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것은 다분히 남미 특유의 선교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현상임에 틀립없습니다. 이 지역 교회 역사 초기에는 선교사들의 말이 현지인들에게 전혀 멱혀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 지역은 뱀으로 성징되는 우상 숭배가 지배하고 있었고, 그 우상에게 산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제사가 성행하였습니다. 어떤 신전을 중수하고 그것을 기념해서 치른 의식에서는 2만 명의 장정들을 희생시켜 그 우상에게 바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공포 속에서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후안 디에고라는 본토인이 1530년대에 현시 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뱀을 집밟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을 계기로, 주민들이 대거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는 혼자서 100만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적절히 가르쳐 줄 시간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성경이 지역 언어로 번역되지도 않고 따라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거의 막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 없는 선교'가 이루어진 것이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며, 그때 이 위대한 사도가 외쳤던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냈습니다."(1코린 1,17) 그때에도 이미 세례는 받았지만 복음화는 되어 있지 않은 명목상의 신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복음과는 대조되는 인간적 지혜나 상식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그 때문에 교회 안에 여러 분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께서는 계혹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느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1코린 1,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