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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금 나는 깨어있다 원문보기 글쓴이: 추공
[1979년 광오이해사본, 소장처]
1) 1979.9.10 : 국립 중앙 도서관. 경상대 중앙도서관
2) 1979.12.22 : 고려대 한적실
한단고기 / [삼성기전, 상편1 (三聖記全 上篇 1)]
- 안함로(安含老) 지음 -
吾桓建國最古有一神在斯白力之天爲獨化之神光明照宇宙權化生萬物
우리 한(桓)1)의 건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일신(一神)이 있어 사백력(斯白力)2)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3)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4)는 만물을 낳았다.
長生久視恒得決樂乘遊至氣妙契自然無形而見無爲而作無言而行
오래오래 살면서<長生久視> 늘 쾌락을 즐겼으니<恒得快樂> 지극한 기를 타고 노닐고 <乘遊至氣>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妙契自然> 모습 없이 볼 수 있고<無形而見> 행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無爲而作> 말없으면서 다 행하였다.<無言而行>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於是桓因亦以監?居于天界?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是謂天帝桓因氏亦稱安巴堅也傳七世年代不可考也
어느 날인가5) 동녀동남(童女童男) 800이 흑수(黑水)6) 백산(白山)7)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桓因)은 또한 감군8)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9)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 환인씨(天帝 桓因氏) 또는 안파견(安巴堅)10)이라 하며, 7세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흑룡강 즉 흑수는 우리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우리의 강역임을 알게 한다. 과연 1965년 일본정부는 <간도협약>을 무효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국경은 다시 옛날로 되돌아간 셈이다. 한편 카톨릭의 바티칸 교황청에서 작성한 지도(1912년)에 보면 우리의 북방 국경선이 위에서 기록한 것처럼 압록강→토문강→송화강→아무르강으로 그려져 있고, 두만강 북쪽의 간도성 흑룡강성 및 길림성은 천주교 한국교구의 원사교구로 명시되어 있다.
※ 한국정사학회에 보관중인 파리(PARIS)에서 발행한 <르 까또리시즘 엔 꼬레(Le Catbolicisme En Coree>에 실린 우리 나라 지도 참고바람. <임승국>
後桓雄氏繼興奉天神之詔降于白山黑水之間鑿子井女井於天坪劃井地於靑丘持天符印主五事在世理化弘益人間
뒤에 한웅씨(桓雄氏)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子井女井>11)에 천평(天坪)12)을 마련하고 청구(靑邱)13)에 정지(井地)를 정했다. 천부인(天符印)14)을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五事>15)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在世理化>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다<弘益人間>.
立都神市國稱培達擇三七日祭天神忌愼外物閉門自修呪願有功服藥成仙劃卦知來執象運神命?靈諸哲爲輔納熊氏女爲后定婚嫁之禮以獸皮爲幣耕種有畜置市交易九域貢賦鳥獸率舞後人奉之爲地上最高之神世祀不絶神市之季有治尤天王恢拓靑邱傳十八世歷一千五百六十五年
또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16)이라 칭했다.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괘(卦)를 그어 올 것을 알며 상(象)을 잡아 신명(神命)을 움직였다. 또 군령과 제철(諸哲)들이 보필하도록 하시고 웅씨의 여인<熊氏女>17)을 거두어 후(后)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해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治尤天王)18)이 청구(靑丘)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렸다.
後神人王儉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其至神之德兼聖之仁乃能承詔繼天而建極巍蕩惟烈九桓之民咸悅誠服推爲天帝化神而帝之是爲檀君王儉復神市舊規設19)都阿斯達開國20)號朝鮮
뒤에 신인 왕검(神人 王儉)께서 불함산(不咸山)21)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갖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建極>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九桓)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檀君)22)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舊規>23)되찿고 서울을 아사달(阿斯達)24)에 설치하여 국호(國號)를 조선(朝鮮)25)으로 하여 나라를 열었다.
일설에는 백두산 서쪽 산기슭에 500리 벌판이 있는데 이곳을 북계룡이라 하며 앞날의 도읍지라 하니 혹 이곳을 이름인가? <임승국의 주>
檀君端拱無爲坐定世界玄妙得道接化?生命彭虞闢土地成造起宮室高矢主種稼臣智造書契奇省設醫藥那乙管版籍羲典卦筮尤作兵馬納菲西岬河伯女爲后治蠶淳?之治熙洽四表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26)를 얻어 여러 생명들을 두루 교화하였다.<接化?生命>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臣智)27)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겐 병마(兵馬)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菲西岬)28)의 하백녀(河伯女)를 거두어 후(后)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淳?之治>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丙辰周考時改國號爲大夫餘自白岳又徙於藏唐京仍設八條讀書習射爲課祭天爲敎田蠶是務山澤無禁罪不及?與民共議協力成治男有常職女有好逑家
皆蓄積山無盜賊野不見飢絃歌溢域檀君王儉自戊辰統國傳四十七世歷二千九十六年
병진년(B.C.425, 44세 구물 단군 원년), 주나라 고(考)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29)라 바꾸고 백악(白岳)으로부터 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 이에 팔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 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 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고 죄를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힘을 합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하였다.
단군왕검은 무진(B.C.2333)년부터 나라를 다스려서 47세를 전하여 2,096년을 누렸다.
壬戌秦始時神人大解慕漱起於熊心山
임술(B.C.239)년 진시황((秦始皇)(B.C.246~209)때 신인(神人)이신 대해모수(大解慕漱)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났다.
丁未漢惠時燕酋衛滿竊居西鄙一隅番韓準爲戰不敵入海而亡自此三韓所率之衆殆遷民於漢水之南一時群雄競兵於遼海之東至癸酉漢武時漢移兵滅右渠西鴨綠人高豆莫汗倡義興兵赤稱檀君
정미(B.C.194)년 한나라 혜제(惠帝)(B.C.195~188)때 연나라 추장이었던 위만(衛滿)이 은근히 서쪽 변두리 땅의 한 구석에 스며들었는데 번한(番韓)30)의 준(準 : 箕準)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닷길을 택해 멀리 망명했다. 이로부터 삼한(三韓)31)의 무리는 거의 한수(漢水)32)의 남쪽으로 옮겨갔으나 한때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해(遼海)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B.C.108)년 한나라의 무제(武帝) (B.C.141~87)때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右渠)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檀君)이라 칭했다.
乙未漢昭時進據夫餘故都稱國東明是乃新羅故壤也
을미(B.C.86)년 한나라 소제(昭帝)(B.C.87~74)때, 부여의 옛 도읍을 차지하여 동명(東明)33)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新羅)의 옛 땅34)이다.
至癸亥春正月高鄒牟亦以天帝之子繼北夫餘而興復檀君舊章詞解慕漱爲太祖始建元爲多勿是爲高句麗始組也
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高雛牟)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35)이라 하니 바로 고구려(高句麗)36)의 시조이다.
[ 주해보기 ]
1) ‘환(桓)’은 나라 이름이기 이전에 ‘태양’을 가리켰다. 이 문장의 주어로서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 또는 태양의 후예로 자처하는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문장의 해석이 전혀 달라진다.
즉 “吾桓建國最古”는 “우리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 또는 태양족의 후예가 나라를 세웠는데 가장 오랜 옛날이었다” 환(桓)은 ‘밝은 빛’ ‘해님’ ‘하느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출처 : 한배달>
한(韓)은 한반도 또는 한반도 토착민(土着民)을 뜻하는 용어이다. 한반도 토착민인 한(韓)은 B.C. 194년 이전에는 한반도 전 지역에 흩어져 살았으나, B.C. 194년 이후에는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지방에 살은 한(韓) 무리들은 만주에서 이주한 동옥저(東沃沮)와 동예(東濊) 무리들에게 밀려 남쪽으로 남하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평안도 지방에 살은 한(韓) 무리들은 일시 기자조선(箕子朝鮮) 유민(遺民)들에게 패하였으나, 곧 반격을 가하여 기자조선(箕子朝鮮) 유민들을 한수(漢水) 이남으로 쫓아 버리고 그 곳에 나라(樂浪)를 세웠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 사백력(斯白力) : 시베리아로 비정, 중국에서는 시베리아를 서백리아(西白利亞)로 표기하고 있다.
3) 홀로 변화한 신 : 獨化之神이라고 했는데 홀로 변화하여 신이 되었다는 뜻. 건곤(乾坤) 음양(陰陽) 곧 남녀의 배합 없이 저절로 변하여 이루어진 신인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독화지삼신(獨化之三神)이라 하여 국상입존(國常立尊)?국협추(퇴)존(國狹槌尊)?풍짐(침)순존(豊斟淳尊)의 삼신(三神)을 뜻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건너가서 세운 나라인 만큼 저들의 역사가 우리와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4) 큰 교화 : 권화(權化)라고 했으니 불교에서는 보살이 중행을 제도코저 임시로 몸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내시는 것. 또는 그 화신(化身)을 말한다. <삼성기 전>에 이런 불교의 용어가 쓰이는 것은 그것이 쓰여진 사회의 배경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5) ‘일(日)’을 ‘어느 날인가’로 해석하였는데, 여기서도 ‘일(日)’은 태양 또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 본문의 해석은 전혀 달라진다.
즉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분께서 어린아이 800명을 ‘검물(黑水 : 신의 강)과 ’흰 산(白山 : 흰 산)의 땅으로 내려보냈다.”로 해석될 수도 있다.
6) 흑수(黑水) : 만주 흑룡강성(黑龍江省)의 흑룡강(黑龍江) 혹은 바이칼 호수로 비정한다. 만주어의 살합연오라(薩合連烏拉), 러시아말로는 아무르, 강의 근원지는 둘인데 하나는 중국의 국경, 즉 외몽고 고객이객계(古喀爾喀界) 안의 긍특산(肯特山) 동쪽 기슭에 흐르는 오수하(敖嫂河)라 하는데 바로 원사(元史)의 주난하로 징기스칸이 일어난 땅이라 한다. 또 하나는 러시아령의 탁공토산(倬功土山)의 북쪽 인(因?達河)라 한다. 1912년 청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간도에 관한 폅약>에 의해서 한만국경선이 압록강↔두만강으로 정해진 것이며, 저 1712년에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의 기록 <공위토문서위압록>에 따르면 우리의 북쪽 국경선은 압록강→토문강→송화강→흑룡강(아무르강)으로 확대된다.
7) 백산(白山) : 중앙아시아 일대의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이라는 설과 백두산이라는 설이 있다. 임승국씨는 백두산으로 비정하는데 임승국씨는 <한단고기>에서 “백두산은 유사 이래로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또 최근 일부에서는 이 백산을 중국 감숙성의 태백산이라고 하는 학설을 퍼뜨리는 이도 있으나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백두산을 빼고 중국의 태백산이 백산이라고 함에는 보다 확실하고 확고한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이십오사>에 보이는 ‘백산’이나 ‘태백’이 의심없이 지금의 백두산임을 밝혀둔다.”고 말했다.
8) 감군(監?) : 중생을 보살피고 감독하는 임무를 띤 직책. 넓은 의미에서의 스승의 역할
9) 환국(桓國) : 문구상으로는 환한 하늘에 있는 나라 즉 하늘나라라는 뜻이나, 실제로는 고대에 구려(九黎) 무리들이 바이칼호 동쪽에 세운 나라의 명칭이다. 고기(古記)에 천해(天海 : 바이칼호)의 동쪽 땅(고대에 구려 무리들이 흑룡강과 백두산 사이로 남하하기 전에 거주한 곳)도 환국(桓國)으로 적혀 있고, 그곳의 임금도 환인(桓因)으로 적혀 있는 것은, 고대의 구려 무리들이 해가 뜨거나 지는 곳도 하늘나라의 일부로 보고, 하늘나라 임금(桓因)이 밤에는 천해의 동쪽 땅에서 쉬다가 아침이 되면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정사를 돌본다고 믿은 신앙과 관련이 있다. 일부 사람들은 환국(桓國)을 "한국"으로, 환인(桓因)을 "한인"으로, 환웅(桓雄)을 "한웅"으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한단고기"로 읽고 있다.
어떤 사람은 "桓國", "桓因", "桓雄"을 "환국", "환인", "환웅"이라 읽는 것은, 해(태양)를 국기의 문양으로 사용하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고대에 왕검조선(王儉朝鮮)의 주체세력이었던 것처럼 주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읽는 것이므로, 우리민족은 "桓"을 "환"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한(韓) 민족을 뜻하는 "한"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왕검조선(王儉朝鮮)의 주체세력은 한(韓) 민족이지 일본 민족이 아니라는 취지로 그런 주장을 하였다. 일본인들이 국기의 문양으로 해(태양)을 사용한 것은 고대에 해와 달을 숭배한 구려(부여) 무리들 중 일부가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 때문에 "桓"을 "환"으로 발음하지 않고 "한"으로 발음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은 "桓因"은 "하느님"이라는 고대 우리말을 음을 따라 한자로 적은 것이고, "桓"은 "하늘"이 뒤에 "하느"로 변했다가 다시 "한"으로 변한 것이므로, 하늘을 뜻하는 "한"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분은 대종교의 신리대전 주해에 "桓"을 "한"으로 읽으라는 주해가 있는 것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고기(古記)의 용어는 우리민족의 고대신앙(古代信仰)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 우리민족은 온 세상의 만물을 자라게 하는 환한 빛이 나오는 근원을 해님으로 보고, 광명(光明)을 숭상하여 해님을 하늘나라 임금으로 받들고 해님을 환인(桓因.桓仁)이라 불렀다. 즉 고기(古記)에 나오는 "桓"은 "하늘"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해님:天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因)은 "님"이라는 뜻이 아니고 밝음의 근본이라는 뜻이며, 인(仁)은 환님(하느님)이 어짐으로 세상을 다스렸다는 뜻이다. <환단고기> 삼성기에는 "우리 환국(桓國)의 건국은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神)이 있어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神)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후략"라고 적혀 있는데, 위 문구에서 보듯이 "환(桓)"은 밝은 빛 즉 해님을 가리킨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10) 안파견(安巴堅) :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의 이름. 아버지를 한문으로 표기한 말.
<임승국의 주> : 중국 발음으로는 ‘안파첸’인 바, 모름지기 우리말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발음일 것이다. 요(遼)의 시조를 ‘아보기’라 하는데 만주 말의 발음으로는 어김 없이 아버지가 된다. 요를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라고 하거니와 국왕을 아버지라고 발음하는 저들의 말을 통해 그것을 짐작케 한다. 안파견 역시 그런 각도로 해석함이 좋을 것 같다.
11) 사람 모이는 곳<子井女井> : 우물이나 밭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므로 이르는 말.
12) 천평(天坪) : 백두산 정상의 연못을 천지라 하니 백두산 정상의 어떤 땅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13) 청구(靑邱) : 산동반도의 동래지방으로 비정한다. 과거 이 청구를 막연히 한반도라 생각해 왔으나 크게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저 상고사의 대상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동양의 온갖 고전이 말하는 동이(東夷) 조선(朝鮮) 청구(靑邱)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원대륙 안에 있는 동이 조선 청구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십오사>를 적은 사마천을 비롯한 모든 사가들이 황해 바다 건너에 한반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지리 지식이 유치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진인을 만났다.(黃帝동도청구 과풍산 견자부진인」
14) 천부인(天符印) : 거울, 북, 칼이라는 설과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15) 다섯 가지 일<五事> : 穀?命?病?刑?善惡
16) 배달국(白達國→倍達國 : 일명 檀國 또는 神市) : 고대에 18명의 환웅(桓雄)이 다스린 시대를 말한다. 고기에는 배달국(培達國)이 일명 단국(檀國) 또는 신시(神市)로도 적혀 있다. 이 신시(神市)는 시조환웅(始祖桓雄)이 세운 배달국(培達國)의 초기 도읍지(都邑地) 이름 또는 배달국(培達國)의 다른 이름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17) 웅씨의 여인(熊氏女 : 熊女) : 지신족의 여인.
18) 치우천왕(治尤天王) : 14세 자오지 한웅, 원래는 蚩尤로 적는다.
19) 설(設) : <단군세기>에는 ‘립(立)’으로 기록되어 있다.
20) 개국(開國) : <단군세기>에는 ‘건국(建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21) 불함산(不咸山) : 하르빈 남쪽 完達山으로 비정
22) 단군(檀君) : "단(檀)"은 "밝달"이라는 고대말을 뒤에 한자로 적은 것으로, "밝"은 밝은 빛을 내는 해님과 달님 즉 천제(天帝)를 뜻하고, "달"은 땅을 뜻하는 고대말이다. 즉 "밝달"은 밝은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군(君)"은 아들을 뜻하는 한자이다. 따라서 단군(檀君)은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천제(天帝)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다. 고대 우리민족은 하늘나라 임금인 환인이 아들 환웅과 무리 3천명을 지상세계로 내려보냄으로써 우리민족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왕(王)이 된 것을 천제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단군(檀君)은 천제(天帝)와의 관계는 아들(君)이나, 지상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임금(帝)이므로, 고기에는 단군(檀君)이 단제(檀帝)로도 적혀 있다.
고기(古記)에는 단(檀) 대신에 배달(白達, 倍達)로도 적혀 있는데, 배(白)는 밝은 빛을 내는 해님과 달님을 뜻하고, 달(達)은 땅이라는 뜻의 고대말이므로, 단(檀)과 배달(白達)은 같은 뜻이다. 고대에는 해와 달을 뜻하는 "밝"을 "발" 또는 "박"으로 발음하였는데, 이를 발음대로 한자로 "發" "渤" "勃" "博" "薄" 등으로 적었다.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發" "渤" "勃" "博" "薄" 지역은 환족(桓族)1)이 살았던 지역이다. 고대에는 발(渤) 무리가 배달국의 치우천황 이후부터 중국의 북부와 동부 지방에도 진출하여 살고 있었던데, 발해(渤海)는 발 무리가 사는 곳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라 이름 발해는 고대말 "발(밝다는 뜻의 태양)"과 "해(태양)"가 모두 해님(太陽)을 뜻하므로, 발해는 해님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辰國)라는 뜻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3) 구규(舊規) : 옛 법규, 즉 신시시대의 법규를 말한다.
24) 아사달(阿斯達) : 아사=??(처음의, 새로운) + 달(땅)
고대말 "아사"는 새로운 또는 처음이라는 뜻이고, "달"은 땅이라는 뜻이다. 즉 아사달은 새(新) 땅이라는 뜻으로 사로벌, 신라(新羅)와 같은 뜻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5) 조선(朝鮮) : 중국인들은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땅을 조선(朝鮮)이라 불렀는데, "朝"는 해가 뜨는 동쪽을 뜻하고, "鮮"은 발해연안의 어업족을 가리키는 어(魚)와, 그 북쪽의 유목족을 가리키는 양(羊)을 합성하여 만든 글자이다. 중국인들이 초기에 "朝鮮"이라 부른 지역은 해가 뜨는 곳에 있는 중국의 동쪽 즉 발해연안과 그 북쪽 유목 지역이다. 후에 중국의 영역이 동진(東進) 함에 따라 조선이라 부른 지역의 위치도 점차 동진(東進) 하여 나중에는 한반도까지 조선이라 불렀다. 따라서 중국의 사서에 조선이 부른 지역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조선이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부른 때는 B.C. 2333년에 왕검이 배달국 지역의 구려 무리들을 통합하여 세운 왕검조선(王儉朝鮮), .B.C. 324년에 왕검조선의 번한(番汗) 지역에 살은 수유족의 우두머리 기후가 왕검조선의 번한 지역을 장악하여 세운 기자조선(箕子朝鮮), B.C. 194년에 위만이 기자조선을 빼앗아 세운 위만조선(衛滿朝鮮), 그리고 이성계가 세운 이씨조선이다. 본서에서 조선 앞에 나라를 세운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것은 다른 조선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본래의 나라 이름은 모두 조선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6) 깊고 묘한 도(玄妙得道) : 儒?佛?仙 三敎를 다 포함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도, 즉 신선도를 말한다.
27) 신지(臣智) : 神誌의 誤字인 것으로 추정.
28) 비서갑(菲西岬) : 하르빈으로 비정
29) 불여(不黎) 일명 부여(夫餘) : 고대의 구려 무리들은 자신들을 자칭 천제(天帝)가 있는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라고 칭하였는데, 이 말을 뒤에 한자로 적으면서 천제는 "불(不)"로, 무리는 "여(黎)"로 적어 불여(不黎)로 적었다. 이 불여를 뒤에 부여로 읽고 음을 따라 "夫餘"로 적었다. 산해경에는 부여가 불여(不與)로 적혀 있는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는 것을 한자로 적음에 있어 불(不)자 대신에 환(桓), 고(高), 고(古), 백(白), 화(火), 화(華), 명(明), 일(日), 위(尉. 慰), 위(魏), 불(弗) 등으로 적었고, 여(黎. 與)자 대신에 이(離.伊), 여(麗.余), 로(虜) 등으로도 적었다. 위와 같이 부여(夫餘)는 특정한 부족 명칭이 아니고 구려(九黎) 지역에 거주하면서 해님과 달님을 숭배한 무리들을 총칭하여 부른 명칭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송화강(松花江) 유역에 살던 특정한 무리만 부여(夫餘)로 적혀 있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0) 번한(番汗) : B.C. 2333년부터 B.C. 323년까지 왕검조선(王儉朝鮮)의 서?남쪽을 다스린 비왕(裨王)의 명칭이다. 원래는 새(鳥) 임금이라는 뜻으로 번한(飜汗)으로 적다가 나중에 글자가 바뀌어 번한(番汗)으로 적었다. 새(鳥) 임금이라는 칭호는 고구려(高九黎) 때 오간(烏干)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사서에는 번한(番汗) 지역이 조이(鳥夷), 오환(烏桓), 연(燕) 등 주로 새(鳥)와 관련된 이름으로 적혀 있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1) 삼한(三汗. 三韓) : 삼한(三汗)은 왕검조선의 단제(檀帝)인 진한(辰汗)과 비왕(裨王)인 마한(馬汗), 번한(番汗)을 합쳐서 부른 명칭이다. 삼한(三韓)은 B.C. 194년 이후에 한수 남쪽에 존재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합쳐서 부른 명칭이다. 삼한(三汗)과 삼한(三韓)은 존재시기와 영역이 전혀 틀린다. 일부 古記에는 三汗, 辰汗, 番汗, 馬汗이 三韓, 辰韓, 馬韓으로도 적혀 있다. 이때의 韓은 한반도라는 의미가 아니고 임금(汗)이라는 의미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2) 한수(漢水) : 난하(?河) 또는 황하(黃河)라는 설이 있다.
33) 동명(東明) : 고대의 구려 무리들은 해와 달을 하늘나라 임금이라 믿었고, 해와 달이 동쪽에서 떠올라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 준다고 하여 해와 달을 동명(東明)이라 불렀다. 고대에 구려 무리의 우두머리들은 자신을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칭하였는데, 동명은 천제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사용한 칭호(稱號)이다.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다. <한단고기(桓檀古記)> 북부여기(北夫餘紀)에 적혀 있는 동명(東明)의 본명은 고두막(高豆莫)이고,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적혀 있는 동명의 본명은 고주몽(高朱蒙)이다. 동명(東明)은 천제(天帝)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사용한 칭호(稱號)이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분들은 삼국사기만 읽고 고구려(북부여)의 고두막(高豆莫) 단제(檀帝)와 (고주몽)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高朱蒙)을 동일인물로 착각하였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4) 신라(新羅)의 옛 땅 : 몽고 할힌골 강 유역
35) 다물(多勿 : 땅을 다시 찾는다는 뜻.
36) 고구려(高句麗 ; 高九黎) : 임술년(B.C. 239)에 해모수(解慕漱)는 나라를 세우고 구려(九黎) 앞에 천제(天帝)를 뜻하는 고(高)자를 붙여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九黎)라 불렀다. 즉 해모수(解慕漱)때부터 구려(九黎)를 고구려(高九黎)로 명칭을 바꾸어 불렀다. 이 고구려(高九黎)는 왕검조선(王儉朝鮮)이 멸망(B.C. 238)한지 6년 후인 기사년(B.C. 232)에 왕검조선(王儉朝鮮) 때의 진한(辰汗)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 뒤 동명(東明)이 일어나 을미년(B.C. 86)에 해모수계 고구려 무리를 지금의 길림 방면으로 밀어내고 도성(都城)2)으로 들어와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九黎) 또는 북부여(北夫餘)라 불렀다. 이때 동명계 고구려 무리에 밀리어 길림 방면으로 이동한 해모수계 고구려 무리를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 또는 동부여(東夫餘)라 불렀다.
그 뒤 B.C. 58년에 고주몽이 고구려의 대통(大統)을 승계하였으나, 부여인들이 죽이려 하므로 비류수 상류로 도망가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불렀는데, 고주몽이 세운 (고주몽)고구려는 나라 이름을 한자로 적음에 있어 "高九黎"로 적지 않고 "高句麗"로 적었다. 1979년에 충주에서 발견된 중원 고구려비에 "五月中高麗太王"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고구려 유물에서도 "高麗"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고주몽)고구려는 나라 이름으로 "高句麗"와 "高麗"를 모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대조영(大祚榮)이 건국한 발해(대진국)의 4대 문왕이대흥 21년에 일본국왕에게 보낸 국서에는 "高句麗國王大欽茂(고구려국왕대흠무)"로, 그 답서에는 "高麗國王大欽茂(고려국왕대흠무)"로 적혀 있다. 이로 보아 발해(대진국)도 "高句麗" 또는 "高麗"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하였다.
고기(古記)에는 해모수계 고구려는 <北夫餘紀> 상권(上卷)에 적혀 있고, 동명계 고구려는 <北夫餘紀> 하권(下卷)에 적혀 있으며, 고주몽계 고구려는 <太白逸事> 高句麗國本紀에 적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고구려의 시조는 해모수(解慕漱)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는 것은 고주몽(高朱蒙)이 세운 고구려가 해모수(解慕漱)가 세운 고구려를 승계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에는 해모수계 고구려, 동명계 고구려, 고주몽계 고구려가 고구려(高句麗), 구려(句麗), 고려(高麗) 등으로 적혀 있다. 그렇지만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는 고주몽(高朱蒙)이 세운 나라의 명칭만 고구려(高句麗)로 적혀 있다. 그 때문에 <삼국사기(三國史紀)>만 읽은 사람들은 중국의 사서에 B.C. 37년 이전에 고구려라는 명칭이 왜 나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7) 거발한(居發桓) : 개국시조에게만 사용하는 특별한 이름으로서 신앙적 의미가 내포된 신격화된 호칭이며, 천, 지, 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호칭이다. 온 누리에 크게 밝은 천제한인.
한단고기 - [삼성기전, 상편2 (三聖記全 上篇 2)]
三神山爲天下之根山以三神名者蓋自上世以來咸信三神降遊於此化宣三界三百六十萬之大周天其體不生不滅其用無窮無限其檢理有時有境神之至微至顯神之如意自在終不可得以知也其迎也0然而如有見其獻也愾然而如有聞其讚也欣然而如有賜其誓也肅然而如有得其送也恍然而如有慊是爲萬世人民之所以認識追仰於順和信悅之域者也
삼신산(三神山)을 천하의 뿌리산이라 한다. 삼신으로 이름 삼음은 대저 상세 이래로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으시고 삼계(三界)를 널리 감화하심을 믿기 때문이라. 360만의 큰 둘레의 하늘은 그 체(體)가 불생불멸이시며 그 용(用)이 무궁무근이나, 그의 법식과 이치는 때가 있으며 장소가 있으니 신의 지극히 자상하고 지극히 현명하여 여의자재(如意自在) 하심은 끝내 이를 알 수가 없다. 그를 맞이함에는 흡사 눈앞에 보이는 듯이 하고, 그 바치는 일은 문득 들리는 바 있는 것 같이 하고, 그 찬탄함에는 기꺼이 하사 받음이 있는 듯이 하고, 그 서약함에는 숙연하여 얻는 것이 있는 듯 하며, 물건을 바칠 때에도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침이니, 이렇게 만세인민이 인식추앙(認識追仰)하여 모두가 다 기쁘게 믿는 것이다.
三神惑說有以三爲新新爲白神爲高高爲頭故亦稱白頭山又云蓋馬奚摩離之轉音古語謂白爲奚謂頭爲摩離也白頭山之名亦起於是矣
삼신산에 어떤 설에서「삼(三)은 신(新)이 되고 신(新)은 또 백(白)으로 되며, 백(白)은 신(神)이 되고 신(神)은 고(高)가 되고 고(高)는 바로 두(頭)가 된다. 때문에 또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하고, 또 말하기를「개마(蓋馬)는 해마리(奚摩離)의 전음(轉音)이다.」라고 했다. 고어에는 흰 것을 해(奚)라 하고 두(頭)를 마리(摩離)라고 하니 백두산의 이름도 역시 이에서 생긴 것이다.
人類之祖曰那般初與阿曼相偶之處曰阿耳斯0亦稱斯0麗阿也日夢得神啓而自成昏禮明水告天而環飮山南朱鵲來喜水北神龜呈瑞谷西白虎守0溪東蒼龍升空中有黃熊居之天海金岳三危太白本屬九桓而蓋九皇六十四民皆其後也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사타(阿耳斯?)라 한다. 또 사타려아(斯?麗阿)라고도 한다. 어느 날 꿈에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놓고 하늘에 알린 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는데, 산남(山南)의 주작(朱雀)이 날아와서 즐기고, 수북(水北)의 신구(神龜)가 상서(祥瑞)를 나타내고, 곡서(谷西)엔 백호가 산모퉁이를 지키고, 계동(溪東)엔 창룡(蒼龍)이 하늘로 승천하고, 가운데 황웅(黃熊)이 있었다. 천해(天海), 금악(金岳), 삼위(三危), 태백(太白)은 본디 구한(九桓))에 속한 것이며 9황(皇)의 64민(民)은 모두 그의 후예이다.
然一山一水各爲一國群女群男亦相分境從境而殊國別積久創世條序後無得究也久而後有帝桓仁者出爲國人所愛戴曰安巴堅亦稱居發桓也蓋所謂安巴也堅乃繼天立父之名也所謂居發桓天地人定一之號也自是桓仁兄弟九人分國而治是爲九皇六十四民也
그러나 일산일수(一山一水)가 각각 한나라가 되매, 사람들도 역시 서로 따라가 경계를 나누니 경계에 따라 나라를 달리하게 되었다. 나라를 달리 한지 오래되니 창세의 조서(條序)의 뒤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장구한 세월 뒤에 한인(桓仁)이란 분이 나타나셔서 여러 사람들의 사랑으로 추대되어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하고 거발한(居發桓)37)이라고도 하였다. 이른바 안파견이라 함은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의 이름이고, 거발한이라 함은 천, 지, 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호칭이다. 이로부터 한인(桓仁)의 형제 아홉 사람은 나라를 나누어 다스렸으니, 이를 9황(皇) 64민(民)이라 한다.
竊想三神生天造物桓仁敎人立義自是子孫相傳玄0得道光明理世旣有天地人三極大圓一之爲庶物原義則天下九桓之禮樂豈不在於三神古祭之俗乎
그윽이 생각해 보건대 삼신은 하늘에 태어나시사 물건을 만드시고, 한인은 사람을 가르치어 의를 세우시니 이로부터 자손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현묘한 가운데 도를 얻으시고 광명한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시니라. 이미 천(天), 지(地), 인(人) 삼극(三極)은 있었고, 대원일(大圓一)은 이것이 만물의 원리가 되었으니 곧 천하 구한(九桓))의 예악(禮樂)이 어찌 삼신고제(三神古帝)의 풍속에 없었을 손가?
傳曰三神之後稱爲桓國桓國天帝所居之邦又曰三神在桓國之先那般死爲三神夫三神者永久生命之根本也故曰人物同出於三神以三神爲一源之祖也
전(傳)에서 말한다.
「삼신의 후(後)를 일러 한국(桓國)이라 하니 한국은 천제께서 계시는 곳의 나라니라.」
또 가로되,「삼신은 한국의 선대(先代)에 있었고 나반(那般)이 죽어 삼신(三神)이 되셨으니 그 삼신이라 함은 영구생명의 근본이라.」고 하였으니, 그래서 또 말한다.
「사람과 물건이 함께 삼신에게서 나왔으니, 삼신으로써 한 근원의 조상으로 삼느니라.」
桓仁亦代三神爲桓國天帝後稱那般爲大先天桓仁爲大中天桓仁與桓雄治尤爲三皇桓雄稱大雄天治尤爲智偉天乃黃帝中經之所由作也
한인도 역시 삼신을 대신하여 한국의 천제가 되었다. 뒤에 나반을 대선(大先)의 천(天)이라 하고, 한인을 대중(大中)의 천(天)이라 하고, 한인, 한웅, 치우를 삼황(三皇)이라 하며, 한웅을 대웅(大雄)의 천(天)이라 하고, 치우(蚩尤)를 지위(智偉)의 천(天)이라 한다. 곧《황제중경》에서 비롯된 유래이다.
三光五氣皆在視廳感覺而世級日進0火焉發語焉造字焉優勝劣敗之相競始乎起耳熊族之中有檀國最盛
삼광오기(三光五氣)가 모두 시청 감각에 달려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불을 피우고 말을 하게 되고 글자를 만들었으니, 뛰어나고 열등하여 이기고 지는 다툼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웅족(雄族) 가운데 단국(檀國)이 있어 가장 강성했다.
王儉亦自天而降來御于不咸之山國人共立爲檀君是謂檀君王儉也生而至神兼聖圓滿統合九桓三韓管境復神市舊規天下大治擧世視同天神自是崇報之禮永世不替者也
왕검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서 불함산에 사시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받들어, 단군으로 모시어 이를 단군왕검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서 구한(九桓))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을 모두 통합하였다. 신시(神市)의 옛 규칙을 회복하니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서 온 세상이 그를 천신과 같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숭보(崇報)의 예(禮)는 영세토록 바뀌지 않게 되었다.
蓋九桓之族分爲五種以皮膚色貌爲別也皆其俗就實究理策事而求其是則同也夫餘爲俗水旱兵疾國王有責忠邪存亡匹夫同歸是其一證也
대저 구한의 족속은 나뉘어 5종이 되고 피부의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구별을 짓게 되었다. 그 풍속은 모두다 실제에 임하여 이치를 찾고 일을 계획하여 그것이 옳음을 구함이 같았다. 부여는 풍속에 가뭄과 병란 및 질병은 국왕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고 충성됨과 사악함과 살고 죽음은 필부에게도 같이 돌아오는 법이라 하니, 이것이야말로 한 증거가 된다.
色族如黃部之人皮膚稍黃鼻不隆頰高髮黎眼平靑黑白部之人皮膚?頰高鼻隆髮如灰赤部之人皮膚銹銅色鼻低而端廣0後傾髮捲縮貌類黃部之人藍部之人一云風族又棕色種其皮膚暗褐色貌猶黃部之人也
색족(色族)은 어떤 것일까? 황부인(黃部人)은 피부가 좀 누렇고 코는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머리털은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흑색이요, 백부인(白部人)은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부인(赤部人)은 피부가 녹슨 구리색이요, 코는 낮아 뭉툭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부인(藍部人)은 풍족(風族)이라고도 하며 또 야자나무 색깔의 인종이라고 한다. 그 피부는 암갈색으로 모양은 오히려 황부인과 같다.
三韓古俗皆十月上旬國中大會築圓壇而祭天祭地則方丘祭先則角木山像雄常皆其遺法也祭天韓必自祭其禮甚盛可知也是日遠近男女皆以所産薦供鼓吹百?是俱衆小諸國皆來獻方物珍寶環積邱山蓋爲民祈禳乃所以繁殖管境而蘇塗祭天乃九黎敎化之源也自是責禍善隣有無相資文明成治開化平等四海之內莫不崇飾祀典者也
삼한에 옛 풍속이 있는바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지낸다. 땅에 제사지냄을 방구(方丘)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지냄은 각목(角木)이라 하나니, 산에 웅상(雄常)의 상(像)을 만듦은 모두 그 유법(遺法)이다. 하늘에 제사지냄에 있어서 반드시 한(韓)(임금)이 몸소 제 지내니 그 예법이 매우 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날 멀리 가까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생산한 것을 바치고는 북 치고 나팔 불며 온갖 놀이를 벌이고, 여러 작은 나라들이 찾아와 특산물을 바치니 진기한 것들이 언덕과 산처럼 둥그렇게 쌓인다. 대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곧 관경(管境)을 번식케 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도(蘇塗)의 제천(祭天)은 구려(九黎)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로부터 화를 당하여 함께 힘쓰고 이웃을 위하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 문명은 나라를 이루고 개화 평등하여 온 세상에 제사의 예를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祝兒之生曰三神祝禾之熱曰業山爲群生通力之所業爲生産作業之神故亦稱業主嘉利發願岱土曰土主大監發願家宅曰成造大君亦歲成嘉福之神也墓園漁獵戰陣出行皆有祭祭必擇齋以利成也蘇塗之立皆有戒忠孝信勇仁五常之道也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삼신(三神)이라 하고 벼가 익은 것을 축하하여 업(業)이라 하였다. 산(山)을 군생통력(群生通力)의 장소라 하고 업(業)을 생산작업의 신(神)이라 한다. 때문에 또한 업주가리(業主嘉利)라고도 한다. 집터에 발원하면 토주대감(土主大監)이라 하고 집에 발원하면 성조대군(成造大君)이라 하니 또한 해마다 좋은 복을 이루는 신이다. 묘자리를 쓸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진을 칠 때, 길을 떠날 때, 모두 각각 제(祭)가 있으니 제(祭)는 반드시 날짜를 골라 재(齋)를 올려야 복을 이루는 것이라.
蘇塗之側必立0堂使未婚子弟講習事物蓋讀書習射馳馬禮節歌樂拳搏0術釗六藝之類也
소도(蘇塗)가 서면 언제나 계(戒)가 있나니 바로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오상(五常)의 길이니라. 소도의 곁에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격투기, 검술 등의 여섯 가지 기예를 말한다.
諸邑落皆自設三老三老亦曰三師有賢德者有財施者有識事者皆師事之是也又有六正乃賢佐忠臣良將勇卒明師德友是也又殺生有法上自國王下至庶民須自擇時與物而行之一不濫殺自古夫餘有馬不乘禁殺放生者亦其義也故不殺宿不殺卵是擇時也不殺幼不殺益是擇物也重物之義可謂至矣
모든 부락에서는 스스로 삼로(三老)를 모셨으니, 삼로는 또 삼사(三師)라고도 한다. 어진 덕을 갖춘 자가 있고 재물을 베푸는 자, 지혜를 갖춘 자가 있으니, 누구나 그들에게 사사함이 이와 같다. 또 육정(六正)이 있는바 곧 현좌(賢佐), 충신(忠臣), 양장(良將), 용졸(勇卒), 명사(名師), 덕우(德友)가 그들이니라. 또 살생에 법이 있으니, 위론 국왕으로부터 밑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스스로 때와 물건을 가려서 했다. 그리하여 살생을 함에 있어 첫째로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나니, 옛부터 부여에 말이 있어도 타지 않고 죽이는 것을 금하고 방생한다 함은 역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깃든 짐승은 죽이지 않으며 알을 품은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함은 그 번식할 때를 가려서 죽이지 않기 때문이라. 어린 것을 죽이지 않고, 이로운 짐승을 죽이지 않고 살림은 그 짐승의 종류를 가림이라. 물건을 중하게 여김이 이처럼 지극했다 할 것이니라.
源花稱女郞男曰花郞又云天王郞自上命賜鳥羽冠加冠有儀注時封大樹爲桓雄神像而拜之神樹俗謂之雄常常謂常在也
원화(源花)는 여랑(女郞)을 말하고 남자를 화랑(花郞)이라 하며 또 천왕랑(天王郞)이라고도 하니,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하사 받는다. 모자를 쓰는 데에도 의식이 있다. 주해에 이르기를「때에 큰 나무를 모시어 한웅의 신상(神像)이라 하고 이에 경배한다. 신령스런 나무는 이를 웅상(雄常)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상(常)은 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니라.
河伯是天河人那般之後也七月七日卽那般渡河之日也是日天神命龍王召河伯入龍宮使之主四海諸神天河一云天海今曰北海是也
하백(河伯)은 천하(天河)의 사람으로 나반(那般)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나반이 강을 건너는 날이다. 이날 용왕에게 명하여 하백을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이로 하여금 사해의 뭇신을 주관케 하시느니라. 천하는 다른 이름으로 천해(天海)라고도 한다. 지금의 북해(北海)가 바로 그것이다.
天河注曰天道起於北極故天一生水是謂北水蓋北極水精子所居也
천하의 주에 가로되「천도(天道)는 북극(北極)에서 일어났다. 고로 천일(天一)의 물을 낸다. 이를 북수(北水)라 한다.」라고 했다. 대저 북극(北極)은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다.
[주해보기]
1) ‘한(桓)’은 나라 이름이기 이전에 ‘태양’을 가리켰다. 이 문장의 주어로서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 또는 태양의 후예로 자처하는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문장의 해석이 전혀 달라진다.
즉 “吾桓建國最古”는 “우리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 또는 태양족의 후예가 나라를 세웠는데 가장 오랜 옛날이었다” 환(桓)은 ‘밝은 빛’ ‘해님’ ‘하느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출처 : 한배달>
한(韓)은 한반도 또는 한반도 토착민(土着民)을 뜻하는 용어이다. 한반도 토착민인 한(韓)은 B.C. 194년 이전에는 한반도 전 지역에 흩어져 살았으나, B.C. 194년 이후에는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지방에 살은 한(韓) 무리들은 만주에서 이주한 동옥저(東沃沮)와 동예(東濊) 무리들에게 밀려 남쪽으로 남하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평안도 지방에 살은 한(韓) 무리들은 일시 기자조선(箕子朝鮮) 유민(遺民)들에게 패하였으나, 곧 반격을 가하여 기자조선(箕子朝鮮) 유민들을 한수(漢水) 이남으로 쫓아 버리고 그 곳에 나라(樂浪)를 세웠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 사백력(斯白力) : 시베리아로 비정, 중국에서는 시베리아를 서백리아(西白利亞)로 표기하고 있다.
3) 홀로 변화한 신 : 獨化之神이라고 했는데 홀로 변화하여 신이 되었다는 뜻. 건곤(乾坤) 음양(陰陽) 곧 남녀의 배합 없이 저절로 변하여 이루어진 신인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독화지삼신(獨化之三神)이라 하여 국상입존(國常立尊)?국협추(퇴)존(國狹槌尊)?풍짐(침)순존(豊斟淳尊)의 삼신(三神)을 뜻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건너가서 세운 나라인 만큼 저들의 역사가 우리와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4) 큰 교화 : 권화(權化)라고 했으니 불교에서는 보살이 중행을 제도코저 임시로 몸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내시는 것. 또는 그 화신(化身)을 말한다. <삼성기 전>에 이런 불교의 용어가 쓰이는 것은 그것이 쓰여진 사회의 배경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5) ‘일(日)’을 ‘어느 날인가’로 해석하였는데, 여기서도 ‘일(日)’은 태양 또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 본문의 해석은 전혀 달라진다.
즉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분께서 어린아이 800명을 ‘검물(黑水 : 신의 강)과 ’흰 산(白山 : 흰 산)의 땅으로 내려보냈다.”로 해석될 수도 있다.
6) 흑수(黑水) : 만주 흑룡강성(黑龍江省)의 흑룡강(黑龍江) 혹은 바이칼 호수로 비정한다. 만주어의 살합연오라(薩合連烏拉), 러시아말로는 아무르, 강의 근원지는 둘인데 하나는 중국의 국경, 즉 외몽고 고객이객계(古喀爾喀界) 안의 긍특산(肯特山) 동쪽 기슭에 흐르는 오수하(敖嫂河)라 하는데 바로 원사(元史)의 주난하로 징기스칸이 일어난 땅이라 한다. 또 하나는 러시아령의 탁공토산(倬功土山)의 북쪽 인(因?達河)라 한다. 1912년 청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간도에 관한 폅약>에 의해서 한만국경선이 압록강↔두만강으로 정해진 것이며, 저 1712년에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의 기록 <공위토문서위압록>에 따르면 우리의 북쪽 국경선은 압록강→토문강→송화강→흑룡강(아무르강)으로 확대된다.
7) 백산(白山) : 중앙아시아 일대의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이라는 설과 백두산이라는 설이 있다. 임승국씨는 백두산으로 비정하는데 임승국씨는 <한단고기>에서 “백두산은 유사 이래로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또 최근 일부에서는 이 백산을 중국 감숙성의 태백산이라고 하는 학설을 퍼뜨리는 이도 있으나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백두산을 빼고 중국의 태백산이 백산이라고 함에는 보다 확실하고 확고한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이십오사>에 보이는 ‘백산’이나 ‘태백’이 의심없이 지금의 백두산임을 밝혀둔다.”고 말했다.
8) 감군(監?) : 중생을 보살피고 감독하는 임무를 띤 직책. 넓은 의미에서의 스승의 역할
9) 환국(桓國) : 문구상으로는 환한 하늘에 있는 나라 즉 하늘나라라는 뜻이나, 실제로는 고대에 구려(九黎) 무리들이 바이칼호 동쪽에 세운 나라의 명칭이다. 고기(古記)에 천해(天海 : 바이칼호)의 동쪽 땅(고대에 구려 무리들이 흑룡강과 백두산 사이로 남하하기 전에 거주한 곳)도 환국(桓國)으로 적혀 있고, 그곳의 임금도 환인(桓因)으로 적혀 있는 것은, 고대의 구려 무리들이 해가 뜨거나 지는 곳도 하늘나라의 일부로 보고, 하늘나라 임금(桓因)이 밤에는 천해의 동쪽 땅에서 쉬다가 아침이 되면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정사를 돌본다고 믿은 신앙과 관련이 있다. 일부 사람들은 환국(桓國)을 "한국"으로, 환인(桓因)을 "한인"으로, 환웅(桓雄)을 "한웅"으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한단고기"로 읽고 있다.
어떤 사람은 "桓國", "桓因", "桓雄"을 "환국", "환인", "환웅"이라 읽는 것은, 해(태양)를 국기의 문양으로 사용하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고대에 왕검조선(王儉朝鮮)의 주체세력이었던 것처럼 주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읽는 것이므로, 우리민족은 "桓"을 "환"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한(韓) 민족을 뜻하는 "한"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왕검조선(王儉朝鮮)의 주체세력은 한(韓) 민족이지 일본 민족이 아니라는 취지로 그런 주장을 하였다. 일본인들이 국기의 문양으로 해(태양)을 사용한 것은 고대에 해와 달을 숭배한 구려(부여) 무리들 중 일부가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 때문에 "桓"을 "환"으로 발음하지 않고 "한"으로 발음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은 "桓因"은 "하느님"이라는 고대 우리말을 음을 따라 한자로 적은 것이고, "桓"은 "하늘"이 뒤에 "하느"로 변했다가 다시 "한"으로 변한 것이므로, 하늘을 뜻하는 "한"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분은 대종교의 신리대전 주해에 "桓"을 "한"으로 읽으라는 주해가 있는 것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고기(古記)의 용어는 우리민족의 고대신앙(古代信仰)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 우리민족은 온 세상의 만물을 자라게 하는 환한 빛이 나오는 근원을 해님으로 보고, 광명(光明)을 숭상하여 해님을 하늘나라 임금으로 받들고 해님을 환인(桓因.桓仁)이라 불렀다. 즉 고기(古記)에 나오는 "桓"은 "하늘"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해님:天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因)은 "님"이라는 뜻이 아니고 밝음의 근본이라는 뜻이며, 인(仁)은 환님(하느님)이 어짐으로 세상을 다스렸다는 뜻이다. <환단고기> 삼성기에는 "우리 환국(桓國)의 건국은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神)이 있어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神)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후략"라고 적혀 있는데, 위 문구에서 보듯이 "환(桓)"은 밝은 빛 즉 해님을 가리킨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10) 안파견(安巴堅) :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의 이름. 아버지를 한문으로 표기한 말.
<임승국의 주> : 중국 발음으로는 ‘안파첸’인 바, 모름지기 우리말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발음일 것이다. 요(遼)의 시조를 ‘아보기’라 하는데 만주 말의 발음으로는 어김 없이 아버지가 된다. 요를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라고 하거니와 국왕을 아버지라고 발음하는 저들의 말을 통해 그것을 짐작케 한다. 안파견 역시 그런 각도로 해석함이 좋을 것 같다.
11) 사람 모이는 곳<子井女井> : 우물이나 밭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므로 이르는 말.
12) 천평(天坪) : 백두산 정상의 연못을 천지라 하니 백두산 정상의 어떤 땅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13) 청구(靑邱) : 산동반도의 동래지방으로 비정한다. 과거 이 청구를 막연히 한반도라 생각해 왔으나 크게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저 상고사의 대상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동양의 온갖 고전이 말하는 동이(東夷) 조선(朝鮮) 청구(靑邱)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원대륙 안에 있는 동이 조선 청구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십오사>를 적은 사마천을 비롯한 모든 사가들이 황해 바다 건너에 한반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지리 지식이 유치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진인을 만났다.(黃帝동도청구 과풍산 견자부진인」
14) 천부인(天符印) : 거울, 북, 칼이라는 설과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15) 다섯 가지 일<五事> : 穀?命?病?刑?善惡
16) 배달국(白達國→倍達國 : 일명 檀國 또는 神市) : 고대에 18명의 환웅(桓雄)이 다스린 시대를 말한다. 고기에는 배달국(培達國)이 일명 단국(檀國) 또는 신시(神市)로도 적혀 있다. 이 신시(神市)는 시조환웅(始祖桓雄)이 세운 배달국(培達國)의 초기 도읍지(都邑地) 이름 또는 배달국(培達國)의 다른 이름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17) 웅씨의 여인(熊氏女 : 熊女) : 지신족의 여인.
18) 치우천왕(治尤天王) : 14세 자오지 한웅, 원래는 蚩尤로 적는다.
19) 설(設) : <단군세기>에는 ‘립(立)’으로 기록되어 있다.
20) 개국(開國) : <단군세기>에는 ‘건국(建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21) 불함산(不咸山) : 하르빈 남쪽 完達山으로 비정
22) 단군(檀君) : "단(檀)"은 "밝달"이라는 고대말을 뒤에 한자로 적은 것으로, "밝"은 밝은 빛을 내는 해님과 달님 즉 천제(天帝)를 뜻하고, "달"은 땅을 뜻하는 고대말이다. 즉 "밝달"은 밝은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군(君)"은 아들을 뜻하는 한자이다. 따라서 단군(檀君)은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천제(天帝)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다. 고대 우리민족은 하늘나라 임금인 환인이 아들 환웅과 무리 3천명을 지상세계로 내려보냄으로써 우리민족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왕(王)이 된 것을 천제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단군(檀君)은 천제(天帝)와의 관계는 아들(君)이나, 지상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임금(帝)이므로, 고기에는 단군(檀君)이 단제(檀帝)로도 적혀 있다. 고기(古記)에는 단(檀) 대신에 배달(白達, 倍達)로도 적혀 있는데, 배(白)는 밝은 빛을 내는 해님과 달님을 뜻하고, 달(達)은 땅이라는 뜻의 고대말이므로, 단(檀)과 배달(白達)은 같은 뜻이다. 고대에는 해와 달을 뜻하는 "밝"을 "발" 또는 "박"으로 발음하였는데, 이를 발음대로 한자로 "發" "渤" "勃" "博" "薄" 등으로 적었다.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發" "渤" "勃" "博" "薄" 지역은 환족(桓族)1)이 살았던 지역이다. 고대에는 발(渤) 무리가 배달국의 치우천황 이후부터 중국의 북부와 동부 지방에도 진출하여 살고 있었던데, 발해(渤海)는 발 무리가 사는 곳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라 이름 발해는 고대말 "발(밝다는 뜻의 태양)"과 "해(태양)"가 모두 해님(太陽)을 뜻하므로, 발해는 해님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辰國)라는 뜻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3) 구규(舊規) : 옛 법규, 즉 신시시대의 법규를 말한다.
24) 아사달(阿斯達) : 아사=??(처음의, 새로운) + 달(땅)
고대말 "아사"는 새로운 또는 처음이라는 뜻이고, "달"은 땅이라는 뜻이다. 즉 아사달은 새(新) 땅이라는 뜻으로 사로벌, 신라(新羅)와 같은 뜻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5) 조선(朝鮮) : 중국인들은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땅을 조선(朝鮮)이라 불렀는데, "朝"는 해가 뜨는 동쪽을 뜻하고, "鮮"은 발해연안의 어업족을 가리키는 어(魚)와, 그 북쪽의 유목족을 가리키는 양(羊)을 합성하여 만든 글자이다. 중국인들이 초기에 "朝鮮"이라 부른 지역은 해가 뜨는 곳에 있는 중국의 동쪽 즉 발해연안과 그 북쪽 유목 지역이다. 후에 중국의 영역이 동진(東進) 함에 따라 조선이라 부른 지역의 위치도 점차 동진(東進) 하여 나중에는 한반도까지 조선이라 불렀다. 따라서 중국의 사서에 조선이 부른 지역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조선이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부른 때는 B.C. 2333년에 왕검이 배달국 지역의 구려 무리들을 통합하여 세운 왕검조선(王儉朝鮮), .B.C. 324년에 왕검조선의 번한(番汗) 지역에 살은 수유족의 우두머리 기후가 왕검조선의 번한 지역을 장악하여 세운 기자조선(箕子朝鮮), B.C. 194년에 위만이 기자조선을 빼앗아 세운 위만조선(衛滿朝鮮), 그리고 이성계가 세운 이씨조선이다. 본서에서 조선 앞에 나라를 세운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것은 다른 조선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본래의 나라 이름은 모두 조선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6) 깊고 묘한 도(玄妙得道) : 儒?佛?仙 三敎를 다 포함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도, 즉 신선도를 말한다.
27) 신지(臣智) : 神誌의 誤字인 것으로 추정.
28) 비서갑(菲西岬) : 하르빈으로 비정
29) 불여(不黎) 일명 부여(夫餘) : 고대의 구려 무리들은 자신들을 자칭 천제(天帝)가 있는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라고 칭하였는데, 이 말을 뒤에 한자로 적으면서 천제는 "불(不)"로, 무리는 "여(黎)"로 적어 불여(不黎)로 적었다. 이 불여를 뒤에 부여로 읽고 음을 따라 "夫餘"로 적었다. 산해경에는 부여가 불여(不與)로 적혀 있는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는 것을 한자로 적음에 있어 불(不)자 대신에 환(桓), 고(高), 고(古), 백(白), 화(火), 화(華), 명(明), 일(日), 위(尉. 慰), 위(魏), 불(弗) 등으로 적었고, 여(黎. 與)자 대신에 이(離.伊), 여(麗.余), 로(虜) 등으로도 적었다. 위와 같이 부여(夫餘)는 특정한 부족 명칭이 아니고 구려(九黎) 지역에 거주하면서 해님과 달님을 숭배한 무리들을 총칭하여 부른 명칭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송화강(松花江) 유역에 살던 특정한 무리만 부여(夫餘)로 적혀 있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0) 번한(番汗) : B.C. 2333년부터 B.C. 323년까지 왕검조선(王儉朝鮮)의 서?남쪽을 다스린 비왕(裨王)의 명칭이다. 원래는 새(鳥) 임금이라는 뜻으로 번한(飜汗)으로 적다가 나중에 글자가 바뀌어 번한(番汗)으로 적었다. 새(鳥) 임금이라는 칭호는 고구려(高九黎) 때 오간(烏干)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사서에는 번한(番汗) 지역이 조이(鳥夷), 오환(烏桓), 연(燕) 등 주로 새(鳥)와 관련된 이름으로 적혀 있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1) 삼한(三汗. 三韓) : 삼한(三汗)은 왕검조선의 단제(檀帝)인 진한(辰汗)과 비왕(裨王)인 마한(馬汗), 번한(番汗)을 합쳐서 부른 명칭이다. 삼한(三韓)은 B.C. 194년 이후에 한수 남쪽에 존재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합쳐서 부른 명칭이다. 삼한(三汗)과 삼한(三韓)은 존재시기와 영역이 전혀 틀린다. 일부 古記에는 三汗, 辰汗, 番汗, 馬汗이 三韓, 辰韓, 馬韓으로도 적혀 있다. 이때의 韓은 한반도라는 의미가 아니고 임금(汗)이라는 의미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2) 한수(漢水) : 난하(?河) 또는 황하(黃河)라는 설이 있다.
33) 동명(東明) : 고대의 구려 무리들은 해와 달을 하늘나라 임금이라 믿었고, 해와 달이 동쪽에서 떠올라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 준다고 하여 해와 달을 동명(東明)이라 불렀다. 고대에 구려 무리의 우두머리들은 자신을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칭하였는데, 동명은 천제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사용한 칭호(稱號)이다.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다. <한단고기(桓檀古記)> 북부여기(北夫餘紀)에 적혀 있는 동명(東明)의 본명은 고두막(高豆莫)이고,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적혀 있는 동명의 본명은 고주몽(高朱蒙)이다. 동명(東明)은 천제(天帝)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사용한 칭호(稱號)이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분들은 삼국사기만 읽고 고구려(북부여)의 고두막(高豆莫) 단제(檀帝)와 (고주몽)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高朱蒙)을 동일인물로 착각하였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4) 신라(新羅)의 옛 땅 : 몽고 할힌골 강 유역
35) 다물(多勿 : 땅을 다시 찾는다는 뜻.
36) 고구려(高句麗 ; 高九黎) : 임술년(B.C. 239)에 해모수(解慕漱)는 나라를 세우고 구려(九黎) 앞에 천제(天帝)를 뜻하는 고(高)자를 붙여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九黎)라 불렀다. 즉 해모수(解慕漱)때부터 구려(九黎)를 고구려(高九黎)로 명칭을 바꾸어 불렀다. 이 고구려(高九黎)는 왕검조선(王儉朝鮮)이 멸망(B.C. 238)한지 6년 후인 기사년(B.C. 232)에 왕검조선(王儉朝鮮) 때의 진한(辰汗)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 뒤 동명(東明)이 일어나 을미년(B.C. 86)에 해모수계 고구려 무리를 지금의 길림 방면으로 밀어내고 도성(都城)2)으로 들어와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九黎) 또는 북부여(北夫餘)라 불렀다.
이때 동명계 고구려 무리에 밀리어 길림 방면으로 이동한 해모수계 고구려 무리를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 또는 동부여(東夫餘)라 불렀다. 그 뒤 B.C. 58년에 고주몽이 고구려의 대통(大統)을 승계하였으나, 부여인들이 죽이려 하므로 비류수 상류로 도망가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불렀는데, 고주몽이 세운 (고주몽)고구려는 나라 이름을 한자로 적음에 있어 "高九黎"로 적지 않고 "高句麗"로 적었다. 1979년에 충주에서 발견된 중원 고구려비에 "五月中高麗太王"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고구려 유물에서도 "高麗"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고주몽)고구려는 나라 이름으로 "高句麗"와 "高麗"를 모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대조영(大祚榮)이 건국한 발해(대진국)의 4대 문왕이대흥 21년에 일본국왕에게 보낸 국서에는 "高句麗國王大欽茂(고구려국왕대흠무)"로, 그 답서에는 "高麗國王大欽茂(고려국왕대흠무)"로 적혀 있다.
이로 보아 발해(대진국)도 "高句麗" 또는 "高麗"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하였다. 고기(古記)에는 해모수계 고구려는 <北夫餘紀> 상권(上卷)에 적혀 있고, 동명계 고구려는 <北夫餘紀> 하권(下卷)에 적혀 있으며, 고주몽계 고구려는 <太白逸事> 高句麗國本紀에 적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고구려의 시조는 해모수(解慕漱)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는 것은 고주몽(高朱蒙)이 세운 고구려가 해모수(解慕漱)가 세운 고구려를 승계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에는 해모수계 고구려, 동명계 고구려, 고주몽계 고구려가 고구려(高句麗), 구려(句麗), 고려(高麗) 등으로 적혀 있다. 그렇지만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는 고주몽(高朱蒙)이 세운 나라의 명칭만 고구려(高句麗)로 적혀 있다. 그 때문에 <삼국사기(三國史紀)>만 읽은 사람들은 중국의 사서에 B.C. 37년 이전에 고구려라는 명칭이 왜 나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37) 거발한(居發桓) : 개국시조에게만 사용하는 특별한 이름으로서 신앙적 의미가 내포된 신격화된 호칭이며, 천, 지, 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호칭이다. 온 누리에 크게 밝은 천제한인.
[1983년 배달의숙본/ 숙대 영인본]
1987년 전북대 도서관 소장, 1989년 숙대도서관 소장
언론인 송지영이 이유립선생에게 받은 책1권 숙대 개교 50주년 기년 기증함
한단고기 - [삼성기전, 하편 (三聖記全 下篇)]
- 원동중(元董仲) 지음 -
人類之祖曰那般初與阿曼相遇之處曰阿耳斯0夢得天神之敎而自成婚禮則九桓之族皆其後也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0)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九桓)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다.
昔有桓國衆富且庶焉初桓仁居于天山得道長生擧身無病代天宣化使人無兵人皆作力自無飢寒傳赫胥桓仁古是利桓仁朱于襄桓仁釋提任桓仁邱乙利桓仁至智爲利桓仁或曰檀仁
옛날에 한국(桓國)이 있었는데 백성은 부유하였고 또 많았다. 처음 한인(桓仁)께서 천산(天山)1)에 올라 도를 얻어 오래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宣化>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赫胥) 한인, 고시리(古是利) 한인, 주우양(朱于襄) 한인, 석제임(釋帝任) 한인, 구을리(邱乙利) 한인에 전하고 지위리(智爲利) 한인에 이르렀다. 지위리 한인은 단인(檀因)이라고도 한다.
古記云波奈留之山下有桓仁氏之國天海以東之地亦稱波奈留之國其地廣南北五萬里東西二萬餘里摠言桓國分言則卑離國養雲國寇莫汗國句茶川國一0國虞婁國(一云畢那國)客賢汗國句牟額國賣句餘國(一云稷臼多國)斯納阿國鮮禾卑 國(一稱豕韋國或云通古斯國)須密爾國合十二國也天海今曰北海傳七世歷年三千三百一年或云六萬三千一百八十二年未知孰是
「파나류산(波奈留山) 2)밑에 한인씨(桓因氏)3)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4)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니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卑離國)5),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6),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혹은 필나국(畢那國)7),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혹은 직구다국(稷臼多國)8),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이국(鮮0爾國 혹은 시위국(豕韋國) 또는 통고사국(通古斯國))9), 수밀이국(須密爾國)10)이니 합하여 12국이다. 천해(天海)는 지금 북해(北海)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桓國之末安巴堅下視三危太白11)皆可以弘益人間誰可使之五加僉曰庶子有桓雄勇兼仁智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可遣太白而理之乃授天符印三種仍勅曰如今人物業已造完矣君勿惜厥勞率衆三千而往開天立敎在世理化爲萬世子孫之洪範也
한국의 말기에 안파견이 삼위(三危)12)와 태백(太白)13)을 내려다보시며「모두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14) 할 곳이로다」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五加)15) 모두 대답하기를「서자(庶子)16) 한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하니 마침내 천부인 세 가지<天符印 三種>17)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사람과 물건의 할 바<人物業>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開天>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在世理化> 만세(萬世)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洪範>이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時有盤固者好奇術欲分道而往請乃許之遂積財寶率十干十二支之神將與共工有巢有苗有燧偕至三危山拉林洞窟而立爲君謂之諸?是謂盤固可汗也
때에 반고(盤固)라는 자가 있어 기이한 술법을 즐기며 길을 나누어 가기<分道>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마침내 재화와 보물을 꾸리고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의 신장(神將)들을 거느리고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 등과 함께 삼위산(三危山)의 납림동굴(拉林洞窟)18)에 이르러 군주가 되었는데 이를 제견이라 이르니 그를 반고가한(盤固可汗)이라 했다.
於是桓雄率衆三千降于太白山頂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弘益人間
이에 한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19)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한웅천왕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형벌, 병, 선악을 주관하고,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이치로 교화하였으니<在世理化>, 널리 인간세상에 유익함<弘益人間>이 있었다.
時有一熊一虎同隣而居嘗祈于神壇樹願化爲神戒之氓雄聞之曰可敎也乃以 呪術換骨移神先以神遺靜解靈其艾一炷蒜二十枚戒之曰爾輩食之不見日光 百日便得人形熊虎二族皆得而食之忌三七日熊能耐飢寒遵戒而得儀容虎則 放慢不能忌而不得善業是二性之不相若也熊女者無與爲歸故每於壇樹下呪 願有孕乃假化爲桓而使與之爲婚懷孕生子有帳
때에 한 곰과 한 범<一熊一虎)>이 이웃하여 살았는데 일찍이 신단수(神檀樹)에서 빌었다.「원컨대 변하여 신계의 한 무리<神戒之氓>20)가 되게 하소서」하니, 한웅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가르쳐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주술(呪術)로써 몸을 바꾸고 정신을 바꾸었다. 먼저 신이 만들어 놓은 영혼을 고요하게 하는 것<神遺靜解靈>을 내놓았으니 즉,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이다. 이에 경계하여 가로되,「너희들 이것을 먹고 햇빛을 백 일 동안 보지 않으면 쉽게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便得人形>」하니, 곰과 호랑이 두 무리<熊虎二族>가 모두 이를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기(忌)하였는데 곰<熊>은 기한을 잘 지켜서 타이름을 따르매 모습을 얻게 되었지만<得儀容>, 범<虎>은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어서 금지하는 바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이 둘의 성질이 서로 닮지 않았기 때문이라. 웅녀는 더불어 혼인할 곳이 없었으므로 단수(壇樹)의 무성한 숲 밑에서 잉태하기를 간곡히 원하였다. 그래서 임시로 변화하여 한이 되고<假化爲桓> 그와 더불어 혼인하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호적<帳>21)에 실리게 되었다.
桓雄天王肇自開天生民施化演天經講神誥大訓于衆自是以後治尤天王闢土 地採銅鐵鍊兵興産時九桓皆以三神爲一源之祖主蘇塗主管境主責禍與衆議 一歸爲和白竝智生雙修爲居佺自是九桓悉統于三韓管境之天帝子乃號曰檀 君王儉
한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을 열고<肇自開天>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天經)22)과 신고(神誥)23)를 가르치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후에 치우천왕(治尤天王)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興産> 때에 구한(九桓)은 모두 삼신(三神)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管境)24)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和白)을 하였다.(다른 해석)25)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다른 해석)26) 이때부터 구한(九桓)27)은 전부 삼한(三韓)28)에 통솔되고 나라 안의 천제의 아들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불렀다.(다른 해석)29)
密記云桓國之末有難治之强族患之桓雄乃以三神設敎以佺戒爲業而聚衆作 誓有勸懲善惡之法自是密有剪除之志
《밀기(密記)30)》에서 말한다.「한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强族)이 있어서 걱정거리였다. 한웅은 마침내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만들고 전계(佺戒)를 베풀어 무리를 모아 서약을 시켜 선악을 상주고 벌하는 법을 갖게 하였다. 이로부터 슬그머니 토벌하여 벌할 뜻을 품었다.」
時族號不一俗尙漸岐原住者爲虎新住者爲熊虎性嗜貪殘忍專事掠奪熊性愚 愎自恃不肯和調雖居同穴久益疎遠未嘗假貸不通婚嫁事每多不服咸未有一 其途也
이때에 무리의 이름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고 풍속도 오히려 점점 달라졌다. 원래 살던 무리는 범 무리였으며 새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곰 무리였다. 범 무리의 성질은 잔악한 짓을 즐기며 탐욕이 많아서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곰 무리의 성질은 어리석으며 또 자만에 쌓여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비록 같은 굴에 산 지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날로 멀어지기만 해서 일찍이 서로 도울 줄도 몰랐고 혼인도 터놓고 한 적이 없었다. 일마다 서로 따르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그 길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至是熊女君聞桓雄有神德乃率衆往見曰願賜一穴廛一爲神戒之盟雄 乃許之使之奠接生子有産虎終不能悛放之四海桓族之興始此焉
이에 이르러 곰 무리의 여왕<熊女君>은 한웅이 신과 같은 덕이 있다함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가 뵙고 말한다.「원컨대 한 굴에 함께 사는 저희들을 위하여 굴 하나를 내려주시고 신계(神戒)의 무리<神戒之盟>로 받아 주옵소서」하니 한웅이 이를 허락하시고 저들을 받아들여 아들을 낳고 산업을 갖게<有産>하였다. 그러나 범 무리<虎>는 끝내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이를 사해(四海)로 내쫓았다. 한족(桓族)의 일어남이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後有葛古桓雄與炎農之國劃定彊界又數傳而有慈烏支桓雄神勇冠絶以銅頭 鐵額能作大霧造九冶而採鑛鑄鐵作兵天下大畏之世號爲蚩尤天王蚩尤俗言 雷雨大作山河改換之義也
뒤에 갈고(曷古)31) 한웅이 나셔서 염제신농(炎帝神農)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했다.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慈烏智)32) 한웅이 나셨는데, 신(神)같은 용맹이 뛰어 났으니<神勇冠絶> 머리와 이마는 구리와 철의 모습<銅頭鐵額>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 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이라 불렀으니 치우(蚩尤)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크게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蚩尤天王見炎農之衰遂抱雄圖屢起天兵於西又自索度進兵據有淮岱之間及 軒侯之立也直赴0鹿之野擒軒轅而臣之後遣吳將軍西擊高辛有功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天兵)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索度)33)로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淮岱)34)의 사이에 웅거하였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35)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吳將軍)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고신(帝?高辛)36)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
蘇塗之側必立0堂使未婚子弟講習事物蓋讀書習射馳馬禮節歌樂拳搏0術釗六藝之類也
소도(蘇塗)가 서면 언제나 계(戒)가 있나니 바로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오상(五常)의 길이니라. 소도의 곁에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격투기, 검술 등의 여섯 가지 기예를 말한다.
時天下鼎峙0之北有大撓東有倉?西有軒轅自相以兵欲專其勝而未也初軒 轅稍後起於蚩尤每戰不利欲依大撓而未得又依倉0而不得二國皆蚩尤之徒 也大撓嘗學干支之術倉?受符圖之文當時諸侯罔不臣事者亦以此也
한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의 북쪽에 대효(大撓)37)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38)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차지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大撓)에 의존코자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찍이 간지(干支)의 술(術)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符都)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司馬遷史記曰諸侯咸來賓從而蚩尤最爲暴天下莫能伐軒轅攝政蚩尤有兄弟 八十一人竝獸身人語銅頭鐵額食沙造五丘杖刀戟太弩威振天下蚩尤古天子 之號也
사마천의《사기》에 말하기를,「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가 지극히 횡포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을 때 헌원이 섭정했다. 치우의 형제가 81인이 있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五丘杖), 도극(刀戟), 태노(太弩)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라고 했다.
[주해보기]
1) 천산(天山) : 천산산맥 동쪽의 기련산(祁連山)으로 비정.
2) 파나류산(波奈留山) : 불함산, 즉 하르빈 남쪽 完達山으로 비정.
3) 한인씨(桓因氏) : 氏는 고대에 극존칭으로 쓰였다.
4) 천해(天海) : 바이칼 호 혹은 北海.
5) 비리국(卑離國) : 부여지역, 한반도, 시베리아로 비정.
6) 구다천국(句茶川國) : 캄차카반도로 비정.
7) 우루국(虞婁國 혹은 필나국(畢那國)) : 이라크, 우르지역으로 비정.
8) 매구여국(賣句餘國) : 5난하지역, 혹은 직구다국(稷臼多國)
9) 선비이국(鮮?爾國) : 퉁구스지역으로 비정
10) 수밀이국(須密爾國) : 인류학계 및 사학계가 주목하는 슈메르 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라는 설도 있음.
11) 백(白) : <삼국유사>에는 백(伯)으로 기록
12) 삼위(三危) : 중국 감숙성 돈황현의 삼위산으로 비정.
13) 태백(太白) : 백두산이라는 설과 감숙성 섬서성에 있는 백두산이라는설 등이 있다.
14) 홍익인간(弘益人間) :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으로 널리 인간세상을 유익하게 한다는 뜻, 백낙준 박사는 The maximum service for the benifit of humanity으로 영역했다.
15) 오가(五加) : 牛加, 馬加, 狗加, 0加, 羊加.
16) 서자(庶子) : 오늘날 민법상의 적서(嫡庶)관계로 봄은 잘못, 부족의 뭇 젊은이들이라는 의미, 서자부(庶子部)란 그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신시시대 소도옆에 세워졌던 경당(?堂)의 전신이었으며 이 경당은 훗날 화랑의 배움터가 된다.
17) 천부인 세 가지 <天符印 三種> : 거울, 북, 칼이라는 설과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18) 납림동굴(拉林洞窟) : 감숙성 돈황현 삼위산에 있는 동굴.
19) 태백산(太白山) : 고대의 구려(九黎) 무리들은 하늘에 있는 해(太陽)와 달(月)을 천제(天帝)로 숭배하였고, 구려 무리의 우두머리를 해마리(太陽+頭)라고 불렀다. 이 해마리를 뒤에 한자로 적을 때 음을 따라 해마리(奚摩離)로 적거나 해가 밝은 빛을 낸다고 하여 해를 흰(白)으로 바꾸어 흰마리(白頭)라고 적었다. 인도, 흰두, 희마리아는 해마리 또는 흰마리가 변한 말이다. 백두산(白頭山), 태백산(太白山) 또는 마리산(摩離山)은 해님의 아들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곳이라는 뜻으로, 해님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천제(天帝)에게 제사를 지낸 산이다. 따라서 달님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천제(天帝)에게 제사를 지낸 산은 태백산(太白山) 또는 백두산(白頭山)이라 부르지 않고 비왕(裨王)을 뜻하는 월(月)자나 마(馬)자를 넣어 구월산(九月山) 또는 개마산(蓋馬山)이라 불렀다. 그러나 달님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제사를 지내는 산이라도 해님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제사를 지내는 산으로 변했을 때는 명칭이 구월산(九月山)에서 태백산(太白山) 또는 마리산(頭山.摩離山)으로 바뀌었다. 그 때문에 만주나 한반도에서 해님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많을 때는 태백산 또는 마리산(마니산)이라 불린 곳도 많았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20) 신계의 한 무리(神戒之氓) : 맹(氓)이라 함은 외래의 이주민, 외래의 백성이라는 뜻.
21) 호적<帳> : 靈的 帳簿를 말한다.
22) 천경(天經) : 천부경(天符經)
23) 신고(神誥) : 삼일신고(三一神誥)
24) 관경(管境) : 관할하는 경내를 뜻하는 말로 온 <누리>라는 말의 <누리>의 뜻이 담겨 있다.
25)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쳤는데 이를 화백이라 하였고,
26) 지(知)와 생(生)을 아울러 닦는 것을 거전(居佺)이라 하였다.
27) 구한(九桓) : 고대의 구려(九黎) 무리들은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 칭하였고, 이 말을 한자로 부여(不黎. 夫餘), 구려(九黎), 구환(九桓) 등으로 적었는데, <사기(史記)>에는 구려(九黎) 무리들을 비하(卑下)할 의도로 구이(九夷)를 같은 발음의 "구이(狗夷)"로 글자를 바꾸고, 구이(狗夷)를 다시 같은 뜻인 견이(犬夷), 견융(犬戎) 등으로 글자를 바꾸어 적었다. 또 부여의 사냥족인 맥족(貊族)이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다고 부여의 사냥족을 산짐승에 비유하여 산융(山戎)으로 적었다. 바꾸어 말하면 중국인들이 구려 무리들을 멸시할 의도로 글자 장난을 하였다.
28) 삼한(三韓) : 진(辰),번(番),막(幕)의 세 조선을 통치하는 임금을 뜻한다.
29) 이때부터 구한(九桓)은 삼한관경(三韓管境)을 다스리는 천제자(천제의 아들)에게로 돌아가게 되니, 이를 이름하여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30) 밀기(密記) :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를 말하는 듯.
31) 갈고(曷古) : 10세 한웅, 독로한 한웅이라고도 한다.
32) 자오지(慈烏智) : 14세 한웅, 치우천왕.
33) 색도(索度) : 索頭라고도 한다. 산동성 임치현(臨淄縣) 동남쪽 女水의 남쪽에 있는 城.
34) 회대(淮岱) : 회수(淮水)와 대산(岱山) 사이라는 뜻, 중원대륙에서 가장 기름진 평야지대로서 일찍부터 한족(桓族)이 웅거하던 땅.
35) 탁록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결전했다고 하는 역사의 전쟁터, 하북성 탁록현의 동남에 있다.
36) 제곡고신(帝?高辛) : 황제의 증손으로 극(極)의 아들.
37) 대효(大撓) : 요임금, 즉 제요도당을 가리킨다.
38) 창힐 : 문자의 조상이라 알려진 중국사의 전설적인 인물.
[출처] 한단고기 - 삼성기전 하편 三聖記全 下篇|작성자 신명천부궁
한단고기 - [신시 역대기 (神市 歷代記)]
원동중(元董仲) 지음
人類之祖曰那般初與阿曼相遇之處曰阿耳斯0夢得天神之敎而自成婚禮則九桓之族皆其後也
배달한웅(倍達桓雄)은 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분의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神市)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겨 18세 1,565년을 누렸다.
一世曰桓雄天皇一云居發桓在位九十四年壽一百二十歲
1세를 한웅천황이라 하며 또 거발한(居發桓)이라 하니 재위 94년에 120세까지 사셨다.
- (환기.3301년) (개천 원년) (단기 전.1564년) (BC.3897 ~)-
二世曰居佛理桓雄在位八十六年壽一百二歲
2세는 거불리(居佛理) 한웅이니 재위 86년 102세까지 사셨다.(BC 3804 ~)
三世曰右耶古桓雄在位九十九年壽一百三十五歲
3세는 우야고(右耶古) 한웅이니 재위 99년 135세까지 사셨다.(BC 3718 ~)
四世曰慕士羅桓雄在位一百七年壽一百二十九歲
4세는 모사라(慕士羅) 한웅이니 재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BC 3619 ~)
五世曰太虞儀桓雄在位九十三年壽一百一十五歲
5세는 태우의(太虞儀) 한웅이니 재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BC 3512 ~)
六世曰多儀發桓雄在位九十八年壽一百十歲
6세는 다의발(多儀發) 한웅이니 재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BC 3419 ~)
七世曰居連桓雄在位八十一年壽一百四十歲
7세는 거련(居連) 한웅이니 재위 81년에 140세까지 사셨다.(BC 3321 ~)
八世曰安夫連桓雄在位七十三年壽九十四歲
8세는 안부련(安夫連) 한웅이니 재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BC 3240 ~)
九世曰養雲桓雄在位九十六年壽一百三十九歲
9세는 양운(養雲) 한웅이니 재위 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BC 3167 ~)
十世曰葛古桓雄又曰瀆盧韓在位一百年壽一百二十五歲
10세는 갈고(葛古) 한웅 또는 독로한(瀆盧韓)이라 하니 재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BC 3071 ~)
十一世曰居耶發桓雄在位九十二年壽一百四十九歲
11세는 거야발(居耶發) 한웅이니 재위 92년에 149세까지 사셨다.(BC 2971 ~)
十二世曰州武愼桓雄在位一百五年壽一百二十三歲
12세는 주무신(州武愼) 한웅이니 재위 105년 123세까지 사셨다.(BC 2879 ~)
十三世曰斯瓦羅桓雄在位六十七年壽一百歲
13세는 사와라(斯瓦羅) 한웅이니 재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BC 2774 ~)
十四世曰慈烏支桓雄世稱蚩尤天王徙都靑邱國在位一百九年壽一百五十一 歲
14세는 자오지(慈烏智) 한웅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황이라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 (BC 2707 ~)
十五世曰蚩額特桓雄在位八十九年壽一百一十八歲
15세는 치액특(蚩額特) 한웅이니 재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BC 2598 ~)
十六世曰祝多利桓雄在位五十六年壽九十九歲
16세는 축다리(祝多利) 한웅이니 재위 56년에 99세까지 사셨다. (BC 2509 ~)
十七世曰赫多世桓雄在位七十二年壽九十七歲
17세는 혁다세(赫多世) 한웅이니 재위 72년에 97세까지 사셨다. (BC 2453 ~)
十八世曰居弗檀桓雄或云檀雄在位四十八年壽八十二歲
18세는 거불단(居佛檀) 한웅 혹은 단웅(檀雄)이라 하는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BC 2381 ~)
[주해보기]
1) 거발한(居發桓) ;
개국시조에게만 사용하는 특별한 이름으로서 신앙적 의미가 내포된 신격화된 호칭이며, 천,지,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호칭이다.
[출처] 한단고기 - 신시 역대기 神市 歷代記|작성자 신명천부궁
[삼성기의 저자 : 안함태 화상, 안함로 (安含老 579~640)]
한민족사의 국통 맥을 세운 삼성기의 저자인 안함로에 대하여 ...
[안함로(安含老 579~640)]는 신라 진평왕 때의 고승... 성은 김씨이고, 이찬을 지낸 시부의 손자로 안홍법사,
안함법사, 안함태 화상 으로 불린다. 그리고 신라의 대표적 인물인 신라 십성 가운데 한 사람.
<해동고승전>에서는 안함로가 태어나면서부터 도리를 깨달은 인물이라고 하였다.
안함로는 일찍부터 사물에 통달하고 지혜가 밝아 세속의 속박을 벗어나 가고 머무름을 뜻대로 하였으며
일찍이 수나라로 건너가 중국과 서역의 승려들과 불법을 닦았고 도통한 승려로서
후대에이르기까지 추앙을 받은 성인이었다.
안함로가 입적한 그 달에 신라 사신이 중국에서 돌아오다가 우연히 법사를 만나서 푸른 물결 위에 자리를
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쪽으로 떠났다고 하며....스님은 사물의 이치를 통하고 불법을 깨쳤을 뿐만 아니라
신통력으로 나라를 구한 도승으로 신교의 선맥을 계승한 인물이다.
역사에도 해박하여 전해 오던 고유 사서에서 한민족사의 진액을 뽑아 삼성기를 저술하였다.
안함로가 언제 책을 썼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중국에서 귀국하여 불법을 펼친 30여 년의세월 중에
쓰여진 것으로 생각됩다.... 삼성기의 몇 구절만 보더라도 안함로는 뛰어난 학식을 갖춘 지성이요,
불교를 초월하여 유불선과 신교문화를 통한 최고의 도승이다.
환단고기를 쓴 저자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으며
신라의 고승 안함로에서부터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천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 된 것입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대사를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
삼국사기에서 밝히는 역사 이전을 알려주는 역사서가 없는데 이것이 우리의 역사현실이며.
공부를 하고 싶어도 책을 빼앗기고 스스로 없애버려 역사 책이 없는 것이 우리 역사현실이다.
[원동중(元董仲, ? ~ ?)]: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세종실록에 세조가 팔도관찰사에게 수거하도록
유시한 도서 목록에 안함로와 더불어 '삼성기'의 저자로 되어 있다.
한암당(寒闇堂) 이유립은 원중동을 고려 때 인물로 추정하였다.
원중동의 삼성기 하편은 상편에서 빠진 내용을 중점으로 다루었으며 무엇보다도
환국의 일곱 분 환인(桓因)의 역년과 12분국의 이름을 드러내어 환국의 실체를 밝혔고
배달의 열여덜 분 환웅(桓雄)의 역년을 '신시역대기'로 밝혀주었다.
특히 한민족의 성웅 '치우천황'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출처] 삼성기의 저자 안함로|작성자 만사무기
[ 삼성기전(三聖記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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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는 알 수 없는 나라라라고 표현한 러시아 사학자 푸틴 박사 ©
목 차
1. 총독부 우리 사서 20만 권 불태워
2. 역사 왜곡편찬 진용확대 개편
3. 사료 선별수집․복본 행방불명
4. '삼국유사', 단군신화설도 조작
5. 단군, 기자도 '신화'로 조작
6. '영원한 屬國' 기도, 역사 날조
7. 秘傳돼 온 마곡사 古書도 방화
8. 개국 기록한 正史는 모두 인멸
9. '규원사화'도 탈취 소각
10. 北崖子가 눈물로 쓴 한민족사
11. 역대 임금을 신화적 인물로 날조
12. 47世 1,195년간의 기록 있다
13. 공자도 '동이국'의 실존 기록
14. 중국을 위협하고 왜를 쳤다
15. '삼국유사' 단군 最古書 아니다
16. '규원사화' 단군 世系는 합리적
17. '규원사화' 중국 사서와 사실 일치
18. 구석기 유물 발견 사실도 은폐
19. 청동기 유물조차 부인한 일제
20. 또 하나의 허구 '금석병용기'
21. 고고학 조사도 총독부서 통제
22. '실증'가장... 역사 편년도 내려
23. 청동기 시대도 둔갑시켜
24. 고인돌 축조 연대도 크게 낮춰
25. '삼국사기' 초기 기록도 부정
26. 일제 말살 고대사 복원 가능
27. '동몽선습'도 단군조선 가르쳐
28. 기록은 왜곡해도 實事는 못 감춰
29. 소학교에서도 고대사 교육
30. 국사는 士民 교육의 필수
31. 20세기초에도 '단군' 가르쳐
32. '식민악령' 아직도 살아 있다
33. 신화 조작 '정한론' 만들어
34. '정한론' 바탕 '대동아 합방론'펴
35. '일․조 동조론'이 한국 고대사 파괴
36. 한국 고대사 없애려 일본사도 왜곡
37. '일본서기' 주요 연대도 120년 올려
38. 神功의 신라정벌은 거짓
39. '백제서기'서 '일본서기' 이름 따냈다
40. 明治 초기 역사 조립...日국민 호소했다
41. 한국 고대사 깎고 일본사는 올려
42. 일제가 '삼국사기' 초기 기록 파괴
43. [임나일본] 입증위해 '삼국사기' 비방
44. 日 학자 '삼국 초기 모두 조작이다'
45. 日 패전 후도 침략사관 버리지 않았다
46. 국내 학자들 침묵만 지키고 있다
47. 日 교과서도 조작 역사 가르쳤다
48. '왕인이 천자문 헌상했다' 조작
49. 임진왜란도 改惡시켰다
50. 일본은 왜 역사를 조작하나
51. 한국사는 다시 정리해야 한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3&articleId=85271
첫댓글 - 5·16 쿠데타와 건국 이후 최대 언론 탄압 '민족일보 사건' -
[사진] 5·16 쿠데타 이후 민족일보 사건으로 재판받는 조용수 사장과 송지영 씨 등.
피고인석 왼쪽에서 세 번째 (앞줄 두 번째)가 우인 송지영 씨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이미 사형 집행 후에, 재심에서 무죄가 됐고,,,
숙명여대에 환단고기를 전달한 작가,한학자이자 언론인 송지영은 사형 선고 받았으나 재심에서 무죄로 풀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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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어머니께서는 코리족출신이라고
하더군요
석가모니부처님, 공자님, 맹자님, 노자님 ... 동이족
유불선의 뿌리는 고대로부터 하나에서
호흡의 동이 뿌리경전인 '고상옥황태식경'은 심오하면서도 쉽고 자연의 흐름을
복잡하게 나온 중국 도교 서적들은 후대에 지나(支那)의 다소 비현실적인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