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우편 강도, 과연 부끄러운 구원의 증거인가?
‘단순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예로 성경이 제시한 오른편 강도의 믿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죽음을 목전에 둔 오른편 강도가 결국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강도는 너무 짧은 시간 동안(고작해야 반나절)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믿음이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는 열매를 기다릴 여유가 전혀 없었기에, 그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나 순종이 없는) ‘단순한 믿음’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분의 예증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예증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한 부분만 보았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예증에서와 같이 “오른편에 달린 강도는 삶에 언제 변화가 나타날 기회가 있었느냐, 그런 것이 없었어도 구원 받아 천국에 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두 강도는 처음에는 다 같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오른편 강도는 회심을 하였습니다. ... 누가와 달리 마태와 마가는 두 강도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하는 모습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성경이 상반된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십자가에 달린지 얼마 안 된 후의 상황을 묘사해 놓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는 십자가에 달린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제 운명을 많이 남겨 놓지 않은 어느 시점의 정황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고작해야 반나절”밖에 남지 않은 시점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에는 두 강도 모두 다 예수님을 저주하고 비방하며 욕을 했습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 27:44). ... (막 15:32).
그러나 누가의 증언에 의하면, 오른쪽 강도는 어느 순간부터는 왼편 강도와 더 이상 행동을 같이 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처음엔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하고 저주했지만, 그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함께 하고 난 다음에는 달라졌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아마도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당신을 조롱하는 수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대항하거나 남을 욕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고결한 모습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크나큰 고통 중에서도 감사하며 평안을 잃지 않는 주님의 모습에 오른편 강도는 큰 감명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바라보면 볼수록 그는 심경에 변화가 생겼을 것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 이분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는(오른편 강도)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눅 23:40). 그리고 악한 자를 꾸짖고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변호했습니다. 그는 하늘나라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나라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도 알았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 23:42). 그는 하늘나라를 소망했습니다. 도저히 바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하늘나라를 바라봅니다. ... 마음이 새로워지면 행동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즉, 믿음은 행동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가르실 때 그들의 세상에서의 행위를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마 25:31-45).
믿음을 오해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천국 간다’고 말씀하시고서 왜 우리의 삶의 행위를 근거로 하여 심판하신다고 하시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오로지 그의 삶의 행위로서만 나타나고 증거 되며 입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약 2:18). ... 오른편 강도는 비록 믿음의 연조(?)는 짧지만 그는 온전히 회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회개의 열매도 맺은 사람입니다. ... 이와 같은데도 ‘오른편 강도는 자신의 믿음이 참인지 증명할 만한 열매를 맺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김 경규 교수의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 중에서 (김삼환, 김장환, 장향희, 한영훈 박사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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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단지만 주면 잘 보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 요약해 보았습니다. 좀 더 요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좀 길어요 받는 분이 가볍게 읽고 감동 받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한 번 해 보시면. ...감사하지요...
다른 카페에 많이 스크랩해서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단순히 입으로 주를 시인했다고 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할 좋은 글입니다. 카페도 홍도 될 것이고요..
잘 봤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 로 퍼갑니다.
믿음은 행동의 변화를 동반한다.. 이시대에 만연한 믿음과 성경의 믿음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아멘!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고백임을...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