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가온 섬 울릉도
8년전인가 유럽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난 형이 있었다. 그때그 형은 여행동아리였는데 '울릉도를 다녀오니 참 멋있더라' 라는 말을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때 처음으로 울릉도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군대와 직장 등 어려 문제때문에 마땅히 기회가 오질 않았다. 그런데 올해 처음 산악부에 들어오고 하계연맹을 울릉도로 간다는 소식에 엄청 기뻤다. 산악부로 가는 울릉도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남들 다 가보는 관광지가 아니라 종주를 통해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암벽을 타면서 관광상품도 되어보고, 여하튼 특별한 모험이 기대되는 그런 설렘을 가진 첫 출발이었다.
배편이 아침이라 전날 킴스클럽에서 어색한 첫 만남을 가진 채 쇼핑을 했다. 서로 초면이라 그런지 낯을 가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술을 살 때 자기는 술을 안마신다고 서로 뺐다. 그러면서 술을 엄청 적게 사는 것이었다. 내숭도 이런 상내숭이 없었다. 본인과 대일이형이 극구 말려 술을 충분히 사긴 했지만 (나중엔 잘들 마시는구만) 그만큼 어색했다. 식량을 담당한 유수도 불안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에 일단 구매를 하고 교대에서 일정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들었다. 솔직히 그땐 들어도 잘 몰랐다. 분명 지도도 참고했지만 가서 보자라는 마인드가 강했기 때문일까. 듣는둥 마는둥 브리핑을 듣고 식량도 배분하고 새벽차를 위해 좁은 암장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4사에 출발하는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적막이 감도는 버스안은 한기가 가득했다. 순간 계절을 착각했을 정도였으니...그런데 피곤에 눌려 아무도 기사님께 에어컨을 꺼달란 말을 못했다. 그렇게 추위에 깨다졸다를 반복한 끝에 묵호항에 도착했고 반쯤 뜬 눈으로 정신없이 승선했다. 이젠 멀미와의 싸움이었다. 높은 파고에 흔들리는 배 안에서 다들 의자 손잡이를 꼭 쥔채 토하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다. 선내 방송으로 "몇분 뒤 울릉도에 도착합니다"라는 방송만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방송은 커녕 화장실 변기안막히게 하라는 방송만 하는 승무원이 야속하기만 했다. 시작부터 멀미로 고생한 끝에 겨우 울릉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야 울릉도다! 신난다!"라는 느낌보단 "으 멀미좀 가셨으면.."이란 느낌이 더 했다. 막상 도착해도 여기가 울릉도 맞나 싶기도 했다.
도동에서 내려 천부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 탑승한 조는 A조와 K조! A조는 천부항까지 갔고 K조인 우리는 도중인 남양에서 내렸다. 그때가 배에서 내린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라 다행히 멀미는 가셨고 슬슬 출출한 타임이었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노인정 같은 곳과 옆에 정자가 있어 우리는 거기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젊은이들이 먹는것을 구경하는게 좋다던 울릉도 할아버지의 시선하에 허겁지겁 점심을 해치우고 드디어 첫 종주를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 언덕도 있고 해서 다들 힘들었으리라..멀리 보이는 태하등대를 향해 끊임없이 걸었지만 마치 자동차 게임을 할 때 뒷 배경이 고정된 것 마냥 우리의 목표지점은 전혀 가까워 지지 않는 듯 했다. 서로 말도 없었다. 여기가 울릉도인지조차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태하등대에 도착해서 경치를 구경할 때 지금까지 쌓였던 고생이 다 날라가는 듯 했다. 태하등대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강이지도 힘듦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정말 멋진 절벽, 해안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날 저녁의 노을을 맞이했다. 그게 그날의 고생 끝인줄 알았다. 고난이 더 있는줄 꿈에도 모른채...
버스를 타고 천부항에 다다랐다. 선배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A 조 형들에게 불쌍한 시선을 받은 채 우리는 다시 출발해야 했다. 나리분지까지 가는 아스팔트 길이 참 매서웠다. 거기에 성은언니의 지나친 현실적인 말에 충격과 공포가 온 몸을 휘감았다. 한참 온 것 같은데 1/4도 안왔다는 말이 왜 그리 믿고 싶지 않았던지..어택에 달린 텐트가 마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지박령 마냥 괴롭혔다. 그렇게 지박령..아니 어택과 산길과의 싸움끝에 간신히 야영지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 아마 밤 11시가 넘었을 때 였다. 그렇게 첫날같지 않은 첫날이 끝을 맺었다.
둘쨋날 일어나는 아침엔 공사장 인부가 여기서 야영하면 안된다는 소리에 깼다. 우리는 눈치를 보며 겁 정리를 하고 있는 마당에 이상하게 지나가는 공사장 인부들이 하나같이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상야릇한 기분을 받으며 성인봉으로 향했다. 도입부는 괜찮았다. 하지만 가면 갈 수록 경사는 가파르게 돌변했다. 끝없는 계단이 시작되는 곳 앞에 섰을 땐 오히려 희망적이었다. 계단만 다 오르면 정상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성은언니가 계단이 1600개가 넘는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걸음 한걸음 오를때 솔직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힘들다 가 전부였다. 그러다 내려오시는 아저씨들이 고생한다. 멋있다. 대단하다 라는 말을 해주셔서 오히려 그 말에 힘이 났다. 특히 내려오시는 아저씨가 내민 손을 잡고 두세칸 한번에 오를 때 그 아저씨의 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나도 저 아저씨처럼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라는 생각부터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건가?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누가 사서 이 고생을 하겠나? 고생하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우리는 변태들인가? 라는 잡생각들 속에 어느덧 정상에 달했다. 날씨가 좋지 못해 그리 좋은 경치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뭔가 성취감은 있었다. 사동으로 내려가야 하는 길을 몇번 헤매긴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내려왔다. 다들 체력이 바닥인 가운데 길을 헤메는데 아무도 불평불만을 안하는게 대단했다. 물론 속으론 했겠지만 말이다.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리더가 참 중요하구나 라고...물론 낙천이형은 멋진 리더다!
셋째 날은 등반이었다. 어택을 매다가 등반장비를 매고 해안도로를 걸을 땐 몸이 가벼워 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분명 자일까지 들었는데도 자일이 날개가 되어 날아갈 듯 했다. 그렇게 도달한 장군수바위엔 A조가 이미 등반을 하고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비와 해안도로를 가끔 지나는 차에 열악하다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암벽은 결코 열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떨어뜨리는 나를 자극했다. 강사형들과 선배님들의 친절한 설명속에 매듭법부터 등반 자세, 요령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등반이 끝나고 천부항에 와서 신나게 수영도 했다. 물론 물을 무서워 하는 나는 들어가진 못했지만 친구들이 하는 물놀이를 보기만 해도 신났다. 천부항에서 저녁을 먹으면 항상 호사스럽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우진선배님이 잡아주시는 문어와 어디선가 우리를 위해 얻어오시는 술과 고기.. 정말 후배사랑에 우리가 몸둘 바를 몰랐다. 더불어 알피니즘의 명강의를 듣고 산악인으로서 다시한번 자부심을 느꼈다. 물론 힘들었던 친구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넷째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점점 거지꼴로 수렴해 갔다. 하지만 서로와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웃음이 늘어났다. 가방이 가벼워 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수도 늘어나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도동에서 저동으로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말 그때 울릉도에 왔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집에가기 전날에 울릉도구나 라는 느낌을 받아서 다행이었다. 그전엔 어택이 우릴 괴롭혀 시선을 땅에 내동댕이쳤지만 가방이 가벼워지니 주위를 볼 수 있었다. 내수전 전망대까지도 힘들지 않게 올라갔고 다행히 안개가 겉히며 울릉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석포전망대를 거쳐 선창으로 내려와 수영을 하고 마지막날 밤을 천부항해서 치킨과 함께보냈다.
출항하는 마지막날... 여객선터미널로 가는 버스안에서 잠이 오지 않았다. 버스 밖을 보며 지난 울릉도에 있었던 경험들이 떠올라 벌써 추억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고생했던 경험이 한순간의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때 아쉬움이 온 몸을 맴돌았다. 이제 언제 또 울릉도를 올 수 있을까? 내년에 선배로서 울릉도를 또 오게 된다면 그땐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게 하고 싶다. 떠나는 배 안에서 비록 이어지는 설악산 학교하계의 공포감이 밀려왔지만 울릉도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추억을 이겨내진 못했다. 정말 매력적인 섬 울릉도... 비록 내 발로 찾아갔지만 정작 내 마음에 울릉도가 다가와 한켠을 차지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