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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를 읽고 밑줄 노트
임세연, 서울강서초등학교 교육복지사
진료실에서 의사-환자 관계는 의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관계, 의사 중심의 관계라는 걸 의미한다.
진료실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사람은 자신의 매력을 보이고 자존심을 지키려 애쓴다.
그런 일상의 공간에서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으려면 특별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21쪽
복지실에서 아이들과 저의 관계는 어떠한가 생각해봅니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아이들이 복지실에서 편하게 쉬고 놀 수 없는 분위기라,
익숙하게 만났던 아이들이 아닌 경우에는 복지실에 들어올 때 경직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깝습니다.
교육복지실이 존재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유리한 관계,
아이들 중심의 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복지실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예외 없이 변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다.
사람은 자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반응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다. 47쪽
학교사회복지사로 처음 만났던 첫제자 아이들과 해마다 모입니다.
벌써 대학교3학년을 다니는 아이도 있고 군대를 가기도 하고, 회사를 다니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만날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그냥 저희를, 저희로 봐주셔서 좋았어요.
늘 학교 선생님들은 저희는 사고뭉치라 잔소리하기 바쁘셨는데...(시끌벅적)”
성적, 수업태도, 진학할 고등학교... 항상 듣는 잔소리 같은 대화보다는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학교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너의 관심,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 너의 마음, 생각... 그 자체에 집중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속 이야기들을 꺼내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 일이었는데 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느꼈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데 ‘너는 옳다’라고 지지해 주면 상대가 오판하지 않을까.
자만심에 빠져 결국 잘못되지 않을까. 쓴 약처럼 따끔한 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게 어른다운 걱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다. 그건 사람을 어리석고 표피적인 존재로만 상정하는 틀에 박힌 생각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오만한 시선이다.
사람은 상대가 하는 말의 내용 자체를 메시지의 전부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그 말이 내포한 정서와 전제를 더 근원적인 메시지로 파악하고 받아들인다. 50쪽
어느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납니다.
한 선생님과 심각하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학교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킨 아이였는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고 한 저의 의견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고, 피해자들의 진술이 있으니 교육적으로 지도를 하는 게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도를 하더라도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본인은 못하시겠다며 저에게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난 다음 알려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참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교육적인 기준에서만 옳고 그름으로 판단해야 할 때 저도 고민됩니다.
아이 뒤에 있는 환경과 상황, 정서적인 부분에 조금 더 세심하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학교사회복지사만큼은 교육적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의 존재에 대한 수용이 먼저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고통을 알게 된 순간 전문가를 검색하기 전 엄마가 할 일은 아이에게 먼저 묻는 것이다.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심장 질환이나 유전 질환 문제가 아니고 내 아이의 마음에 관한 문제다.
아이의 존재에 눈을 맞추고 주목하면 된다.(...)
정확한 이해와 공감이 가장 전문가적 조치에 해당한다. 74-75쪽
얼마 전 엄마가 여러 차례 집을 나가 상처가 있는 5학년 성수와 차 한 잔의 대화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성수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고인 체 뜬금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코코아는 뜨거운 물로만 타야 해요?”
“초코케이크가 진짜 맛있어요.”
“성수야 엄마 이야기하기 힘들구나? 엄마이야기 나오니까 속이 상하는구나? 눈물이 날 때는 그냥 울어도 돼.”
그렇게 말하자 평생 눈물을 참았던 아이처럼 한참을 엉엉 울었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함께 울컥했습니다.
울고 난 뒤 지금 가정상황, 자신의 마음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지난주에 담임 선생님께서 등교 수업 날 있었던 성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나누는 수업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성수가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고 가족사를 이야기하며
고민으로 꺼내놓았다고 합니다. 반 친구들도 성수의 고민에 진지하게 답변도 주었다고 합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점심시간 성수와 옆에 앉아 어려운 발표를 잘해내줘서 고마웠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잘 크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수에게 고마웠습니다.
전문가적 조치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온 마음으로 공감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다는 것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사람은 살 수 있다. 생존의 최소 조건이다.
이해관계 없이도 무조건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가족 같은 관계,
최소한 나를 의식이라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93쪽
책을 읽으며 처음 학교사회복지사로 근무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안에 자리 잡은 아이들에 대한 관점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들,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씨앗을 가진 너희들.
작은 꽃과 큰 꽃 무엇 하나 같은 건 없으니,
NO.1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너희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고 소중한 only1이니까.'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함께하려 노력했습니다.
교육복지사업 곳곳에 담겨놓은 메시지들을 찾아보며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 폭력이다.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상대의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 100쪽
중학교 아이들 중 지나치게 폭력성이 있는 아이, 학교 일진, 짱...
아이들을 만나보면 늘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고 가정환경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정민이, 자신의 감정이 조절되지 못하면 물건을 던지고 때립니다.
마음속은 늘 아빠가 자기를 버릴까 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폭력이 자기 존재감을 가장 극대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이런 아이들에게 흔하게 나오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또 하나의 표현임을 책을 통해 배웁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감자가 되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내’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그’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다. 153쪽
엄마는 아들이 그렇게 까탈을 부리는 이유가
입시에 대한 부담과 친구가 제대로 없는 학교생활 등에 있다고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은 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일지 모른다.
이 사태에 대한 엄마로서의 진단이 이미 내려진 상태다. 266쪽
학교에서 사회복지사로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때로는 교사처럼 때로는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답을 주어야 한다고 착각해 잘못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돕는 자의 위치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무언가 답을 내리려 시작하는 대화, 이미 판단을 하고 시작하는 대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생각보다 아이의 마음에 주목하고 마음에 대해 아이에게 묻는 것이
가장 확실한 공감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정리된 문제가 속마음까지 정리된게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들도 깊은 공감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한 화해의 길이라는 것을, 예민한 사람들은 더 그렇다는 것을,
엄마의 통찰과 깨달음은 놀랍다.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164쪽
화가 난 마음은 공감받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폭력적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며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인 것이다. 196쪽
잘못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참 어렵습니다.
속상하고 화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해주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모순으로 느껴지진 않을까, 혼란스럽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자신은 그런 생각을 갖으며 이야기했지만
당사자인 아이들은 잘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해주되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임을 지금보다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닌 ‘나’를 찾아서 개별적 상황과 개별적 존재의 생생함을 집단적 사고가 다 덮어서다.
우리의 오랜 습관이다. 250-251쪽
학급에서 심하게 문제행동을 보내는 아이를 대부분의 담임 선생님들은 당연히 힘들어하십니다.
학교 일과 중에 문제행동을 일으킬 때는 그 아이를 교실 밖으로, 상담실로, 교육복지실로 보내길 원하십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되는 마음도, 반 전체를 지도해야하기에
그 아이만 볼 수 없다는 담임 선생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그 아이는 그런 행동이 나타날 때마다 격리됩니다.
교실 밖을 나가기 싫어 더 발버둥치기도 합니다. 늘 고민입니다.
반 전체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도 다른 방식으로 교실 안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문제행동을 일으킬 때마다 교실 밖으로 내몰린다면 누구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반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친구들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개별적 상황과 개별적 존재의 생생함을 인정해주는 교실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학교사회복지사로써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해보아야겠습니다.
누군가의 속마음에 깊이 주목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반드시 자기 내면의 여러 마음들이 떠오른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통이자 축복이다.
자기 내면을 알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서 축복이고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쳐야해서 고통이다. 274쪽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의 저의 모습들이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을 깊이 주목하고 귀 기울이며 제 자신의 마음들도 떠오릅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통해 저의 내면을 만나는 일이 축복이고 고통이라 생각 못했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 나에게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학교사회복지사들에게 주어진 귀한 축복이자 고통임을 기억하며 감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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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우리 세연 선생님 글이 이렇게 잘 정리되어 보니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또 선생님께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제 카페에도 소개하겠습니다.
임세연 선생님께서 학교사회복지사협회 서울지회 책모임 '책갈피'에서 쓴 글입니다.
허락을 얻고 소개합니다.
고맙습니다.
책 내용에 더해 임세연 선새임께서 직접 현장에서 겪은 글이 있으니 이해하기 쉽고, 더 마음을 울리네요~!!
감사합니다~^0^
다미 선생님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