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은 ‘仁의 실마리'라고 하였습니다.
‘인’, 즉 ‘어짊’은 다른 사물을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지요.
또한 한방에서는 '씨앗'을 仁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살구씨를 행인‘杏仁’ 복숭아씨를 도인‘桃仁’ 이런 식이지요.
‘仁’자를 찾아보면 ‘어질다’라는 뜻 외에 ‘만물을 낳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씨앗이 싹이 틀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씨앗 속에 생명이 잠재해 있다가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물기와 감응하고 기온과 감응하고 공기와 감응하고 절기와 감응하고....
즉 천지자연의 기운과 감응할 때 씨앗은 싹이 터서
살아있는 생명의 모습으로 발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인이란 천지자연의 다른 사물과 교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인 즉 감수성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생명이 감수성을 잃어버리면 이미 생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생명현상은 끊임 없는 천지자연 서로간의 교감의 연속입니다.
그러다가 만약에 서로 감응할 수 없는 조건이 될 때
그 생명은 생명 현상을 정지하고 죽고 맙니다.
서로 느끼고 감응할 수 없어 감각이 없는 상태를 '마비痲痹' 또는 '불인不仁'이라고 합니다.
사람도 손발이 마비되면 손발을 찔러도 감각이 없습니다.
마비되면 설사 팔다리를 자른다고 하더라도 아프지도 않겠지요.
그러나 감각이 마비되어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팔다리를 자른다면 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억만년의 새월 동안 이루어진 강과 강숲을 파헤치고
모래를 들어내고 강을 막으면 억만년동안 강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던 생명들은
사람으로 치면 느닷없이 진도 7,8이상의 온천지가 뒤집히는
무시무시한 대재앙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이겠지요.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 마비되어
그 생명들의 터전을 처절하게 파괴하고
그 살던 생명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불인한 흉물이 되어 있습니다.
아픔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측은지심은 아픔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강을 젖줄로 삼아 강을 중심으로
강에 사는 생명들과 어우러져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강이 온전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반드시 온전할 수 없을텐데
정신이 마비된 사람들은 아무런 아픔도 없이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듯이 강과 강의 생명들을 유린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무모하고 낯설고 불편하고 엉뚱한 모습의 죽은강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 만의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탐욕인가요? 교만인가요? 무지인가요?
무었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마비시켜 우리 생명의 근원을 짓이기며
못할 짓이 없게 만든것일까요?
우리에게는 그 돈과 그 열정을 가지고 우선 해결해야 할 절실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은데....
첫댓글 너무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씨앗'을 仁이라고도, ‘만물을 낳다’라는 뜻도,... 그리고 감수성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도... 크게 배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너무 타당한, 그러나 감수성이 넘치는 말씀입니다. 초하룻날 선생님 댁에서 받은 대접은 과분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중박에 근무하시는 따님이 대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