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르익는 가을입니다. 곡식이든 짐승이든 하늘이든 바다이든.
인생의 가을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풋밤처럼 서걱거리는 제 자신의 모습에 머쓱해지는.. 그런 계절입니다ㅡㅡ;;
가을의 메타포 '결실' 을 생각하다가..저도 이 가을을 가을답게 살아내기 위한 소박한(?) 실천을 질러볼까 합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수업을 듣고 강의를 정리해서 공유해보는 것이지요.
비록 설렁설렁하고 주관적인 요약이 될 것 같지만, 일단 시도해보는 걸로...^^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로 시작하는 신곡은 왜 지옥여행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철학과 신학에 통달한 피렌체의 뛰어난 철학자이며 정치가였으나, 교황과 로마제국 황제의 오랜 갈등에 휘말려 공직을 빼앗기고 20년에 걸친 망명 생활 중 열병으로 사망한 단테의 생애를 보면 수긍이 갈 법도 합니다만..
하긴 인생사 모든 것이 마찬가지. 시험없는 방학이 어디있으며, 불면의 밤없는 사랑, 산고없는 출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4곡
지옥의 제 1원 림보는 덕성이 있어 죄를 짓지 않았으나 그리스도를 몰라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순진한 영혼들이 있는 곳, 그들은 육체적 형벌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천국으로 올라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여기에서 단테는 위대한 옛 시인들과 철학자들을 만납니다.
이 곳에 처한 이들의 면면은 나름 화려하죠..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플라톤, 디오게네스, 데모크리투스
엠페도클레스(4원소설 처음 주장.우주는 흙, 공기, 물, 불 네 원소로 이루어짐)
약초수집가 디오스코리데스,
음악가 오르페우스,리노스,
로마 철학자 키케로, 세네카,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프톨레마이오스(신곡에 나오는 우주는 전적으로 그의 천체관을 따름)
철학자이자 의사 아비켄나, 갈레노스(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로서 인체의 4체액설을 전파.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평형에 따라 담즙질, 다혈질, 우울질 등 체질을 나눔)
림보는 라틴어로 '변방'(edge), '경계'(border)란 뜻. 가톨릭에서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며, 연옥도 아닌, 죽은 자들이 가는 변방의 어떤 영계(靈界)를 말합니다.
영화 '인셉션' 에 등장했던 꿈속의 꿈, 가장 밑바닥 무의식의 공간 '림보' 가 아마 신곡에서 빌려온 아이디어가 아닐런지...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단테가 림보 구성원으로 설정한 인물들을 통해 그의 다소 삐딱한 기질(강대진샘 표현)을 엿볼 수 있지요.
기독교와 대치되는 원자론.유물론적 세계관의 철학자 데모크리투스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기독교 결정론적 세계관의 테두리에 갖혀있지 않은 그 사고의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긴 바른이들이 시대를 뒤좇아갈 때, 삐딱이들은 시대를 앞서 나가고..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기 마련인 것이겠죠..
당신은 어디에 속하시나요? 바른이? 삐딱이?
첫댓글 림보가 지옥의 변방에 있으면서도 조금이나마 경계 안쪽에 있는 이유는 구원의 희망이란 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원의 희망이란 것을 여전히 믿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도 삐딱이?
진호님이야 삐딱한 바른이~^^
'구원의 희망'을 믿지 못하는게 아니라 '구원'을 믿지 않은건 아니구요? 기독교 구원론이 우리에게 친밀감 느껴지지않는 건 어쩔수 없는듯..
가을이 되니 말도없이님이 이제사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난 강의보다 이 정리가 귀와 뇌리에 잘 들어오는 듯해서 좋아요~~~
난 바른듯한 삐딱이~~~
전 바르게 갔다 빠닥하게 갔다 왔다리 갔다리..
그러다 누구처럼 '우왕좌왕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이런 묘비명 남기고 갈듯요..^^
변신까지 좀 슬럼프였는데요, 이번 신곡 강의는 넘 좋네요~
그림 위주에서 텍스트위주로 바뀌면서 깊이와 폭이 더 웅장해진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