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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가복음 10: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재물이 많은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고자 찾아 왔는데, 예수님께서 그가 재물에 욕심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아시고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 하나가 되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외에 이렇게 예수님께서 직접 나를 따르라고 초대한 사람은 아마 이 청년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크나큰 영광스러운 초대입니다. 그런 만큼 그 청년은 영적 위기 속에 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 청년은 재물 욕심에 계속 끌려 살다가 망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얼마 못가서 유다와 예루살렘 지역 전체는 강도떼들의 출몰로 인하여 급격한 불안정과 혼란이 찾아왔고, 결국 30년 뒤에는 나라 전체가 로마 제국과의 극렬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기에 모든 재산과 명예들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청년이 그 많은 재산을 부등켜 안고 살았다 해도 그의 생애는 계속된 불안정한 체제 속에 재산 때문에 강도떼들의 표적이 되고 그 재산과 함께 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초대를 받아들였다면 그의 많은 재산은 가난한 자들의 구제로 사용되어 주님 말씀대로 하늘에 그의 보화가 영원히 그의 것으로 남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되어 영광스러운 지위에 오르는 엄청난 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길을 알 수 없고 영적인 축복과 은혜를 아는 영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청년처럼 거의 다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근심하면서 뒤로 물러가기가 쉽습니다. 참으로 큰 부자가 자기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비로 내놓고 자신을 주님의 허름한 제자로 만족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 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판단으로는 부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서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고 가난한 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크게 놀라서 이렇게 서로 물었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들 중에 아무도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제자들은 놀람과 염려 속에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놀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구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많은 재물로도 안되고 높은 관직으로도 안되고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공덕을 쌓아도 안되고, 그가 깊은 영적 깨달음을 터득하고 영적 세계를 들락거린다 해도 안됩니다.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아무리 큰 죄인도 구원하시고 아무리 완악한 자의 무지와 고집도 완전히 박살을 내어 깨뜨리며 아무리 무지한 자의 심령도 밝히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게 해주시고 그 생명의 길을 찾아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동료나 이웃의 영혼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절대 포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주권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면 그는 얼마든지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며 그 사람의 삶의 환경 속에서 일하시어 그로 하여금 결국 기독교를 대적하며 다른 종교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람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가혹한 핍박자 사도 바울 같은 경우가 그런 예가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점쟁이도 바꾸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일제 때에 점쟁이 백사겸이라는 분이 그런 사람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고 먹고 살 길 없던 그가 점쟁이로 살면서 떼 돈을 벌 정도로 유명했지만 전도를 받고 기도하는 중에 양심의 깨달음을 얻고 복음을 받아들여서 점으로 번 모든 돈을 전부 다 구제하고 도둑들에게 다 내주고 모든 것을 퍼주고 맨 몸으로 집에서 나와 거지 나사로처럼 떠돌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큰 전도자로 쓰셨으며 그 자손들까지도 돌봐주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주셨습니다. 평양대부흥회를 이끌었던 길선주 목사님도 본래는 차력을 하며 도를 닦고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던 도인이었지만 전도를 받고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자기를 계시하시므로 주님께 돌아와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깡패 생활을 하며 선교사님에게 돌을 던져 얼굴을 깨뜨렸던 사람, 황해도 안악골의 유명한 깡패 김익두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니까 회개하였고 나중에 치유의 은사를 받아서 조선 팔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고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돌이키는 탁월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혼 구원에 기도할 때에 우리의 일반적인 판단을 가지고 저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될지라도 그러한 내 판단을 내려놓고 절대자 하나님께 그 영혼을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렇듯 인간으로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 영혼 구원의 문제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못할 일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만났을 때에 사람으로서는 절망하여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인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러한 실제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이끌어내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 때 그들이 보니 앞에는 창일한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좌우에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요 뒤쪽에는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질풍처럼 달려오는 바로의 병거와 기병들이 자기들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 이렇게 갇힌 채로 바로의 칼날 아래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세에게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느냐고 항의하면서 공포 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모세도 이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 몰라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모세가 순종하여 지팡이를 쥔 손을 내밀자 놀랍게 동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 물이 갈라져 벽이 되고 바다가 드러나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들이 그 바다 가운데 난 길로 무사히 다 건너갔는데, 그 뒤를 따라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가 추격하러 뒤늦게 달려 들어갔다가 모세가 다시 손을 바다 위에 내밀자 바닷물이 다시 흘러서 그 모든 애굽 군대를 다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누가 홍해의 그 큰 바닷물 가운데 마른 땅의 대로가 쫙 열릴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는 사방 팔방이 막혔으니 이제는 꼼짝없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절망밖에 할 수 없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가 있으니, 하나님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서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벽마다 이슬이 하늘에서 내릴 때에 천사들이 먹던 음식인 만나를 내려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매일 먹기를 일년 정도 하니까 너무나 지겹다면서 이제는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이 울면서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수기 11:4~6)
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족속과 섞은 족속들이 자기의 장막 문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우는 소리를 듣는 모세는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상했습니다. 만나를 주신 것에는 감사치 않고 없는 것들만을 찾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하나님도 노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백성에게 고기를 주어 한 달 동안을 실컷 고기를 먹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의심이 가득하여 말씀드리기를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남자 장정만 6십만 명이라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응수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하나님은 모세의 믿지 못하겠다는 말에 대하여 “두고 보면 안다”고 대답해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그 날 저녁에 서쪽 바다 지중해로부터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에 메추라기 떼가 밀려와서 광야의 이스라엘 진영 이쪽 저쪽 사방에 각기 하룻길 정도의 넓은 지역에 지면 위에 두 규빗 곧 약 90센티미터 위로 내려서 사람들이 손으로 그냥 잡아서 자루에 넣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과 다음날 종일토록 그렇게 메추라기를 모아 담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었습니다. 한 호멜은 약 220리터니까 한 사람당 2천kg 정도 모았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고기를 모았을까요? 한 달 내내 고기만 먹는다 해도 절대로 다 못 먹을 만큼의 많은 고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이 광야에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 앞에 기름진 식탁을 그 황막한 광야에서 놀랍게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확실히 입증해주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북 이스라엘 왕국은 살인자 아합 왕의 아들이 다스릴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악한 아합 왕가의 왕과 우상 숭배하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 북쪽의 아람나라 벳하닷이 쳐들어와서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성안에는 굶주림이 심했습니다. 심지어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에 팔릴 정도가 먹을 거리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여인들이 자기 자식을 잡아 먹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왕이 이런 소리를 듣자 공연히 화가 나서 선지자 엘리사를 가만 두지 않고 잡아 죽이겠다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을 보내어 체포하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왕과 군대 장관이 찾아와서 선지자에게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라고 말하면서 이제 하나님 탓까지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 앞에 있는 왕과 신하들과 장로들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열왕기하 7:1)
당시 나귀 머리 하나가 팔십 세겔로 팔리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도 다섯 세겔로 팔릴 정도인데, 밀 한 스아가 7리터니까 비둘기 사분의 일 갑에 다섯 세겔 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가격 변화입니다. 이는 평소 전쟁이 없고 기근 없을 때의 평상시 시장 가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누가 선지자의 예언 말씀을 믿겠습니까? 그 다음날 시장 가격이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하도 기가 막히니까 왕 옆에 있던 군대장관이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서 지금 왕의 체표 영장을 피하려고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그러면 이렇게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선지자의 예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날 저녁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벽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배고픔에 시달리던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저녁 나절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우리가 여기 있어도 죽고 성안으로 들어가도 주려 죽을 것이니 차라리 아람 군대에 가서 항복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살려두면 살 것이요 죽으면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얘기한 대로 그 날 해질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나 아람 진영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진영이 텅텅 비었고 아람 군대가 급히 떠난 것처럼 천막과 말과 나귀도 버리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날 황혼 때에 엄청난 병거의 달리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와 큰 군대의 진격해 오는 소리를 그 아람 진영 군인들에게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 엄청난 군대의 함성과 말 달려오는 소리 병거의 마차 바퀴 소리들을 듣자 아람 군인들은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의 협조 요청을 받아 자기들을 치려 온 줄로 알고 밥 먹다가 다들 혼비백산하여 황급하게 북쪽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사마리아 성에 다시 와서 아람 진영이 텅 빈 것을 알려서 온 백성들이 다 성에서 쏟아져 나와 그 진영의 모든 물품들을 다 가지고 와서 다음날 아침 성문에서 시장이 열렸는데, 그 예언한 대로 밀과 보리가 아주 싸게 팔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군대 장관은 그 현장을 눈으로 보았으나, 사람들이 그를 발로 밟아 죽였기 때문에 그는 그 밀과 보리를 먹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예언을 멸시하면서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지자를 능멸했던 죄로 그가 이렇게 분노한 백성들에게 밟혀 죽은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의 몇 가지 실례들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들 중의 지극히 적은 일부분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수많은 실제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 확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절대 소망을 갖고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도저히 길이 없고 방법이 없고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어디에도 가능성이 없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 현재 상황을 아뢰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놀라운 능력과 지혜로써 행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계속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현실은 답답하고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성경에서 나온 믿음의 사람들처럼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구약 시대 여호사밧 왕 때에 이방 나라들이 연합하여 쳐들어왔을 때에 여호사밧 왕과 유대 백성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기 전에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적군 가운데서 역사하여 서로 싸워 자멸하게 하여 대승리를 거두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양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감옥에 지진을 일으키고 발에 찬 차꼬가 풀리고 문이 다 활짝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고 그 감옥의 간수장이 그 날 밤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비록 현실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길이 없고 계산적으로 희망이 없을지라도,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과 감사를 계속 드립시다. 그리할진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도 체험적으로 확실하게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