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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직원들에게 4영리도, 브릿지도
복음을 전함에 있어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합니다만,
분명 시대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사전 작업으로
귀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기업의 사목으로 일하시는 목사님 한 분이
신청하신 전도지와 오디오 CD를 받으시고는
제게 전해주신 이메일 내용의 일부입니다.
목사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사전 전도 차원에서 말문을 트게 하는 데도
귀하게 사용되길 원하는 7문7답 전도지가
드디어 전국 200여 개 오프라인, 온라인 서점에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원하시는 분들은 마음껏 구입하셔서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단체 구입을 원하시는 분들은
연구소로 직접 문의 주셔도 됩니다.
이미 한 교회의 청년 대학부에서
1,000부나 단체 주문해주셔서
이 전도지가 특히 청년 대학생들 전도에 더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갖게 해주었습니다.
아래에 현재 등록된 온라인 서점들을 링크해놓습니다.
입고 등록에 시간이 걸리는 서점들도 있는 듯합니다.
링크 아래 내용은 각 온라인 서점에 올라 있는
7문7답 전도지 안내 내용들입니다.
그럼, 가족과 함께 설 명절 연휴 따듯하게 잘 보내시길 바라며...
안환균 드림.
갓피플
http://mall.godpeople.com/?G=8809379790008
생명의말씀사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90588&detail=yes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79790007
Yes24
http://www.yes24.com/24/goods/8430186?scode=032&OzSrank=1
인터파크
11번가
7문7답 전도지(소책자 전도지)
기독교에 대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7가지(부제)
저자: 안환균 / 출판사: 변증전도연구소
발행일: 2013년 1월 15일, 16p, 120*75mm
판매가: 200원
유통 코드: 8809379790008
-도서 소개
7문7답 전도지의 7가지 특성
“그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
7문7답 전도지는 기존의 사영리와 비슷한 판형의 16쪽짜리 소책자 전도지로 부제는 ‘기독교에 대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7가지’입니다.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독교세계관의 큰 틀 위에 창조부터
선악과, 성경, 예수님의 유일성, 옛날사람들의 구원, 천국과 지옥, 기독교인의 윤리문제에 이르기까지
가장 흔한 질문에 짧고 핵심적인 답과 성구를 소개했습니다.
다음은 이 전도지에 담긴 7가지 질문들입니다.
1.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2.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선악과를 만들어 세상에 악과 고통, 재난과 죽음이 생기게 했나?
3.
성경이 신화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아는가?
4.
모든 종교는 결국 다 같은 것이 아닌가? 왜 기독교는 예수만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면서 배타적이고
독선적인가?
5.
예수밖에 구원의 길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가나?
6.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진짜 있는지 어떻게 아나?
7.
기독교인들이 거룩하기는커녕 비난받고, 심지어 목회자들 중에도 비리가 많은데 왜 그런가?
이러한 질문들은 비신자들이 평소 마음에 막연히 품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하진 못하던 것들입
니다. 이 7가지 질문들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기독교 진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전도 대화에 참여하
게 해줍니다. 본격적인 복음 제시 전에 대화의 말문을 트거나 접촉점을 만드는 사전 전도 차원에서 활용
하면 특별히 큰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 직접적으로 전도하기 어려웠던 가족이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
다. 안티기독교 등의 질문 공세로 전도의 문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전도현장에 작지만 힘
있고 효과적인 소통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다음은 7문7답 전도지의 7가지 특성입니다.
첫째, 성경에 나오는 ‘변증’의 의미가 질문에 대한 대답(apologia)이라는 점에서 가장
성경적인 전도를 실천합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변증전도의 주제 구절입니다. 그래서 주된 변증전도훈련은 세상사람들의 질문에
최대한 성경적인 대답을 많이 습득해두는 것입니다. 7문7답 전도지는 이 훈련을 자극하는 마중물로
전도자 자신이 진리를 확신하고 일상 속에서도 항상 대답을 준비해놓는 삶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줍니다.
둘째, 포스트모던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접근이 담긴 전도지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개인이 가진 체계화된 지식을 권위 있게 전달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자신만의 관심사를 검색창에 쳐 넣고 맞춤정보를 얻으려고 합니다. 7문7답 전도는
“기독교가 이런 것이니 받아들이라”고 말하기 전에 “당신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상대방의 입장으로 먼저 내려섭니다. 그 질문에 눈높이를 맞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답을 시도합니다. 나 중심이 아닌 상대방 중심의 전도입니다.
셋째, 전해주기만 해도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마음을 열어주는 촉매제가 됩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던지는 공격적인 질문들 배후에는 대체로 하나님이나 기독교, 기독교인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깔려 있습니다. 먼저 지적 걸림돌들을 제거해주고 그 후 드러나는 상처받은 마음까
지 치유해줄 수 있어야 온전한 전도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선입견으로 품게 된 기독교진리에 대한 의문
들은 쉽게 답을 찾을 수 없고 성경에도 그 답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7문7답은 그 답이 성경에 분명
히 담겨 있다는 핵심 단서들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더 깊은 탐색으로 이끄는 관문이 되며,
오해와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넷째, 7문7답 안에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7문7답 안에는 변증전도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각 단어에 담겨 있어 전도현장에서 어떤 질문을 만나든
무슨 말로 대답할지를 기억해내는 데 유용합니다. 문제가 분명해야 답도 분명해집니다. 질문이 유형별
로 분류되면 답을 정리하기도 쉽습니다. 변증전도 세미나를 통해 7문7답의 핵심요소들을 익혀두면 전도
현장에서 응용하기가 쉬워 전도에 담대해집니다.
다섯째, 기존 전도방식들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줍니다.
변증전도훈련의 주 교재이자 전도현장의 주된 도구로 쓰일 7문7답 전도지는 사영리나 브릿지, 전도폭
발, 관계전도, 고구마전도 등 기존의 전도방식들과 잘 융합됩니다. 각각의 방식들이 가진 고유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보조도구로 활용하기에도 충돌이나 무리가 없습니다.
여섯째, 초신자나 명목상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양육 전도에 효과적입니다.
초신자들이나 교회 안에 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청소년, 청년, 장년 교인들은 기독교
진리에 대해 가진 평소의 의문들을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대체로 답 찾기를 미루거나 포기한 채 수동
적으로 교회 출석만 하다가 세상의 안티기독교 분위기에 휩쓸리면 미련없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7문7답 전도지를 전해주면 기독교 진리에도 얼마든지 합리적인 대답이 존재하며 실제로 자신
의 의문을 풀어줄 해답 찾기가 가능하다는 데 흥미를 갖게 됩니다. 새로운 대화와 소통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일곱째, 각 단체나 교회의 좀더 심화된 전도 활동이나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변증전도는 과정을 중시하는 전도입니다. 성급하게 열매를 곧장 거두려 하기보다 말씀의 씨를 언제든
부지런히 뿌려놓고 그 다음다음 단계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추수되더라도 만족하는 전도입니다. 7문7답
으로 전도의 문을 연 뒤 좀더 심화된 내용의 오디오 CD를 주거나 책을 선물하거나 정기적인 교회 전도
모임에 초대하는 후속과정을 중시합니다. 전도지 뒷면을 사용해 개교회나 단체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변증전도연구소는 7문7답 전도지에 다 못 담은 충분한 답을 오디오 CD나 변증전도용 책 ‘당신에
게 가장 좋은 소식’(안환균 소장, 생명의말씀사)에 담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자 소개
안환균 목사
미국 풀러신학교(M.Div)를 졸업하고 사랑의교회에서 목양과 제자훈련 사역을 감당했다. 2012년 초 여
의도에 변증전도연구소를 설립, 소장으로 일하면서 변증전도 세미나와 변증전도 설교, 인터넷 사역, 카
페 변증전도모임, 기독교변증 컨퍼런스, SNS 전도 사역을 통해 변증적인 전도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변증전도용 서적과 전도지, 변증전도 설교 오디오 CD를 개발, 보급하는 사역으로 실제적인 변증전도의
도구들을 한국교회 안팎에 제공하고 있다. 대학시절 ‘시문학’ 지로 등단한 시인이며, 기독교 변증가와 복
음전도자로 활동하기 전에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현재 풀러선교대학원 ‘변증전도’ 테마의 박사학위 논문
을 준비중이다. 저서로 ‘르뽀, 기독문화가 위태롭다’(규장), ‘변증의 달인’(생명의말씀사), ‘당신에게 가장
좋은 소식’(생명의말씀사)이 있다.
변증전도연구소 홈페이지: www.goodnewstoyou.org
트위터: www.twitter.com/hkahn1337
페이스북: www.facebook.com/hkahn1337
저자 연락처: hkahn1337@hanmail.net
안환균 소장의 구원 간증과 변증전도 사역 배경
성경, 신의 음성이 담긴 생생 오디오북
내가 처음 교회에 발을 내디딘 것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교회 가면 여자애 사귈 수 있다"는 친구 녀석의 꾐에 보기 좋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때 내가 교회에 나가서 만난 것은 여자애도, 예수님도 아니었다. 대신 한 가지 거대한 의문을 만났다. ‘예수라는 분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데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는가?’
이 의문을 놓고 해답을 찾아 방황하던 끝에 내가 정말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입학시부터 장학금을 주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매학기 정해진 성적을 유지하려고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밤늦도록 공부하다 떠날 때쯤 되면 늘 성경을 읽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성경을 읽다가 우연찮게도 "예수님=하나님"이란 등식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수없이 들어온 공식이었다. 그러나 그때서야 마치 '처음처럼'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참 신기한 개안(開眼)이었다. 그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그제야 마음에 들어왔다. 그 밤 이후부터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때로 신화 같던 성경 속 이야기들이 한 가닥의 역사로 쭉 꿰어졌다. 예수님 역시 아주 신비하고도 독특한, 그러나 조작된 인물이 아닌, 내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체취까지도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사람'이셨다.
그분은 '거물급 성인'으로 이미 온 천하에 공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감쪽같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기막힌 신의 출현 뉴스를 한 번도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오리무중인 신의 행방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라는 이름을 소문으로만 듣고 지나친다. 성탄 시즌마다 매스컴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과성 인물일 뿐이다.
그때 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신’이란 존재의 진짜 육성으로 들었다. 참 특이하게도 당시 그 육성은 내게 마치 신약성경에서 예수란 분이 BC와 AD를 가르는 시점에 이스라엘 땅, 그 구체적인 시공간에 발을 딛고 서서 주변의 특정 사람들에게 직접 음성을 내어 말을 건네는 것처럼 들렸다. 신의 음성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았다. 바로 시공간 속에 있는 나 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들려주시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성 그대로였다.
당신은 어떨까? 당신을 모태에서 하나하나 빚어 만든 그 창조주의 음성을 당신이 직접 육성으로 듣는 것처럼 들을 수 있다면? 굉장히 가슴 벅찬 일이 아닐까? 정말 그토록 흔한 성경이라는 책에 꿈에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던 바로 그분의 말이 담겨 있다면 아주 흥분되는 일이 아닐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느껴지지 않을까?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 44:24).
“성경은 종교 경전의 하나로 그저 잘 나가는 최장기 베스트셀러요 인류의 고전일 뿐”이라는 식의 너무도 익숙한, 그러나 애매하기 짝이 없는 상투성 문구에 더 이상 속지 말라. 당신이 그 책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실제로 예수님을 당신의 개인적인 구주와 주님으로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성경에 대한 세인들의 다양한 호평이나 칭찬조차도 모두 하나의 상술이거나 듣기 좋은 홍보성 멘트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말씀을 문자에 담아 보존하다
기독교는 역사 속의 한 사람을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으로 소개한다. 인간이 만든 다른 사상이나 종교는 일체 보도한 적 없는 기독교만의 특종이다. 바로 그 특종이야말로 ‘당신에게 가장 좋은 소식’이다! 이 소식은 성경이라는 아주 독특한 한 책에만 등장한다. 그리고 그 성경은 인류사에서 특별한 역사를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다. 바로 이 뚜렷한 역사적 배경이야말로 성경을 다른 모든 종교들의 경전과 확연히 구별시켜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세상과 인간을 만든 신이 계시다. 그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특질을 주어 그와 인격적인 교제와 사랑을 나누고자 하셨다.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고 인간은 그의 백성이 되어 통치자가 허락하신 땅 에덴에서 서로 교제하며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셨다. 그런데 태초에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오용했다. 그 신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지위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그 결과로 이 땅에 죄와 죽음과 오염이 찾아들었다.
인간은 고아와 같이 버려졌다. 그러나 신은 죄는 미워도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여전히 사랑하셨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이 땅에 내려와 죄의 대가인 죽음의 짐을 대신 지심으로 어그러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원상 복구시키기로 작정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계획을 인간들에게 알릴 방도가 없다. 그래서 그 신은 자신의 계획이 담긴 말씀을 맡을 한 민족을 택하기로 하셨다. 그 선민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2).
BC 2000년 경 신은 아브라함이란 사람을 그 민족의 첫 조상으로 부르신다. 그에게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 곧 현재의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가라고 명하신다. 그러면서 약속하시길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하셨다.
바로 그 복을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성경을 통해 받았다.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수천 년 동안 정성껏 보존해오지 못했다면 나는 그 복, 선민 이스라엘의 족보를 타고 나신 예수라는 분을 통해 나에게까지 구원을 베푸신 그 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 복된 소식, ‘당신에게 가장 좋은 소식’을 담은 신의 책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늘 당신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성경의 역사와 세계사를 진행해오셨다. 당신과 관련 없는 이야기는 성경에 단 한 마디도 없다! 어쩌면 이것을 알 때 구원을 받는다. 예수라는 분과 관련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쓰였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완성한 ‘한 주인공’ 테마
성경은 BC 15세기 중반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에 의해 처음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고생하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홍해 기적으로 탈출, 시내 산 광야에서 지낼 때였다. 모세는 성경의 첫 책 창세기를 포함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했다.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이 다섯 권의 책들 가운데 첫 책 창세기는 책 이름 자체가 ‘기원’이란 의미를 가진다. 당신이 어디서 와서 왜 살고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인간들이 지어낸 수많은 책들로는 결코 해답을 얻지 못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책 성경, 그 중에서도 창세기가 필독서다.
이 책 창세기의 1장부터 11장까지에 천지창조의 내력과 인간의 창조, 그 이후 타락 사건과 노아 대홍수, 언어가 나뉜 바벨탑 사건 등 초기 전체 인류의 굵직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이 언어 혼돈(바벨) 사건이 일어난 후 노아의 손자들 가운데 벨렉이 태어난다(창 11: 16-18). 성경은 그가 살던 때에 “땅이 나뉘었다”(대상 1:19)고 증언한다. 세상은 20세기 초에 독일의 지질학자 알프레드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친히 행하신 하나님의 책 창세기에는 수천 년 전에 이미 그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창세기는 12장부터 갑자기 무대를 확 좁힌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사건이 소개되면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 주로 기록된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아담의 타락 이후 어그러진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복원하려는 비장한 계획 가운데 시작된다. 나라의 구성 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대신한 새 백성 이스라엘에게 에덴동산 대신 새로운 땅 가나안을 주신다. 그리고 선악과 금지 명령과 같이 주권을 상징하는 새로운 법을 주시고 그 법에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모세오경 율법서(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지켜나가는 과정이 역사서(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에, 지킨 자들이 약속을 받아 고백한 간증이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에, 못 지킨 자들에 대한 책망과 경고가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12개 소선지서)에 기록되어 있다.
서로 모르는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기록한 이 모든 성경 내용들의 중심에는 한결같이 일관성 있게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한 약속이 자리잡고 있다. 유명한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을 포함해 그 백성들 역시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데 실패했다. 그 율법의 요구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이 완전하게 이루셨다. 그 메시아에 대한 소망의 약속이 구약성경의 테마다. 사람들이 율법을 범한 죄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친히 죄인들의 구주가 되셨다.
교회는 바로 그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언약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담은 책이 구약성경 39권이며,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시작으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갈 6:16)인 교회의 역사를 담은 책이 신약성경 27권이다. 구약성경은 왕과 선지자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가진 이들에 의해 약 1,000년의 시간에 걸쳐 기록되었지만,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 1세기 이내에 모두 다 기록되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을 담았고, 사도행전은 초기 교회의 역사를 증언한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서신서들은 초대교회 시대에 활동한 예수님의 사도인 바울이나 베드로, 요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유다 등이 당시의 교회들과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리스도인의 교리와 실천, 믿음과 생활의 규칙을 담은 이 서신서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다양한 모형들로 주어진 구원의 상징이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성취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구원받은 새 백성, 그분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총체적으로 완성되어가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단체의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명해진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관련하여 교회는 이스라엘과 연결되고,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연결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교회는 태생 자체가 종교의 하나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사의 시작과 맥을 같이한다. 그것은 당신이 모태에서, 아니 태초에 에덴동산의 흙으로 창조된 이야기와 연결되고, 현재 당신의 삶과 죽음에 속속들이 아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사실을 하나하나 찬찬히 들려주려고 쓰였다.
이러한 엄청난 스토리를 담은 신의 책 성경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시대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복음을 듣는 각 개인에게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선포되어왔다. 예수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예언하셨다. 이 말씀 그대로 성취된 역사가 교회사요, 교회사는 곧 서양사이며, 기독교가 전해지면서 동양 나라들은 서구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오늘에 이른다.
세상에 이러한 확고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종교는 기독교 외에 달리 없다. 기독교는 태초의 창조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인류 역사와 고스란히 함께 해왔다. 특히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려고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의 교회 역사와 그때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날 여러 종말의 징조들을 정확하게 예언해놓고 있다.
요한계시록 2장부터 3장까지에는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의 유형에 대해 직접 예언하신 말씀이 나온다. 초대 교회 이후 로마 황제들 치하에서 핍박받던 카타콤 교회 시대와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조금씩 혼합주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교회 시대를 포함, 중세 암흑기, 종교개혁기, 대부흥기, 그리고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에 이르기까지 교회사 전체를 일곱 교회의 유형으로 개괄해놓고 있다.
교회들의 유형에 대한 이 특별한 예언은 우선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때인 AD 95년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던 일곱 개 지역교회의 특징을 담았다. 그리고 그 유형이 교회사에서는 시간 순에 따라 일곱 교회 시대로 나타났으며, 각 교회 시대에 이 일곱 지역교회의 특징을 담은 교회 유형들이 동시에 공존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도 첫사랑은 잃어버린 채 교리 수호에 열심인 교회(계 2:1-7), 로마의 카타콤 지하교회처럼 핍박받는 교회(계 2:8-11),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계 3:1-6), 작은 능력을 갖고도 신실하게 말씀을 지키는 교회(계 3:7-13), 겉은 화려하나 속은 미지근하고 빈약한 교회(계 3:14-22)의 유형들이 각 지역마다 있기 때문이다.
신의 손가락으로 쓰인 최초의 돌판 성경
교회사를 거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초기에는 필사본 형태의 낱권으로 흩어져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지금과 같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교회 안팎에 지금의 성경 66권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되는 여러 책들이 있었다. 그러나 구약성경 39권은 AD 100년 경 얌니아 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은 AD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각 책들 자체가 지닌 고유의 권위 때문에 교회 성도들에 의해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고 있던 책들이 비로소 공식적으로 추인된 것이기도 했다.
성경은 순전히 사람이 지어낸 여느 책들과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기록 과정에 각 저자의 개성과 자질을 사용하셨다. 때로는 여러 문서 자료들과 구전된 전통까지도 활용케 하셨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친히 관여하시고 특별한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오류 없이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revelation)라고 한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이 사실을 정확히 천명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하나님께서도 “내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신 18:18)와 같은 말씀으로 이 독특한 성경 기록 메커니즘을 친히 인정하셨다. 물론 성경의 내용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가 보는 앞에서 손가락으로 돌판에다 직접 쓰신 글이다. 마치 성경 전체의 저자가 바로 자신임을 상징적으로 밝히신 친필 사인과도 같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 31:18).
성경이 창조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라는 점에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라 할 만큼 신묘한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록되는 과정이나 기록된 원본 내용이 필사본이나 한 묶음의 책으로 보존되어온 과정은 역사라는 시공간 속에서 존속되고 전수되어오는 절차를 밟았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오시지 않고 처녀의 자궁을 빌려 태어나고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거친 것처럼 성경 역시 하나님의 책이면서도 인간의 책이 갖는 요소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성경이 신화라면 모든 고전도 신화다
이렇게 특별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록된 각 성경 원본의 내용은 AD 15세기 경 요한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모두 양피지 두루마리에 일일이 필사되어 후대로 전해졌다. 초기에는 석회를 바른 돌이나 점토판을 거쳐 파피루스(갈대)에 글을 썼고, 나중에는 양 가죽을 석회수에 담아 털을 다 뺀 다음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 그 위에 글을 썼다. 두루마리는 이런 동물 가죽을 길게 이어 두 나무 막대에 양 끝을 붙인 다음 둥글게 감은 것을 말한다. 구약성경의 필사는 대부분 이 양피지 두루마리 형태로 이뤄졌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대대로 구약성경 필사 작업만 직업적으로 담당하던 서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필사 원칙은 매우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철칙을 몇 가지라도 살펴보면 성경은 그 어떤 고대 시대 책들의 사본보다 훨씬 더 엄격한 원칙을 따라 필사되고 전수되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드시 정결한 동물의 가죽에 기록할 것, 사본은 원본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함, 어떤 단어나 글자도 원본을 앞에 놓지 않은 채 기억으로부터 더듬어 기록하지 말 것, 자음 사이의 간격은 머리카락 하나, 또는 실 한 오라기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할 것, 복사자는 그의 몸 전체를 씻고 할 것, 하나님의 이름은 잉크를 새로 찍은 펜으로 기록하지 말 것,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는 동안에는 왕의 명령이 있더라도 그것을 무시할 것.”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의 필사본이 이렇게 정교한 원칙을 고수하며 기록되었기 때문에 구약성경 사본의 수는 신약성경의 사본량보다 현저히 적다. 이 규정에 따라 기록되지 않은 필사본은 예외없이 그 자리에서 소각되거나 땅에 파묻혔다. 물론 이렇게 엄격한 규정을 따라 기록되고서도 오류가 나왔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를 바꿔버릴 만한 큰 오류는 전혀 없고 아주 경미한 차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구약성경보다 더 엄격한 필사 원칙을 따라 기록된 책은 없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가진 구약성경이 원저자에 의해 기록된 원본의 내용과 거의 똑같다고 확신해도 된다.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의 경우 구약성경과 달리 많은 사본들이 존재한다. 인류의 다른 유명한 고전들과 비교할 때 이 사실 자체가 기록의 신빙성을 확고히 더해준다. 보통 필사본의 경우 원본과 현존하는 최고(最古) 사본간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큰지, 또 똑같은 내용의 사본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로 그 신빙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BC 480년 경에 기록된 헤로도투스의 『역사』는 AD 900년 경에 기록된 사본이 가장 오래 된 것이고 현재 모두 8개의 사본이 남아 있다. BC 4세기 중반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대표작들의 사본은 AD 1100년 경에 필사된 사본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것이며 남아 있는 사본 수도 49개뿐이다.
이들과 비교할 경우 신약성경의 사본수는 월등하게 많고 원본이 기록된 시기와 최초 사본이 필사된 때의 시간 간격도 아주 짧다. 신약 성경의 기록연대는 1세기(AD 50-100)인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본은 2세기(130년 이후) 때의 것이다. 원본과의 연대 차가 약 30년밖에 안 된다. 또한 현존하는 사본의 수도 5,400개가 넘는다. 이것은 일반 고대서적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사본수를 자랑하는 호머의 『일리어드․오딧세이아』의 사본수인 600여 개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분량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 사본학적인 면에서 비교해본 경우다. 만일 신약성경의 신빙성이 문헌학적으로 볼 때 약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널리 정평이 나 있는 인류의 대부분의 고전들이 과연 원본을 충실하게 담은 내용인가를 일일이 다 의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현재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원본은 없다. 모두 사본들뿐이지만 엄격한 필사 작업을 거쳐 전수되어왔기 때문에 그 내용들의 정확성은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번역 성경도 하나님 말씀인가?
15세기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여 성경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손으로 일일이 직접 써야 했던 성경 필사본이 매우 귀했다. 그만큼 쉽게 구할 수 없어 신구약 성경에 속한 책들이 각 교회에 낱권으로 흩어져 소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필사본 형태로만 유통되었기 때문에 꽤 비쌌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이나 사도행전 같은 책의 두루마리 사본 한 권이 지금 우리 돈으로 쳐도 몇 천만 원씩 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집에 소장해두고 읽기란 아예 엄두조차도 내기 어려운 시대였다. 보통 교회에만 몇 권씩 있었고 그것도 성경 전체가 다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다행히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원어 성경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직접 번역되어가기 시작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원본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그 밖의 외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어떻게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말이란 ‘ABC’나 ‘가나다라’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그 각각의 음절들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어 구성하는 문맥 자체가 진정한 의미요 말이다. 성경에서도 바로 그 문맥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뜻이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인 것이다.
물론 단어 하나하나가 성경에서는 모두 특별하게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의미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 해당된다. 그래서 외국어로 번역된다 해도 성경 원어가 가진 본래 의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외국어로 번역된 최초의 사례는 70인역 성경(Septuagint)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방랑) 유대인 2, 3세들은 더 이상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헬라어로 된 성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BC 250년 경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 치세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72인의 유대인 학자들이 모여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당시의 세계어인 그리스어(헬라어)로 번역한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초대교회 시대 이후 전 세계로 선교가 진행되면서 이집트어, 시리아어, 슬라브어 등으로 성경이 번역되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유럽 쪽에서 AD 4세기 말 제롬(히에로니무스)이 당시 로마 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번역했다. ‘만민의 성경’이라는 의미를 가진 불가타(벌게이트) 역본으로 불린 이 번역 성경은 이후 천 년 넘게 온 유럽을 지배했다.
AD 500년이 넘어가면서는 성경의 여러 부분들이 수백 개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어갔다. 7세기에는 사복음서가 중국어로 옮겨지고, 곧이어 아랍어로도 번역되었다. 5세기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라틴어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부터는 게르만어, 앵글로색슨어, 프로방스어,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유럽 각지의 언어들로 성경이 번역되어갔다.
마침내 1300년대 후반에 존 위클리프라는 영국 사제가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하던 영국교회의 전통을 깨트리기 위해 라틴어 신구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때부터 라틴어를 아는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루터가 자국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때마침 개발되어 있던 인쇄술로 성경이 널리 유포되면서 종교개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간 것은 유명한 역사의 실례다.
위클리프 영어성경이 나오기 전까지 교회는 라틴어 성경에 의지하여 여러 세기 동안 권력을 휘둘러왔다. 위클리프의 영어 성경은 그 권력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교회가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대충대충 행했던 의식과 가르침의 잘못된 정체가 들통 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국어로 직접 읽은 성도들이 참된 진리에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교회는 급기야 위클리프 성경을 금지하기에 이르지만, 이후 틴데일 성경, 커버데일 성경, 제네바 성경(1560년에 최초로 현재의 성경에 있는 장과 절을 구분하여 출간된 성경)과 같은 우수한 영어 번역본 성경이 계속 나왔다. 마침내 1611년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명령에 따라 최초의 공인판 영어 성경인 킹 제임스 역본이 등장하게 되고, 이 성경은 지금까지 영어권 사람들의 표준 성경처럼 여겨져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오고 있다.
통일신라가 남긴 기독교의 흔적
성경 번역의 역사는 교회사와 나란히 진행되어왔다. 특별히 우리나라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는 번역 성경의 영향이 더욱더 각별했다. 개신교의 경우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국내에 번역 성경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것은 교회사적으로도 아주 독특한 사례에 속한다. 물론 그 이전의 초기에는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로 서양 기독교 문명과 함께 새로운 학문 연구의 대상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먼저 거쳤다.
우리 민족이 기독교 복음을 처음 접한 건 의외로 연원이 길다. AD 635년 경 중국 당 나라 태종 치세 때 고대 동방 기독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그로부터 약 250년 동안 흥왕했다. 중국식 기독교인 이 경교가 당시 통일신라에도 전래된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1965년 불국사 경내에서 돌 십자가가 출토되고, 역시 경주에서 철제 십자문 장식과 성모 마리아상이 발굴되었다. 역사가들은 이런 유물이 당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당시 한반도의 통일신라에 기독교가 전래된 증거물들이라고 추측한다.
또 역사가들 중에는 13세기 경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이 동아시아부터 중국, 동유럽, 중동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제국을 세울 때 당시 십자군 전쟁을 진행중이던 서유럽 교회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당시 몽골군은 십자군 대신 성지 팔레스틴을 점령하고 기독교인의 순례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이러한 호의에 대한 반응으로 서구 교회는 몽골에 사절과 선교사를 파견했다.
그때 한 선교사가 선교 보고서에서 당시 몽골이 침공하려던 ‘고려’(카울레, 코리아)라는 나라의 이름을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했다. 역사가들 중에는 이것 자체를 우리나라가 기독교와 접촉한 의미 있는 기독교 선교의 진전 사례라고 보기도 한다. 14세기에 몽골어 번역성경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고 보면 몽골을 통해 우리 민족이 미약하게나마 기독교와 접촉했을 가능성은 꽤 높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미 일본에 전래되어 있던 기독교의 영향이 그리스도인 일본 무사들을 통해 조선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열어놓는 이들도 있고, 일본을 통해 조선 선교의 가능성이 타진되기만 하고 이후 중국의 명, 청 나라를 통해 조선 선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다. 1636년 청 나라가 조선을 침입하여 충신들을 볼모로 잡아간 병자호란 당시부터 실제로 기독교와의 접촉이 좀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간 인종의 아들 소현 세자는 중국 북경의 주교였던 독일인 예수회 신부 아담 샬을 만나 교제했고, 소현 세자가 귀국할 때 아담 샬은 당시 청나라 안에서 발행된 기독교 관련 서적과 서양 문물을 선물했다. 1645년에 서울로 돌아온 소현 세자는 70일 만에 학질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청나라에 있던 기독교와 서양 문물이 조선에 들어오는 길을 열어놓는 상징적인 관문 역할을 감당했다.
두 차례의 큰 전란을 겪은 조선은 그 후 서양에서 도입된 문명의 위력을 실감하고, 무엇이 그와 같은 힘을 형성시켰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자연과 역사 안에 녹아 있는 창조 질서를 깨우쳐온 독특한 기독교 신앙의 세계관이 그 배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히 문예부흥 이후 근대화의 물결을 따라 변모해가는 세계의 대세에 눈을 돌린 조선 학자들로 하여금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파를 형성케 만들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처음 우리 민족에게 소개될 때 서양 학문, 곧 ‘서학’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게 된 배경이다.
실학파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수광은 자신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쓴 『천주실의』를 논평했다. 그 내용에는 천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고, 사람의 혼은 불멸하여 짐승과 크게 다르다는 등의 창조설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익 역시 저서 『성호사설』에서 자신이 매료된 기독교의 윤리를 기준으로 유학적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서학의 설(說)이 극히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천주실의』에 대해서도 논평하면서 예수님의 처녀 탄생 경위, 그의 선교, 십자가상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의 가르침이 유럽 여러 나라에 두루 퍼져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 말고도 안정복, 박지원, 정약종, 정약용 같은 당대 조선의 석학들이 서학을 탐구하고 흠모하던 학자들이며, 의술이나 수학, 농학의 경로를 통해 서학을 탐구하게 된 자들마다 그 가르침의 신기함에 감탄했다는 중요한 역사 기록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서학을 서양 문명과 함께 공부한 사람들이 다 종교적 신앙에까지 이르렀던 건 아니다. 박지원은 천주교를 사학, 즉 사악한 가르침이라 비판했고, 안정복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결국 조상 제사 문제 등으로 천주교를 기존 체제와 전통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인식한 조정이 천주교인들을 박해하는 역사가 이어진다. 그 와중에서도 17세기 초의 허균이나 18세기 후반의 홍유한 같은 한국 최초의 진실한 신앙인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1784년에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과, 이익의 증손으로 이승훈을 도와 전도 사업을 함께 했던 이벽을 통해 한국에 천주교회의 초석이 놓였다. 당시 이벽의 전도에 따라 입교한 이들이 권일신, 권철신, 그리고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의 세 형제였고, 이들이 1785년 봄부터 서울 진고개에 있는 김범우의 집에서 주일마다, 그리고 때에 따라 모여 예배도 드리고 교리도 강습한 것이 초기 조선교회의 모습이었다.
이후 들이닥친 조정의 박해로 김범우는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순교로 신앙의 열기가 더 크게 확산되었고, 훗날 그의 집 주변에 현재의 명동 성당이 건축되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의 효시는 이렇게 전개되었고, 그에 따라 창조주 하나님의 책 성경에 담겨 있는 참된 진리의 윤곽도 우리 민족에게 차츰 더 뚜렷하게 알려지게 된다.
선교사보다 먼저 들어와 있던 ‘좋은 소식’
천주교가 외부의 전도 없이 자발적인 서학 탐구를 통해 조선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면, 개신교는 외부에서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들어가기 전에 이미 조선 내에서 자체적으로 번역된 성경을 지닌 채로 선교가 이뤄졌다. 가장 먼저 한국에 성경을 전한 개신교 선교사는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였다.
1866년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당시 쇄국정책으로 굳게 닫혀 있던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며 평양의 대동강변에 나타났을 때 평양 사람들은 그 배를 배척하여 불을 질렀다. 불 타며 침몰해가는 그 배 위에서 대동강변으로 수백 권의 성경책들을 던진 영국인이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다. 그는 가지고 있던 성경책들을 다 던진 뒤 마지막 남은 한 권의 성경책을 가지고 대동강변에 내렸다가 이내 조선 병사 박춘권의 칼에 목이 잘리고 만다. 그러나 목이 잘리기 직전 토마스 선교사로부터 한 권의 한문 성경을 건네받은 박춘권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훗날 평양 지역에 최초로 개신교 교회가 세워졌다.
27세의 나이로 숨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상선 제너럴 셔먼호 침몰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배의 행방을 추적하다가 조선을 설득하여 결국 1882년 한미수호조약을 맺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1885년 한국 최초의 공식 개신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정식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 발판이 닦이게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이후 중국 선교사 존 로스와 백홍준, 이응찬 등의 번역 작업으로 1882년에 최초의 한글 성경인 로스 역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가 만들어졌다. 이어 1985년에 이수정 씨가 일본에서 '마가젼복음셔언해’를 내고, 1887년에는 최초의 신약전서로 ‘예수셩교젼셔’가 나온 후 1900년에 ‘신약젼셔’가 나왔다.
구약성경도 1898년 ‘시편촬요'로부터 ‘창셰긔’(1906년) 낱권부터 시작해 ‘시편’(1906년) 등이 나오다가 마지막 낱권으로 ‘삼우엘젼’(1910) 등이 나온 뒤 1911년에 ‘구약젼셔’가 출간되었다. 여기에 ‘신약젼셔’가 합본되어 1911년에 오늘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쓰는 성경의 번역 원전인 ‘셩경젼셔’가 나왔다. 이 성경이 1938년에 당시의 맞춤법에 맞게 한번 개정되고, 1961년에 다시 한번 더 개정되어 개역한글판 성경이 나오고, 1998년에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 성경이 나왔다.
한글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할 당시 소래 지역 출신의 상인 서상륜(전 경실련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의 증조부)이 중국에서 들여온 번역 성경으로 복음이 전해져 1883년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앙공동체인 소래교회가 세워졌다. 선교사가 복음을 전한 일도 없는데,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찾아와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이 바로 이 소래교회 성도들이었다. 선교 초기에 낱권으로 번역된 성경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권서인(勸書人)들의 활약으로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져갔다.
이러한 전도의 영향으로 한국 역사에서 개화기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안창호, 안중근, 서재필, 이상재, 조만식, 김구 선생과 같은 인물들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을 통해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남녀평등사상과 같은 근대의식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이 가나안농군학교 교장 김용기 장로의 조국을 위한 남다른 기도와 헌신의 삶에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사가들도 인정한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한국 개신교의 첫 기틀을 놓은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 성경을 던질 때 외쳤던 말은 유명하다. “하나님, 지금 죽어도 좋습니다. 단 한 권이라도 조선인에게 성경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니라”(마 24:14)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마침내 한반도에서도 이뤄지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예수님의 예언은 인류 역사 속에서 순차적으로 정확히 성취되어왔다. 인류에게 쭉 전해져온 그 좋은 소식은 이제 오늘날 한반도에 사는 당신 눈앞에까지 배달되어 있다.
이 책은 초대교회 이후 오늘날까지의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살린 바로 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소개하기 위해 쓰였다. 나의 개인적인 어떤 사상을 담으려 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데 자그마한 다리 역할이라도 감당해내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목적이다. 성경 말씀들 사이사이에 삽입된 설명은 사람들에게 말씀이 올바로 들려지도록 중개하기 위한 이음새들일 뿐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참된 회심과 거듭남을 경험하도록 돕고자 했다.
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을 통해 진리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기질이나 환경, 그리고 다양한 의문의 내용에 따라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저마다 각자의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의 체험을 전부인 것처럼 절대화하거나 일반화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단지 내가 경험한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한 편의 증언록이다. 내가 참된 진리를 찾아 헤맬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하는 그것을 이 책에 담고자 했다. 구도자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한 길동무가 되고 싶었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도 여전히 복음에 마음 문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거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롬 10:17). 같은 이유로 혼자 주저앉아 있기보다 복음이 정기적으로 선포되고 들려지는 가까운 건전한 교회에 꾸준히 참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부디 이 책을 통해 영원하신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여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안환균, '당신에게 가장 좋은 소식'(생명의말씀사) 에필로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