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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류가미'님이 2006년 12월 8일부터 2007년 8월 7일까지 '데일리 서프라이즈' 에 연재하신 [류가미의 문예기행] 37부작 연재물중 26부와 27부를 복구한 발췌물입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에서 '서프라이즈' 로 서버이전 와중에 망실되었던 그림화보의 URL소스 경로를 찾아 복원 편집한 것 입니다. 복원내용의 저작권은 '류가미' 님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류가미의 문예기행 26] 고딕소설에서 장르소설로
주소 - http://cafe.daum.net/knowhowup/HgGz/27
안녕하세요, 류가미입니다. 오늘부터 영국의 낭만주의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18세기 영국은 프랑스처럼 대혁명과 공포 정치, 왕정복고 5월과 2월 혁명이라는 정치적 파란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독일처럼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상태라 민족 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영국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산업혁명을 먼저 치룬 영국은 산업화의 어두운 면 역시 먼저 경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은 경제혁명이면서 사회계급의 일대 변혁을 일으킨 사회혁명이었습니다. 시민혁명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계급 제도를 타파한 혁명이었다면, 산업혁명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은 귀족, 사제, 평민이라는 세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귀족 계급은 왕과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봉건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봉토를 가지고 있는 지주계급이었고 자기 영토 안에 거주하는 평민들에게 인두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제 계급은 로마 교황청과 그곳에서 임명된 사제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황령이라는 토지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십일조라는 막대한 수입원이 있었습니다. 평민 계급은 이 두 계급에게 수탈되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근대 시민 혁명은 사회적 약자였던 평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일어났습니다. 근대 시민혁명의 대표적인 사례인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과정을 살펴보죠.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 왕, 루이 16세가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함으로써 생긴 재정 문제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루이 16세는 파탄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둘 필요가 있었고 그를 위해 175년 동안이나 열리지 않았던 삼부회를 소집했습니다. 삼부회는 귀족, 사제, 평민의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를 말합니다.
1789년 5월 5일 드디어 삼부회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최됩니다. 의원의 총 수는 약 600명으로 그 중 300명은 귀족과 사제 대표였고 나머지 300명은 평민 대표였습니다. 상정된 의제는 평민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삼부회 의원들 사이에서 의사 결정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국왕의 세금징수를 막고 싶은 평민의원과 자유주의 귀족 의원은 모든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사안을 머리수 투표에 의하여 결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평민 의원과 자유주의 귀족의원의 머리수를 합치면 삼부회에 과반수가 넘기 때문에 당연히 이 의제는 부결됩니다.
그러나 귀족 의원과 사제 의원이 이러한 의사결정에 찬성할 리가 없었죠. 그러자, 귀족과 사제 의원들은 삼부회의원이 모두 모여 의결하는 대신, 각 계급을 대표하는 의원끼리 따로 투표에 들어가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귀족 대표, 사제 대표 쪽에서는 평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쪽으로 의결이 되고 평민 대표 쪽에서는 세금징수를 반대하는 쪽으로 의결이 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귀족대표와 사제 대표는 2:1로 평민대표를 이기고 자신의 뜻대로 평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자 화가 난 평민(시민) 대표들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와 따로 국민회의라는 새로운 의회를 만듭니다. 물론 루이 16세는 국민회의를 탄압했지만 국민의회는 ‘헌법제정 의회’로 이름을 바꾸고 헌법을 제정하고 시민 의회를 상시로 설치하려고 합니다. 이에 루이 16세는 국경에 있던 군대를 베르사유 주변으로 불러들이고 삼부회의 최고 책임자인 네케르를 파면합니다. 다시 말해 루이 16세는 강제로 국민회의를 해산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이 파리에 알려지자, 시민들은 국왕의 군대가 들어오지 못하게 파리 성문을 굳게 닫고 각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7월 14일, 약 만 여명의 시민이 시의 동부 요새이며 정치범을 수용하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습니다.
◀ 파리시민들의 바스티유 습격: 태브냉 作
국왕의 군대는 시민군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시민군의 기세에 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입니다.
바스티유 습격과 시민군의 파리 점령 소식이 전해지자, 지방에서도 농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농민들은 영주의 성이나 호적·토지대장의 보관소가 습격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헌법 제정의회’는 1789년 8월4일 회의에서 봉건적 신분제와 영주제의 폐지를 단행하였습니다. 비로소 프랑스의 국민들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중세와 근세의 신분제도를 없앴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습니다. 산업혁명은 과거 농업혁명만큼이나 엄청난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가능하게 했던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여러 기술 분야 (1 강철 같은 새로운 소재의 사용, 2 석탄 증기 같은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기계, 3 매뉴팩처라고 알려진 새로운 작업 형태의 등장, 4 증기 기관이나 전신 같은 교통과 통신 발달)의 혁신이 어우러져 엄청난 생산력 증가를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평민(시민)들 사이에 분화가 일어납니다. 시민 계급은 자본가(부르주아지)와 그에게 고용된 임금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로 나뉘게 됩니다. 중세나 르네상스 시절 농노들의 생활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초기 산업혁명 때 노동자의 생활은 정말이지 끔찍했습니다. 농촌에서 기반을 잃고 도시로 흘러들어온 시민들은 정말이지 먹고 살기 위해 집안 식구 모두 13-14 시간이 넘는 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초기 산업 혁명 시대 노동환경은 우리나라 60년대 노동 환경과 비슷합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고,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을 때 그들의 고용주인 공장주(자본가)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본가는 같은 평민 계급이었던 노동자의 삶을 개선시켜주기 보다, 자신의 부를 합법적으로 지키기 위해 지주계급인 구시대의 귀족들과 정치적으로 연합을 합니다. 그렇게 산업 혁명은 인간을 땅이나 공장을 소유한 유산계급과 그들에게 고용된 재산 없는 무산계급으로 두 가지 계급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과거 귀족과 사제 계급과 평민(시민)계급의 갈등은 이제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갈등으로 변질됩니다. 18세기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빈부차이는 전 시대의 특권계급과 평민들의 차이보다 크면 컸지 더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주장하는 초기 사회주의 이론들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19세기의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는 마르크스가 등장한 것도 이 같은 사회적 풍토 때문이었습니다.
어쨌거나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화가 가져온 기계문명에 대해 기묘한 불신감이 팽창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불신감은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좀 더 은밀하게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기계문명에 대한 불신감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 중세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대로 영국 낭만주의에 반영됩니다. 이 시기에 T. 톰슨의 ‘사계(四季, 1730)’, ‘E. 영의 야상(夜想, 1744)’, T. 그레이의 ‘시골 사원무덤가의 애가(1751)’ 번즈의 ‘변경농민의 노래’ 같은 시들이 등장했습니다. 이 시들은 애상적인 어투로 자연과 인간의 삶과 죽음을 노래하였습니다. S.T. 콜리지와 W. 워즈워스의 공저인 ‘서정가요집(Lyrical Ballads, 1798)’에서 목가적인 삶의 찬양과 자연을 대할 때 느끼는 신비로움을 노래했습니다.
반면 소설에서는 월터 스콧은 ‘호수의 여인’이나 ‘아이반호’ 같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기사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중세풍의 이야기는 점차 중세를 배경으로 한 공포, 수수께끼. 괴기스러운 음모를 담은 고딕소설로 발달해갔습니다.
고딕 소설은 매우 중요한 장르인데, 왜냐하면 고딕 소설은 현대 모든 장르 문학의 모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 공포, SF, 미스터리, 로맨스, 추리물, 환타지는 모두 고딕 소설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입니다.
최초로 고딕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사람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 1717-1797)이었습니다. 그는 16세기 오트란토 성을 배경으로 오싹한 이야기를 써냈습니다. 그것이 최초의 고딕 소설인 ‘오트란토 성(The Castle of Otranto, 1764)’입니다.
◀ 호레이스 월폴 (Horace Walpole)
호레이스 월폴은 내각 책임제를 창시한 영국 수상 로버트 월폴 경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였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뒤 런던 서쪽 교외에 자신의 취향을 살린 고딕풍의 성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딕풍의 성에서 일어나는 괴기한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합니다.
고딕 소설이라는 것은 고딕풍의 성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만약 월폴이 빅토리아 스타일의 저택을 짓고 살았다면 그의 소설 또한 빅토리아 식 저택을 배경을 했을 테고, 아마도 고딕 소설이라는 장르 또한 다른 이름이 붙여졌을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고딕풍의 성, 지하에 무척이나 현대적인 인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폴은 자신의 성에서 자기 책들을 찍어냈다고 합니다. 아무튼 돈 많은 사람들은 참 좋겠습니다.
자 이제, 최초의 고딕 소설이자, 모든 장르 소설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월폴의 ‘오트란토 성’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이 소설은 느닷없이 나타난 거대한 검은 투구가 영주 만프레드의 아들을 깔아뭉개 죽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날 이후 만프레드 영주는 그의 혈통이 끊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아들의 약혼녀인 이사벨라를 유혹하기 시작하죠. 이사벨라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자기를 위협하는 만프레드 영주로 인해 고통 받습니다.
이 소설에는 훗날 고딕 소설에 특징이 되는 초자연적인 현상, 불길한 예언, 고통 받는 처녀, 그녀를 위협하는 남자라는 모티브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오트란토 성’을 비롯한 고딕 소설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낭만주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이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자아를 압도하는 초월적 대상을 만났을 때 인간이 느끼는 숭고의 감정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고딕 소설은 칸트의 숭고 이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월폴의 뒤를 이은 고딕 소설가 래드클래프는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대상 앞에서만 숭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대상에 의해서도 숭고의 감정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나옵니다.
그녀는 월폴의 공포의 개념을 자기 식으로 변형시켰습니다. 래드클래프는 월폴이 그렸던 초자연적인 대상으로 인한 공포를 호로(horror)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공포 개념인 테러(terror)와 구분시켰습니다. 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라면 테러는 규명 가능한 대상에 대한 공포입니다.
래드클래프는 설명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를 설명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공포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소설에서, 공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음습한 음모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그녀의 대표적 ‘유돌포성의 미스터리(The mysteries of Udolpho ,1794)’를 보죠.
주인공 에밀리는 이탈리아의 아페닌 산 속에 있는 유돌포성으로 강제로 납치됩니다. 그 후 에밀리는 일련의 이성한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리, 불가사의한 음악소리 등등. 그러나 언뜻 보면 초자연적인 공포로 가득 찬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끝에 가서 여주인공을 미치게 만들기 위한 누군가의 고의적인 음모였음이 밝혀집니다. 그런 면에서 래드클래프는 추리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의 선구자라고 불려집니다.
이 소설에서는 해명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공포는 여전한데,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섬뜩한 악의 때문입니다. 이제 공포의 대상은 초월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인간 그 자신이 됩니다. 바로 인간 자신이 재앙이었던 셈입니다.
1818년, 인간이 만든 재앙과 거기서 발생하는 공포를 다루는 고딕 소설이 나옵니다. 메리 셸리(1797-1851)가 쓴 이 소설은 훗날 SF와 환타지라는 새로운 장르의 선구자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으로 인조인간을 창조한 후 겪게 되는 사건을 다른 SF 소설이자, 동시에 작가 메리 셸리의 꿈을 모티브로 한 환타지 소설입니다. (물론 본격적인 환타지의 출발은 ‘프랑켄슈타인‘이 나온 지 50년 뒤에 쓰여진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모든 장르 소설들은 낭만주의의 후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18, 19세기 영국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이나 고딕 소설들을 좋아했습니다. 고딕 소설은 그들이 산업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잘 반영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딕 소설들이 아주 인기를 끌자, 출판업자들은 작가에게 같은 유형의 소설들을 계속 써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이야기를 조금씩 변형해 가며 반복해서 창작합니다. 그러자 이러한 창작물들은 하나의 장르로 굳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 문학과 예술이 표준화된 규격(장르)에 따라 대량 생산되면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문학과 예술은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 요즘 서점이나 극장을 가보시면 알겠지만, 요즘 출판되는 대부분의 소설들은 고딕 소설에 나온 환타지, 미스터리, 추리, 로맨스, 호러 같은 장르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는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의 대부분은 문예 영화가 아니라 이러한 장르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장르 소설들, 문학과 예술의 산업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소수의 귀족들의 호사였던 문학과 예술을 이제 대중들도 향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학과 예술의 민주화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평균적인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문학과 예술이 창작되고 유통되고 소비되기 때문에 문학과 예술이 하향 평준화 되었다고 보아야 하나요?
21세기 초, 우리들은 예전에는 소수의 귀족들만 향수했던 책들과 음악과 드라마를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향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점은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진 책들과 음악과 드라마들 때문에 인류의 재산이라고 불리는 고전들이 시장에서 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시간에 소개했던 프랑스 낭만주의의 첫 소설인 루소의 ‘신(新) 엘로이즈’는 아직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문학사적인 가치를 지닌 소설이 아직 번역되어있지 않은 것은 그 소설이 지금 한국 시장에서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학과 예술의 대중화가 가져온 빛과 그늘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사실 이 문제는 21세기 문학과 예술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음 시간에는 메리 셸리와 그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아볼까 합니다. 다음 시간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길…….
ⓒ 류가미
[류가미의 문예기행 27] 메리 셸리, 새로운 장르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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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류가미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대로, 메리 셸리(1797-1851)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사실 이 작품만큼 최초라는 말이 많이 붙은 작품도 없을 겁니다. 평론가들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최초의 공포 소설이자 SF 소설이며 또한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프랑켄슈타인은 그 시대에 매우 급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프랑켄슈타인을 쓴 것은 바로 메리 셸리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메리 셸리를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의 결합물이자 낭만주의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꽤 이상하죠. 하지만 그녀의 집안 내력이 그렇습니다.
메리 셸리는 급진적 사상가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설파했던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 해방론자였던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그녀의 남편은 바로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퍼시 셸리(1792-1822)였습니다.
메리 셸리의 아버지 고드윈은 매우 급진적인 사회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치적 정의와 그것이 일반 미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1793>을 통해서, 정부는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게 부패하기 마련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인습적인 정부를 거부하면서 그 대안으로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가 이루어지는 소규모 자립 공동체를 제안합니다. 그는 19세기에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던 마르크스의 선구자였던 셈입니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를 통해서, 여성이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여성도 교육, 직업, 정치에서 남성과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던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
그녀는 여성의 자존을 주장하면서 남성들만의 ‘반쪽뿐인 세계’에 저항했습니다. 살아생전,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나는 새로운 종(種)의 시조가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딸 메리 셸리를 낳은지 열흘 만에 산욕열로 죽고 맙니다.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딸에게 메리라는 자신의 이름을 남겨주었을 뿐 전혀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메리 셸리는 ‘나는 새로운 종의 시조가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선언에 영향을 받았는지, 오로지 남자에 의해서 창조된 새로운 종의 이야기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의해서 실험실에 창조된 한 이름 없는 괴물이 이야기입니다.
당대 유명한 사상가들을 부모를 둔 메리 셸리는 그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지적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적은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죽은 지 얼마 안되서 그녀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그녀는 이복형제 자매들과 함께 자라나야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집에는 수많은 사상가와 문학가들이 드나들었죠. 그 중의 한 사람이 문단의 이단아였던 퍼시 셸리였습니다.
열여섯 살이었던 메리는 스물 한 살 난 젊은 시인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퍼시 셸리 역시 철학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이 총명한 처녀에게 온통 정신을 빼앗기죠. 그러나 그들의 사랑에는 큰 장애가 있었는데 그것은 퍼시 셸리가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퍼시 셸리의 아내는 남편과 메리의 불륜에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 후 메리는 퍼시 셸리와 결혼하지만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곱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결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퍼시 셸리와 결혼 한 뒤, 메리 셸리는 조산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일찍 세상에 나온 그녀의 아이를 태어나서 얼마 못가 죽고 맙니다. 메리 셸리는 겨우 열아홉의 나이로 출산과 아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그 해 프랑케슈타인을 씁니다.
◀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Mary Shelley)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게 된 사건은 문학사에서는 하나의 전설로 내려옵니다. 1816년 6월 퍼시 셸리, 메리 셸리, 메리의 이복 여동생이자 바이런의 애인이었던 클레어, 그리고 바이런경의 주치의자 비서였던 폴리도리는 레만 호숫가에 있는 빌라 디오다티에 체류하고 있는 바이런 경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오는 여름 날씨 때문에 그들의 아름다운 레만호의 풍경을 즐기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야만 했습니다. 무료했던 그들은 독일의 콩트집 팡타스마고리아니(Fantasmagoriana)에서 영감을 받아, 유령 이야기들을 하기로 했습니다. 단 조건은 그 유령 이야기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날 밤 잠들기 전, 의사인 폴리도리는 메리와 그의 친구들에게 갈바니 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줍니다.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갈바니가 해부 실험 중 개구리의 다리가 해부도에 접촉하여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동물 전기현상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메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학이 보여주는 새로운 전망들에 매혹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이상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날 밤 그녀가 꾼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자신이 만든 창조물 주위에 창백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신성 모독적인 기술의 신봉자를 보았다. 나는 누운 채로, 위력적인 기계가 작동하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끔찍한 형체가 딱딱한 몸짓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장인은 자기의 성공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고는 공포에 사로잡혀 재빨리 도망쳤다. 그는 잠자고 있었다. 아니 깨어난다. 그는 눈을 뜬다. 그러자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커튼을 젖히면서 자신의 누르스름하고 흐릿하면서 사색에 잠긴 듯한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킨 채 머리맡에 있었다.
다음날, 친구들과 모여 유령 이야기를 할 때, 메리는 이 꿈 이야기를 합니다. 바이런과 퍼시 셸리는 그녀에게 그 꿈을 소설로 써볼 것을 권합니다. 그들의 격려에 힘을 입어, 메리 셸리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소설화합니다. 그날 밤 메리가 꾼 꿈에는 소설 프랑케슈타인의 중요한 테마들은 다 나옵니다. 강박적인 과학자, 금지된 지식과 금기 위반, 창조자에게 버려진 괴물, 괴물로 인해 발생하는 공포 등이 말입니다.
그런데 빌라 디오다티에서 탄생한 공포 소설은 프랑켄슈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이런의 비서이자 주치의였던 폴리도리는 이곳에서 얻은 영감으로 ‘벰파이어, 설화(The Vampyre, A tale)’를 썼습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케슈타인을 창조해내는 동안, 폴리도리는 매력적인 흡혈귀 귀족, 루벤스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흡혈귀 루벤스는 심미안을 가진 귀족으로 여자들을 유혹해 그녀들의 피를 빠는 바람둥이입니다.
사람들은 흡혈귀 루벤스가 바이런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소에 바이런은 폴리도리를 심하게 놀렸다고 합니다. 어쩌면 폴리도리는 바이런에게 품었던 자신의 반감을 루벤스라는 흡혈귀를 통해 표현했는지 모릅니다.
루벤스라는 흡혈귀가 중요한 것은 그전에는 단순한 전설상의 인물이었던 흡혈귀를 독특한 개성과 내적인 동기를 가진 현대적인 캐릭터를 재창조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루벤스는 프랑켄슈타인만큼 유명한 괴물, 드라큘라의 원형이 되는 캐릭터입니다. 브람 스토커는 폴리도리가 ‘벰파이어, 설화’를 쓴지 거의 80년 후인 1897년에 드라큘라를 완성합니다.
제네바의 빌라 디오다티에 머무르는 그 짧은 기간동안, 인조인간 프랑켄슈타인과 심미적인 흡혈귀라는 문학사 남을 불멸의 캐릭터가 두 명이나 창조되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자 이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속으로 들어가 보죠.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일찍부터 연금술에 몰두하다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지식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 듯, 그는 생명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금기를 위반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시체를 조합해 8피트의 인조인간을 만들고 동물전기를 이용해 되살려 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입니다. 다시 말해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을 창조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 보다 훨씬 무책임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창조물을 위해 신들이 금한 지식(불)을 훔쳐오지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을 외면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이 눈을 뜨자, 창조물의 추악함에 겁을 먹습니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을 실험실에 팽개치고 거리로 도망칩니다. 다시 그가 실험실로 돌아갔을 때는 그의 창조물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이름 없는 괴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창조물을 잊으려고 합니다. 사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로부터 이년 후, 그는 자신의 어린 동생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살해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동생을 살해한 것이 자신이 만든 그 괴물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어느 날 우연히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만납니다. 그 괴물은 그에게 자신이 사회에서 받은 냉대를 털어놓습니다. 괴물은 한 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빅터의 동생인 것을 알고 복수심에 죽여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괴물은 분노에 차서 울부짖습니다.
“저주 받은 창조자여! 신은 자비심을 가지고 자신을 닮은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었는데, 내 모습은 어찌 이리 추악한가?”
괴물은 마지막으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갈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빅터는 또 다른 괴물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에 분노한 괴물은 빅터의 친구 크레르발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창조자인 빅터 프랑케슈타인은 괴물을 거부했고 그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괴물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버림 받은 이름 없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괴물은 사회적으로는 자기를 증명해줄 아무런 신분도 가지지 못한 소외된 존재입니다.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자신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된 인간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살해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약혼녀 엘리자베스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첫날 밤 그의 신부는 괴물의 손에 살해되고 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복수심에 불타 괴물을 추격합니다. 그렇게 고립된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전 세계를 떠돕니다. 누군가가 괴물을 쫓는 프랑켄슈타인을 남극에서 봤다는 이야기로 이 소설은 끝이 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유럽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열망에 빠져 주위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의 목표는 한 가지 자신의 힘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그는 지적으로는 신의 권능에 도전할 만큼 탁월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돌볼 줄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약혼자와 가족을 떠나 혼자 연구에 몰두합니다. 마침내 그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지만 자신이 피조물이 추악하다고 해서 버립니다. 괴물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이려 합니다. 빅터는 괴물의 의도를 알고 있지만 그의 복수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넘어선 신과 같은 권능을 추구하지만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보호할 줄 모르는 매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파멸은 권력이 사랑을 몰아낸 그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권능을 추구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시장과 원료를 대어줄 더 많은 식민지를 찾아 밖으로 팽창하던 19세기 유럽의 열강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영국은 지구상에 수많은 식민지를 획득해, 해가 지지 않은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그 당시 세계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몇몇 나라로 분할되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열강은 지구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괴물을 창조해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창조해낸 그 괴물은 인간 사이의 유대와 자연을 파괴했습니다. 19세기 팽창하던 유럽의 제국주의는 20세기 세계 1,2차 대전으로 끝이 납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제국주의의 결말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으로 갈리어 서로를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남성들이 권력과 영광을 추구한다면 여성들은 인간 사이의 유대와 친밀감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19세기는 남성성에 의해 여성성이 극도로 억압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19세기 비엔나의 프로이트는 많은 여성들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히스테리는 신체적인 이상 없는데도 자꾸 몸의 통증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프로이트는 여성들의 고통이 신체적 이상이 아니라 바로 심리적인 억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억압된 여성성을 해방시키려는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된 것도 19세기의 일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어머니 없이 태어난 이 괴물의 복수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그의 복수는 여성성을 억압하는 남근중심적인 사회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생명의 창조라는 신의 영역을 넘본 인간의 오만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끝없이 팽창하려는 유럽의 제국주의가 가져올 파멸에 대한 예언으로 읽어야 할까요? 괴물의 복수는 그 모든 함의를 담고 있거나 그 이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낭만주의가 몰락해 가던 19세기 쓰여진 프랑켄슈타인은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던 17세기에 쓰여진 신(新)엘로이즈와 달리, 더 이상 인간 본성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성을 따라 행동하고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낭만주의의 꿈은 19세기 끝없는 탐욕으로 얼룩진 제국주의 안에서 악몽으로 변하고 맙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괴물에게는 돌아갈 어머니(Nature Mother)가 없습니다. 황폐한 된 인간의 심성을 달래줄 모체로써 자연은 이미 인간의 권력욕에 의해 파괴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초에 쓰여진 프랑켄슈타인은 그렇게 다가올 세기말적 절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힘찬 도약으로 시작했던 낭만주의는 바닥없는 추락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쯤에서 낭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접고 다음 시간부터는 사실주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그때까지 평안하시길…….
ⓒ 류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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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메탈' 장르를 대중화시킨 핀란드 <나이트위시>그룹 3곡 감상
방송사의 스포츠 프로그램, CF, 영화, 게임 배경음악 등등, 많은 분야에서 나이트위시그룹의 곡들은 단골로 차용됩니다. 가장 많이 차용된 2곡 Wishmaster, The Kinslayer 와 Sleeping Sun, 3곡의 라이브공연 영상물입니다.
◆ Nightwish 그룹 곡: Sleeping Sun (보컬: 타르야 투루넨)
Youtube 주소- http://youtu.be/ejnck_pnSWk
◆ Nightwish 그룹 곡: Wishmaster (보컬: 타르야 투루넨)
Youtube 주소- http://youtu.be/LAbVkagvYc0
◆ Nightwish 그룹 곡: The Kinslayer ( 보컬: 타르야 투루넨)
Youtube 주소- http://youtu.be/sWUicNl__hY
류가미님의 문예기행 26부편, 상기에 언급된, 독일 '칸트' 가 설파한 <숭고의 미학> 과 독일 낭만주의 배경 과 환멸,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 민속과 신화, 등의 칼럼은; [ 류가미의 문예기행 22 : 낭만주의 : 주소 - http://cafe.daum.net/knowhowup/HgGz/23 ] 부터 시작되므로 시간 없으면 거기부터 여기 26부까지 살펴 보면 됩니다만, 가급적,, 37편 연재물 전체를 숙독하길 권합니다. 류가미님의 옥고와 수고에 지금도 경의를 표합니다.
메탈음악의 모토는, - 공포와 분노에 대한 <초월> - 이라고 일전에 제가 개념을 정의한 적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그 너머의 저 편,, <저항>을 <초월> 하여 <숭고>를 지향한다,, 하늘(천상)을 바라본다 ~ 고 저는 부연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고전문화 = 클래식(Classic)>의 '정수' 를 모색하게 되며,,, 그것은 여성스러움의 '정화' 를 통해서 조화되지 않으면, 전투적인 남성( 침략적 제국주의적 )만으로는 <숭고>함의 '정수' 에 결코 도달할 수 없으며, <주화입마> 의 <자기파괴적 결과> 를 초래한다 ~ 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류가미님의 문예기행문 '고딕문학 장르' 와 맥락이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까?
류가미님의 문예기행 연재 당시, 귄터반트님은 예술에 있어서 철학적 <정의> 나 개념의< 정의> 를 함부로 내리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 " 예술은 정의하는 순간부터 예술작품은 유기적 생명을 잃고 피 흘리기 시작합니다" .
저 역시 귄터반트님의 <경고>에 공감 합니다. 자칫 문화적 우열이 계층적 / 민족적/ 인종적 우열을 가르는, 또다른 차별과 편견의 시발이 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서프라이즈 대문에 올려진 어느분의 글 <클래식을 하는 데에도 철학적 개념이 있어야 한다> 요지의 글에다가 제가 댓글로 마구 욕을 퍼부어 댄 이유도 그러한 엘리트적인 계층간 우열적 차별의 피를 흘릴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류가미님이 설파하신, " 완전체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침묵할 수는 없다 " 는 주장도 공감합니다. 침묵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면 탐구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해야 한다 - 공감 입니다.
나이트위시 그룹의 공연영상을 보십시오, 저 십대들의 열광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저런 기이하고 음산한 초 강력 울트라 파워스러운 과격한 음악에,,, 으째~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더 열광하며 즐기는 히안하고 기이한(?) 장면을 보십시오.
분명히 이유가 있는 거지요.. 제가 추출한 메탈음악 장르의 <초월>, <숭고> 그리고 <여성> 이라는 테마의 맥락이 고딕문학이라는 장르의 탄생 배경인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의 역사적 문화적 시대적인 테마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야기 할 만 하지 않습니까?
저 공연에는, '마이클잭슨' 같은 세기적인 춤 동작도, 섹시한 백 댄싱 걸/보이 섹시 떼거지 집단 댄싱도,, 움직이는 현란한 무대 세트도, 피를 뿌려대는 자극적인 연출도,,,등등.. 그런거 아무것도 없이, 그야말로,,,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 인 <악기 연주 소리와 노래 목소리> - 딱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관 공연장을 꽉 채운 저 수만 관객을 휘어 잡는~ 저 마력.... 대단하지요 <압권>입니다...
동영상 저 조그마한 화면으로 보는 데도 혼이 빨려 들어갈 지경인데,, 저 현장에 관객으로 있다면? 정신 나갈 정도로 저 역시 저렇게 열광할 것 같습니다.
일전에 제가 언급하길,, 극강의 헤비메탈 사운드 ( 데스메탈 까지도 저는 애호가랍니다 ) 포함해서 세상에서 가장 가공하다는 사운드란 사운드는 거의 다 섭렵해 온 파워 사운드 애호가 이지만,,,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의 비행' 을 능가하는 만큼 <압권>으로 가위 눌리는음악은 없다 ~ 고 한 적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를 통털어 난다 긴다하는 극강의 사운드와 남성 보컬 웬만한 거 다 들어 보았지만, 저 여성 소프라노 보컬 '타르야 투루넨' - 남성도 아닌 저 여성 보컬 가창의 <압권> 과, 휘어잡는 <마력>을 능가하는 그 어떤 남성그룹이나 보컬을 저 여지껏 보지 못했다고 감히 단언 할 수 있습니다.
저러니~ 남성들 보다도 여성팬들이 더 열광하는 거~ ,,, 이해 할만도 하지 않습니까? ( 물론 저는 남자인데도 타르야' 의 가창에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만 ㅋ~)
통상적으로 여성팬은 남자가수에 열광하고, 남성팬은 여성가수에 열광하기 마련인데,, '타르야 투루넨' 은 외려 여성팬들이... 게다가 유럽 저 동네에서는 십대 소녀팬들이 더 미치고 환장을 합니다 ...그러니 히트치고 대중화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겠지요... 소녀팬들이 열광해야 '히트' 친다는 거는 대중음악의 '철칙' 입니다.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 인 <악기 연주 소리와 노래 목소리> - 딱 이것 밖에 없는데도,, 마이클잭슨의 역사적인 춤 동작 보여주는 공연보다도 더 혼이 빨려 나갈 것 같은,,, 저 휘어잡는 마력~,,, 분명 .. 이유가 있겠지요?
음악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음악의 <원초적 기본> 은? 결국 '소리' 죠?. 그 '소리' 중에서 신이 만든 가장 신기한 소리? " 사람의 소리 " 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 원초적 이유' 이겠지요. 결국... '사람' 입니다.
원초적 이유 --> 저는 이것을 <정수> 라고 표현 합니다.
전세계 대중음악장르를 통털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운드이며, 이제까지 출현한 그 어떤 극강의 남성밴드들 조차도 제압해 버릴 정도로 가장 막강하고 압도적인 초강력 울트라 파워음악 장르인, <고딕메탈>을 탄생시킨 것은,,, 여성이 참여하였기 때문이며,,,대중화시킨 것 역시나 여성팬들이 수요의 중심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이 엄청난 역설적인 현상......
이땅의 천박한 마초들과, 다른 분야에서는 극성이면서 으째~ ,,,,문예분야에만 들어오면 하나같이 전부다 예쁘장하게 한 '고상' 하시는 우아한 우리네 여성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땅의 <지식인>과 <문예반>들, 특히나 <고상하신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등등....
모두의 '타성' 과 '선입견' 과 '편견' 을 그야말로 뒤집어 엎어버리는......
by 아프로만 / 201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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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장르에, 남성보다 오히려 여성이 더 열광하는 기이한 현상(?) 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의 비평
출처: -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2086§ion=sc7§ion2=%C3%A5/%B9%AE%C7%D0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현주 기사입력: 2005/01/31
고딕문학과 전복적 힘,
가족이데올로기의 허구와 균열
“우리는 고딕적 시대에 살고 있다.” (앤젤라 카터)
제임스 웨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는 얌전하게 자수를 놓다가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메리 셀리’에게 ‘바이런 경’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천둥소리에도 이렇게 겁을 내는 어린 소녀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생각해내게 되었을까.”
‘어린 여성’이 고딕소설을 쓰게 된 바탕
18살의 나이에 고딕 소설이자 최초의 SF소설로 평가 받는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해낸 메리 셀리는 1831년 개정판 서문에서 스스로에게 거의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다. “어떻게 어린 소녀가 그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게 되었을까?”
그녀는 시인 바이런의 장난스런 제안으로 공포 소설을 쓰게 되었고, 남편 퍼시 셸리가 그의 친구들과 당시 나누던 대화에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는 등 주변 남성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퍼시 셸리가 쓴 1818년 초판의 서문은 메리 셸리가 이 작품을 쓴 목적이 “가족애의 다정함과 보편적 미덕의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대의 한 비평가가 혹평한 것처럼 ‘정신 이상자가 쓴 듯한’ 이 소설은 끔찍한 악몽을 경험한 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교훈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의 가족이데올로기의 허구와 균열을 드러내는 측면이 강하다. 게다가 메리 셸리가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유사한 주제의 소설들을 계속 집필했으며, 당대 고딕 작가나 독자들 중 여성 비율이 상당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린 여성’이 이러한 고딕 소설을 쓰게 된 바탕에는 ‘주변 남성들의 도움’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란 추측을 하게 한다.
고딕 소설은 18세기 후반, 서양에서 중세 고딕 문화와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긴 낭만주의 문학의 한 사조로, 주로 중세의 사원이나 성당의 비밀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산하고 이교도적이며 비현실적인 환상 등을 다룬다. 최초의 고딕 소설로 불리는 호레이스 월폴의 <오틀란트 성>(1764)은 폭압적인 군주와 그에 의해 고통 받는 여성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악마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사용된 ‘오래된 음산한 성’, ‘어두운 계단’, ‘비밀의 방’, ‘초자연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 ‘폭압적인 아버지’, ‘강제 결혼’, ‘절망과 공포에 시달리는 여성’, ‘귀족적인 분위기’, ‘지하 감옥’, ‘수도사’, ‘악마적인 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기사도적 정신’, ‘신화적 요소’ 등 소재들은 이후 고딕 소설들의 기본 요소가 된다.
일시적 일탈인가, 저항인가
월폴 이후의 고딕 문학은 여성작가들과 여성독자층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해 갔다. 이는 당대의 정치적인 상황보다는 사적인 문제, 즉 가족과 결혼의 문제가 더욱 현실적인 관심사였던 여성들에게 있어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 할 수 있는 핍박 받는 가련한 여성의 운명이나 낭만적인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 그리고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의 세계가 매력적인 현실 도피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맨스적 요소가 강화된 대중적인 고딕 소설이 대 유행을 하면서 “여성작가들이 마구 휘갈겨 쓴” 고딕 로맨스에 빠져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여성 독자들을”을 조롱하는 풍자화가 신문지상을 장식할 정도로 고딕 소설은 ‘여성화’된다. 심지어는 제인 오스틴도 <노생거 사원>에서 고딕 소설에 빠져 공상에 빠져있는 여성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많은 고딕 소설들이 악마적인 것, 과도한 욕망, 공포를 일으키는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거나 혹은 로맨스적인 남성을 등장시켜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서 오히려 보수적인 현실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거나 일시적인 일탈의 공간으로 작용하여 현실의 결핍을 메우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문학 비평은 고딕 문학에서 다양한 전복적인 힘을 발견해낸다.
고딕 소설에는 모든 것이 평준화, 분업화 되어가는 산업사회에서는 더 이상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죽은 자들의 불멸하는 초현실적인 영역에서만 진정한 아우라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이는 현실도피, 혹은 허황된 상상력의 산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가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자본주의 시계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시간을 걸어가는 것, 즉 부르주아 사회의 윤리와 합리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의 한 형태일 수 있다.
또한 고딕 문학에 등장하는 악마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여성을 비롯한 소외된 자들, 즉 타자의 반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메리 셸리는 ‘괴물’을 단순히 선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괴물에게도 목소리를 부여하여 괴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창조자에 의해 버려진 자식인 괴물은 사회와 가정에 정상적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기존 사회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사회의 거부로 그가 자신의 타자로서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 진정한 괴물이 되는 것이다. 18세기 가족 중심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합리적인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이 합리성이란 타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의 윤리에 들어맞지 않는 욕구들을 억압하여 이루어낸 것일 뿐이다.
질서의 세계 아래 억눌려 있는 욕망의 세계
<오틀란트 성>에서 폭압적인 군주에 의해 희생당하는 아내와 딸의 모습은 한없이 무기력해 보인다. 이는 비극적인 여성의 모습을 통해 고딕적 공포의 효과를 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훌륭한 아내와 딸이라는 가족 내에서의 역할 수행을 통해서만 자신의 지위를 획득하고, 진정한 욕망은 억압하며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어 겉으로는 화목하고 건전해 보이는 부르주아 가정의 기저에 어떠한 폭력성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된다.
샤롯 브론테의 유명한 작품, <제인 에어>에서 로제스터는 표면적으로는 상처를 안고 있는 낭만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숀필스 저택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다락방에 갇혀 있던 로제스터의 미친 아내 버사 메이슨 때문인 것처럼 설명된다. 하지만 이방인이면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버사 메이슨은 차갑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제해 온 제인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제인은 여성의 욕망하는 자아를 숀필드 저택의 불길 속에 태워버린 후에야 로제스터와 낭만적인 결합을 하고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직접적으로 부르주아 가정을 위협한다. 그가 여성의 피를 빠는 것은 가학적이면서도 성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그가 뱀파이어로 만든 여성들을 궁극적으로 자신의 일부다처적인 지배 하에 둠으로써 정상적인 가정윤리를 비웃는다. 또한 뱀파이어가 된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게 되는데 여성의 욕망이야말로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윤리가 용납할 수 없는 타락의 방식인 것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이교도적인 제의를 통해 제거되어 기존의 사회 질서가 회복되는 듯하지만 이 악마를 경험했던 평범한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이미 견고한 듯 보이던 질서의 세계 아래 억눌려 있는 욕망의 세계를 보았으며 그것이 남긴 충격과 매력은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강력하다.
금기는 언제나 두려운 동시에 매력적인 것이다. 고딕 작가들의 의도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은 욕망들, 이질적이고 공포스러운 것들에서 떨어져 나와 그로부터 안전한 사회의 품으로 돌아오는 모험을 담으려 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때때로 작품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 자체의 무의식의 작동원리에 따라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고딕 세계는 조심성 없이 사람들을 금기 앞에 무기력하게 세워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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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yuhiyuhi) 작성일 2010년11월11일
하~ 참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동영상을 틀어 놓고 올려 놓으신 포스팅을 몇번 읽어 보면서
왜 이런 동영상을 함께 올리셨을까, 좀 의아했었는데 님의 설명을 들으니 님의 의견에 공감이 가는군요.
고딕문학 장르와 고딕메탈 음악장르가 확실히 맥락을 같이 한다는 님의 생각을 전달 받으니 아직 미미하지만 그 느낌이 전달됩니다. 고맙습니다!
아래는 참 중요한 지적이긴 합니다.
[류가미님의 문예기행 연재 당시,
귄터반트님은 예술에 있어서 철학적 <정의> 나 개념의< 정의> 를 함부로 내리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 " 예술은 정의하는 순간부터 예술작품은 유기적 생명을 잃고 피 흘리기 시작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쓰레기인가" 라는 질문은 대단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도올 김용옥이 아티스트 백남준씨와의 만남에서 드렸던 공개 질문이 "무엇이 예술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백남준씨의 대답은 "돈이 되는 것이 예술이다"라고 답을 했다는 그의 저서 중 나오는 글을 읽고 나서 '참 솔직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정말 그렇게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작품'을 창조한 작가 내지 예술가의 삶이나 철학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소위 아티스트의 '작품' 내지 '창조행위'을 그 아티스트의 의도 내지 느낌대로 정확하게 느낄 수 있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건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심에 다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참, 님이 세우신 포스팅 덕분에 '나이트위시'의 몇곡을 다운로드 받았답니다.
요즘 집에 들어 오면 이 그룹의 음악 틀어 놓고 살고 있네요.
귀에서 윙윙 소리가 들리는 듯....음성이 참으로 맑고 깨끗하네요.
근데 왜 북유럽 쪽에서 고딕메탈 음악이 발달했는지 그 배경이 조금 궁금합니다.
날씨나 기후 때문일까요?
사회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개개인의 자유로움이 다른 유럽국가보다 더 자유롭기 때문일까요?
첫댓글 [이미지 86x64 & 대문140자]
고딕메탈과 현대문학의 모태 고딕문학◇
메탈음악의 모토는, 공포와 분노에 대한 초월- 이라고 일전에 제가 개념을 정의한 적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그 너머의 저 편,, 저항을 초월하여 숭고를 지향한다, 하늘(천상)을 바라본다- 고 저는 부연 설명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