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임상 보고와 그 너머 이야기
오이 겐 지음, 안상현 옮김, 윤출판
옛날에도 '노망 노인'과 같은 알츠하이머병에 해당하는 상태가 존재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약 1세기 전 이미 진단되었던 '질환'인데,
새롭게 관심을 끌고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하자 단숨에 '증가'해버린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이란 질환은 실제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심'과 '걱정'의 근저에 깔린 공포가 옛 모습 그대로인 대상에
'질환'이라는 별칭을 덧붙인 것이다.
... 그것은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조차 '인지증'이라고 옭아매는 충동으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물론, 노인이라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쓰는 것인지 분별하는 쪽이 생활상 편리하고,
기억력 저하는 쉽게 불안을 일으킨다. 그러나 느긋하게 생활하는 전통문화가 남아 있는
베트남이나 태국 등의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강한 공포가 관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포는 무엇에 의해 강해지는 것일까? 18~19쪽.
결국, '노망 노인'은 노인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거친 인간관계 속에서는 '노망 노인'이 일찍 나타나지만,
따뜻하고 관용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지능이 상당히 저하되더라도
'노망'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21쪽.
집에 찾아가 진찰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반신반의하던 나에게 간호사는 노인이 기뻐하고 가족도
고마워할 것이라고 보증해 주었다. 이때의 기쁨은 일순간 세계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가슴에 얹어져 있던 무거운 추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경험으로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하는 좁은 의료관에서 해방된 것은 확실하다.
의료는 건강과 기능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상태의 사람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의 보편적 작용은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일'일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해방, 마음의 위로 등은 환자뿐만 아니라 인지능력이 저하된 노인도,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도 얻을 수 있는 효과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자 나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29쪽.
우리가 예비 조사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지능이 저하된 노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바쁜 인간관계'라는 점이다. (...) 나쁜 인간관계가 증상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가
심할수록 발현 빈도는 높아진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환각, 망상, 야간 섬망 등 정신증상의 발현 빈도는, 지능저하에 의한 환경적응 능력 감소 정도와
나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크기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
(...) 직전의 기억을 잃고, 있어야 할 물건은 없는데 없어야 할 물건은 있으며,
했는데 하지 않았다고 하고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책망을 듣는 상태이다.
여기서 먼저 나타나는 정동(情動)은 불안과 초조가 뒤섞인 것인데, 이는 곧 분노와 슬픔으로 바뀐다.
지능이 저하된 사람에게 이런 정동이 나타난다는 것을 주변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오히려 성격이 나쁘게 변화했다고 해석될 위험이 크다. 34~35쪽.
일본에서는 2005년 봄부터 '치매' 대신 '인지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치매'라는 단어에 차별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하지만 '인지증'은 너무 막연한 용어이고,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인지장애' 쪽이 더 가까운데, 이미 다른 상태를 나타대는 학술용어로 확립되어 있다.
(...) '치매'의 경우 기명력 저하, 시간과 장소에 대한 지남력 저하, 언어 장애, 망상이나 야간 섬망
등의 주변증상, 쉽게 화를 내는 등의 성격 변화, 주위에 폐를 끼치는 등 다양한 불안 요인이 합쳐져,
'치매'라는 '이질적이고 꺼림칙한 특성'을 형성하는 듯하다. 39~41쪽.
왜 '치매'로 진단받아야 할 사람이 '정상'으로 생각되고 있을까?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은, 지능저하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관계에 따라 주위 사람들의
노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43쪽.
나는 나의 자립성을 잃는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52쪽. 치매가 두려운 이유가 미국와 일본에서 위 두 가지로 큰 차이를 보인다.)
주립 요양시설의 상황은 냉엄한 야생환경에서 자립성을 잃은 동물이
곧 죽음에 이르는 것을 연상케 한다.
(...) "내가 요양시설에 대해 철저한 편견과 우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10년간의 조사결과 중에서 죽음 이외에 탈출구가 없는 최후의 매장지라는,
요양시설에 대한 나의 인상을 지울 수 있는 데이터는 없었다."
요컨대 '자립성 존중'이라는 윤리의식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일단 사람이 자립성을 잃으면, 생명의 '살려지다'라는 측면은 무시된 채 생존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
61쪽.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얼굴을 상대의 머리 옆에 가깝게 하고, 귀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으로 천천히 그리고
온화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고, 환자의 상태를 물어본다. 난청인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귀가 잘 들리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속삭이는 편이 소통이 더 잘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항상 미소와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 81쪽.
이런 관찰 사례들을 보면, 어떤 사례이든 인간이 인격적 통합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 '긍지' '자존심'이라는 현재의 '자아'를 지탱하는 심리작용 또는 '자아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통상 의식하지 못하는 심층의식에 속하는 작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수련의에게는 인지증 환자를 만날 때 최대한 경의를 표하며
다가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또 실제적인 태도라는 것을 되풀이해 가르치고 있다. 88쪽
노인이 불안해지는 것을 관찰할 기회는 '일몰 증후군(sundown syndrome)'이 나타날 때이다.
저녁 무렵 노모는 침착함을 잃고 집에 가야겠다고 말을 꺼낸다. 반세기 동안 살아온 자기 집에서
어떤 집으로 가려는 것인지 간병인은 의아해하는데, 아무래도 '집'이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집인 듯하다. "오늘은 해도 졌고 추우니까, 내일 아침에 함께 가요."라고 하자
다시 진정된다. 여기서 그녀가 진정된 이유는 간병인의 말로 또 하나의 연결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이시이 다케시와 아보 준코가 관찰한 가상현실 세계의
현상에서도 유사한 심적 프로세스가 있다. '나'는 현재의 정보든지 과거의 기억이든지,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을 필요가 있다. 141쪽.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정들어 있는 사람들, 때로는 자신이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치매 노인은
자신의 말도 이야기 같은 줄거리를 잃어버리고 단편화되어 간다. 그것은 사람이 생명을 얻고,
이름을 부여받고, 말을 배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과
정확히 반대 방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통합된 형태가 해체되어 흩어져 가는 방향에
치매 노인의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서서히 '땅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42쪽.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나 명백한 질환이 있더라도, 자신이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환경과 잘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감각만 있다면, 그 사람은 '건강'하게 살 것이다.
노년기는 이른바 길게 늘어진 회색 지대(grey zone)로 '질환'이라 생각하면 '질환', '건강'하다
생각하면 '건강'한 심리현상이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전통적 문화사회에서는 기능 저하가 생긴 고령자에게
'건강하다는 생각'을 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제3장에서 살펴본 높임말 체계가 하나의 예이고,
자바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문화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보통은 사회적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인지능력이 저하된 노인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시하는 예절은,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179쪽.
전통적 관습이 강하게 남아있는 이런 사회에서는 인지능력 저하를 '질환'이 아니라,
'노화의 표현'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표현'은 보는 사람의 관심과 문제의식, 그리고 정동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어떤 환경이 어떻게 질환화되는지 그 심리적 요인을 생각해보자. 183쪽.
'인간은 잠 못 이루는 밤을 견디며 성장한다.'는 말처럼 옛날에는 당연했던 해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생활에서 만나는 유쾌하지 않은 일들, 고통을 동반한 경험 대부분을 심적 외상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고통을 동반한 악의적 공격으로 초래된 트라우마라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시장원리주의가 횡행하고, 사람을 해고해 효율을 높이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쟁사회에서는
고통의 의의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따라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되고, 이는 결국 '고통'을 '질환화'하는 것이다. 186쪽.
'연결'의 부재에 따른 불안한 마음이 '질환'이라는 라벨을 달게 된 것은, 심리역동적으로
무엇인가에 연결되고 싶은 욕구의 표현으로 보인다.
풍요로워지고, 인간관계가 옅어졌으며, 경쟁이라는 타인 불신의 분위기에 빠진
환경에서는 '질환화'의 진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88쪽.
치매는 '기억능력' 저하가 주증상이고,
야간 배회, 망상, 욕설 등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을 주변 증상이라 합니다.
주변증상만 없다면 치매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치매 상태의 본인 그리고 그 가족들도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치매가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이고, '불안'이라는 정동만 조절해주면
본인과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치매 과정에 들어선 저자가
본인의 진료 경험과 고찰을 통해 전해줍니다.
(...) '우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치매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치매를 차별 없이 안아 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역자 후기 가운데.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카페를 만나게 되어 설레고 반갑습니다.
권숙희 선생님, 방문과 가입과 댓글, 고맙습니다.
밑줄 치며 읽고, 이를 옮겼을 뿐이지만
그 짧은 메모도 누군가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주길 바랐습니다.
그 내용을 읽고 권숙희 선생님께서 반가워해주니 고맙습니다.
책 읽으며 '치매'란 용어, 이를 다른 말로 다듬어 쓰는 일을 내내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