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는 20가지의 차별금지사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사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학력’입니다. 차별금지법에 포함된 사유는 통상 그 사회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차별경험을 반영합니다. 그렇기에 대학을 나왔는지, 출신학교가 어디인지에 따라 차별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이 사회에서 ‘학력’을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된 후 재계와 보수개신교의 반대로 7가지 사유가 삭제되고, 그 중 ‘학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학력, 학벌차별만을 독자적으로 다루는 학력차별금지법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제정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학력, 학벌차별금지를 반대하는 논리에는 능력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이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학력, 학벌차별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종종 능력주의를 대안으로 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어디인지에 상관없이 시험성적 등으로 줄을 세워 능력만을 평가한다면 그것이 곧 공정함이고 평등이라는 논리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능력주의에 대한 과도한 환상은 다양한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사회구조적인 차별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결코 학력, 학벌차별에 대한 비판도, 대안도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수능시험일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수능만이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고, 전 국민을 줄세우고 점수에 맞춰 자격을 주는 그런 방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학업능력이나 성적은 개인이 가진 신체,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의해 달라집니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해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능은, 능력주의는 일정부분 효율적일 수는 있었도 그것은 결국 틀 안에서의 공정함일 뿐입니다. 우리는 틀 밖의 세상을, 대학을 나왔는지, 출신학교가 어디인지에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삶이 존중받는 그런 세상을 그리고 나아가야 합니다.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이 말처럼 평등은 결코 개인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기에, 노력을 했기에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모두 존엄한 존재이기에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존엄성을 해치고 차별을 만드는 사회구조를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소수의 누군가가 경쟁과정을 통과하였기에 어떤 기준에 의해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모두가 그 자체로 존중받고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 그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세상이자 진정으로 공정하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세상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발언해주신 세분을 비롯해 대학을 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 지지하며 , 다양성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마자막으로 구호 외치겠습니다. “학력학별차별 반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한희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올해도 국가행사인 수능일이 돌아왔습니다. 비행기 이착륙이 조정되고,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늦춰지는 그야말로 수능 독재입니다. 국가 시스템보다 입시가 우선인 정말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대응할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수십년동안 이런 전통을 지켜오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력서에 학력을 적는 칸이 없어질까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블라인드 채용이 100%가 될까요?
사회가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대학을 나와야 평범하게라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불만이 있으면 좋은 대학 나와서 훌륭한 사람이 된 후에 제도든 법이든 바꾸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 나온 훌륭한 분들이 무엇을 얼마나 바꿨습니까! 입시에 실패하면 인생 실패자로 낙인 찍어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나요? 이제는 더 이상 학생들을 입시노예로 만드는 시스템에 방관하며 공범이 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삶보다 중요한 입시제도는 청소년 자살율 1위, 원칙없는 학생인권 침해 등 모든 가해행위의 면죄부가 되어 왔습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은 청소년참정권을 실현하고 학생인권법, 어린이청소년인권법을 제정해, 공부가 아니라 정치로 어린이 청소년의 삶을 바꾸자고 이야기 합니다. 어린이청소년은 학생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매년 대학입시날에 외치는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의 입시거부선언은, 경쟁교육과 대학서열화로 무장한 이 사회의 견고한 벽에, 정면으로 맞서는 선발대입니다. 입시경쟁으로 사람다움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질주를, 멈춰서서 돌아보게 합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투명가방끈의 멈춤과 행진에 동참하겠습니다.
학생의날에 들었던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 너희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함성이 아직도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청소년참정권을 확보해 입시가 아닌 정치로, 교육을 바꾸고 세상을 바꿔냅시다. 당사자가 만드는 교육정책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보여줍시다! "입시말고 정치로 세상을 바꾸자"
이윤경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