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두 번째 성지순례는
5월 19일에
호남 천주교 발상지이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생가인
전북 초남이 성지를 찾아갔다.
유항검은 양근의 권철신 암브로시오를 찾아가
그의 동생 권일신을 대부로 하고 이승훈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초기 신자들이 임의로 마련한 가성직제(假聖職制) 아래에서 신부로 활동하
기도 하였고,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교회일을 열심히 뒷받침해 주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로 한국 천주교회의 반석이 무너지면서 전라도의 신앙 공동체도 와해되고 말았다. 이때 유항검의 아우인 유관검과 윤지충의 아우인 윤지헌이 체포되었고, 이어 유항검도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그들은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여러 차례 형벌과 문초를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능지처사의 판결을 받고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동시에 그들의 가산은 적몰되고 초남이의 집에는 연못이 만들어졌다.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파가저택지
이곳은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가
4년동안 동정 부부로 살다가 체포된 집이기도 하다.
1795년에 유항검은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다 성사를 받고 교리를 배웠는데,
이때 유항검의 장남 유중철이 주 신부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유중 철은 이내 훌륭한 하느님의 종이 되었고, 게다가 부친에게 허락을 받고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 무렵 서울에서도 한 유명한 신자 집안의 딸이 동정을 맹세하고 있었다.
초기의 신자 이윤하(마태오)의 딸인 이순이(루갈다)가 그녀였다.
이러한 사실은 곧 주문모 신부의 귀에 들어갔고,
신부의 주선으로 1797년에는 초남이에서 전대미문의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유 요한과 이 루갈다가 '평생을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키겠다'는 동정 서원을 하면서 혼례를 올린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 부부였다.
동정부부로 살던 집
이순이 루갈다 상
성체 조배실
순교영아리 성지순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