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새로운 복음화'가 왜 필요한지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오늘날 쓰이는 대로의 의미와 무게를 지니고 정식으로 사용된 것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남미 선교 5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하신 강론에서였습니다. "이 대륙의 복음화 5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말 의미를 지니려면, 주교 여러분이 각자 소속 사제와 신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와 헌신으로 복음화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재 복음화가 아니라 새로운 복음화여야 합니다. 열정에서, 방법에서, 그리고 표현에서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쉽게 대하게 되고 주님을 깊이 만나서 삶이 바뀌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구성원 모두의 삶 속에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널리 그리고 더욱 깊이 침투하여 빛과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미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새로운 복음화'를 주창하면서 제일 많이 거룬하는 것은 사도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정신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가 복음화를 위한 모델로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 없는 선교'의 문제를 겪으며, 바오로 사도께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1-2장)에서 복음 선포의 특성을 대단히 명확하게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네딕토 15세 교황님께서는 1917년 강론을 주제로 한 회칙 '인류의 구원자'에서 바오로 사도를 모든 강론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사도께서는 당신 복음 선포의 특성을 이런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코린 2,4-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우리 신앙의 핵심을 어떤 인간적 지혜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 성령의 언어로만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언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1코린 2,9-10) 그리고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나서는 구약성경을 생각하며, 그것마저 뛰어넘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코린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