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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4.목요일
게으른 수다쟁이
한때 지하 137층의 위용을 자랑하던 사무실에서 초라한 벙커1으로 이전한 딴지일보의 사무실 문이 빼꼼히 열린다. 쭈볏쭈볏 들어서서 이것 좀 읽어달라며 내미는 서류는 수년간 이런저런 법률사무소과 법원사이를 출입했거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사를 전전했으나 결국 해결되지 못한 억울한 일일 경우가 거의 100%다.
밖에서 딴지를 본다면 마치, 허름한 사무실에 사명감에 꽉찬 기자들이 두눈을 부릅뜨고 오늘도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정론직필의 곧은 자세를 유지할 것 같으나, 와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분위기와는, 가카가 곧 먹고 튀실 안드로메다 성운에서도 지구에서 가장 거리가 먼 행성처럼,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져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차피 마지막이라는 심정, 그리고 실오라기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려는 분들은 이미 모든 시선이 기자에게 꽂힌 채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죄송하다며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거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하는 경우가 빈번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끝까지 한 번이라도 들어달라는 것을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결국, 이야기를 다 듣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거듭 죄송하다며 배웅해 드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는 해도 말이다.
혹자는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 떠나기도 하고, 혹자는 한 번만 검토해 달라며 가지고 온 서류를 무작정 내밀고 휘적휘적 뒷모습을 보이고 떠나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사무실을 삶의 피곤함과 절망, 그 헛헛한 체념으로 가득 채워버려, 도저히 숨쉴 틈 없는 무게를 선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대외사업업무를 담당하다보니 쓰고 싶은 것도 못 쓰고, 원래 딴지에 입사 결심을 했을 때 계획했던 일들도 다 틀어져 버린 본인에게 어느 날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워낙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어찌어찌 건너건너 인연이 되었고, 차마 뿌리칠 수 없어 한번 말씀이나 들어보고자 했던 일이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이다.
부동산, 그중에서도 아파트란 존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가던 대한민국 재산 증식의 대표주자로. 돈이 있든 없든, 직장초년생이든 과장이든 부장이든 누구나 가지길 원했고 가진 이들조차 자고 나면 변하는 아파트 가격에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아파트로 유럽을 꿈꾸는 나라, 아파트가 자신의 이름이 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어떤 직장이든지 누가 어디에 집을 사서 몇 억을 벌었다느니, 아파트를 몇 채를 구입했다느니 하며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독차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산 수십억의 재력가로 통하는 사람이 있었을 만큼 서울에서 아파트란 존재는 정말로 특별했다. 그 중에서 재건축이 갖는 매력은 가히 김태희를 넘어선 김연아의 매력도를 넘는 로또에 버금가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파트가 로또로 변하는 일은 허다했었다.
실제로 가카가 서울시장 하던 시절, 마이다스의 잦이처럼 찍는 곳 마다 골드로 변화시키겠다는 '뉴타운 정책'에 너도 나도 우리에게도 은총을 내려 달라며 졸라대기도 하고,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서울에 출마한 모든 국회의원들이 우리 동네도 뉴타운 지정을 약속받았다며 목청을 높이던 시기도 있었으니, 그 매력도야 그냥 상상에 맡기겠다.
'나도 약속받았다'고 했다가 오세훈이 '언제?'라구 발빼자
재판까지 받은 굴욕의 사나이도 있었다.
그러나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그곳에 살던 집주인, 세입자 할것 없이 마치 발기된 불기둥처럼 그곳에 우뚝 솟은 재력과 지위의 상징에 실제로 입주하는 건 힘들기만 하다. 여기에 착각이 존재한다. 집주인들이야 건설사에서 주는 이주비 받고, 있던 집 보상금도 받아 다시 재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기득권들의 법과 경제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물론 그 가능성이란 게, 그냥 내몰리고 쫓겨나고 항거하다 폭력적인 철거에 삶까지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세입자들보다 나은 형편이기는 하다. 그러나 집주인이라고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온 세월을 통해 모은 재산이 평당 얼마라는 숫자로 변하고 나면 건설사와 그 중간에 낀 조합, 업무대행사들의 어려운 법률적 내용과 다양한 편법, 탈법적인 수단에 의해 결국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이다. 결국, 자격이 박탈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권리를 양도하면서 자신들의 삶터에서 쫓겨나야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이 기록은 대한민국 부동산 잔혹사의 아직도 진행 중인 현장이다.
시작은 작년 8월의 지하 벙커1 딴지일보 사무실이다.
2012년 8월 어느 날.
한눈에 보아도 그냥 본 기자의 부모님과 같은 세월과 고생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은 어르신 몇 분들이 방문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7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셨다.
원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했지만 본인들도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본 기자에게 내민 자료도 디지털 문서로 환산하자면 수십 GB가 훌쩍 넘는 양이라 그 자료의 검토가 아닌 속독에도 몇 달이 걸릴 만큼 방대했다.
따라서 필요한 몇 몇 부분만 제외하면 현재까지의 상황을 단편으로 재구성하여 하나의 스토리로 풀고자 한다. 독자 열분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서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한 편의 대하 서사시만큼 길고 복잡한 사연이다.
서울 강남에 인접한 한 지역에 2006년 모 건설사와 공동사업주체로 지역주택조합이 탄생한다. 약 200여 세대의 지역민의 단독, 다세대, 연립주택들을 모아 450여 세대의 아파트단지로 변모시키는 대신, 당시 집주인들에게는 106.92 ㎡ (예전으로 환산하면 33평형)아파트를 분양가 이하의 금액으로 입주를 하도록 하겠다거나, 그 면적 이상의 집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남은 면적만큼 건축비를 소위 말하는 퉁치는 방식으로 입주를 보장하겠다는 장밋빛 미래가 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여행에서 기분 좋을 때는 공항에 도착까지라고 했나?
재건축도 딱 조합설립때까지가 기쁨의 끝이다. 그 다음부터는 복마전이 시작된다.
지역 자체가 강남에 인접해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은 서민의 삶을 산다. 막노동을 하거나 파출을 나가는 사람, 회사원이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모아 집을 사고, 자리를 잡아 가던 지역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주면 새로운 아파트를 하나 준다는 약속은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그렇게 소위 말하는 지역주택조합이 탄생한다.
장밋빛은 딱 여기까지다. 그 다음부터는 서로의 이익을 위한 복마전이 시작된다.
사업에 관여하는 주체가 크게 잡으면 지역주민들이 설립한 지역주택조합, 그리고 공사를 책임지는 시공사, 시공사의 업무를 대행하여 처리하는 업무대행사가 존재하는데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이 업무대행사에서 시작된다. 업무대행사는 조합과 시공사의 관청의 인허가, 분쟁해결, 세입자문제 등 재건축과정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프로젝트 전문회사라 이해하면 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업무대행사들은 시공사와 원청-하청의 관계를 가지는 데, 시공사의 담당직원이 파견근무 형태로 근무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업무대행사가 사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라지는 회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업 도중에 업무대행사는 여러 번 간판을 바꿔달기도 하고, 대행 사업권을 타 업체에 넘기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시공사는 시공사 나름대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며 발뺌하기 딱 좋은 구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모델하우스에서 소비자를 만나 상담하고 계약하는 분양대행업체나 이와 같은 업무대행업체의 직원들은 현장마다 다니면서 그때그때 팔 것만 팔고 떠나는 선수와 다름없다. 계약이 끝나면 다른 현장으로 떠나야 하는 이 선수에게 믿음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일반인들이 부동산 거래현장에서 만나는 모델하우스 분양대행사 직원들이나
업무대행사의 직원들은 사실상 약간의 권한만 위임받은 '선수'들이다.
그것도 한시적인 선수들이다.
이들의 말은 말일 뿐 계약서에 표기된 사항 외에는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된다.
사진의 선수는 본 건과 무관한 본 기자의 취향이다.
모든 건설은 시간이 돈이다. 공사기간이 늘어날수록 은행 등에서 빌린 파이낸싱자금의 이자, 인력비용, 건설 기자재 등등이 예상 외로 불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공사와 업무대행사는 이 공기를 지키거나 단축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이곳과 같은 재건축, 또는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장과 조합원에 대한 회유이다. 사업주체인 조합에서 반대하거나 어떤 안건에 대한 의결이 미뤄질 경우, 사업자체에 대한 이익이 줄어 들 수밖에 없기에 실제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작업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여기에 대한 관리나 감독이 소홀해질 경우, 이 모든 사태들은 사기와 불법의 영역으로 순식간에 진입한다.
시공사와 조합을 대신하는 업무대행사, 모든 서류와 자금의 중계자역할을 하기에
언제 어떻게 다른 손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을 지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튼 이 지역주택조합에서 애초에 계약을 맺은 업무대행사에서 새로운 업무대행사로 사업권이 몇 번 이전되면 얼마 되지 않아 최초에 약속된 계약들이 소리소문없이 심지어 조합원들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파기되고, 변경되기 시작한다.
공사비 증가를 빌미로 세대 당 수천만 원씩 추가분담금이 발생되었고, 결국 각 가정당 총 비용 3억여 원이 추가 부과되었다. 이것을 조합 총회에 승인 받기위해 개별 조합원들에 대한 선물, 회유, 협박이 난무하고 갈등을 조장되며, 심지어 유령조합원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업무대행사나 조합에 관련된 몇몇 사람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부풀려 매매차익을 실현시키는(실제로는 배임이나 횡령에 가까운) 일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최초의 조합장은 내부 조합원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물러나야 했다. 새로운 조합장이 다시 사업을 추스르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미 문제가 된 사건들의 증거 자료나 서류 대부분은 파기된 후다. 결국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추가 분담금 문제는 법원에서 지역조합원(주민)의 손을 들어준 판결로 인해 한숨 돌린 상황이지만, 문제는 누군가가 이 증가한 공사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게다가 해당 시공사에서 다시 846억 원을 조합에 요구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했다.
입주하려면 846억원을 내놔야 한단다. 차라리 건물을 사겠다.
건설사의 주장에 따르자면 조합원 개인으로 따져 자신의 모든 재산인 집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총액 9억에 가까운 비용을 별도 지불해야 겨우 그 지역 33평형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큰 그림은 여기까지다. 애초에 기대했, 조합과 시공사 간의 약속은 사라지고 지역민들은 엄청난 금액의 추가부담금을 내놔야 입주가 가능해졌으며, 그 중간에 지역민들의 다툼과 갈등이 발생하고, 믿었던 조합 관련자와 업무대행사는 불법적인 유령조합원까지 등장시키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금융권과 이 사업에 대한 돈을 엄격히 관리 해야 하는 대한주택보증같은 관리사 마저 결코 조합원들의 편, 그러니까 주민들의 편에 있지 않았다.
업무대행사는 업무대행사대로, 건설사는 건설사대로 관계자들이 자신들을 이익을 위해 조합원들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그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그 와중에 거대한 이익을 챙기고, 그 이익만큼 다시 공사비가 상승하는 악순환 속에서 부담은 지역조합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이 와중에 시공사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고, 그 직전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그룹총수가 고발되기도 하는 등 - 다행히(?)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아 돌아왔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다시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고 있다. 결국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과 재산을 잃고, 수억대로 추가될 비용을 감수하고 입주하거나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한때 영광의 부동산이었던 아파트 거품도 이제 빠졌고, 더 이상 치부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들의 집값에 미련을 못 버린 분들이 존재한다. 길을 가다보면 아직도 조합추진위가 설립되었다며 축하플랭카드가 붙고, 낡은 아파트 외벽에 붙은, 선정된 시공사의 '최선을 다 하겠다'는 메시지에 가슴 가득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어쩌면 새누리당을 절반 가까이 지지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돈은, 자본은 결코 당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돈은 거짓말과 편법과 불법을 편승해서라도 자신의 덩치를 키울 수 있다면 정의나 도덕,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 이것이 이 기록을 시작하는 목적이다.
자본은 이익을 위해 굴러갈 뿐이지, 사람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본 기자는 앞으로 업무대행사, 조합, 시공사로 영역을 나눠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가는 방식을 가진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2013년 1월, '이수역 LIG 리가'에 입주를 앞둔 서울 동작구 사당동 171번지 주민들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울 것 같다.
2013년 5월 입주예정인 사당동 171번지 '이수역 LIG리가'
그러나, 얽힌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현장 상황이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어둡게만 느껴진다
딴지일보에서는 현재 재건축조합과 관련 추진위사업이 진행중이거나.그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또한, 재건축 업무대행사나 재건축 사업 관련 일을 진행해보신 경험자들의 생생한 경험담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ddanzi.master@gmail.com 이나 wildog72@gmail.com 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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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딴지일보 / http://goo.gl/dSA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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