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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 류가미 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4회) 폭력과 성스러움, 왕은 죽어야 한다 /
지난 시간에 신석기-청동기 시대를 지배했던 위대한 어머니와 그녀의 품속에서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곡물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신석기-청동기 도상 속에서 위대한 어머니와 곡물신은 매번 허물을 벗는 뱀(혹은 용)과 기울었다가 다시 차는 달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세상을 창조한 위대한 어머니, 티아마트는 거대한 물뱀입니다. 중국 신화에서 세상을 창조한 위대한 어머니 여와는 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즈텍의 신화에서 위대한 어머니 코아틀리쿠에가 뱀의 여인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 바빌로니아의 티아마트 ▲ 중국의 여와 와 복희
바빌로니아 신화 속에서 이난다는 보통 금성을 뜻하지만 동시에 달의 여신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죽은 남편 두무지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갑니다.
두무지는 곡물신으로 겨울이 되면 저승으로 가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달의 여신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저승의 일곱 대문 앞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을 하나씩 벗어놓습니다. 마치 보름달에서 그믐달로 변하는 과정처럼 말이죠.
알몸이 되어 힘을 잃은 달의 여신은 명계의 여신에 의해 죽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이 그녀를 구함으로써 다시 부활하지요. 그믐달이 다시 초승달로 부활하듯이 말이죠.
또한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위대한 어머니와 곡물신은 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집트의 달의 여신 이시스는 초승달 모양의 소뿔을 왕관으로 쓰고 있습니다. 또한 신성한 소, 아피스는 이시스의 남편 오시리스 신과 동일시됩니다. 황소 머리를 한 인간인, 크레타의 미노타우로스와 중국의 신농 또한 위대한 어머니와 곡물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사람의 얼굴을 가진 황소 – 시리아 ▲ 이집트의 이시스 신
크레타의 미노타우로스는 신석기-청동기 시대 크레타를 중심으로 발달한 농경문화의 상징이고 중국 전설 속에서 신농은 최초로 인류에게 농업을 가르쳐준 신입니다.
위대한 어머니를 나타내는 또 다른 도상은 바로 돼지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위대한 어머니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고르고(그중 메두사가 가장 유명하죠)은 머리카락이 뱀이고 멧돼지의 어금니를 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 의 고르고
프뤼기아의 지모신인 키르케는 자신이 혐오하는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립니다.
아프로디테의 연인인 아도니스는 멧돼지의 어금니에 찔려 죽습니다. 돼지가 지모신과 연결되는 것은 돼지가 가장 흔하게 여신에게 받쳐지던 가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돼지만큼이나 자주 여신에게 받쳐졌던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신석기-청동기 농경 문화에서는 주기적으로 풍요를 빌기 위해 인간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이러한 제의는 대단히 신성하게 여겨졌고 이러한 제의의 희생물이 되는 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희생 제의에 바쳐지는 것은 바로 여신의 사제이자 공동체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 사제왕(Priest-King)- 메소포타미아
사제-왕(priest-king)은 정기적으로 희생제의의 제물로 살해당했습니다. 그는 살해당해 갈기갈기 찢깁니다. 그의 시체의 일부는 공동체 성원들에 의해 먹혀지고 또 일부는 땅에 뿌려집니다. 그렇게 사제-왕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위대한 어머니의 아들이자 배우자인 곡물신을 재현합니다.
이러한 잔혹한 희생제의 밑바닥에 깔려져 있는 것은 바로 ‘한 알의 밀알’ 의 에토스 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니라.’
곡물신을 재현하는 사제-왕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 땅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듬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먹여 살릴 먹거리로 부활합니다. 이리하여 주술은 죽음을 극복한다는 구석기인들의 모토는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 생명은 죽음을 먹고산다 로 바뀌게 됩니다.
프레이저 경의 황금가지를 보면, 이러한 사제-왕의 살해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알게 됩니다. 사실 농업이 이루어졌던 모든 곳에서는 사제-왕 살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총 13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대부분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사제-왕 살해의 전설, 유적, 관습에 대해 담고 있습니다. 축약본이 안 나왔다면 읽기가 벅찬 책이었죠.)
삶과 죽음을 연속적인 과정을 파악했던 구석기인들의 생각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위대한 어머니(The Great Mother)’라는 형태로 정착합니다. 위대한 어머니는 생명을 낳으며 동시에 생명을 죽이는 창조주이면서 파괴자입니다. 그녀는 태어나고 죽고 죽은 후 다시 부활하는 삶과 죽음의 원리, 순환하는 우주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신의 표상은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집트에서는 마트, 인도에서는 다르마, 중국에서는 도(道) 같은 추상적인 원리로 변합니다.
사실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사제-왕(priest-king)은 지금의 왕과 전혀 다릅니다. 그는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원리, 순환하는 우주의 흐름을 인간 세상에서 재현하는 존재였습니다. 그 시절 왕은 이집트에서 마트, 인도에서 다르마, 중국에서는 도라고 불렀던 우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존재였지요.
아마 여기서 우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도 좋은데 누가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싶겠어,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꽤 재미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융의 제자 중에는 에리히 노이만(Erich Neumann, 1905-1960)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유태인이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이 사람은 유럽을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고고학적 발견과 융의 분석 심리학은 연결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 연구결과 태어난 것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The Great Mother’와 '의식의 기원과 역사(the Origins and History of Consciousness)' 라는 두 책입니다.
사실 융의 분석심리학의 전제 중 하나는 개인의 발달 과정은 인류의 발전 과정과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성장과정은 인류가 과거에 거쳐 온 정신사적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아이는 만 3세가 되면 내가 항상 있다는 느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아의 항상성이라고 합니다)과 외부의 사물들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느낌 (대상 항상성)을 갖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드문드문 이어지던 아이의 의식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연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인류도 철기 시대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의식의 연속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인류에게는 확고한 개인 의식 (다시 말해서 자아) 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에서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일이 그다지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만물을 낳고 만물을 죽이는 위대한 어머니의 품 안에서는 삶과 죽음, 타자와 자아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한 주기의 다른 국면이고 모든 존재는 같은 어머니에서 나온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 의해 태어나서 언젠가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존재들은 결국은 어머니와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농경사회의 신화와 윤리 체계는 자아의 형성을 억누릅니다. 그런 사회일수록 개인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공동체의 행동 양식에 스스로를 맞출 것을 강요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언젠가 죽어 없어질 개인이 아니라 바로 영속하는 집단입니다.
사실 그들의 지도자인 왕을 제물로 바치고 그를 먹는 이러한 제의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개인성을 포기하고 집단 안에서 자신의 영속성을 발견하도록 촉구합니다. 먹히는 자와 먹는 자는 하나이고 그 둘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없습니다.
식인만큼이나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는 바로 난교입니다. 바타이유가 지적한 대로 섹스는 일시적으로 두 개체간의 자아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제의가 담당하는 역할은 바로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라는 차원으로 집단을 묶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스러운 폭력, 혹은 잔혹한 일체감은 균열되기 시작합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후반에 가면 당연히 죽어야 할 사제-왕들이 죽지 않습니다. 멀쩡히 살아남은 그들은 신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신인 척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 신성한 원리를 구현하기보다 권력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탐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사제왕 (Priest-King), 하랍파 인더스
이제 왕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음으로서 공동체의 먹거리가 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희생 제의에 바칩니다. 이제 희생제의 제물이 되는 것은 왕이 아니라 그 집단에서 가장 약하고 배척받는 인물들이 됩니다. 더불어 성스러운 희생제의는 집단의 내부 갈등을 무마하기 위한 집단 이지메 혹은 마녀사냥 형태로 변질 됩니다.
신석기-청동기의 신화적 체계 안에서 우주의 창조주이며 파괴자인 위대한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원리를 구현할 사람을 선택합니다. 사제-왕은 위대한 어머니로 표상되는 우주의 원리를 구현하도록 선택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제-왕의 권력은 그가 이러한 우주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할 때만 인정됩니다. 권력은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구현하고 있는 우주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러한 우주의 원리를 구현할 의무를 가집니다. 이러한 논리적 맥락에서 볼 때 왕권은 세습될 수 없는 것입니다. 권력은 여신에 의해서 사제-왕에게 맡겨진 것이지 사제-왕 자신이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에 의해서 맡겨진 것을 사유화하고 그것을 자신의 아들에게 세습한다는 것은 일종의 타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들은 자신이 신의 원리를 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바로 신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리하여 폭군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왕들이 나타납니다.
초기에는 정기적으로 살해당했던 이집트의 왕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자신의 무덤을 짓는 전제 군주로 변합니다. 부족연맹체의 수장이며 제의를 담당하던 상(商)의 왕들은 서서히 부자세습을 통해서 왕권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말기에 가서는 포락지형(泡烙之刑)과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일삼는 주왕 같은 폭군이 나타납니다.
그리스에는 또 하나의 폭군의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가 바로 테세우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스 왕입니다.
◀ 미노타우로스 – 그리스 크레타
선사시대 크레타 섬에는 소를 숭배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소는 위대한 어머니와 곡물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곡물신은 초승달 모양의 뿔을 가진 황소에 비유되고 여신은 황소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선사 시대 크레타 섬에서는 왕이 황소로 변장해서 주재하는 제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 이제 테세우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보죠.
신화 속에서, 미노스 왕은 포세이돈에게 가호를 빕니다. 포세이돈은 그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그에게 잘생긴 황소를 보냅니다. 포세이돈은 때가 되면 그 황소를 희생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황소에 욕심이 난 미노스 왕은 포세이돈 보낸 황소를 바치는 대신, 다른 소를 바칩니다.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 아내 파시파에에게 미친 욕정을 불어넣습니다.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를 사랑하게 된 파시파에는 황소와의 사이에서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사람인 미노타우로스를 낳습니다. 미노스 왕은 자신의 치부인 미노타우로스를 미궁 속에 가둡니다. 그리고 미궁 속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먹이기 위해 해마다 일곱 명의 소년과 소녀를 공물로 보낼 것을 아테네에 요구합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가 아니라 그 철기 시대에, 크레타가 아니라 그리스에서 형성된 이 신화 속에서는 위대한 어머니의 역할을 포세이돈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신화 속에서 몇 가지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크레타의 왕은 위대한 어머니의 배우자인 황소로 여겨졌으면 아마도 정기적으로 살해당했을 겁니다.
사실 이 신화에서 황소는 사제-왕의 신성한 권력과 때가 되면 희생해야 하는 그의 의무를 뜻합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황소를 제물로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거절한 셈이지요. 그와 더불어 신성한 왕의 상징인 황소는 폭군을 상징하는 미노타우로스로 변합니다.
이제 왕은 신성한 원리를 재현하는 자가 아니라 미궁 속에서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맙니다. 이 폭군을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그 당시 약소국이었던 아테네에서 공물로 보내진 소년과 소녀를 제물로 바칩니다. 결국 미노스 왕의 어두운 측면인 미노타우로스는 아테네에서 온 젊은 왕자 테세우스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무너뜨린 아리안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10세기를 전후로, 아리비아에 살던 셈족이 수메르 왕국을 무너뜨립니다. 그 무렵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 살고 있던 아리안이 동서로 이동합니다. 그들은 서쪽으로 가 미노아 문명을 무너뜨리고 동쪽으로 가 인더스 문명을 무너뜨립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주나라가 상나라를 무너뜨리는 은주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영광은 끝납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석기-청동기 문명을 무너뜨린 셈족과 아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p.s. 1
쌍둥엄마님께
신석기문명의 시작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는 것은 모든 세계사 책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로 참조하는 책은 조지프 켐벨의 ‘신의 가면’입니다. ‘신의 가면’은 모두 4권으로 되어있는데, 그 중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은 ‘동양신화’라는 책에서 입니다.
p.s. 2
박봉팔님께
사실 지난 시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신석기-청동기 문명이 다른 곳으로 전파되어갔다고 말해놓고는 조마조마 했습니다. 조지프 캠벨은 적극적으로 전파 이론을 지지하고 있지만 다른 책들은 딱 부러지게 전파 이론을 지지하는 대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와 인도의 신석기-청동기 문명이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지리상으로 이들 지역은 가깝고 또한 각각의 문명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중국입니다.
사실 중국의 신석기-청동기 문명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바로 연결 짓기에는 거리적으로 너무 멀고 또 문명 사이에 차이도 큽니다. 사실 중국학자들은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신석기-청동기 문명을 발생시켰다고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가끔가다가 자신이 최초의 문명이었다고 웃기는 소리도 합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은 양사오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 유적은 기원전 4000년에서 20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자르모의 유적과 비교하면 거의 6000년에서 4000년의 시간차가 납니다.
중국의 신석기-청동기 문명은 상당히 요상합니다. 이제까지는 황하 근처에서 신석기-청동기 문명이 발생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양쯔강 유역과 요녕 지방과 서촉 지방에서 거의 같은 시기의 신석기 유적들이 발견됩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신석기 문화는 황하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중국에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신석기 문화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중국에 신석기-청동기 문명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전파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이야기는 동북아 문명을 다룰 때 다시 한번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류가미 ⓒ
원문 출처: 연재 시리즈 - 데일리 서프라이즈
이미지 복원: 노하우업 (Knowhow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