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장마가 요란스럽게도 왔네요. 윗방죽 둑이 산에서 쏟아져 밀려드는 물을 감당하기 벅찼는지 아랫다랑이 둑을 터뜨리고 범람을 피했답니다. 여기저기 풀자라는 소리가 우북우북 들리고 그 와중에 참나리 원추리 백합은 장마를 맞이하는 나팔을 요란하게 불어대고 닭들은 바닥이 질턱거리니 횃대에 올라 어쩔줄 모르고 오리들만 게으름부리던 몸뚱이를 새하얗게 물목욕하고 부리로 깃털을 다듬네요. 날잡았네요. 신들이 났어요.
비가 오니 맥을 못추는 놈, 비가 오니 신이 난 놈들. 저마다 타고난 바 대로 장마를 맞이합니다. 6월 한달을 내내 밭에서 밤이슬 그득한 새벽부터 뙈약볕 내리쬐는 한낮을 지나 모기 덤비는 어슴푸레한 저녁이 다 되도록 마늘 뽑고, 양파 뽑고 말려서 잘라서 들이고, 깨 밭 두벌 김매고 콩심고 콩밭 김매고 고구마순 내다 심고 밭마다 다랑이마다 우북우북 자라나는 풀들을 베어내며, 모내기를 하고... 한시 쉴틈없던 고단했던 그 6월이 지나가고 기다리던 장마가 열흘 더 지체되어 왔네요. 맘먹고 콩밭매기 끝내고 비가 오니 꼬박 하루는 쉬었어요. 비가 내내 오다가도 뒷산에서 뻐꾸기가 호꾹 호꾹 울기시작하면 비가 긎고 해가 나지요. 하루 100mm 이상 비가 내린 날은 농장 전체 한바퀴 돌아봐야해요.
방죽물이 잘 빠져나가는지 어디 나무가 뽑혀 물길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바람에 내몰려 넘어간 옥수수대는 없는지,, 이리저리 내둘린 오이의 넝쿨손도 얌전하니 그물망에 올려주고,,, 닭장의 바닥에 물이 너무 흥건하게 고이면 모이를 뒷마당에 뿌려준다든지,,, 어제는 자그마하던 풀이 박덩쿨을 이겨먹고 있으면 우선 그 주변풀이라도 손으로 대충 쥐어뜯어준다든지,,,,, 그렇게 맥없이 장마에 된통 당하고 있는 3천평의 농장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길가다 무릎이 깨진 아이처럼 애처롭습니다. 그래도 비온뒤에 땅이 굳는다고 말이 있지요. 큰물을 한번 맞고 데일듯 뜨거운 햇볕도 보고 그러고 며칠 지나면 모든 나무와 풀과 작물들이 성큼 청년이 되어있어요. 안보이던 오이도 매달려 있고 고추도 꽃이 진 자리에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고 가지도 그 그윽한 색의 열매를 늘어뜨리고 호박도 꽃이 활짝 피어 벌을 부르고. 그렇게 시절이 또 바뀝니다.
장화신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랑이 다랑이를 살뜰히 보살피는 오랜농부님은 밥때도 잊고 사는가봅니다. 열번은 목청을 높여 불러야 겨우 집까지 내려옵니다. 장마가 안오니 애가 타요. 그러다가도 무섭게 쏟아내리는 비가 이렇게 또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만들어 놓지요. 가뭄에 단단하던 땅이 장마로 말랑해지니 제일 먼저 멧돼지가 설쳐대네요. 밭다랑이마다 부엽토나 나뭇가지 부순걸 덮어주었는데 그 밑에 지렁이가 있으니 이밭 저밭 헤집고 다니며 주둥이로 밀어댑니다. 콩잎이 자라니 고라니도 매일 와서 콩잎을 뜯어먹고 가네요. 안그래도 심란한 마음을 이녀석들이 더 무겁게 만들어놓고 가요. 멧돼지가 지나간 곳은 여기 심은 참외덩쿨이 저쪽에 가서 있어요. 맙소사. 올해는 고구마를 어떻게든 사수를 해보자고 늘 심던 이곳 3천평 말고 길건너 어머니댁 코앞에 있는 마늘심는 밭에 웃고랑을 세줄 잡아 고구마순을 비올때마다 뜯어다가 묻었어요. 비때를 잘 맞춰 다행히 모두 살았네요. 문제는 우리집으로 내려오던 멧돼지와 고라니가 다 그쪽 밭으로 몰려갔는지 밤마다 어머니께서 잠을 설치신다나봐요. 비닐멀칭이 되어있는 다른농가들에는 안가고 꼭 우리농장에만 이렇게 모두 와서 말짓을 해놓고 가요. 말귀를 못알아들으니 뭐랄 수도 없고요. 대책을 세워야겠네요. 빙둘러 쳐놓은 어망은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구요. 그리고 생각보다 얘네들 무쟈니 똘똘해요.
사람맘이 이리 간사해서 비안온다고 하늘 쳐다보던 시절 생각못하고 또 왕창왕창 쏟아져 내리는 장마비가 언제 그치나 하고 있어요. 빨래도 매일 줄에 널었다가 소나기 쏟아지면 다시 걷어다 비닐집에다 옮기고 이불에 장독대에 잦은 비에 살림하는 사람 한시 맘놓을 틈을 안주네요. 이제는 직거래 마늘 양파도 거의 다 보냈고 다음주에 한마음공동체로 나가는 마늘 양파만 챙기면 장마전에 할일은 얼추 끝낸 샘이예요. 이제 장마 그치면 녹두를 심는 일이 남아았네요. 일에 쫒기지않고 제때 추스려놓으니 이렇게 맘편하고 뿌듯하네요. |
꽃밭 끝자락에 해마다 피어나는 참나리. 해마다 식구를 불려 제법 큰식구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들 찾는다는 초크베리. 먹어보면 그리 특별한 맛은 없다. 약간 떫고 시다. 검게 익은걸 따서 효소를 담는다. 작년에는 설탕을 조금 넣었더니 식초가 되었다. 초콜릿향이 난다.
앵두 비슷 베리. 과일이 귀한 시절에 꽃밭에 두그루가 한가득 붉은 열매를 익힌다. 앵두 비슷한데 맛은 앵두만 못하다. 그래도 감지덕지. 아이들은 산딸기와 이 열매를 학교 다녀오면 뛰어올라가 한움큼씩 따먹고 입안가득 씨를 물고 하나씩 뱉어내며 내려온다.
반갑다. 오이야. 벌써 달큰한 오이랑 시원한 노각을 먹고싶다.
멧돼지랑 너구리땜에 한꺼번에 당할까봐 여기저기 분산해서 옥수수를 심어둔다. 찰옥수수는 심는 시기를 10일정도씩 차이나게 심으면 여기 끝나면 다음것 그 다음것 이렇게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쪄먹는 재미가 있다.
날이 가무니 토마토랑 방울토마토는 좋아한다. 고산지역이 친정인 토마토. 방울방울 많이도 열렸다. 토마토는 비가 많이 오면 거의 익을즈음의 토마토는 다 쩍쩍 갈라져버린다. 요즘은 그래서 토마토를 거의 시설재배한다. 비가림을 하지 않으면 상품화가 어렵다.
올해는 수태과의 해라 그런지 여름이 와도 봄처럼 서늘한 것 같다. 고추가 진짜 더디 큰다. 이건 2002년부터 채종한 통통이 늠름이, 그리고 토종고추 수비초, 대화초, 사근초, 칠성초 등 여러가지 고추다. 이렇게 별볼일 없어보여도 장마지나고 뿌리고 제대로 내리면 그때부터는 정말 신기하게도 밭 한가득 자라있다.
가물때는 방죽물이 줄어드는게 애타는데 이렇게 방죽물이 가득 차있는데도 비가 많이씩 주룩주룩 오면 집보다 위쪽에 있는 이 방죽이 걱정거리다. 드디오 오늘 쥐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물이 터져서 아랫다랑이 꽃밭으로 넘쳤다. 뒷구석 물배수로를 다시 잘 파줘야한다.
며칠전에 몸살이 난 몸으로 기어다니며 심은 여섯가지 돈부콩이 일제히 뾰족뾰족 솟아올랐다. 밤사이 멀칭이 두둑하게 된 다랑이는 멧돼지가 주둥이로 밀어 뽑힌것도 있다.
온천지가 풀밭이다. 망초가 한창이다. 비가 오면 색깔이 선명해지고 힘이 넘쳐나는 수국.
죽었나 싶어 파보면 그제사 자기가 주인공인 시절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생강, 토란, 울금이 뾰족뾰족 돋아난다. 참으로 신기하다.
자가채종 고추와 가지가 너무 늦어지니 우선 꾸러미에 넣자고 장에서 사다 미리 심어둔 고추와 가지. 가지는 멧돼지한테 두어번 패대기쳐져서 제자리에 있지 않은것도 있다. 땅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고추를 저정도는 키울 수 있다.
양파를 뽑아낸 자리에 작년에는 콩들을 심었는데 올해는 이곳에 마늘을 심으려고 작기가 서로 맞는 깨를 심었다. 검은깨,황금깨,참깨. 비가 오니 잎이 넙적해졌다.
오디를 따려고 망을 다랑이마다 드리웠건만 올해는 뽕나무에 이는 뽕니가 번져서 하얗게 실타래를 풀어놓는 바람에 오디도 잎사귀도 모두 하얗게 되어 하나도 수확을 못했다. 저 망을 다랑이마다 설치하고 준비했는데 치울일이 태산이다. 망 친지 한달이 다 되어가니 그사이에 풀이 엉켜서 모두 뜯어내며 걷어야한다.
첫댓글 장마 지나고, 불볕더위도 지나가고 있고...
그새 집짓는다고 거의 죽다살아난거 같어요. 밭이 엄청 좋아지고 있네요.
여기는 언제 자리가 잡히려는지... 채소는 죄다 망치고 녹두하고 콩만 좀 나올거 같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