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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 류가미 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10회) 유럽, 진리를 향한 탐색 ① / 2005-03-11
지난 시간의 내용이 너무 빡빡했다는 곱슬님의 말도 있고 해서, 오늘은 좀 쉬엄쉬엄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유럽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 전개될 것 같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시간에 ‘이 연재가 너무 서양 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한님의 질문에 답을 해볼까 합니다. 아마도 우한님은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발생하여 세계로 전파되고 철기 문화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전파설이 위험스럽게 느껴졌나 봅니다.
그런데 신석기, 청동기 문화가 발생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나 철기문화가 발생한 카프카스 지역은 레반트에 속하는 곳들이지 흔히 서양이라고 하는 유럽과 북미에 속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양은 레반트를 오리엔트 다시 말해 동양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레반트 국가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름을 달고 출전합니다.
◀ 범이슬람권의 상징인 초승달 from mail3.palestiners.org
그러니까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화가 레반트에서 시작되어 전파되었다는 입장을 서양 중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뭐 레반트 중심의 시각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러나 현재 레반트에는 문화적 패권주위를 행사할 만큼 강력한 국가가 없습니다.
사실 중국 학계에서는 중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레반트에서 전파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도 차마 전파과정이 뚜렷한 철기문화에 대해서는 독자 발생설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성과가 하나 둘씩 나오면서부터 중국은 신석기-청동기 문화의 독자 발생설을 주장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만약 중국에서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면 중국의 한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시간차를 두고 그 주변부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야 정상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산동, 요동, 사천에서 각각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는 신석기 유적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 지역 중에서 가장 빨리 청동기 문화로 진입한 곳은 산동 지방이었습니다. 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상나라가 건국되었죠. 아마도 우한님은 상나라 이전에도 국가가 있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상나라 이전 왕조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훗날 상나라보다 오래된 청동기 국가가 발굴된다면 중국의 고대사는 다시 쓰여지겠죠.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발견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추측으로 역사를 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문화의 긍지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약 자기 문화에 긍지를 찾는다면 허구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공증된 사실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레반트가 신석기-청동기 문화를 꽃피우고 철기 문화를 시작할 무렵, 유럽 대륙은 사람들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중국의 상나라가 청동기 문화를 꽃 피웠을 무렵 서유럽은 여전히 야만의 땅이었습니다. 지금 서양의 중심세력인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같은 국가들이 세계사에 두각을 나서기 시작한 것은 시민 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친 18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길게 잡아도 300년 남짓한 시간이죠.
◀ 통합된 유럽의 화폐, 유로화 from hist. uivb. no
저는 레반트와 유럽이 세계사에 기여한 것만큼 인도나 동북아도 세계사에 공헌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 문화권과 동북아 문화권을 다룰 때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언급하죠.
인도는 기원전 6세기에 시작해서 기원을 전후로 독특한 인식론 체계를 완성합니다. 사실 칸트로부터 시작된 독일 관념론은 인도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인지 심리학이 열심히 인간의 인식 과정을 연구하지만 저는 아직도 인도의 인식론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 어머니 인도, 케이시 멕닐 作,
from kathymaneilquilts com
그럼 동북아는 어떨까요?
일만 년 전쯤, 텅텅 비어있던 중국 대륙에 고아시아족이 남하합니다. 그들이 바로 알타이어족의 선조들입니다. 극지방의 추위를 견디며 진화해온 이들 종속은 특이한 호흡을 통해 몸에 열을 내고 엑스타시에 이르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이한 호흡법이 인도의 요가와 동북아의 도가수련의 기원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호흡법이 서양에서 극성스럽게 유행되고 있죠.
◀ 한자 문화권이라고도 불리는 동북아 문화권, 왕희지 난정서 from chianpage com
또한 고아시아족의 후손들은 세계 최초로 기마전술을 개발한 사람들입니다. 이 기마 전술을 바탕으로 고아시아족의 후손, 몽골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고아시아족의 또 다른 후손인 투르크는 레반트 전역을 점령하고 터키라는 제국을 세웠습니다.
근대사를 공부하면 서양(정확히 말해서는 서유럽과 미국) 중심의 시각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인류의 길고 긴 통사를 공부하다 보면 세계사의 주인공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각각의 문화권은 그들의 방식대로 세계사에 공헌했습니다.
그리고 레반트에서 전파되었다고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화가 남의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아주 최근에 농업 혁명이나 청동기나 철기 제조 기술만큼이나 전세계의 생활양식 변화시킨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그것은 바로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은 1969년 미국 국방성의 지원으로 미국의 4개의 대학을 연결한 알파넷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도 안 지난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인터넷이 미국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출발은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인터넷은 이미 토착화된 우리 문화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화가 그 기원이 레반트에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토착화된 우리 문화입니다. 우리는 레반트에서 시작된 농업기술로 이제껏 식량을 생산해왔고 레반트에서 시작된 청동기와 철기 기술로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왔습니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과 프랑스는 앞 다투어 레반트로 가 유적들을 발굴하고 문화재를 자신의 나라에 가져옵니다. 사실 레반트의 고대 유물들은 현재 레반트보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에 더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문화재 도둑이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영국과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문명의 기원이 바로 레반트에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그곳에서 발생한 문화의 상속자라고 믿었습니다.
◀ 각 문화권을 벗어나 범지구적인 신화가 태어날 때이다.
form astro wachington edu
뭐 허락 없이 남의 나라에 가서 문화재를 가져오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또한 그들처럼 인류문화의 상속자이자 후계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도 세계사 공헌할 만한 것을 만들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앞으로 한반도에 살게 될 후손들만이 아니라 지구 전역에 살게 될 후손들에게 말이죠.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동시에 세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 우한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쯤에서 끝내고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보죠. 기원전 6 세기경까지 유럽대륙에서 문명이라고 할 만한 곳은 크레타 섬과 그리스 본토 그리고 에게 해 연안에 있는 그리스 식민도시(植民都市) 정도 입니다. 아직 로마는 평범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고 그 외 나머지 지역에는 거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 고대 그리스 지도 from mrbarham com
유럽 문명이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곳은 지리상으로 유럽 대륙 중에서도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일어난 메소포타미아와 철기 문화가 일어난 카프카스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신석기-청동기 문명은 에게 문명이라고 불립니다. 에게 문명은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크레타 문명(혹은 미노아 문명)과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한 미케네 문명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먼저 청동기 문화가 시작된 것은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크레타 섬에서였습니다. 기원전 2500년 크레타 섬에서 청동기 문화가 시작됩니다. 그 후 에게 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크레타는 점점 번성하다 기원전 15세기경에 그 절정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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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타 크노소스성의 벽화, 투우하는 여자, from utexax edu |
▲ 미케네 유적, 암사자의 문, from mikrassov com |
그럼 그리스 본토의 사정은 어땠을까요? 기원전 2000년 경, 아카이아인이라고 부르는 아리안의 한 갈래가 그리스 본토로 이주해옵니다. 그들은 크레타 문명보다는 조금 늦게 그리스 본토에 미케네 문명을 건설합니다. 그런데 그리스 본토의 청동기 문명을 건설했던 아카이아인들은 크레타 사람들과는 인종적으로 다릅니다. 크레타인들이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방) 사람들과 인종적으로 가까웠다면 아카이아인들은 아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늦게 시작한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6세기경에는 크레타 문명에 맞설 만큼 성장합니다.
그 후 크레타 문명과 해상권을 놓고 다투다가 기원전 14세기경에는 크레타 섬을 침략해서 크레타 문명을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미케네의 번영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200년 후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본토로 쳐들어 온 도리아인에게 멸망당합니다. 도리아인은 미케네를 세운 아카이아인처럼 아리안의 한 갈래였습니다.
도리아인은 군사적으로는 앞서지만 문화적으로는 크레타인과 미케네인보다 뒤졌습니다. 도리아인이 그리스를 점령한 이후 그리스는 암흑시대에 접어듭니다. 에게 해에 다시 문명의 빛이 나타난 것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과 식민 도시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제가 지루하게 그리스의 고대사를 이야기한 것은, 고대 그리스가 토착민들의 농경문화와 새롭게 이주해온 사람들의 유목문화라는 두 가지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크레타 문명을 일군 토착민들은 위대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농경민이었습니다. 반면, 그리스 본토를 점령한 아리안 (아키아이인과 도리아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숭배하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위대한 어머니의 원리를 계승한 크레타의 문화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원리를 계승한 그리스 본토의 문화와 상당히 다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사실 철학은 신화적 전통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을 합리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화 체계가 달랐던 크레타 문명권의 철학과 그리스 본토의 철학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크레타 문명권에 속했던 이오니아 지방의 자연철학이 위대한 어머니의 원리를 계승하고 있다면 그리스 본토의 고전철학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원리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오니아 태생의 탈레스, 아낙시만도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연철학 속에는 위대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면, 그리스 본토 출신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철학 속에는 하늘에 있는 아버지(Heavenly Father)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기서 잠시 위대한 어머니의 신화를 기억해보죠. 농경 문화의 신화 체계 속에서 위대한 어머니는 모든 생명을 낳는 자궁이자 모든 생명을 거두는 무덤입니다. 만물은 그녀에게서 생겨나 그녀에게로 돌아갑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녀의 품 안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합니다.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그녀와 하나입니다. 따라서 위대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신화체계에서는 나는 그녀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녀에게서 나와서 그녀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 위대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신화체계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물활론자들이라고 불립니다. 물활론(物活論, hylozoism)은 모든 물질이 그 자체 속에 생명과 신성을 갖고 있다는 철학적 입장을 말합니다. 물활론 (hylozoism)은 그리스어의 '질료(質料)'를 의미하는 'hyle'와 '생명'을 의미하는 'zoe'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물질과 정신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단 하나의 질료 혹은 원리에서 발생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만물을 창조한 그 질료와 원리를 피시스(physis) 혹은 아르케(arche)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피시스와 아르케는 위대한 어머니의 원리가 추상화된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여신을 숭배하던 신석기-청동기의 사제들과 달랐습니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여신의 사제들처럼 만물 속에 내재된 신성을 숭배하는 대신 만물속에 내재된 그 신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했습니다. 그들은 신을 모시는 사제가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다시 말해 과학자)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본토의 철학자들은 어땠을까요? 여기서 잠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화를 살펴봅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화는 시간과 공간에 묶인 지상과 영원불멸한 초월적인 세계인 하늘을 구별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계신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초월한 저 하늘입니다. 참된 세계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아버지가 계시는 저 초월적인 정신세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화 체계는 물질과 정신, 내재와 초월을 구별합니다. 이 신화체계 안에서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세계와 초월적인 세계는 같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입니다. 동시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화체계는 물질보다 정신, 내재적인 세계보다는 초월적인 세계에 우위를 둡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 방식은 그대로 그리스 본토의 고전 철학에서도 나타납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상적인 세계 저 너머에 오로지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에 따라 명멸을 반복하는 현상 세계 저 너머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영원불멸한 실체(substance)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신화 체계가 세계를 지상과 하늘의 두 차원으로 나누듯,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철학은 존재를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멸한 정신으로 존재하는 본질(essentia)이고 또 하나는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 안에 육체를 입고 존재하는 실존(existentia)입니다.
역사의 우연인지 아니면 역사의 필연인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케네의 젊은 왕 알렉산더의 스승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짧은 생애 동안 유럽과 레반트를 아우르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합니다. 동시에 그는 모든 정복자들이 그랬듯이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통합시킬 신화 다시 말해 보편적인 세계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입니다. 그리고 이 헬레니즘의 기본 바탕은 알렉산더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레반트의 종교와 그리스의 철학은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다음 시간에는 헬레니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류가미 ⓒ
원문 출처: 연재 시리즈 - 데일리 서프라이즈
이미지 복원: 노하우업 (Knowhow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