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해찬의 선택, 유시민의 선택
‘백만민란’이 ‘혁신과통합’을 찍고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제 민주당은 친노가 접수했다”고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한명숙은 팽당했고(한명숙 개인의 문제 또는 한명숙을 둘러싼 민주당의 본질적 문제… 어쨌건), 이해찬도 팽당할지 모르고(마찬가지), 백만민란(혁신과통합)은 민주당 들러리 신세가 되었고, 문재인도 자칫하면 팽당할지 모른다.
이해찬이 setting하고 문성근이 발로 뛰며 문재인이 이끈 작은 바람 덕에 민주당은 제법 큰 야당으로 자리잡았다.
이해찬과 문성근, 문재인 없이 이 정도의 성과를 민주당 자력으로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해찬, 문성근, 문재인의 역량과 역할과 성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앞으로 민주당은 슬슬 노무현 색깔을 뺄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노무현이라는 상품으로 충분한 이윤을 남겼다.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상품성이 이제 슬슬 한계를 맞이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품은 폐기대상이다. 그것이 장사의 기본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기본기가 매우 탄탄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노무현이라는 ‘죄책감’, ‘연민’, ‘추모의 바람’은 이제 그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음을 소위 ‘친노’ 진영도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 정신’은 야권을 연대시키고 국민들로 하여금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까지는 힘을 발휘했지만, 이명박-박근혜를 무너뜨릴 파괴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안철수라는 변수가 친노(유시민은 친노 아니라니까 빼고)에게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철수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이해찬과 유시민의 선택이 갈리는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당장 민주당과 ‘노무현 정신’이 합치면 세력을 가질 수 있다. 그 세력으로 反이명박, 反박근혜 전선을 구축하는데 까지는 갈 수 있다.
민주당의 뻘짓 만 아니었다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분명 거대야당으로 자리잡아 의회권력을 접수하고 청문회와 진실규명 만으로도 충분히 이명박, 박근혜, 조중동, 검찰의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분명 이해찬의 냉철한 두뇌는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라는 아수라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학 같은)선비 문재인 역시 그 대의를 좇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찬(?)과 (특히)문재인이 간과한 것이 있다.
민주당의 뻘짓은 실수가 아니라 그들의 본질이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돌아가도 민주당은 같은 선택을 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다.
이해찬과 유시민의 선택은 여기서 갈린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의회권력을 접수 했더라도 과연 문재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까?
한명숙, 이해찬, 그리고 문재인… 그들의 싸이클은 패턴과 결과가 동일하다. 그리고 그 싸이클은 노무현대통령의 그것과도 닮았다.
2002년, 대선후보 때는 대통령이 되면 문제가 해결 될 줄 알았다. 그리 됐다면 열린우리당 창당은 필요 없었다.
그나마 민주당 내에서 비교적 건전한 세력들이 모여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가 어땠나? 과반석의 힘으로 4대개혁법안 중 단 하나라도 제대로 처리했나? 늘 한나라당 탓 뿐이었다. 안한걸까, 못한걸까?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노무현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에 쐐기를 박았고, 진보언론과 함께 부엉이 바위로 밀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그게 민주당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치자. 그 뒤는?
그 한계는 참여정부다.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거기까지를 ‘복수’로 생각한다면 이해찬과 문재인의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여기서 이해찬-문재인-김어준 등의 선택과 유시민의 선택이 갈린 거다.)
이해찬은 여전히 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보는 듯 하다. 권력투쟁은 반드시 이권투쟁으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노무현대통령에게 있어 정치란 권력투쟁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와 싸웠다.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바꾸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연정도 제안했던 거다.
유시민을 지지했던 소위 논객들이 유시민을 떠날 때 이야기했던 불만이 “유시민이 ‘복수’에 전력을 다 하지 않는다” 였다.
만일 이해찬이 민주당 대표경선에서 패한다면, 유시민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
…………… 아니다, 분명 다르다.
유시민은 이해찬과 김어준의 예언(?)대로 자신의 지지율을 잠식당한 대신 (진정성 이야기는 그만하고) 진보가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도록 이끌었다. 당권파도 “노무현”, 혁신비대위도 “노무현”을 말한다.
물론 진보는 당장 살아남는 것이 과제일 만큼 처지가 어렵다. 그러나 진보가 살아남아 국민의 용서를 받는다면, 진보와 노무현대통령의 마지막 성찰 사이에는 유의미한 교집합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의 진보에 대한 짝사랑은 드디어 작은 결실을 맺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유시민式 ‘복수’요 ‘계승’이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점점 지워 갈 것이고, 진보는 조금씩 노무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김두관이라는 인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두관이 누군가? 노무현대통령이 위기상황에 처하자 언론에 대고 “나는 노무현패밀리가 아니다.”라며 억울해 했다.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는 것을 불편해 했다.
나는 김두관이 나쁜 정치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을 참칭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한다면 썩 능력있고 매력적인 정치인이라 생각한다.
김두관의 행태는 민주당의 그것과 무척 닮았다. 그런 김두관이 김한길과 손을 잡았다.
김한길이 누군가? ‘정치인 노무현’을 좌절시키고, 퇴임 후 ‘대통령 노무현’을 지켜줄 정치세력 자체를 없애버린 장본인이다.
김한길-정동영-정세균-손학규… 이들은 동종업계 종사자다. 서로 싸우더라도 밥그릇만 다를 뿐 밥솥은 같다.
김두관, 김한길 만 봐서는 안 된다. 정동영, 정세균, 손학규 등등등… 이들이 과연 이해찬이 대표가 되는 것을 원할까? 박지원은? 과연 박지원은 속내는 어떨까?
(너무 나갔나?, 싶다. 여기서 그만 ㅡ.ㅡ)
2. 노무현재단을 정치세력화 하지 마라.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민주당, 이해찬, 유시민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주장한다. 이해찬이야 말로 이번 민주당 대표경선에서 패한다면 정치를 접어라.
이해찬은 이해찬式 정치를 위해서 노무현대통령이 남긴 유산을 송두리째 말아먹고 있다.
노무현재단을 정치판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넘었다.
노무현재단은 시민의 몫으로 남겼뒀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재단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 그것은 마지막 순간 야권후보가 정해졌을 때, 비록 그 후보가 우리가 인정하기 어려운 인물일 지라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지지를 했어야 옳다.
이해찬으로 인해 노무현재단은 시민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친노세력의 울타리 안에 갖혀버렸다. 그리고 특정정파와 등치되었다. 문재인이라는 큰 무기를 너무 섣부르게 꺼내들었다.
유시민의 지지율 하락은 오롯이 유시민의 몫이지만, 이해찬-문재인의 하락은 그 여파가 매우 크다.
친노가 유시민에게 봉하와 상의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유시민은 지속적으로 봉하를 정치권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해왔다.
유시민의 정치적으로 부상한다면 그것은 ‘노무현 정신’의 확장으로 귀결되고, 유시민이 좌절한다면 그것은 유시민 개인의 좌절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재단은 그렇게 유시민을 포함한 친노 정치인(또는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노무현대통령의 성찰, 진보, 상식, 원칙의 저변을 확장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역사 속에서 계속 존속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이 곧 ‘노무현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건전한 정치인을 돕는 최선의 선택이다.
유시민과 유시민지지자는 노무현재단이 유시민을 지원하지 않는다 해도 전혀 불만이 없다.
유시민 지지자들 중 대부분은 그 지지의 이유가 노무현대통령이므로 노무현재단이 유시민을 지지함으로써 가치와 역사적 소명이 훼손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
비록 그 선택으로 유시민이 타격을 받을지언정 그것에 불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선택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노무현재단의 뿌리는 정치판이 아니라 시민들 속으로 뻗어가야 한다.
글쓴이: 무극이 아빠 / 2012. 05. 31 달맞이넷 원문보기
첫댓글 [ 친노가 유시민에게 봉하와 상의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유시민은 지속적으로 봉하를 정치권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해왔다.] = 이 대목은 민주당 성골친노들 할말이 없죠 요번엔 김경수가 낙선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