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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얻는 믿음의 Contents
김경규 교수
♧ 믿음을 구성하는 구성 요소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지개를 두 색깔로 나눈다. 아메리카 사람들은 무지개를 남색이 빠진 여섯 색깔로
나눈다. 우리 한국 사람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무지개가 이처럼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믿음에도 믿음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요소(contents)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신 중보기도를 보면, 믿음의 요소가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다(pisteuo 피스튜오)”라는 단어를 대치할 수 있는, 즉 거기에 상응하는 용어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여 진리로 인정한 사람들’이다(요17:8). 게다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다(요17:6). 더 나아가,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인 즉, ‘영접하여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요17:26절).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경외)하는 사람들’이다(요17:26).
김세윤 박사는 그의 책 ‘바울 복음의 기원’에서 “바울이 믿음이라 말할 때 바울이 의도했던 개념들은
신뢰, 소망, 경외, 지식의 요소들”을 포함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1994, p. 496). 또한 그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는 “믿음의 요소에는 첫째로 앎의 요소, 둘째로 의지하는 요소, 셋째로 순종하
는 요소, 넷째로 소망하는 요소, 다섯째로 두려워하는 요소 등이 있다”며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이러한 여러 가지 말로 대치 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2001,p.61) 한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 얻는 참된 믿음에는 자세히 보면 일곱 가지의 다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요소
A. 믿음의 관념적 요소
1. 지식 + 동의 (Knowledge + Agreement) = ‘지적 믿음’ 또는 ‘동의적 믿음’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4:3)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렘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동의하면) 구원을 얻으리니 (동의적 믿음)
(롬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 믿음은 지식을 그 기반에 두고 있다. 지식은 믿음의 시발점이다. 로마서 10장 2절에서는 지식에
기초하지 않는 믿음은 잘못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지식이 있어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지적인 믿음은 동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제시된 어떤 사건 또는 사실에 동의(agreement)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동의 되지 않는 사실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맡김 : 신뢰 / 의뢰의 요소 (Believe in, Trust in, Rely on)
(시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commit) 저를 의지하면(trust in) 저가 이루시고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맡기다 --> 나이아가라 폭포 위의 외줄타기 맨(man)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대하20:20)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나 실상은 돈을 또는 사람을 믿는 경우가 많다.
(시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 환경을 의지할 것인가 약속의 말씀을 의지할 것인가? (10 정탐군 Vs 여호수아 & 갈렙) ?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구원받았으나 환경을 바라보고 말씀을 의지하지 않은 10 정탐군은 멸망받았다.
* 가나안을 침로할 때 요구되어지는 것이 곧 신뢰의 믿음
*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저들은 여호와를 의로하는 믿음이 있었으나, 아이성을 취하고자 할 때는 …
* 우리에게 염려와 근심이 찾아오는 것은 맡기지 못하기 때문 = 믿음이 없기 때문
3. 소망 : 바라봄의 요소(Hope in against)
(창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look up)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히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looking for, expect)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스미드즈는 소망이 곧 믿음임을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망은 미래를 향한 믿음이다. 소망은 아직 완전에 이르지 않은 새로운 창조를 굳게 붙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그러나 우리는 의에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노라”고 말할 때, 그는 소망의 형태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소망이 없어져 버린다면, 유리가 아무리 응변적으로, 혹은 우아하게 믿음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선고를 받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그의 영이 장차 완전히 임할 새 창조의 할부금의 첫 지불액이신 주 예수님께 대하여 삶을 개방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믿음에로 부르는 바로 그 순간에 또한 소망으로 부른다. 또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현존하고 있는 새 창조에 들어올 것과 헌신할 것을 요청하는 반면 그와 동시에 우리를 그 새 창조가 미래에 성취되고 드러나리라는 사실에 대한 소망으로 부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믿음의 결정으로 수렴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두 가지 짐에서 소망의 형태를 취한다. 그 중 한 가지는 새 창조의 실재와 연관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실재와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가장 깊숙한 삶의 영역에서 소망 가운데 새 창조를 움켜쥐고 있다. 이것이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새로운 개인의 삶이 시작될 것을 약속하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딛2:11,12) 소망은 인간의 일반 역사와 인간의 개인적 삶 안에 있는 현재적인 실재의 모호성과 좌절에 대한 기독교적 해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목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역사의 완전한 변화이다. 그리스도인의 능력과 영에 의하여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과 완전히 일치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그는 장차 임할 것들의 처음 열매인 성령에 의하여 역사 내에 시작된 새로운 삶의 질서에 자신이 전적으로 동화되기를 소망한다.
새 창조가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망은 믿음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또한 소망은 그리스도인 의 경험에서 현재적인 시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스미드즈, 1993, pp. 221-223)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는 ‘천국을 믿지 않는다’ 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믿음이란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순간에 구원 받은 한 강도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다. 믿음에서 소망의 요소를 제거하면 그것은 이미 믿음이라 말할 수 없다.
B. 믿음의 행위적 요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관념적인 요소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믿음에는 우리의 행위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을 오해하여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행위가 없이도 구원 받는 줄 착각하는 분들이 있다. 오직 믿음으로 할 때 그 믿음 속에는 행위적인 요소가 들어 있음을 간과하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4. 순종 (Obedience) - 믿음의 행위적 요소의 소극적 측면
(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창4:1 (창4:1-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 아벨의 믿음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아벨의 믿음은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아니면 땅에서 솟았을까?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X의 말씀으로…” (롬10:17), 아벨은 X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서 들었을까? 창세기 3장 15절, 20절, 21절의 말씀이 해답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하나님의 복음제시- 원시복음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 (하와 = 생명) : 최초의 신앙고백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칭의 사건 (의의 옷을 지어 입힘)
☞ 여기의 가죽 옷은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다 (롬13:14, 갈3:27)
☞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의 아브라함에 대한 이신칭의가 있기 이전에 벌써 아담에 대한 이신칭의 (以信稱義)가 있었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순종의 제사였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은 인간적인 불순종의 제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과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시고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기뻐 받으신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가인처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와 그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 그러나 아벨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와 그 예배는 기뻐 받으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사뿐만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자까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순종의 행함이 따르지 않는 입술로만의 믿음으로는 결단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 믿음과 순종은 동의어로 사용됨
(히13:8-9)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 김세윤 박사 [풀러 신학교] [한국 크리스챤의 모순 질타] [윤리 = 도덕법]
▷ 믿음에 윤리를 내포하지 않는 이것이 한국교회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믿음은 있다고 하나 윤리가 없습니다. 윤리를 내포하지 않는 믿음은 구조상 헛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으로 살게 되었다는 실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없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 의존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의존입니까? 단지 자기 꾀에 대한 의존입니다. 자기 스스로 상상해 낸 것을 자기가 믿기 때문에 결국 자기를 믿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께 새벽기도 드리고 철야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하나님도 내가 이용할 수 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 바로 이것이 내 꾀의 결정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교만이요 하나님과 가장 크게 분리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순종 없는 믿음, 새로운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뜻대로 사는 그런 윤리가 없는 믿음은 곧 거짓 의존이며 믿음입니다. 바로 미신입니다. 결국 순종이 없는 믿음, 윤리가 포함되지 않은 믿음, 이것이 곧 미신입니다. … 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분야에서 하나님의 시민으로서 순종하는 표현되는 믿음을 지녔으면 이 나라가 이처럼 암담하겠습니까?
♧ 존 라일 주교
▷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면 제 마음이 참 두렵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죄와 싸우지도 않고 이기지도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공격하기는커녕 그리스도의 원수와 타협합니다. 경고하건대, 이렇게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천국에 이르는 길도 아닙니다.
▷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교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행위는 신앙의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면, 일상의 삶의 방식과 행실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라합의 믿음은 행위로 입증되었습니다(약2:21-25). 행실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으면서 말로만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딛1:16).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눅6:44).
? 순종하는 믿음 = 계명 즉, 하나님의 도덕법을 지키는 믿음
① 결코 폐하여지지 않은 하나님의 도덕법:
율법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 예수님은 도덕법을 준행하고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지극히 큰 자라고 가르치셨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산상수훈 말씀]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임을 잊지 말라 (사43:7).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은혜에 의하여 구원 받았다" (8절) 는 것은 설교하지만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라고 구원했다" (10절) 는 구원의 목적은 거의 설교하지 않는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 = 도덕법 =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삶의 문제 (윤리문제)
(마5:17-19)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 도덕법이 아닌 제사법, 의식 규례 = 장차 나타나실 실체 되신 그리스도의 그림자들 (골2:16-17)
5. 사랑 (Love) : 사랑으로 표현 / 실천적인 믿음 (믿음의 행위적 요소의 적극적 측면)
? 믿음의 삶은 사랑의 삶이다. 그리고 사랑은 활동하는 믿음이다. 바울은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한다고 말한다.
(갈5:6) 사랑은 행동으로, 밖으로 나타나는 믿음이다. [루이스 B. 스미디즈]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NIV ▷ 사랑을 통해서 그 자체를 표현하는 믿음 (faith expressing itself through love)
= 사랑을 통해서 표현되는 믿음
(요일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
(마25:45-46)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믿음의 심판 = 행위 심판 :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사랑의 실천 여하에 따라 저들의 믿음이 참인 것을 입증한다. ☞ 진정한 믿음은 사랑의 행함이라는 열매로 반드시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 [염소 비유, 부자와 나사로 비유]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요일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요5:24 참조)
(약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여기서 행함은 곧 믿음의 외적 표현이며, 곧 사랑의 실천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사랑이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 저주는 누가 받는가? 곧 믿음이 없는 자가 받는다. 고로 주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를 믿는 것이다.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 세상을 이기는 것
(요일5:4-5)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 요한은 믿음을 세상을 이기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믿음의 행위적 요소 중에 순종과 사랑과 이기는 것이 서로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다. 비슷한 면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이기기 위해 물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을 때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핍박이 없을 때도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그런 차원보다 훨씬 강도가 센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세상이 우리를 핍박할 때 죄의 권세가 우리에게 강력히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는 세상 풍조와 싸워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히12:4). 세상의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는 자를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상과 싸워 이기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 성경은 그러한 자는 생명록에서 이름이 지워져(blot out) 구원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 구원 받지 못하는가? 믿음이 없는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다음과 같은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3:12)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blot out: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C. 믿음의 신비적 요소
7. X 와의 연합 : 영접, 하나됨, 접붙임 (Acceptance, Graftage)
1) 사도 요한이 말하는 X 와의 연합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 사도 바울이 말하는 X 와의 연합
(엡5:23)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고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롬11: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갈2:2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바울은 교인들에게 그들이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해 보라며(고후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라고 이어서 질문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시고 계신 것을 연결시키고 있다.
? 스미디즈는 “믿음은 방법의 문제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내용의 문제이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며, 우리 안에 사시는 그의 능력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1993, P.215) 라고 말했다.
3)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X 와의 연합
?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 주님과의 신비적인 연합을 이루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3-6)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0)
-->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미 예수 믿어 거듭나 깨끗하게 된 자들은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과 신비적인 연합을 이루는 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 주님과 신비적인 연합을 이루는 믿음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지속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