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재판에 같이 참여하신 재판장님, 배심원님, 검사님, 방청해주신 동네주민 여러분 정말 고맙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오늘 많은 분이 최후 진술에서 제가 할 말을 다하셔서 특별히 할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도 영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도회지 생활을 20년간 하다가 고향에는 10년전쯤 돌아왔는데 현재 80세가 된 노모와 두 아이들과 처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 전에 재판정에 몇 번 섰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때마다 느꼈던 것은 모멸감, 자괴감, 비루함, 열등감등의 감정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저는 제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고 굉장히 당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곳에 들어서면 끊임없이 추락하고 제 자신이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너무 비루하고 너무 초라한 기분이 들어서 정말 당당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지 고민해 보았는데, 결국 제 육체를 움직이고 땀 흘려서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에게 공부는 많이 못시키더라도 열심히 같이 살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 소박한 생각이 다시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려온 촌에는 어머니가 늙어 계셨고, 농촌 사정은 자꾸 힘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어지니, 학교도 없어졌고, 애들이 없어지니 산부인과도 없어졌습니다. 모든 것들이 황폐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농촌을 그나마 지켰던 사람들은 바로 여기 계신 어르신들입니다. 70년대에 누구는 도시에 나가 공장에 가고 집도 사고 출세도 맛보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조상님을 모시거나 엄마가 아프거나 하는 각자의 이유로 농촌에 남아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끝까지 고향을 지켰지만 삶은 더욱 힘들어졌고 초라해졌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느끼는 그 모멸감과 초라함을 저는 굉장히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저희를 한 층 더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민선으로 당선된 영양군수가 각종비리에 연루가 되었습니다. 감사원에 적발되고 TV등 온갖 매체에서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최소한 군민으로 살면서 저런 사람이 군수로 있다는 사실을 묵과하며 내 이익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모른 척 하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농촌을 지켰던 어르신들의 자괴감이 더해져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되도록 이런 일에 얽히지 않고 애들과 소박한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참여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남들이 시위에 3일 나올 때 저는 1일 밖에 못나갔습니다. 굉장히 부끄럽고 미안하면서 부채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는 옛날 전적 때문에 많이 활동하지는 않았는데 다시 또 8개월의 중형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저는 오늘 다시 용기를 내서 살아가려고 하는데 옛날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벌을 내리는 것이 이웃들과 나를 얼마나 결별시키는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들은 포박과 결박을 시킬 뿐 아니라 끊임없이 저를 분리하고 형님들과 어르신들을 사귀려고 하는 데도 저를 끊임없이 분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합니다.
어제 재판은 주민들을 폭도로 만들었습니다. 재판정의 언어는 너무나 슬프고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재판정과 법의 언어도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의 언어로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잡아넣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어우러지고 포용하기 위한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 동네에 이런 사건이 벌어져서 저도 다시 이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저 역시 이후에 저의 동네 이웃에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이 동네에 사는 한 다시 참여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힘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공동체이고, 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이 충분한 고민을 해주시기를 바라고 법의 언어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되돌아가서 좋은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영양댐에 대한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막고자 영양군청에서는 댐 반대내용의 현수막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량으로 철거해간 댐 반대 현수막은 법적으로 주민들에게 당연히 돌려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몇 달 뒤 주민들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 공동주거침입(군청)이라는 죄명이 씌워집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댐반대 주민들은 일반대구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로부터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3년이상의 유기징역)포함 3가지 죄명에 대해 무죄평결을 받았으나 이를 무시한 재판부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죄명 모두 유죄판결을 내려 주민3명에게 징역 6월∼2년, 집행유예 1년∼3년, 주민7명에게 벌금 2,150만원을 선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