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진 십자가의 은혜
마가복음 15:20~23,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로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체포된 후에 밤새 불법 재판을 받으시고 아침 일찍 빌라도에게 최종 사형 판결을 받고 로마 병정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성의 서문밖의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때의 일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심문을 당하고 이리 저리 끌려다니며 매를 맞고 가시로 찔리고 채찍질당하여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에서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예루살렘의 거리를 걸어갑니다. 몸이 힘이 없고 피를 많이 흘렸기에 예수님은 이리 자빠지고 저리 쓰러지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십자가를 다시 질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보다 못한 로마 군병이 구경꾼들 중에서 만만한 사람 하나를 지목하여 그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도록 명합니다.
그 때 걸려든 사람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 지역인 지금의 리비아나 튀니지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으로서 개종한 유대교인이거나 구레네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출신인 유대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유대인들 중에는 애굽에서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고 바벨론 포로 시절 이후에 북부 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흑인의 혈통을 가진 유대교인들이 예수님 당시에 많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한 혈통적, 지리적 배경을 가진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 날 아침 우연히 유월절 명절에 성전에 올라왔다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여인들이 울면서 따라가며 어떤 사람들은 저주하며 따라가는 무리 가까이 왔다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쓰러진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로마 병정이 바로 자기를 지목하여 예수님 대신에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 구레네 시몬은 황당하고 몹시 싫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 사형수의 사형틀을 손을 대기를 좋아하겠습니까? 누가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진 사람이 짊어지고 가던 그 피 묻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기를 원하겠습니까?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인 로마 제국은 정복한 식민지 백성들에게 로마의 군인이나 관리들에게 무조건 협조하도록 행정 명령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식민지 백성들에게 물건을 가지고 따라오라는 명령을 내리면 적어도 5리까지는 무조건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런 배경에서 유대인들에게 산 위에서 교훈할 때에 누가 5리까지 가자라고 하면 10리까지라도 따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기 싫었지만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이 지고 가다가 쓰러져 땅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십자가를 어쩔 수 없이 어깨에 짊어지고 십자가를 진 두 명의 다른 죄수들 뒤를 따라 갔고 예수님은 시몬의 뒤를 비틀거리면서 따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위에 올라가서 시몬이 십자가를 털썩 땅에 내려놓았을 때에, 로마 병정들은 그 십자가 위에 예수님을 눕히고 그의 양 손과 양 발에 쿵쿵 굵은 대못을 쳐서 박아 매달았습니다. 준비된 구덩이에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쿵하니 내려놓고 높이 세우니, 예수님은 그 십자가 위에 매달려서 6시간 동안 피와 물을 흘리시며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운명하시고 저녁에 장사 되고 가까운 동산 한쪽에 있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 날 있었던 일 중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구레네 시몬은 참으로 고마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울 때 그의 육체적인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 너무 싫었고 억울하게 느꼈겠지만 예수님이 담당한 수치와 고통을 함께 당했으며 골고다의 길에서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호흡을 느끼고 예수님의 손을 마주 잡기도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에 힘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시몬이 이렇듯 뜻하지 아니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함께 골고다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시몬이 그 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도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도 알려진 인물들이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 21절에 이르기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시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기록된 마가복음은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 와서 로마 기독교회 공동체에서 사역할 때에 그 곁에 마가 요한이 베드로를 돕는 비서이자 젊은 목회자로 동역할 때에 그 로마 성도들을 위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다른 마태, 누가, 요한복음보다도 더 빨리 만들어진 최초의 복음서인 이 마가복음서를 통하여 마가는 사도 베드로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바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가르침을 헬라어로 단순하면서도 힘차게 기록함으로써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시몬을 소개했을 때에 구레네 사람 시몬은 초대 로마 교회 공동체에서 잘 알려진 사람일 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도 잘 알려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알렉산더와 루포 역시 주님께 쓰임받는 주의 종들이 되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약 10년 내지 12년 정도 지난 후입니다. 당시 이방 선교의 모교회 역할을 한 시리아 안디옥의 영적 지도자들 중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구레네 시몬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는 ‘니게르’가 흑인을 가리키는 말이요 ‘시므온’은 ‘시몬’으로 읽혀질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의 16장 안부 인사 부분을 보면 로마 공동체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편지를 써 보낼 때에 로마서 16:13 말씀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서 로마 교회 공동체의 루포와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가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고 그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아내일 가능성이 큽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안디옥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사도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올라와 안디옥 교회에서 가까이에서 동역하였는데 시므온의 아내 곧 구레네 시몬의 아내요 루포의 어머니가 마치 어머니처럼 사도 바울을 상당 기간 돌보아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서로 시간적, 공간적 아구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구레네 시몬은 안디옥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고 그 가족들은 로마로 이주하여 로마 교회를 섬겼고 그의 아들 루포와 알렉산더는 그 로마 교회 공동체에서 젊고 훌륭한 주의 종으로 헌신하였고 그 아내까지도 사도 바울이 몹시 사랑하는 분이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자원한 것이 아니요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었을 뿐인데 이렇듯 구레네 시몬과 그의 가정과 자녀들까지도 풍성한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보면서 시몬은 주님 가까이 가기도 바리지도 않았고 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몹시 부끄럽고 고통스럽기조차 했으며 얼른 그 십자가 벗어던지고 싶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억지로 골고다까지 예수님과 함께 올라갔던 구레네 시몬은 그 일로 인하여 그토록 자신도 구원받고 영적인 지도자로 성숙해졌고 그 아내도 귀한 사도 바울이 자기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존중을 받았으며 그 두 아들도 로마 교회 공동체에서 다 알려진 훌륭한 젊은 성도 혹은 주의 종들이 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믿게 된 계기가 예수님을 사랑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억지로 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축복인 줄을 알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억지로 진 십자가처럼 힘들고 부끄럽고 어서 떨쳐내고 싶었을지라도 이 일로 인하여 주님을 믿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고 자녀들까지도 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복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존귀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한 바도 아닌데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의하여 예수님과 연류가 되고 신앙인과 관련이 깊어져서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오해를 당하고 손해를 당하는 일이 있다면 이제 그렇게 된 것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믿는 도중에라도 신앙 때문에 지기 싫은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게 될 때에, 수치스러운 일을 신앙 때문에 견뎌야 할 때에, 도리어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를 내가 나눠 지게 되었음을 감사합시다. 다들 피하는 사명과 직분의 일을 내게 맡게 되었을 때에 그 사명의 십자가를 놓치지 말고 기꺼이 붙들고 놓지 맙시다. 주님의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 또 주님의 교회들이 세상의 미움을 당하게 될 때에 묵묵히 교회를 지키며 주님 안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기도하면서 주님을 변함없이 섬깁시다.
그러할 때에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과 그 가정의 식구들처럼 주님은 귀하고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때와 그 골고다에 매달려 악한 자들에 둘러싸여서 모욕과 조롱을 받으며 온 몸의 고통을 느끼면서 외롭게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을 때에 여전히 그 곁에 남았던 갈릴리 여인들처럼 우리도 묵묵히 주님 편에 머물러 있는 자가 됩시다. 그리할 때에 주님의 영께서도 우리의 인생의 걸음걸음마다 함께해주실 것이요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때에 우리의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면서 오르막 길을 올라갈 때면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천사들을 명하여 우리가 지고 가는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대신 지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들을 기이한 능력으로 해결해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삶에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보일 때마다 모른 체 말고 기꺼이 함께 짊어집시다. 억지로 지게 된 경우에도 깨닫고 이 십자가로 인하여 영혼의 복과 삶의 축복이 엄청나게 부어질 것을 바라보고 묵묵히 그 십자가를 계속 지고 갑시다. 때가 되면 구레네 시몬이 받았던 축복과 은혜의 그 신비가 우리 삶 속에서도 풍성하게 임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에 큰 영광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