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농민선언>(가) 취지문
“지난 30년간의 이른바 ‘개발의 시대’ 동안에 ‘민중의 평화’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발전이라는 외피 밑에서 세계 전역을 통하여 민중의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이 계속되어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발전이 이룩된 지역에서는 민중의 평화는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는 경제발전에 대한 제약-풀뿌리에서 시작하는-이야말로 민중이 자기의 평화를 회복하는데 필수조건이라고 믿습니다.”
-이반 일리치
지난 수십 년간 ‘개발의 시대’는 발전과 산업화라는 외피를 두른 채 땅과 숲, 바다와 강을 삼켜버리고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가 활개 치는 사회로 우리를 몰아넣었습니다. 특히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아왔던 농민들의 터전이 송두리째 빼앗기면서 농민들이 발 딛고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거대 개발행위는 농민뿐만 아니라 인간생존의 근본 토대인 공유지(농경지와 강과 바다와 숲)를 해체시키고 파괴해왔습니다. 개발이 이루어진 곳에서 생명과 인권, 안전과 평화는 보장되지 못합니다. 더 이상 공유지의 해체·파괴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식량위기로부터 예외는 아닙니다. 쌀 시장이 전면적으로 개방되면 곡물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식량위기는 농민만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먹거리체계 전반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소농의 자생력은 급속히 악화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농민들은 본업으로 삼았던 농업을 포기하고 난민으로 떠돌거나 도시로 내몰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평택 대추리에서, 전북 새만금에서, 제주 강정에서, 경남 밀양에서, 전국 곳곳 4대강에서, 우리는 농민들의 공통된 운명을 보고 있습니다. 현재 농촌은 침몰하는 세월호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농업과 농민을 보는 시각의 전환입니다. 농업은 단순히 경제성장을 지탱해주는 산업이 아니고, 농민도 식량을 생산하는 노동자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생존의 토대인 땅과 물과 숲을 돌보는 일이 농업이며, 그것을 돌보는 사람들이 농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는 농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인권선언’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이 선언에는 농민의 권리와 공유지를 보존할 권리, 농업의 가치와 생물종 다양성을 보호할 권리 등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이 선언은 세계 식량위기의 상황에서 소농들의 삶을 존중하고 지구 시민들과 공동으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녹색당 <농업먹거리특별위원회>는 농민과 농업, 그리고 공유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꾀하면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농민들의 권리를 담은 <녹색당농민선언>을 제정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녹색당농민선언>에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농민과 농업의 의미와 권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또한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 자립과 자치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농민 스스로의 다짐도 담아내려고 합니다.
<녹색당농민선언>은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선언이었으면 합니다. 도시민들과 농민들의 유기적 연대 없이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선언은 녹색당 <농업먹거리특별위원회>가 주관하지만, 농업문제를 걱정하는 많은 당원들이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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