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인격으로 닦아오지 않을때마다 노트북바탕화면에 깔려있는 "말씀의 인격성"에대한 정의를 읽고,또 읽으며 나 자신을 재정립하곤 합니다!
★말씀의 인격성과 말씀묵상
성경 묵상은 하나님 묵상이다. 하나님은 자연현상, 사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성경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시지만 성경만큼 결정적이지는 않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논문이나 보고서도 교과서도 아니다. 인격적으로 전달된 계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사는 것의 의미를 인격 대 인격으로 알려주는 계시다. 그분의 말씀이 곧 그분 자신이다. 우리는 말과 말하는 사람을 따로 뗄 수 없다. 말의 본질은 인격성에 있다. 말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뜻이 표출된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수단이다. 따라서 말을 통해 우리는 사실상 다른 사람에게 내 존재의 한 조각을 떼어 주는 것이다. 타인의 말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삶에 동참하게 된다. 더 나아가 말을 통해 영혼은 영혼에 부딪친다. 단순히 기호나 소리뿐이라면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과 실체의 숨은 지렛대를 건드려 기호나 소리에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들의 정신적 측면이요 영적 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영과 대면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명사는 어원 분석의 대상으로 동사는 문법 분석의 대상으로 형용사는 감탄의 대상으로 부사는 토론의 대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책만이 아니라 말이고 인격이기에 연구 대상만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상이다. 쳐다보는(見) 대상이 아니라 알아보는(觀) 대상이어야 한다. 사용할 대상이 아니라 수용할 대상이어야 한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우리가 읽는 말이 우리 삶의 내부가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리듬과 이미지가 기도의 실천과 순종의 행위, 사랑의 방식이 되도록 하는 독서”가 바로 성경 묵상이다.
★말씀의 인격성이란?[예문]
[시편 143:8] “아침에 나로 주의인자한말씀을 듣게하소서,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길을 알게 하소서,내가 내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주의인자한 말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스럽게 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마다 일어나 성경책을 펼치면 그 생명책에서 올라오는 말씀의향에 취해서 그 향기 때문에 시간을 잊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힘들때에 어려운일을 당할때에 내 힘으로는 해결할수없는 일을 만날 때에도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말씀을 들을때에 얼마나 행복할까요!
말씀은 언제나 이렇게 우리곁에 계셨고 말씀은 언제나 나에게 사랑스럽게 다가오셨고 말씀은 언제나 아침이슬처럼 나의 메마른 입술에 내리었고 말씀은 언제나 아름다운 향기로 나에게 오셨건만 나는 왜 말씀을 힘들어 하고 있을까요? 나는 왜 말씀을 즐거워 하지 않고 의무감 과 율법에 사로잡혀 억지로 말씀을 대하고 있을까요!
주님을 묵상하는것. 주님을 생각하는것. 주님의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담는것. 주님의 그 음성을 내 귀에 담는것. 모두 다 부담스럽고 나를 힘들게 하려는것이 아니라 나를 자유케하고 나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여러분,오늘 주님의말씀이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까? 오늘 다윗은 힘든순간에도 자신을 버티게 해준것이 있는데 바로 “주의인자한 말씀”이였습니다!!
[시143:8] “아침에 나로 주의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길을 알게하소서,내가 내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주의인자한 말씀 인자하다는 표현은 돌이나 나무와같은 사물에서가 아니라 인격에 쓰는 말입니다. 즉 다윗은 말씀을 단순히 활자로 여기지 않고 또 좋은 교훈으로도 대하지 않고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인격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의 말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말씀은 살아서 지금 나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주님은 말씀으로 보이지 않는 그 주님이 이미 나에게 주신 그 말씀으로 나에게 오고 계십니다!! 바로 나에게도,당신에게도 이 아침(이 시간)에 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지금 이순간 하나님을 더 원하십시오. 말씀을 더 구하십시오. 주님! 내게 오시옵소서, 이 미련한 나에게 오시옵소서. 이 무능한 나에게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내게 주시옵소서! 주님의 그마음 내게주소서!
나 와 우리는 그분의 말씀 때문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이 시편을 읽게 하시고 이러한 인격적인 말씀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책이라는 기독교의 경전앞에 앉는것이 아니라 주님을 마주 대하여 앉는것이고 말씀을 읽고,듣는것이 아니라 말씀을 만지고,말씀이 나를 만지고 말씀이 내 생각을 듣고, 말씀이 내 마음 과 대화하고,치유하고,고치고,새롭게 하고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말씀이 그저 활자가 아닌 살아서 생명력이 있는 인격으로 우리를 대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들고,마음이 상하고 무너져 내릴때에 더욱 “주의인자한 말씀“앞에 서십시요!
이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끄집어 낼수있는 교훈이상으로 우리를 만나주시고,대화하여주시며,능력을 행하여 주십니다! 그분의 인자하심을 우리가 어떻게 느낍니까? 어떠한 황홀경속에 들어가 느끼는 어떤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 시니라(요1:1)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길을 알게 하소서,내가 내영혼을 주게 받듦이니이다.“(시143:8)
첫댓글 귀한 말씀앞에 앉아서
은혜의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