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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탈옥하지 않았나?
(** 명진스님이 정봉주 의원에게 '탈옥하라' 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법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고, 나아가 ' 법 자체가 악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법에 대한 정당한 불복종'을 권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법에 대한 <정당한> 불복종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아래에서 얘기되는 소크라테스의 <신>은 일종의 '양심의 명령'일 수 있다. 신을 뜻을, 즉 양심의 명령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나 하는 문제는 결국, 정봉주 자신의 도덕적 판단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고 , 또 지금껏 이 땅의 법률에 충실해 살아왔기 때문에 탈옥을 감행하지 않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정봉주가 탈옥하면 정당한 행위일까?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인가? 악법이 법인가?
오래 전부터 소크라테스에 관해서 잘못 전해지고 오해되어 내려오는 생각은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가 ‘법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편들고 있기 때문에 도망칠 것을 권유하는 크리톤의 입장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하면 박정희 독재를 살았던 대개의 사람들, 그 영향을 입은 오늘의 학생들이 떠올리는 것은 ‘법은 지켜야만 한다. 악법도 법이다. 그러니 악법도 지켜야만 한다’와 같은 어떤 것이리라.
생각하건대,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 오해의 주장은 ‘유신헌법’ 시절에 근거 없이 횡행하던 유령과 같은 말이 아니었든가 생각한다.(아래 김주일의 글을 참고)
그런데, 이 ‘법에 대한 복종’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크리톤> 51b-c에는 인격화된 법을 ‘설득시켜야만 하거나 혹은 복종해야만 한다’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의 해석은,
① 이 말은 (의인화된 법을) 설득시키려면 ‘불복종’ 역시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내포하는가? 만일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 많은 ‘정당화된 불복종’이 있을 여지가 있게 된다.
이와 다른 해석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② ‘설득 혹은 복종’이 담고 있는 의미가 법정에서 ‘자기 자신의 견해’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복종해야만 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②의 해석을 따르면, ‘정당화된 불복종’에 대한 여지는 없어지고 만다.
②의 가능성, 즉 ‘정당화된 불복종’이 허용될 수 가능성을 우리가 <크리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다른 가능한 해석의 여지는 없겠는가? 만일 소크라테스가 ‘법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어떤 모순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방어>에서 그는 만일 법정이 그에게 ‘철학함’을 그만 두라고 명령한다면, 그는 복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신(神)이 그에게 철학하라고 명령했고, 그리고 그는 법정을 넘어서서 신에 복종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29b-d). 명백히 소크라테스는 법에 복종하는 것이 신에 대한 불복종을 요구한다면 법에 대한 불복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 그런가?
소크라테스는 ‘정의’(옳음)에 대한 고려가 다른 어떤 고려보다도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크리톤> 48a-49b). 따라서 그는, 만일 복종이 정의롭지 않은 어떤 것을 행하도록 요구한다면 불복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을 최고로 지혜롭고 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신은 그에게 부정의한(옳지 않은) 어떤 것을 행하도록 명령하지 않는다. 만일 신의 명령과 법정의 명령이 서로 상충한다면, 소크라테스는 법정보다 우월한 ‘신’에 복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신도 그에게 도망가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경우에 - 가령,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 도망가는 것이 그에게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도망침은 폴리스(아테네)가 그에게 가했던 그 해악에 대한 응보(應報)로 그 도시에 해악을 가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항시 옳지 못하다. 따라서 해악에 대한 응보로 해악을 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는 <크리톤>49a-e에서 ‘악을 악으로 갚는’ 응보적 징벌을 단호히 거부한다.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망치라는 권유를 거부한 것이 다른 (비민주적) 사회보다 아테네를 더 좋아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자였다는 생각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게 아니라, 이미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그를 ‘열린사회’의 옹호자임을 논증한 바 있다.
이와는 달리 플라톤은 열린사회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크리톤>에서 (52C -53A) 소크라테스는 어떤 다른 도시의 법들보다 아테네의 법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점에서 포퍼의 평가는 그럴 듯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덕’(아레테)을 향해 나아가도록 허용하는 열려진 지적 토론을 위한 관용을 아테네가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크라테스는 단지 ‘소수만이’ 도덕적 지식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소크라테스는 포퍼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민주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배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복종해야만 할 것이다. 이 점은, 비록 소크라테스가 ‘실천적’인 의미에서는 민주주의의 적대자는 아니지만,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도덕적 지식은 얻기가 힘들고 많은 다중(多衆; 많은 사람들)은 잘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일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무지한 다중’에 의한 지배는 나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리고 도덕적 지식의 성취가 힘들다고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실천적’인 측면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신에 의하여 철학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의 비난 중의 하나가 ‘신에 대해서 경건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런 역설적인 주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종교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들이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초자연적 존재들을 믿었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였다(<방어> 24b-c1, <에우티프론> 3b).
소크라테스에 의하여 ‘음미된’ 고발자인 멜레토스의 주장은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1) ‘무신론자’라는 것이고, 또 (2) 전혀 신들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방어> 26c-d). 이 주장들은 소크라테스의 지적처럼 서로 모순적이다. 즉, 만일 자신이 어떤 신들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들이 설령 아테네인들이 믿는 그 신들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다(<방어> 26c-27a).
블래스토스와 같은 학자는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신에 대한 관념은 ‘인간과 같은 어떤 성질을 가진 완전히 도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신들’로 보고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소크라테스가 믿는 신은 아테인들의 관습적 신들과 다른 어떤 의미의 ‘신’이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티프론>에서 그리스 종교에서의 숭배의 특징인 ‘신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크라테스의 실제적인 종교행위가 관습적 태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어떤 다른 이유로 가령, <파이돈> 끝머리에서 크리톤에게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칠 것을 요청한다거나, 또 아폴론 신에게 찬송하는 시를 받치고 있기도 하다(61b).
이 구절들은 소크라테스가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아폴론을 찬송하는 시를 바치고 있는 것을 보면 도시가 믿고 있는 전통적 신들을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어>20e에서는 텔포이의 신(아폴론)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소크라테스는 경건의 필요조건인 관습적 종교적 행위에 참여하면서도, 그는 경건하기 위한 어떤 종교적 행위의 관습적 패턴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에우티프론>), 경건하기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경건이 무엇인지(What is X)’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X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규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도 이러한 ‘설명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는 ‘누구도 경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이 결론적 주장은 젊은이들을 ‘선동할’ 수 요인을 충분히 담고 있다. 그러나 경건하지 않다는 비난은 소크라테스에게 가하질 죄목이 아니다. 설령 소크라테스의 종교적 입장이 관습적이지 않다고 할지라도, 아테네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그가 경건하지 않다’는 주장을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아가 소크라테스는 신의 명령에 복종할 뿐아니라, 그는 또한 그의 합리적 생각(추론)이 이끄는 것이라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단지 ‘반성을 통하여(음미를 통하여)’ 그에게 최선으로 보여지는 결론들만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크리톤> 45b). 그러나 이성의 명령과 신의 명령이 상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블래스토스는 그러한 상충의 여지는 없다고 주장한다. 신들은 해석을 요구하는 신호(signs)만을 줄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의 명령을 자신의 이성에 따라 ‘해석한대로’ 신들에 복종할 뿐이다. 여기서도 소크라테스는 ‘반성에 따라’ 자신에게 최선으로 보여지는 해석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신에 대한 경건의 문제에 관련해서 (1) 신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건한 것이 경건한 것이 아니라 (2) 경건하기 때문에 그것이 신에 의해서 사랑받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즉 ‘경건의 본질’을 선행 조건으로 문제 삼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학에서의 ‘자율성’ 문제가 대두하고, 도덕성의 본질이 인간의 주관적 태도와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윤리적 문제의 ‘객관적’ 측면이 확보될 수 있다.
글쓴이: 명덕 / 2011-12-27, 무브온21
http://moveon21.com/?mid=main2009&category=737&page=2&document_srl=786932
첫댓글 소크라테스, 당연히 '무신론자' 아니고, 또한 '불가지론자' 도 아니었습니다.
'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 ' = 흔히 '불가지론' 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구절은 무지에 대한 방치 및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탐구에 대한 초절정의 강력한 의지표명 인 겁니다
'악법도 법이다' = 이 구절 만큼이나, 소크라테스에 대해 잘못된 인식으로 오.남용 되는 구절이 바로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 ' = 불가지론 입니다.
[ ~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무지한 다중’에 의한 지배는 나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리고 도덕적 지식의 성취가 힘들다고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실천적’인 측면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 이 대목이 소크라테스 의 맹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조차 -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 이처럼 당연하고 간단한 철칙을 두고서 존나리 헤맨거죠 ... 쿠쿠쿠..
결국 '중우정치 = 민주주의 회의론' 자로 묘사 됩니다. 물론 그 제자 플라톤의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한 묘사이긴 합니다..
이래서 하여간 먹물들의 해설을 들으면 오히려 더 정신 산란해 진다니깐... 일생에 보탬이 안되요 먹물들은,,
생각은 테라바이츠 수퍼 컴퓨터만큼이나 복잡하고 골똘히 생각을 해야 하지만, 그것을 내 뱉을 때는 정리해서 한두마디로 간단히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먹물들은 그 반대루에요.
대갈통은 무뇌이면서 말은 졸라 복잡하게 꼬아서 말해요.. 트집 안 잡힐려고 말이죠.. 그게 지식인 들 이에요 졸라 비겁한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말과 글을 떠 받들어요 왜냐? 잘 모르는 것은 뭔가 있어 뵈거든요.. 잘 안다 싶으면 별거 아닌거로 여기죠. 그게 사람들의 이치에요.
말을 간단히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각도 얄팍하고 간단할 거라고 여기면 큰 오산 입니다. 기실은 그 반대에요.
한두마디로 간단히 정리해서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반비례로 생각은 졸라 많이 해야만 그게 가능해 지는 거예요.
먹믈들은 그 반대루 이죠.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고 내보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 졸라 어려워 지는 거예요.
'덩달이' 들은 그런데 헷갈릴 수록 오히려 환호하고 인용해요. 그게 무슨 뜻인지 지네들도 이해 못하면서 말이죠..
'덩달이'들에게 이해는 필요없죠. 어차피 '장식' 이니깐..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했다아~ 인용하는 장식.. 호가호위 공자왈 맹자왈~ 그 족속들이 어디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