였다. 나감독은 27세의 나이로 용문산에 입산하여 지금까지 살기도 싫고 죽기도 싫었던 인생을 청산하고 주께 붙잡힌 자로서 주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용문산기도원 성령 운동은 세계 기독교사에 유래가 없는 한국교회의 급성장을 가져왔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 사상을 한국교회에 심어주었다. 기독교문사 발행 기독교사전은 용문산기도원은 "수많은 전도자를 배출하였고 한국 교회 부흥의 한 진원지가 되었다"고 썼다.( p753) 한국교회의 큰 부흥사 중 한분이셨던 신현균목사는 "한국교회 근대사에 두 운동이 있었는데 용문산의 기도운동과 성령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없었다면 한국교회 부흥없었어요. 처음엔 나운몽목사님 독무대였습니다. 50주년을 맞는 나목사님께 참으로 존경과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목사님 아들뻘됩니다. 한국강산에 영적 ... 나운몽목사님이십니다."고 말하였다. 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는 "성령을 말하면 곧 이단으로 여기던 시절 나목사님은 성령운동을 힘차게 펴왔고 한국복음화를 제일 먼저 주창하였다."고 썼다. 한신대 이장식교수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성령체험과 신유은사의 보편화는 나장로 성령운동의 유산이라."고 "한국교회 100년" 책에 썼다.
나감독은 20대에 인생에 대한 허무감과 절망으로 짐승이 되어 보려고 이산 저산 헤매이다 용문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날 깊은 밤중 "마음을 청결하라 그러면 나를 보리라!" 큰 음성을 듣고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마음을 어떻게 청결하란 말인가 방바닥이라고 쓸어내란 말인가 마루바닥이라고 닦아내란 말인가. 성결이면 몰라도 청결이라니..." 다시 누우려하는데 "마음을 청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 똑똑한 음성으로 또 들려왔다. 이번에는 정좌를 하고 "마음을 청결한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물었다. "이와 같으니라" 하면서 온 천하가 눈같이 희고 환하게 보였다. "이럴수가 있습니까?" "의심스럽거든 마5:8 을 보아라. 맑을 청자니라"
마태복음 5장 8절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였다. "마음을 청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 말씀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그는 침식을 잃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성령 체험 후 바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1954년 용문산기도원에서 열린 부흥집회는 양칠(7x2)주년 기념성회로서 산중에 수천명이 모이는 한국교회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한국 장로교회는 나장로님의 부흥운동을 막는것이 가하다고 총회에서 결의를 하였고 1955년 예장 목사 28명이 연서하여 나장로님을 김일성과 내통하는 국제 공산당원이라고 고발하였다. 나장로님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일간지들은 톱으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그러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담당 검사와 변호사들은 무고로 고발자들을 입건하자고 제의했으나 나장로님은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립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전도 일선에 다시 나섰던 것이다. 나장로님의 심령부흥회는 전국으로 거세게 불붙어 나갔다.
매년 용문산에서 열리는 8월 집회에는 전국에서 모이는 성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철도청에서는 용문산 집회 참석 성도들에게 매년 운임 할인권을 발행하였고 집회 끝나는 날에는 추풍령 역 직원들이 산에 와서 매표하였고 기차에는 용문산 집회 참석자만을 위한 빈 객차를 수량씩 연결하여 오곤하였다. 집회 참석하러 오는 성도들이 머리에 보따리들을 이고 추풍령에서 용문산까지 산길을 걸어서 줄을 지어 들어오곤 하였다. 흰 옷입은 성도들의 무리가 줄지어 오는 모습을 지금도 추억하며 그때가 그립다고 하는 노인들이 있다. 김천에는 연락소가 있어 집회참석차 오는 성도들을 트럭으로 용문산까지 계속 실어 날랐다.
대도시 큰 교회들에서 나운몽장로 심령대부흥회가 연이어 열렸고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성도들 때문에 단에 나장로님은 걸어 들어갈 수조차 없어 어떨 때는 사람들 어깨를 딛고 들어갈 때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무리 큰 교회당이라도 밀려오는 성도들 때문에 좁아 강변 백사장에 큰 천막을 치고 집회를 하곤하였다. 숨도 쉬지 않고 퍼부으며 죄악을 때리는 나장로님의 설교에 회개의 큰 역사가 일어났다. 회개하는 심령들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의 큰 역사가 일어났다. 통성기도 시 방언과 예언들이 터지고 악대의 나팔 소리와 북 소리에 맞춰 손뼉치며 춤추며 부르는 성도들의 찬송소리는 하늘을 울렸다.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그 기쁨에 장내는 정말 불도가니였다. 불신자들이 예수 믿었고 은혜 받고 주의 종 된 사람들도 부지기 수였다. 물론 수많은 병자들도 나았다. 어쨌든 사상 유래가 없는 성령의 불길이 한국 강토를 휩쓸었다.
1940년 시작된 사랑의 나라를 위한 글방, 애향숙이 정부로부터 재단법인으로 인가되었고 애향숙은 1956년 기드온신학교와 용문산성경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여기서 배출된 기드온 용사들은 교회 없는 동리에 교회를 세우는 일동일교회운동을 위해 투입되었다. 한편 기드온신학교 출신으로서 결혼하지 않고 평생 주를 위해 몸 바쳐 일하기를 원하는 남녀 청년들이 있어 용문산수도원이 1960년 세워졌다. 개신교 수도원으로는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16명이 수도하였는데 그후 매년 늘어 80여명까지 이르렀다. 현재 이들은 각지에 기도원들을 설립하여 일하고 있으며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나장로님은 33세에 서울에서 감리교 수표교교회 장로가 되었고 농민성보를 발행하며 기독교연합회 기관지 기독공보까지 발행하였었다. 복음신문이 1960년 창간되어 일간지로 발행되기도 하였으나 현재 주간지로 발행되고 있다. 한국 교계 초교파신문으로서는 제일 오래된 신문으로 현재 49주년을 맞고 있다.
1957년 나장로님은 "빈손 들고 북진하여 38선을 무너뜨리고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시공관 강연을 하였다. 4.19 직후 1960년 4월 30일 "남한 독재 무너졌으니 북한 독재 물러가라" 며 기드온신학생들이 북진 데모하였다. 이날을 상기하며 남북통일을 위한 구국제단이 3년 후 설립되었다. 1963년 4월 30일 새벽 1시부터 현재까지 하루 24시간 한 시간도 빠짐없이 밤낮 쉬지 않고 46년 동안 남북통일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 이렇게 쉬지 않는 긴 기도는 없다. 1968년 "한국에도 피가 있다" "내 땅 내가 간다"며 미국과 북한의 판문점 비밀회담을 성토하며 자유의 다리를 뛰어 넘었다. 일간지들은 대서특필하였다. 조선일보 주필 최석채선생은 "우리 민족의 울분을 대변한 정당한 의사 표시였다"고 논평하였고 예장 최거덕목사는 "오직 조국을 사랑하는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었다"고 하였다. 한국기독교연합회 김종대목사는 "그들의 용기와 애국 정신을 찬양하고 싶다"고 하였다.
용문산기도원과 일동일교회는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믿어 구원"이라는 모토로 설립 운영되고 있었으나 서두에서 언급된 대로 정부에 의해 철폐 위기를 맞게 되어 1979년 미국오순절성결회와 결연을 맺고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가 되었고 나장로님은 목사 안수를 받고 감독직에 취임하게 되었다.
교리
1. 우리는 사도신경대로 믿는다.
2. 우리의 신조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참되시며 영원하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신은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시며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이 유일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니 성부 성자 성신이 일체이시다. 성부 성자 성신께서는 한 성품을 갖고 계시며 영원부터 계셨다. 이 삼위께서는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지혜로우심과 능력과 위엄이 같으신 삼위일체이심을 믿는다.
2) 우리는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을 믿는다.
성자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의 품성을 가지셨으니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시다. 이와 같이 크고도 크신 분이 고난을 겪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으니 이는 세상의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시어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 진노를 없애고 죄인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하려 하심이다.
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을 믿는다. 영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계신 것을 믿으며 또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
4) 우리는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신 성령을 믿는다. 성령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셋째 위 되심을 믿으며 성신께서 영원부터 성부 성자와 함께 영광과 크신 위엄과 성품을 누리시는 것을 믿는다.
5) 우리는 신구약 66권으로 된 성경을 믿으며 이 말씀들은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으로 주어졌음을 믿는다.
실로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성령의 감동으로 주셨으니 우리는 이 성경이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성경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를 완전히 계시하셨음을 믿는다.
6)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는 것을 믿는다.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서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실 축복 중의 하나인 것을 믿으며 또한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분리되어 그치지 않는 벌을 지옥에서 받을 것을 믿는다.
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시기 위해 그의 보혈을 흘리신 것을 믿는다. 이 보혈로 인하여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거듭날 수 있고 죄의 능력과 죄짓는 습관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을 믿는다.
8) 우리는 누구라도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믿는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또한 이 진리를 가르쳐야 할 것을 믿는다.
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죄악으로부터 완전히 정결케 하심을 믿는다. 정결케 하시기 위해서 보혈을 흘리셨으며 이 정결함은 중생한 이후에 체험할 수 있음을 믿는다.
10) 우리는 성결이 은혜의 역사임을 믿는다. 성결은 중생의 체험같이 믿음으로 받을 수 있으며 이 체험은 순간적이면서 명백하다. 다시 말하면 성결은 내재하는 원죄로부터 성도가 자유롭게 되는 체험 즉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이며 이 체험 후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성도가 은혜 중에서 자라는 것임을 믿는다.
11) 우리는 오순절 성령과 불세례가 성도들을 성결케 한 거룩한 능력의 증표임을 믿는다. 이 세례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명백한 체험이며 이 체험의 은사 중에 드러난 증거로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영언, 방언이 있다.
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병나음을 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오는 혜택 중의 하나로 우리의 육신이 신성한 능력으로 병나음을 받을 수 있는 것, 신유를 믿는다.
13)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시대 전에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대로 오실 것이며 또한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오실 수 있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다.
선언문
한민족에게 있어 유서깊은 기미년 3월, 이달도 마무리져 가는 오늘 우리는 서울 만민의 기도하는 집에서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결회를 창립하고 이를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연륜을 문턱에 두고 또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셈하게 된 오늘의 역사적 시점에서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결회를 창립하게 됨은 결단코 인간 사고의 소산이 아니며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섭리와 경륜의 발로인줄 믿는다.
모름지기 기독교는 사도행전 2장에 명기된바 그대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120문도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시던 그날 바로 오순절 때부터 그 깃점을 찾게 된다.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전하고 환상을 보던 그 신령한 역사에 뒤따라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불붙는 사명 의식에서 유무상통하기까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즉 종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횡적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기독교 원리 중 원리인 경천애인의 참 모습을 이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역사의 흐름과 함께 기독교 안에서는 분열과 파벌 형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비생산적인 교리 논쟁이 연속되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교회는 무력해 지고 세속의 탁류는 성교회를 짙게 오염시킨 형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의 기독교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자 오순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크게 전개코자 하는 바이다. 그러던 차 마침 우리의 형제 교회인 미주의 국제오순절 성결회와 선교 제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한 예수교 오순절 성결회"를 창립함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간추려 이 단체가 발족케 된 연유와 목적 그리고 사명을 이에 천명하는 바이다.
1. 우리는 모든 주의 몸 된 교회가 교리나 파벌의식을 불식 지양하고 교회의 모체인 오순절 초대교회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2. 우리는 모든 주의 몸 된 교회가 불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성결 역사를 강하게 일으킬 것을 다짐한다.
3. 우리는 유무상통하던 초대교회 정신을 우리의 신앙과 이상으로 삼고 이 나라의 교회와 사회질서를 이 신앙에 터 닦도록 노력한다.
4. 우리는 우리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한국 전역을 복음화 시키는 숭고한 사명을 안고 교회 없는 동리가 없도록 일동일교회 운동에 일로 매진할 것을 굳게 선서한다.
1979년 3월 30일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결회 창립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