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군사저널 2018년 7월호
박경석 군사논단 [3]
월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쩐다이꽝 베트남 정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양국이 미래 지향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가기를 희망한다" 고 했다.
이에 대해 꽝 베트남 정부 주석은 "베트남전 과거사에 대한 한국정부의 진심을 높이 평기한다"면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양국 간 우호관계를 공고히 하며 상생 협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국정부가 더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호찌민,경주 세게문화엑스포 2017' 행사의 영상 축전에서도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유감의 뜻' 을 더 이상 확대 해석할 필요 없이 아주 합당한 전쟁 당사국 정상 간의 외교적 수사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보도가 나간 다음 날 KBS TV,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이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실상 사과'를 했다며 큰 비중으로 보도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3월 21일 자 사설에서 '문 대통령은 베트남인 학살 사과해야 한다'며 베트남으로 향하는 문 대통령에게 한국군의 양민 학살을 기정 사실화 하며 사과할 것을 강력히 독촉했다.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자 청와대는 공식 발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쩐다이꽝 주석에게 표명한 유감 표명이 민간인 학살에 대한 공식 사과는 아니다"고 분명히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싶다.
첫째, 우리 한국군은 월남전에서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간인 학살' 사실이 없다.
둘째, 문 대통령과 꽝 주석과의 회담에서 밝힌 양 정상 간의 월남전에 대한 의사 표명은 합리적이다.
셋째, 청와대의 '유감 표명이 사과가 아니다' 라는 공식 발표는 적절했다.
흔히 전쟁 간 민간인 학살과 그에 대한 사과에 대해 인용 할 때 독일을 모범국가로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 경우 확연히 다른 사연과 이유가 있다. 유대인 학살은 전쟁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이 아니라 계획적인 인종 청소를 위한 정치적 집단 학살이라는데 유의해야 한다. 이 인륜 최대의 참사에 대한 사과는 당연하다. 무릎을 꿇고 사과할 일이 아니고 엎드려 참회해야 마땅하다.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추 유대인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여만 명이에 이르는 유대인 집단학살은 독일의 광기가 폭발한 히틀러 독재자에 의해 자행된 역사상 최대 비극이란 점에서 그 후손이 사과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는 점을 상기 하기 바란다. 어디 아우슈비추 뿐이랴, 히틀러는 독일과 독일 점령지역 전반에 걸쳐 유대인과 슬라브족 등 총 1000여만 명이 넘는 인명을 살해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고유명사로 쓰일 때는 제2차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당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이 엄청난 역사적 대학살을 빗대면서 월남전 한국군의 학살을 사과하라는 일부 언론의 논조에 대해 참전자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965년 9월 맹호사단 제1진 초대 재구대대장(在求大隊長)으로 출진, 15개월 간 참전한 이후 오늘까지 월남전 관련 저서를 20여 권 출간했으며 지금까지 관련 전사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지 답사는 물론 수 백명의 관련자들과 면담했다. 따라서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 주장은 곡해 또는 과장됐다고 단언한다.
어디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민간인 희생이 없을수 있겠는가. 6.25전쟁에서 국군의 희생은 22만 7천여 명이지만 민간인 희생은 100만이 넘는다. 물론 6.25전쟁에서는 남북한 모두 민간인 학살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월남전에서 국군의 희생이 5천여 명이라면 민간인 희생은 훨씬 많을 것이다. 폭탄이나 총탄이 민간인을 피해다니는 새로운 것이 발명 된다면 모를까 전투중 민간인 희생을 막을 방법은 없다.
원래 월남전 한국군 양민 학살설에 대해 직접 나선 언론은 한겨레신문이었다.
타의에 의해 1972년 스웨덴 대사로 출국한 이래 16년만인 1988년 귀국한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나였다. 전쟁사를 연구하며 많은 월남전 관련 저서를 남긴 나와 긴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와 만나자 마자 월남전 참전 한국군이 양민학살자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무렵 한겨레신문에서 구수정 여인이 한국군의 양민학살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으며 그 기사를 기반으로한 양민학살설과 함께 한국군이 미국의 용병(傭兵)이라는 주장을 펴는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와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의 글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채명신 장군은 나에게 그들과 함께 학술회의를 열어 상호 의견을 교환하며 이 문제를 수습하자고 했다. 나는 당시 한국군사학회와 군사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맡게 되었다. 나는 즉시 학술회의 개최를 위해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예상 밖으로 준비가 잘 진행되어 주최 군사평론가협회, 후원 동아일보사, 사회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 발표자 우리 쪽에서 이선호 박사, 지만원 박사. 비판자측에서 강정구 교수, 한홍구 교수로 학술회의 틀이 짜였다. 나는 한국군사학회 회장 자격으로 기조연설을 하기로 했다. 학술회의 장소로는 명동에 있는 전국은행연합회 강당으로 결정되었다.
학술회의 개최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넓은 강당은 참전 전우들에 의해 꽉 찼다.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소란을 피워 회의가 얼마간 열리지 않개 되자 채명신 장군이 나서자 겨우 수습되어 회의가 진행 되었다. 이선호 박사는 해병 청룡부대 작전장교 출신이며 지만원 박사는 맹호사단 포병장교 출신이라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전개할 수 있어 참전전우들의 소란으로 주눅이 든 두 교수를 압도했다.
이후 한국군 민간인 학살설이 잠잠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자 다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주장이 솟아나기 시작 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월남전에 맹호사단과 청룡여단을 파병하면서 제일 신경을 쓴 것이 파병 지휘관 선발이었다. 특히 대대장급 이상 주요지휘관은 6.25전쟁 전투경험과 당해 지휘관 직위를 성공적으로 끝낸 경험자 중에서 해당 병과학교 도미유학 이수자격이 기본조건이었다. 당시 무자비한 리더십으로 소문난 일본군 출신은 단 한 사람 선발하지 않았다. 파병 한국군이 정규전이 아닌 비정규전에 투입되면서 자칫 민간인 희생에 유념했기 때문이었다.
채명신장군은 월남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이 작전중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 하겠다는 강력한 대책이었다. 그래서 전투 수행을 위한 훈령으로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로 정하고 모든 파월 장병에게 민간인 희생 방지대책에 대해 철저한 교육과 단속을 했다. 그러나 전투중 민간인 희생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베트콩 가운데 여자나 어린이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명신 장군과 나는 한국군 양민 학살설이 끊이지 않자 양민 희생이 많았다는 지역을 골라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역을 골라 그 작전지역에 참전했던 장병을 찾아 나섰다.
아마 내가 확인한 인원만도 백여 명에 이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한 전투지역을 찾을 수 있었다. 맹호5호작전시 맹호 제1연대는 월남의 곡창지대의 하나인 고보이 평야에 투입되었다. 그 지역 작전을 수행하던 제1연대 2대대 7중대 전투에 주목했다. 중대장 강군길 대위는 진두지휘하면서 밀려오는 베트콩을 막어내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자 소대장이 지휘를 대행하다 전사했다. 이에 흥분한 중대원은 일제히 적병을 향해 공격하자 도망하는 적병의 무리를 추격하며 전략촌에 들어섰다. 적병은 순식간에 숲으로 위장한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중대원은 달려가 그 동굴 속에 여러 발의 수류탄을 던져넣어 적을 제압했다. 그후 확인한 결과 그 동굴 속에는 적병은 물론 여인과 어린이도 함께 있었다 한다. 그 동굴에서 시체 30여 구가 확인됐다. 이 내용이 전투 참전 장병 진술의 전부였다. 그러나 구수정 여인이 말한 숫자 135명과 차이가 있다. 위령비까지 세워진 사망자의 인원을 무시할 수 없다. 아마 그 동굴의 희생자를 포함 해 맹호5호작전 전반에 걸친 희생자의 합계로 추정할 뿐이다. 이런 경우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 민간인 희생으로 분류한다.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인류 최악의 참상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상대방에게 사과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 심지어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로 수십만여 명의 민간인을 살상했지만 단 한마디 사과하지 않는다. 그들 속내는 "이 수십만여 명의 희생으로 수백만의 희생을 막어낸 잰쟁 종식을 가져왔지 않느냐" 라며 묵묵부답이다.
사과하지 않는 것이 제네바협정에도 없지만 전쟁 당사자들은 전쟁이 끝나면 쌍방이 사과하지 않는다. 그러한데 유독 우리만이 학살이 아닌 어쩔수 없는 민간인 희생에 대해 "사과하라,사과하라" 하는 짓은 이제 중단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