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에 가면..
부용화가 많을까??
해마다..
태풍이 불어올때면..
이꽃..부용화가 가득 피어난다..
멀리서.. 아님 가까이 가서 봐도 흡사 무궁화를 닮앗잇다..
아름다운 부용화에 왠 부용산 가곡 ??
서로 연관은 전혀 없지만... ㅋㅋ
최소한 *부용* 이라는
두글자는 같기에 ..ㅋㅋ
혹시나 부용화는 남도 벌교 부용산에
마니 피어나지 않을까?
■■ Story 1 ■■
가곡 부용산 스토리..
부용산 (안치환)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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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노래 바로 가기 .. 안치환..
https://www.youtube.com/watch?v=vXq3x4hz9gM&feature=youtube_gdata_player
박기동 가사, 안성현 작곡의 가곡.
■■ Story 2 ■■
이곡의 작사가인 박기동은 벌교 출신으로
목포 향도여중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박기동에게는 박영애라는 여동생이있었는데 하필이면 당시로선 고치기 힘든 병이었던 폐결핵을 앓게 되었고 결국 24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박기동은 여동생을그리워 하며 시를 한편 썼는데 그 시가 바로 부용산이었다.
시가 너무 애잔하고 아름다워서 이 시를 접하게 된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안성현 은
자신이 가르치던 16살 여제자 김경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 슬픔에 이 시에 곡을 붙여서 노래가 완성되었다.
이후 이듬해인 1948년에 향도여중 조희관 교장이 이 곡을 알게되고 향도여중 학예회에서
처음 이노래를 학생들을 통해발표했는데 너무도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인지라
금새 목포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전라도 각지로 퍼져나가 많은 이들이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 Story 3 ■■
우리나라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무엇일까?
단연 <부용산>이다.
예전엔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가 얼마나 장엄하고도 슬픈지 베토벤의 웅장한 음악을 듣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이?더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빨치산, 운동권, 문인들의 술자리 등에서 불려지며 맥을 이어온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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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벌교읍사무소 뒤에 해발 100미터도 안되는 얕으막한?야산 이름이 부용산이다.?
지금은 벌교읍에서 예산을 들여 약 2 km의 <부용산 오리길> 이라는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그리고 박기동 시인의 <부용산> 노래시비가?초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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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지리산 빨치산들이 고향을 그리며 달밤에 구슬프게 부르던 노래가 <부용산>이었다고 한다
노랫말이 애절한데다 자신들이 놓인 처지와도 흡사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이 노래는 빨치산들의 주제곡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한동안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박기동 시인은 시 한수 잘못지었다가?교직에서 쫒겨나고 일생이 꼬여서 고생을 많이 하였고,?
끝내 호주로 홀로 이민갔다가?여러해 만에 다시?귀국하여? 2004년 사망하였다.??
벌교사람들이 박기동의 아들에게?서울근교 어느 공원묘지에 있는 산소를 벌교?부용산으로 이장하자고 하였으나? 자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혹시 남도에 여행 가실일이 있으신 분은?벌교 부용산을 방문해 보세요
ㅡ 자료출처 : 인터넷 글 발췌-
- 어제 담아본 부용화 와 지난해 담은 부용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