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택
막따리는 이제 이 회사에 어느 정도 마음 놓고 출입하면서 보험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기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정희에게 달려가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회장의 의사도 분명히 전달 받지 못했고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조용히 회장의 다음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 음 이건 외람된 이야기지만 이해해줄 수 있겠소?
- 네 무슨 말씀이든지 하십시오
- 음 지금 보험 한다고 했지요?
- 네
-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막따리씨 같은 경우라면 내 생각에 음
-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 내 월혜스님 부탁을 받고 그동안 좀 생각은 하고 있었소 그러던 중 우연찮게 오늘 막따리씨를 만났으니 이왕 할 말이라면 지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름 아니고 우리 회사 이번에 기조실에서 사회자선단체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막따리씨만 좋다면 내 그 일을 맡기고 싶소 혹시 보험회사를 편견해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니 오해 하지 말아주시오
막따리는 너무 뜻밖의 말에 놀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려고 했으나 부모님의 억압적인 강요에 못 이겨 결혼은 했지만 사실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그리 서두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남편의 불우한 환경과 고독한 생활에 연민의 정으로 부득이 결혼은 했지만 가끔은 사회로 전공을 살려 진출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던 막따리의 꿈이 물안개처럼 여기 이 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막따리는 너무 감격해서 말을 잊지 못했다.
회장이 손수 일회용 소독 물수건을 가져다주며 안쓰럽게 막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눈물은 왜 흘리는 거요 세상을 이제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면 울 일이 어디 한두 번 일줄 아오? 자 어서 눈물은 거두어요
막따리는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지체할 수 없었다.
오늘 이 세풍회장을 만나 반가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했다는 것도 모두 사랑암 젊은스님 월혜의 덕이었다.
나는 막따리에게 리필된 커피를 따라주었다.
- 막따리 그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구나 그 사랑암 월혜스님이 정말 고마운이구나 언제 기회 되면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네
- 그러세요 아마 스님 아니었으면 전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있었을지 암담해요
- 그러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어쩌면 바둑판처럼 판이 다 짜여있고 우리는 그 판에 의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드네
나는 막따리에게 어떤 위로나 어떤 약속도 해 줄 수 없었다.
지금 세풍사회봉사기구의 실무요원이라는 막대한 직분의 행운을 얻은 막따리를 어떤 식으로든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막따리에게 나약한 말로 칭찬하거나 내가 사랑을 다시 고백한다면 막따리는 즉시 혼란에 빠질 것이 명백했다.
밤바다 유람선 선실에서 바라보는 항구는 화려한 불빛에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화려한 항구의 불빛들 사이로 교회 십자가가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막따리와 지난번 막따리를 처음 만날 날 스카이라운지에서처럼 막따리 옆에 잠들어 있는 정희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여기 이 가련한 사람에게 이젠 항상 행복만 내려주시옵고 은총의 축복으로 우리 정희를 병마와 어둠의 시련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막따리는 금방 회장님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세풍건설을 모체로 한 가칭 세풍사회자선기구의 정식 옥호가 결정되었다는 전문이었다.
사랑을 전하는 세풍사람들.
막따리는 몇 번이나 세풍사회자선기구의 새로운 정식 이름을 입으로 중얼 중얼 외워보았다.
사랑을 전하는 세풍사람들.
사랑을 전하는 세풍사람들.
막따리는 그 이름이 너무 좋았다.
모든 대기업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발 벗고 나서 준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 같았다.
막따리는 며칠 후 세풍회장을 만났다.
막따리는 공손히 회장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회장에게 나지막하지만 결의에 찬 의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 회장님 회장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며칠 깊이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제가 회장님의 따뜻하고 황송한 제안을 받들면 저는 언제나 나약한 여자로 살아 가야할 것입니다 저는 정희 아빠가 죽고 이제 저 혼자의 힘으로 정희와 함께 앞길을 알 수 없는 투병을 기약 없이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회장님 부디 제게 내려주신 하늘같은 은혜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저는 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회장님과 세풍사람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은 말이 없었다.
막따리의 고뇌에 찬 결심을 들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따리를 바라보는 회장의 표정은 인자하고 그윽하고 대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눈빛이었다.
회장은 작년에 비행기사고로 죽은 딸을 생각하고 있었다.
딸은 유학을 마치고 세 번이나 낙방한 후 인종차별적인 면접을 어렵게 통과해서 CNN의 동양판인턴기자가 되었다.
회장의 딸은 첫 인턴임무를 부여받고 승려들이 일으키고 있는 자유화항쟁을 취재하러 미얀마의 양곤으로 가는 중이었다.
딸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강인해서 대학도 스스로 학비문제를 해결하며 졸업했다.
회장이 해준 것이라곤 부족한 경비만 조금 충당해 주었을 뿐이었다.
딸의 위패는 바로 사랑암 제단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사랑암에 가는 것이다.
딸이 죽은 후 그 충격으로 아직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회장은 측근 한 사람과 매월 사랑암에 갔고 그곳에서 자신의 딸과 비슷한 생김의 막따리를 발견하고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회장은 막따리의 결심을 들으며 죽은 딸을 생각하고 있었다.
형편이나 환경설정은 영 딴판이었지만 그 외 거의 딸과 흡사한 막따리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도 불현듯 떠오른 딸의 생각에 목이 메어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회장은 한참 만에 입을 떼었다.
막따리는 자신의 결심대로 자신의 인생을 밀고 나가는 대신 호출하면 어느 때라도 회장의 부름에 응한다는 전제를 달고 회장은 자신의 제안을 철수했다.
비록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긴 했지만 회장은 막따리의 가상한 용기에 탄복했다.
회장도 결심했다.
막따리를 자신의 건물에 무상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주되 어떠한 경우라도 막따리를 위해 측면 지원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 내가 오랫동안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자선단체를 조직하기로 한 후 사회학을 전공하고 믿을만한 인재를 한사람 측근에 두려고 했는데 막따리의 결심이 그러하다면 뜻대로 하시오 허나 나는 인재하나를 어렵게 찾았다 잃어버리는 꼴이 되어 버렸구려 하하하
-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도 회장님의 뜻을 보필해서 제 사명으로 하고 싶지만 앞으로 정희가 어떤 상황에 빠질지 모르고 예기치 못한 불행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불운이 제게 찾아온다면 그때 제가 그 시련을 헤쳐 나갈 용기는 지금부터 축적해야겠다는 생각을 남편이 죽고 난 후 오랫동안 번민하면서 해왔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보험설계사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 훌륭하오 정말 훌륭하오
회장은 덥석 막따리의 손을 잡아 막따리의 손등을 두드려 주며 그렇게 말했다.
막따리는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했다.
어쩌면 막따리의 결심이 후일 있을 엄청난 불행을 예견한다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막따리가 말하는 그 대목에서 경악했다.
그런 행운을 던지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따리는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선실의 창을 통해 어둠에 묻어 있는 밤바다를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첫댓글 오늘은 매우 바쁜날이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짬을 조금씩낼수가있을것같습니다
자리에들기전에 불루보트님의글 보고 갑니다
잘읽고앞으로의 일들에 기대를걸고갑니다
항상 바쁘신 스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감내하기 어렵도록 비쁠 때가 행복이라하더군요
모든 어렵고 힘든 일들 전부 행복이라 생각하시면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건강만 생각하십시오
존경하는 법사님도.......
불루보트님 사천왕대령이요!글잘보고갑니다
요즈음은 새로운 일을 구상하느라 조금 그랬습니다
다음을기달리며 출근준비합니다
모두가 불경기라 아우성인데 사천왕님은 부처님의 축복 타고 났나 봅니다
항상 하시는 사업 번창하십시오
불루보트님! 요즈음 열심히 일기를쓰고있으나 매일같은 이야기만 번복합니다
재미난글을 쓸 재미가 있음좋을텐데 아무것도 없답니다
아~ 멋진 멋장이님
제가 외람되게 일기작성 요령 한마디만 드릴까요?
보통 사람들은 일기를 항상 논다큐 즉 그날 일어났던 사실만 정직하게 적으려고 하는데요.
그건 잘 못 된 사고 입니다.
일기와 일지는 틀린 겁니다
일지는 하루 일상을 진실하게 기록해야 하지만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서 적어도 됩니다
예를 들어 소망이라든지 잘못판단했던 이야기라든지 또는 공상이라든지 무엇이든지 상관 없습니다
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의 기록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거짓말이라도 쓰면 됩니다 그러나 일지는 시간까지 빈틈없이 기록해야겠죠?
이제 멋장이님께서 일기에 하시고 싶은 공상의 이야기 시작해 보십시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