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이 푸릇푸릇하다. 선개불알풀이 빽빽이 자라고 있다. 요즘 날씨가 한겨울 추위답지 않게 포근하다고는 해도 오늘 아침은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날씨다. 선개불알풀 잎사귀는 추위에 아랑곳없이 푸르기만 하다. 저 잎사귀는 어떻게 얼지 않았을까? 서서히 추위를 경험하는 식물은 겨울 추위 속에서도 얼지 않고 견디는 성질을 갖게 된다고 한다. 몸 안의 물기를 어떻게 얼지 않게 할까? 어는 점을 내리는 것일까? 부동액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잎사귀를 들춰 보니 줄기가 땅바닥에 누워 있다. 선개불알풀은 줄기를 곧게 세워 자리기에 선개불알풀이라 불리는데 한겨울 선개불알풀은 그 이름답지 않게 슬그머니 땅에 엎드려 겨울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망초나 냉이처럼 땅에 찰싹 잎사귀를 붙이는 로제트 형태는 아니지만 그렇게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도 겨울 추위를 많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선개불알풀은 한두 개씩 따로 떨어져 자라지 않는다. 무리지어 빽빽이 자란다. 너무 빽빽해서 햇볕과 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툼이 심할 것도 같은데 그것보다는 서로 붙어서 겨울을 견디는 게 더 나은 모양이다. 선개불알풀처럼 작은 풀에게는 한 곳에 함께 모여 영토를 만드는 게 생존에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줄기를 누인 한겨울 선개불알풀은 줄기가 곧게 서지 않은 데다 잎자루도 길어서 개불알풀이나 큰개불알풀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른 봄이 되면 선개불알풀은 비로소 줄기를 꼿꼿이 세운다. 잎은 잎자루가 없이 줄기에 붙어나고 코딱지만큼 작은 파란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맘때 선개불알풀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선개불알풀 잎은 폭이 좁아져서 길쭉해지고 줄기에 잎이 달리는 간격이 넓어져서 개불알풀이나 큰개불알풀보다 왜소해 보인다. 꽃으로도 구별할 수 있는데 개불알풀의 꽃은 크기는 비숫해도 색이 분홍색이고 큰개불알풀 꽃은 크기가 배 이상 크다. 색이나 크기는 달라도 꽃의 모양은 세 종류 모두 빼닮았다.
선개불알풀은 꽃에는 꽃자루가 없다. 잎겨드랑이에 꽃이 바짝 붙어 달린다. 꽃이 작은 데다 잎 속에 묻혀 있어서 선개불알풀 꽃을 보려면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생김새가 이러다 보니 꽃가루받이를 돕는 곤충의 눈에 띄기도 힘든가 보다. 곤충이 찾아와 주지 않은 선개불알풀 꽃은 암술 좌우에 있는 두 개의 수술이 암술 쪽으로 오므라들어서 자기꽃가루받이를 한다. "꽃잎과 꽃자루에 드는 지출을 씨앗을 맺는 쪽으로 돌려서 한 알이라도 더 많은 씨앗을 남기려 하는 것이다."(「꽃과 곤충」, 지오북) 이렇게 작은 풀이 유럽 원산지에서 퍼져나가 여기 집 앞 화단에까지 와서 자라고 있다. 이제 선개불알풀은 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 동아시아에까지 퍼져 자라는 세계적인 풀이 되었다.
잡초들에게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라는 틈새가 없었다면 잡초들은 지금처럼 이곳에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선개불알풀과 그 옆에서 자라는 꽃마리, 꽃다지, 냉이, 뽀리뱅이, 별꽃, 개미자리는 모두 이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어 냈기 때문에 다가올 봄에 생기 넘치는 들꽃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