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또는 "도덕"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의 기준은 다르다. 동양은 사회가 가진 최소한의 약속인 법을 지키는 것 이외에도 한 개인이 속한 작은 단위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도 "도덕"의 범주속에 들어간다. 때에 따라서는 법을 지키는 것 보다는 자신의 친구, 식구, 또는 지연이나 학연에 얽힌 "작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더 우선시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를 일단은 "봉건적인 도덕관"이라고 한다. 서양은 법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시 한다. 법을 지키는 것이 도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는 지키는 것도 좋지만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동양은 인간 개인의 역량을 앞세우기 보다는 공동체에 속한 인간 구성원들의 상호관계를 더 중요시 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는 농경에 기반한 정착문명이 수천년간에 걸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농경은 산간에 불을 질러 자투리 땅을 가꾸는 화전민이 아닌 이상, 드넓은 평야지대에 대규모 작농이 가능하다. 크고 작은 단위의 대규모 농경은 노동력이 대량으로 필요한 일이고, 따라서 농경민들은 상호협동적인 정착문명을 일찍 부터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윤리관이나 도덕관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공헌이나 의무로 무게가 매겨지는 경우가 많다.
서양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형을 최고로 친다. 따라서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 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가꾸는 일에 매진한다. 이는 서양인들이 유목문화적인 전통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양인들은 기질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며 최소한의 법을 지키는 것으로 윤리관을 세운다. 도덕적인 서양인의 관심사는 법을 지켰느냐 아니면 지키지 못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덕적인 동양인의 관심사는 법을 지키는 것 이외에도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 했느냐 못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동서양의 도덕관의 차이를 죄의식 문화 (Guilty Culture) 대 수치심 문화 (Shame Culture)로 대비시킨다.
한 곳에 머무르며 살 수 밖에 없는 정착문명권에서는 어떤 도덕적인 죄인에 대한 단죄가 (신체에 대한 체벌이 약한 대신에 격리시키거나 소외시키는 방법으로) 시간을 두고 차츰 이뤄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언제나 들고 나는 것이 들쭉 날쭉한 유목문명권에서는 "단죄"가 즉결처분 형식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유목민족들의 법관념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포커스가 온통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즉, 죄인이냐 의인이냐에 도덕적인 관점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유목민족들의 개인주의적인 방식과 맞물려서 "죄의식 문화"가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그녀의 유명한 저서 "국화와 칼: 일본문화의 패턴"에서 일본의 도덕관을 [수치심의 문화]로 파악한 반면에 미국의 도덕관을 [죄의식의 문화]으로 파악했다. 수치심 문화권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정해진 법을 어겼는지에 기준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기준을 두고 판단을 하게 된다. 반면에 죄의식 문화권에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자기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를 중요시하게 된다. 같은 [수치심 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체면이 깍였다" 또는 "면목이 없다"라는 표현으로 개인의 도덕적인 수치심을 표현한다.
체면(수치심)과 양심(죄의식)이 지배하는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홍식교수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체면이 지배하는 사회가 훨씬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가령 체면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유교적인 충과 효의 개념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남의 비난과 소외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싫더라도 충과 효를 실행하는 생존 전략을 쓰게 될 것이다. 이는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홍식, 『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교수의 프랑스 문화 이야기』(창작과비평사, 2000))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사법고시를 통과해서 법계에 종사하던 유능한 법률가였다. 그는 이미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법률훈련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벌써 근대적인 법정신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가 가진 도덕관념은 충분히 양심적(죄의식 문화)인 면모가 있다고 해야 한다. 거기에다가 노무현 전대통령의 도덕관념에는 특이하게도 체면적(수치심 문화)인 도덕관념이 더 해졌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실 그 무렵에 주위에 볼 낯이 없어 했던 것도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의 유교적인 도덕관념을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내면에는 불교사상이나 도가사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라고 한 말은 불교사상과 도가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여겨진다. 인생에 대한 쿨한 자세가 엿보인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전대통령은 도불유사상이라는 한국정신의 엑기스를 내면화했고 근대적인 법정신에도 투철했던 극히 드문 도덕적인 토종정치인이었다 하겠다. 또한 그가 대통령 임기동안 걸었던 정치적인 행로를 잘 살펴보면 그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확실하게 머리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혼합할 줄 아는 지혜도 가지고 있었고, "사람사는 세상"을 추구했던 따뜻한 가슴을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얼마나 모든 것을 갖췄던 이상적인 정치가였던가?
"진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미 하나의 유형을 보여주고 가셨다. 그는 시대를 앞서서 살다간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뒤쳐져 있거나. |
첫댓글 문장 좋고 내용은 더 좋고 ....
부끄러움,, 염치,, 수치심 .. 이점에 스스로 엄격함이 매우 두드러진 사람 이었어요.. 노무현...
이전에도 없었고....이후에도 없을...노무현이 있어.....인간과....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고.....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았다.....내 생에 죽는 그 순간까지 잊지못할 이름...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