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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한 후에 우리가 견지할 태도
삼상 1: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사람의 인상이 앞 태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뒷 태도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의 첫 인상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떠나고 남아 있는 그 사람의 뒷 인상이 중요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도 중요하지만 기도하고 난 후 그 기도의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기도하고 난 후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이미 드린 기도의 응답을 신속하게 가져올 수 있으며, 또 이미 드린 그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기쁘시게 만드는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 드린 후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1.얼굴에 안심과 평안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한나는 참 마음에 설움이 많은 여인입니다. 남편의 사랑은 받았지만 자녀를 낳지 못하였기 때문에, 멸시와 조롱을 많이 받았고 이로 인하여 주눅들고 답답하고 마음에 한이 많이 쌓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절기가 되어 가족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오게 되었을 때, 한나는 북받쳐오는 설움을 품고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처지를 통곡하며 아룁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신세 한탄을 하면서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면서 간절하게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감정이 북받친다고 해서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는 기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옳지 않으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에게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뢰면서, 그의 은혜를 구할 따름입니다. 마음이 격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모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바로 만왕의 왕께 아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인간의 설움이 많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간절함과 더불어 진지함으로 아뢰었습니다. 모든 근심을 하나님께서 맡아주셔서 이 고통스런 상황을 변화시켜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다음, 제사장 엘리가 그에게 축복하기를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이 기도 응답주시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그러자 한나는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 근심하지 않고 상황은 당장 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마음에 한을 품거나 원망 불평하거나 신세한탄하는 비통함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한나가 기도한 후에 가진 이 믿음의 태도를 기뻐한 줄 믿습니다. 근심하는 자는 기도한 후에 그 근심을 하나님께 맡긴 것이기에, 그 후에는 다시 얼굴에 근심빛이 없어야 합니다. 기도한 후에는 더 이상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는 얼굴에 안심이 깃들고 평안이 깃들고 마음에 감사가 깃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 전에는 근심 빛이지만 기도 후에는 평안과 안심의 얼굴 빛일 때 그 기도가 한나의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기도 후의 자세가 안심과 평안함이 넘쳐서 기도의 공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 앞에 순종과 경배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 일로 범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하여 다윗이 밧세바로 인하여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셨습니다. 아이가 금새 심히 앓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식이라면 끔찍하게 사랑했던 다윗은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금식하여 골방에 들어가 밤새도록 바닥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집에 나이드신 분들이 곁에서 그만 일어나도록 권면해도 다윗이 듣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렸습니다. 결국 아이는 아픈 지 이레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이제 큰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도 다윗이 저렇게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매달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기도하였다면, 아이가 죽었다면 이제 아예 몸저 누워 자포자기하며 인사불성이 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면서 염려하자, 기도하고 있던 다윗이 눈치를 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묻기를, “아이가 죽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물으니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사실대로 아이가 죽었다고 고하자, 놀랍게도 다윗이 엎드려 기도하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라고 한 후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은 다윗이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윗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판단으로는 이제 왕이 낙심하여 크게 좌절하고 슬픔에 잠길 줄로 알았습니다. 아니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윗은 기도를 마치고 단정하게 자기를 단장하고 성전에 올라가 머리 숙여 경배하고 돌아와 금식을 풀고 음식을 차려 먹었던 것입니다.
신하들이 이상하여 왕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다윗 왕이 대답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아이를 잃어버린 채 슬픔에 빠져 있는 그 아이의 어머니 밧세바까지도 찾아가 위로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어서 아들을 주셨으니 그가 곧 솔로몬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성숙한 기도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간절히 매달리고 떼를 써보지만, 하나님의 결정이 난 후에는 그 다음에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았느냐고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소원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음 다해 경배하고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고 금식 기도를 폐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인간의 도리를 다해줍니다.
여기서 기도의 참된 자세가 어떠함을 배우게 됩니다. 기도자는 기도한 후의 결과가 내 뜻대로 되었다고만 순종하고 응답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내 뜻과 반대되는 상황으로 하나님께서 결정할지라도 기꺼이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 하나님께서 “노”라고 말씀하실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세를 견지할 때 하나님은 그 태도를 보시고 시험을 그치고 노여움을 푸시고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순종과 경배, 이것이 기도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해야 할 자세입니다.
3.너그럽게 베풀고 용서해야 합니다.
기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는 많은 경우, 용서에 대한 요청의 가르침이 뒤 따르곤 합니다. 주기도문에서도 후반부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였으며, 주기도문 마친 후에 곧 이어서 다시 첨가하여 가르치기를,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정신 속에 중요한 점이 바로 용서의 정신이라는 점을 주님께서 강조하기 위하여 그렇게 다시금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금식을 한다 해도 마음에 미움이 있고 용서치 아니하는 마음을 기도 후에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기도하여 받고자 하는 것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8장 6절 이하에 이르기를,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라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금식 기도의 달인이라고 대도, 기도의 생활을 오래 해왔다고 해도, 남의 마음에 멍에의 줄을 강하게 죄어대고, 압제당하는 자를 더 심하게 만들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봐도 외면한다면, 그것은 기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기도자의 자세는 너그럽고 긍휼히 여기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피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려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만 한다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것은 진실한 경건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하면서 섬기고, 기도하면서 너그럽고, 기도하면서 남의 허물을 용서해주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금식을 받으시고 그 기도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난 후에는 마음에 미움이나 원한이 남아 있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용서해주고 풀어주고 축복해주는 마음만 있어야 합니다. 기도한 후에는 관대하고 너그럽고 베풀어주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도 후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들을 아낌없이 용서해주시고 문제의 강한 결박도 풀어주시고 너그럽게 누르고 넘치도록 축복해주실 줄 믿습니다.
4.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견지해야 합니다.
기도 생활의 축복 중 하나가 바로 모르고 있던 자기의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던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한 후에는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집니다. 겸손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있습니다. 기도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넘쳐서 더욱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반면에 기도한 후에 마음이 교만해지고, 금식하고 난 후 교만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스스로 의롭게 여기고 스스로 능력있게 여기고 자기의 경건과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성전에 들어가 서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엎드려 가슴을 치는 세리의 기도에서 보듯이, 그 바리새인은 기도할수록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자기를 의롭게 여기고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남을 보라고, 남이 들으라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우상 앞에서 아첨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참된 기도자는 세월이 갈수록 겸손합니다. 더욱더 회개하는 마음이 민감해집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나날이 더해갑니다. 기도의 사람 다윗처럼 세월이 갈수록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면서 말없이 충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기도 후의 자신의 심령 상태를 살펴봅시다. 기도 후에 내가 더 크게 보이고 남보다 더 낫게 보이고 판단하는 마음이 생기고 주님 없이도 내가 뭔가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합시다. 기도한 후에 자신이 작게 보이고 주님은 크게 보이고 나는 부족해보이고 주님의 은혜는 크게 보이는 자가 됩시다. 남을 나보다 다 낫게 여기는 자가 됩시다. 기도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갈급해지는 가난한 심령이 됩시다. 이런 자에게 주님은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5.기도한 후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는데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보자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에게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제사장이 문둥병의 치유 여부를 확인해주고 사회 복귀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을 고쳐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가다가 도중에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이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께 기도했던 자들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충만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만 이 감사의 마음이 너무 커서 달려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그에게 몸의 구원만이 아니라 더 큰 영혼의 구원까지 더해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기도 전에 매달렸던 기도자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6.기도할 때에 서원한 경우에는 이 서원을 꼭 지켜야 합니다.
시편 15:4 말씀에,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기도할 때에 서원한 경우 기도 후에 꼭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 서럽고 괴로워서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평생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전에 바쳐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무엘을 주시자, 한나는 그 아들이 지극히 소중한 아들이었지만 서원을 이행하려고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 전에 데리고 와서 엘리 제사장 곁에 두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한나의 신실한 자세를 기뻐하시고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어 한나를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 후에 그 서원한 것을 이행하는 신실함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7.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더 기도하는 삶을 실천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시편 116:1,2 말씀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큰 고난 중에 하나님께 구원과 도우심을 청하는 간구를 드렸습니다. 그 때 그 간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건져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다윗은 결심하기를 평생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고난 중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할 때도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실천합니다. 그는 이제 간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중보와 교제의 기도도 드립니다. 이제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무엇인가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의 사랑과 감사와 마음을 드리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에 기도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실천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고난 중에 기도했다가 기도 끝나면 기도를 쉬는 자가 아니라, 기도 응답 후에 평생 기도하고 작정하고 실천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고난 중에 기도 많이 했지만 큰 구원을 경험한 후에 기도를 잊었다가 교만해져서 그의 후손과 그의 나라에 복이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일 다윗처럼 기도 응답 후에 계속 기도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뒤태가 예뻐야 합니다. 기도 후의 심령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근심 중에 기도 후에는 안심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한 후에도 여전히 순종과 경배의 마음이 변치 말아야 합니다. 기도 후에 용서하며 베풀어주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후에 더 겸손하고 더 가난한 심령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기도 후에 그 감사의 마음을 견지해야 합니다. 서원은 반드시 지키려고 애써야 합니다. 기도 후에 더 풍성한 기도 생활을 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은 앞서 드린 기도를 이미 받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후의 자세를 인하여 기뻐하며 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더해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